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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분야

(대안학교) 이주 여성들에게 친정집이 되어주기 위해


이은선 이주여성사업팀장

결혼을 계기로 한국에서 생활하게 된 외국 여성들이 점점 늘고 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외국 땅에서 문화 차이를 비롯한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이주 여성들에게는 그들 편에서 문제를 해결해 줄 지원군이 필요하다. 
정부에서는 이주 외국인이 늘어남에 따라 외국인 복지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외국 이주민 복지는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어린 외국인 엄마들의 친정집

이은선 팀장이 근무하는 외국인복지센터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지자체가 만든 외국인 복지기관이다. 
가장 기본적인 사업으로는 한국어 교실이 있는데 다문화가정 지원센터처럼 1~5년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기간 제한 없이 한국어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어 교실은 초급, 중급, 고급반으로 나누어서 운영하고 있고 그 외에도 여러 동아리가 있어서 같은 꿈을 가진 여성들끼리 모여 활동도 하고 한국어 토론도 하면서 한국에서의 생활에 활력과 도움을 얻는다.

물론 복지관 무료서비스인 진료, 법률 상담, 이혼이나 가정폭력 상담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러한 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 이주여성들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사람이 바로 이은선 팀장이다.

“동남아권에서 온 이주 여성들은 현지에서 남편과 만나 연애결혼을 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어 공부가 필수에요. 
하지만 대부분 나이가 많은 남편이나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아이도 돌봐야 하는 형편이라 한국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요. 
그리고 다른 가족들이 이주 여성의 나라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도 문제고요.”

그녀는 이주여성들이 언어의 문제뿐만 아니라 습관이나 문화의 차이도 커서 가족들의 배려 없이는 원만하게 살아가기 어렵다고 했다. 
많은 어려움을 짊어지고 부모와 떨어져서 타지에서 살아야 하는 어린 외국인 엄마들은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기 일쑤다. 
이주여성들의 친정집도 되어주고 친정 언니도, 친정 동생도 되어주며 외롭고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때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녀가 하는 일이다.

“이주 여성들은 공부를 하기 싫어서 안하는 것도 아니고 무식해서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공부를 하려고 해도 할 수 없고, 경험할 기회조차 없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한국말을 못하고 지식이 부족할 뿐이지 바보가 아닙니다. 
바리스타가 무엇인지 몰라도 파인애플을 자르는 방법은 5~6가지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바보 취급을 받고 아이가 잘못 되어도, 남편이 돈을 못 벌어도, 심지어 자신이 아파도 다 그녀들의 잘못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죠.”

베풀기 위해서는 그만큼 받아야 하는 사랑

이은선 팀장은 자신을 ‘직딩’이라고 표현한다. 
그녀는 자신이 아는 지식으로 일을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대학원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이주 여성들을 위한 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기 위해 그녀가 남양주시 외국인복지센터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그녀에게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없었다. 
일을 하면서 이 분야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했고 그래서 그녀는 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해 자격증을 취득했다.

“바리스타를 배운 것도 이주 여성들이 갑자기 애가 아파 못 나올 때를 대비해서 제가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배우게 됐죠.”

그녀는 그렇게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하나씩 배워나갔다. 
청소년기에 그녀는 ‘나중에 뭐가 되려고 그렇게 공부를 안 하니?’하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학업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앞에서 리드하기보다는 뒤에서 따뜻하게 감싸주고 힘들어 보이는 친구에게 편지를 써주는 그런 다정한 사람이었다.

“사람의 마음에는 100퍼센트의 사랑이 있어서 누군가에게 40퍼센트의 사랑을 나누어 주면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40퍼센트를 받아야 한대요. 
제가 이렇게 행복하게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은 저 역시 어딘가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겠죠. 
이주여성들도 마찬가지로, 아이와 남편에게 사랑을 주기 위해서는 어딘가에서 사랑을 받아야 해요.”

고충과 보람

이은선 팀장이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녀가 가정폭력이나 우울증에 관한 사례를 담당할 때는 몸살이 나 사흘 동안 앓아눕기도 했고, 사례자의 고통이 너무나 공감되어 가슴이 아픈 데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다는 생각에 그녀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하찮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그 시간을 견디며 꾸준히 가다 보면 빛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힘겨운 그 시간을 견디는 동안 그녀의 곁에는 그녀를 지지해주고 인정해주는 선배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계 사회인 베트남에서는 이혼을 하거나 남편이 사망하면 대부분 엄마 쪽에서 아이를 키운다. 
한국으로 재혼하여 오는 이주 여성의 경우, 시간이 흐른 뒤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한국에서 키우고 싶어 하는데 이런 입국 자녀들의 교육 문제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베트남에서 살아봐야 자신처럼 고생할 거라는 생각에 한국에 데리고 오긴 하는데 이주여성들이 생각하는 ‘더 나은 삶’이란 아이를 공장에 보내 돈을 벌게 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 아이들은 교육을 받아야 하고, 그들이 안전하게 클 수 있도록 누군가 도와주어야 해요. 
자기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꿈꾸는 대로 살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하죠.
그런데 엄마는 취업을 시킬 테니 학교 보낼 생각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엄마는 자신이 아이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고 있는지 모르는 거죠.”

그녀는 이주여성(엄마)와 아이를 설득해야 했다. 
한국에 들어와 처음에는 집밖으로 나오려고도 하지 않았던 베트남 아이가 3년이 지난 지금은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는다. 
좋고 싫다는 의사표현도 하게 되었고 8월에는 다문화학교에 입학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이 일에 보람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외국인복지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직장을 얻어 사회생활을 하게 된 이주 여성이 집에서 받는 대우가 달라지고 가족 간의 관계가 개선되는 것을 볼 때도 보람을 느끼죠. 
그것이 이 일을 해나가는 원동력이에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서의 사춘기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은선 팀장의 꿈은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사실을 말하면 사람들이 다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고, 자신에게는 그런 힘이 있다고 느꼈다. 
어느 날 영화를 보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는 순간 그녀는 영화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버지를 따라 가서 보았던 생애 첫 영화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었어요. 
어두운 시골 지하 영화관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보았는데 신선한 충격을 받았죠.”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이 즐거워서 아버지가 장사하러 나갈 때도 따라다니곤 했던 그녀는 언니가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가 힘들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은 힘들게 공부하는 게 싫으니 실업계 고등학교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업계를 다니면 아버지 일을 도와야 한다는 부모님 엄포에 그녀는 선뜻 결정하지 못 했다.
망설이고 있는 그녀에게 그녀의 아버지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를 제했다.

“농민운동이나 지역운동, 청년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가 우연히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교장 선생님이 하시는 특강을 듣게 되셨나 봐요.
대전까지 가서 들은 특강에서 깊은 인상을 받으셨는데 마침 그 학교가 저희 집 가까운 곳에 있었던 거예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 입학한 그녀는 학교생활을 하며 사춘기를 혹독하게 겪었다. 
생각할 시간이 많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학교를 다니다 보니 자신의 단점도 발견하게 되고 심각하게 진로에 대한 고민도 했다. 
집안이 어려워 힘들게 살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부족함 하나 없이 자랐지만 잘하는 것도 없고 공부도 안하는 자신에 대한 책망이 생겼다. 
남들과 다르게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평범한 사람이란 걸 알면서 충격도 받았다. 
그런 스트레스로 인해 그녀는 자다가 숨이 멈추기도 했고 수업 시간에 기절하는 일도 생겼다.

그녀가 공동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스트레스는 어린 그녀에게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언제나 두 팔을 벌리고 딸을 맞아주며 무슨 이야기든 잘 들어주시는 어머니가 있었기에 그녀는 잘 이겨낼 수 있었다.

따뜻하고, 포근하고, 사랑이 많고, 겸손했던 어머니가 없었다면 그녀는 자신이 싸움꾼이 되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여러분, 이거 하셔야 해요. 아니면 여러분 인생이 불행해져요’라고 말해버리는 사람이 되었을 것 같다. 
‘한국어 교실 안 나오고 싶어서 안 나오는 게 아니라 못 나오는 거 내가 너무 잘 알아. 너무 마음 아프겠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이은선 팀장을 키운 토양은 어머니였다.

충분히 100점을 넘어선 열정

“제가 이 일을 지금까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양분은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서 받았어요.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로 만드는 방법을 배웠죠.”

이은선 팀장은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시절, 학교에 다니며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다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녀는 ‘모모 프렌즈’라는 영화 동아리도 만들었고, 유명 강사들을 초청해 강연을 듣는 문화 시간에 직접 강사를 초대하기도 하기도 했다.

“「씨네21」 편집장님께 편지를 보냈는데 그분이 정말로 와주셨어요.
저에게는 꿈같은 일이었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내가 만든 것이 현실이 되는 것을 봤고, 그때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했다면, 그리고 그 노력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았다면, 결과에 대해 그 누구도 점수를 매길 수 없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과정과 노력만으로 충분히 100점을 넘어선 것이라고 지지를 해주셨던 선생님 덕분에 그녀 역시 이주 여성에게 ‘안 돼도 괜찮아요.’, ‘시간이 필요할 뿐 안 되는 건 아니에요’라고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6년 만에 대학 졸업

대학 입학을 준비하면서 영화학과와 신문방송학과를 두고 망설였던 이은선 팀장은 어머니의 조언으로 신문방송학과에 면접을 보러 서울로 갔다. 
면접 전날인데도 불구하고 서울에 올라온 것이 너무 기쁜 나머지 그녀는 당장 영화관으로 갔다.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서도 면접을 준비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수업 시간이 이른 아침이었기 때문에 잠이 덜깨 졸거나 수업에 빠지기 일쑤였다. 
결국 자기소개조차 준비하지 못한채 면접에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첫 질문에서 이름만 말하고 말문이 막혀 버렸어요.
속으로 ‘아, 망했다. 불합격할 게 뻔해’ 하고 생각했죠. 
하지만 다음 질문부터는 제가 알고 있는 것이라서 20분 동안 열심히 질문에 답했고, 결국 대학에 무사히 합격할 수 있었어요.”

그녀의 대학생활은 생각처럼 순탄하지는 않았다. 
IMF가 터지고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그녀가 입학할 즈음에는 방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졌던 것이다. 
그녀는 아는 언니와 원룸에서 함께 살면서 아르바이트를 서너 개씩 할 수밖에 없었다. 
힘겨운 생활에 지친 그녀는 휴학을 하고 집으로 내려갔다. 
그녀는 언니가 학업을 마치고 취업을 할 때까지 공부를 중단할 생각으로 향한 집으로 향했다.

“집안일을 도우면서 공부에 대한 반성과 갈증이 생겨 강의를 찾아다니며 듣던 중에 남편을 만나 일찍 결혼을 했어요. 
남편이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하면서 제 복학을 도와줬죠.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 6년 동안 대학교에 적을 두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3년 6개월 만에 학점을 이수하고 무사히 졸업했어요.”

현장에서 뛰며 더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은선 팀장은 휴학을 했을 때 영화현장에서 일하기도 하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자원봉사 다니던 ‘청소년과 놀이문화 연구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돈이 없어 휴학을 하고 있을 때조차도 그녀는 2주에 한 번 있는 자원봉사 수업만큼은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언젠가를 이렇게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하게 될 거야.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감독이 될 거야’라는 희망이 비관적이고 어둡던 시절을 견디게 해주었죠. 
‘청소년과 놀이문화 연구소’는 제 첫 직장이기도 해요. 
캠프와 같이 자연 속에서 하는 다양한 활동이 제게 잘 맞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스스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현장에서 뛰고,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면서 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른 경험을 해보리라 마음먹었죠.”

그 즈음 그녀에게 경기문화재단에서 하는 바우처사업의 코디네이터를 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아동, 노인, 장애인을 위한 사업이었고 현장을 뛰어다니며 하는 일이었다. 
경기문화재단에서 일을 하다가 이주 여성들도 바우처사업의 혜택을 받고 그녀가 일하던 예술재능기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는 요청이 있어 남양주에 답사 차왔던 것이 인연이 되어 그녀는 남양주시 외국인복지센터에 입사하게 되었다.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무언가를 제공하고, 때로는 통로 역할도 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 저에게는 잘 맞고 재미있어요.”

이주 여성의 복지를 위해 일한 지 3년 차가 된 그녀가 꿈꾸는 미래에는 아직도 영화가 있다. 
힘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편안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영화를, 죽기 전에 딱 한 편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그녀의 인생 최종 목표는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 계속
공부하고 노력하고 배우는 사람, 재미있고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라고 했다.

달리는 것을 멈추고 생각을 해보세요

“내가 힘을 빼지 않으면 반드시 힘이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말이 있어요. 
출근을 할 때 한 번 정도는 ‘오늘 날씨가 너무 맑다, 강원도 가는 버스를 타자’를 정말 저질러 보는 거예요. 
일탈을 하자는 게 아니고 행복해지자는 거죠. 
더, 더, 더가 아니라 힘들고 스트레스 받으면 일을 멈추고, 공부를 멈추고,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닌지, 너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잠깐 브레이크를 밟아놓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일하는 이유,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돼요. 
회사에서 안 좋은 일도 있고 몸도 지쳐 피곤하지만 복날이니 좋은 아내, 엄마가 되기 위해 가족을 위해서 닭고기를 사러 시장에 가요. 
그런데 하필 대추가 없어서 다른 곳까지 가서 겨우 대추를 사들고 집에 돌아와 더운 날씨에 삼계탕을 끓였는데 남편이 대뜸 ‘왜 삼계탕에 인삼이 없냐?’라고 한다면 얼마나 힘이 빠지겠어요. 
그러면 ‘내가 그걸 얼마나 힘들게 끓인 건 줄 아느냐’고 따지게 되고, 남편은 ‘누가 고생하래?’ 하고 대꾸하는 식이죠. 
그러니 힘든날은 그냥 마트에 가서 삼계탕 팩을 사는 거예요. 
그리고 가족들에게 오늘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만들지 못하고 샀다고, 맛이 없어도 이해해달라고, 미안하다고 하세요. 
그러면 가족들이 괜찮다고 말할 거예요.”

이은선 팀장은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하며 조언을 남겼다.

“꼭, 더 나은 미래란 없어요. 
오늘의 최선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미래를 기대하며 현재를 산다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힘들었어요.
로에 대해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 시대의 젊은 사람들이 가져할 것은 미래의 꿈이 아니라 열정과 패기라는 거예요.”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139&cur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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