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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분야

(과학) 건축과 음악, 두가지 꿈을 다 이뤘어요


양진석 건축가

건축가 양진석 씨는 9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방송 ‘러브하우스’로 유명세를 탔다. 
러브하우스는 사연 있는 사람들의 허름한 집을 리모델링해주는 방송이었다. 
드라마를 비롯한 미디어에서는 마냥 멋있고 화려하게만 그려지는 건축가의 실제는 어떨까? 
또 중학교 때부터 건축가를 꿈꿨다는 진석 씨는 어떻게 그 꿈을 이루었을까?

꿈이 두 개라도 괜찮아요. 다 할 수 있어요.

진석 씨는 중학교 때부터 두 가지 꿈을 가지고 있었다. 
건축가와 뮤지션이다. 
중학교 때부터 음악을 했고 대학은 건축과로 갔다. 
대학에 가서 도 건축과 음악이라는 두 가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성인이 됐으니까 마음껏 음악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음악도 열심히 했지만 건축 중에서도 특히 좋아했던 설계와 디자인도 열심히 했다. 
두 가지를 함께 하며 참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대학교 3학년 때 큰 위기가 왔다. 
음악을 할 건지, 건축을 할 건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때 진석 씨의 아버지는 음악하는 것을 반대하시지는 않으셨다. 
아버지가 보니까 둘 다 재능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음악을 좀 더 많이 좋아하는 것 같고, 건축은 재주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 재주가 있는 걸 일단 먼저 하고, 좋아하는 거는 뒤에 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하셨다. 
공부는 때라는 게 있는데 때를 놓치면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설득을 하느라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일리가 있었다. 
그래서 음악을 포기하고 유학을 가기로 결정했다.

사실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사정이 생겨서 가지 못했다. 
런데 아버지가 생각할 때 일본의 공학이나 건축기술을 배워오면 오히려 차별화가 되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다행히 일본의 명문 교토대학에 합격을 했다. 
당시에 교토대학이라고 하면 우리나라로 치면 도에서 일등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진석 씨는 충격을 받았다. 
수재라고 하는 애들이 모였는데 전부 하나같이 공부만 하는 애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모두 다양한 취미들을 활발하게 즐기고 있었다. 
순간 진석 씨는 ‘나도 음악을 했는데 내가 왜 음악을 포기하려고 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경직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건축을 한다고 음악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오히려 그때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듣고 즐겼다. 
음악에 대한 칼럼도 쓰기 시작했다. 
그 결과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건축회사를 다니면서 솔로앨범 1집을 내기도 했다. 
물론 직장생활을 하느라 홍보 같은 건 하지 못했지만 의미 있는 앨범이었다.

끊임없이 뭔가를 하던 학창 시절

진석 씨는 중학교 때 특별반만 해도 음악, 미술 등 여러 개를 했다. 
기다 학생회 활동을 하고 교회도 다녔다. 
운동도 많이 했다. 
축구, 배드민턴, 탁구 등. 물론 다 잘한 건 아니었지만 끊임없이 뭔가를 하는 학생이었다. 
많은 활동을 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간관리 능력이 생겼다.
뭐든 빨리빨리 처리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공부도 빨리빨리 했던 것같다. 
집중이 안 된다 싶으면 아예 책을 덮어버렸다. 
해봐야 소용이 없으니까 말이다.

진석 씨는 청소년들한테 “잘 놀아야 해. 무지하게 잘 노는 게 중요한거예요.”라고 조언한다.
굉장히 잘 놀면 일에도 더 집중할 수 있고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다. 
매일 똑같은 일을 지치도록 하는 사람에게서 생동감을 찾기란 힘들다.

실제로 어떻게 일하고 돈을 버는지 알아야 해요

자신이 중고등학교 때를 생각해보면 역시 그때는 부모들의 영향이 굉장히 컸다고 한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니까 상당히 편협한 정보로 밖에 자기 미래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는다고 해도 위인전기 정도였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보면 위험했던 것 같다. 
평생의 삶이 찰나의 순간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진로를 결정할 때 단순히 직업의 이미지만을 생각해서는 위험하다.
특히 그 직업이 어떤 방식으로 수입을 만들어내는지를 중고등학교 때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건축가를 꿈꿨고 아버지도 건축가가 되라고 하셨다.
그러나 건축가가 실제로 어떤 경제활동을 한다는 얘기를 해주진 않으셨다. 
그는 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면서도 건축가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일하고 돈을 버는지 몰랐다고 한다.

그런데 유학을 가서 좀 더 자세히 이 일을 들여다보자 깨달았다. 
건축이라는 일은 서비스업이었고 건축가는 그중에서도 소위 말하는 ‘을’이었던 것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고 인기도 많은 변호사, 회계사도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광고하는 사람도 ‘을’이다. 
대학원 때에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그는 자신이 을의 생활에 익숙한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진로를 정할 때부터 이런 사실을 먼저 알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사람 만나는 게 너무 좋고, 목표를 위해 사람을 설득하는 게 좋아.’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절대 그런 건 못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는 그 교육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걸로 인해서 꿈과 미래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정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건축가의 일을 자세히 보니 고민되었지만
마음의 근육을 만들었어요

많은 건축가들이 서비스업에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재능이 있고 예술적인 면에서 뛰어나지만 정작 건축은 영업을 해야 되는데 사회에 적응을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성공한 건축가들을 보면 스케치 같은거 좀 못해도 말솜씨가 좋고 사교성이 뛰어난 사람이 훨씬 더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그게 우리 사회의 단면인데 그런 면도 학생들이 정확하게 알 필요는 있다고 말한다.

진석 씨 역시 대학 때까지만 해도 건축가를 마치 순수예술을 하는 화가에 가까운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에 유학을 가서 실체를 알게 되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석사 과정 중간에 잠시 방황을 했다. 
학교를 그만두진 않았지만 1주일 동안 미국에서 여행도 다니고 한국에 잠깐 들어와서 고민에 빠졌다. 
다시 음악으로 마음이 기울기도 했다.

그는 대학 다닐 때 유명한 초콜릿 광고 음악을 만들어 당선된 적이 있었다. 
그 기억을 떠올려 ‘내가 광고음악에 꽤 소질이 있었지’라고 생각하며 광고하는 선배를 찾아갔다.
그 광고하는 선배랑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해봤더니 그때 선배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줬다. 
진석 씨가 을의 입장과 서비스업에 맞는가를 고민하고 있었지만 그 선배는 광고업계가 훨씬 더 심하다고 했다. 
또 광고음악은 영상 예술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상업적인 것도 아니라 애매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재미있긴 하지만 자기가 볼 때는 건축이 더 낫다고 진석 씨를 설득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또 그게 맞는 얘기인 것 같기도 했다. 
일단 대학원을 끝내자 싶어서 대학원 으로 돌아가 졸업을 했다. 
당시의 방황이 그에게는 중요한 시기였다. 
그때 많은 것을 깨닫고 마음의 근육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방황의 시기 없이 사회에 나갔다면 건축가가 어떻게 일하는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나중에 건축가가 되어 ‘내가 이런 대접 받으려고 그렇게 공부했나’ 싶을 정도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미리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가가 되고 싶은가’에 대해 고민하며 마음의 근육을 만든 덕분에 좀 더 담담하게 넘길 수 있었다.

직업을 택할 때는 단위노동시간을 생각하세요

직업을 선택할 때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단위노동시간에 대한 개념이다. 
쉽게 얘기하면 아르바이트의 시간당 급료를 생각하면 된다.
들이는 시간에 비해 수입을 얼마나 버느냐 하는 문제다. 
예를 들면 변호사 같이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M&A하는 사람은 하루에 8시간 하고도 몇 십억을 번다고 한다. 
반면 8시간 노동을 해도 몇 만 원밖에 못 버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시간당 많은 돈을 번다고 해도 좋은 것만은 아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서 M&A를 하거나 선물투자를 하거나 이런 사람들은 수명이 짧다고 한다. 
또 마흔다섯, 쉰 살이면 거의 대부분은 은퇴해야 한다.

이런 차이를 알면 어떤 직업이 자신한테 맞고 어떤 직업을 선호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현실적으로 공부를 안 하면 육체노동을 하는 직업을 가지게 될 확률이 높아지는데, 다른 전문가의 직업을 가지면 수입이 몇 십 배씩 차이가 난다는 걸 어릴 때 조금이라도 알면 좀 더 공부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은 가르쳐주지 않고 그냥 공부하라고만 하면 동기부여가 잘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축가는 어떨까? 
진석 씨는 건축가들이 공부하는 거에 비해서 실제로는 돈을 많이 못 번다고 말한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는 좀 많이 다르단다. 
가령 건축가는 건물을 디자인해서 그 대가를 받는다.
그것을 디자인 피(fee, 요금)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에는 그 개념이 별로 없기 때문에 수입이 높지가 않다. 
변호사나 회계사처럼 빈도수라도 많으면 좋겠지만 이 좁은 땅덩어리에 건물 지을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석 씨는 건축가가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모든 예술의 기본은 건축이며 건축에서 많은 부분이 파생되었다. 
건축은 기본 학문인 것이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넘나들며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이다.

건축가도 대부분 직장인이에요

건축가 중 70~80%는 직장생활을 한다. 
작품을 하는 예술가가 아니다. 
대다수는 건설 회사를 다니거나 일반 설계사무소의 직원으로 일하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건축가의 삶이라는 걸 연상하면 그리 썩 유쾌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위에서 시키는 디자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배운다는 생각으로 다닌다. 
그렇지만 독립을 한다는 보장은 없다.

또 건축은 어차피 대기업형 직업군이 아니다. 
건설회사만이 대기업에 속해 있는 회사고, 나머지는 거의 다 중소기업이다. 
그러니 대기업에 적합한 인재라면 건설회사에 가든지 그 외에는 전부 중소기업에서 자기가 훈련하면 된다. 
정형화된 대기업의 인재상에 맞출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도 3년 동안 국내의 건축사관학교라고 할 정도의 큰 회사인 ‘정림건축’에서 일했다. 
큰 건축회사에 다니느냐, 한 4~5명의 직원들을 도제식으로 가르치는 아틀리에 건축에 가느냐는 자기 판단인데 그는 정림건축이 시스템이 잘되어 있는 것 같아서 거기로 갔다. 
또 일본에서는 한 3~4명이 있는 사무실에 다닌 적이 있다. 
그러니까 그는 양쪽 다 경험을 해본 셈이다.

짧은 직장생활을 마치고 독립을 했다. 
사실 그는 독립을 하면 잘될 줄 알았다. 
좋은 학교를 나왔고 디자인도 꽤 잘한다고 자신했으니 가만히 앉아 있으면 일이 들어오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큰 착각이 었다. 
젊은 건축가에게 일을 맡기는 모험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때부터 고생이 시작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가들이 데뷔를 하기 위해서는 보통 공모전에 응모를 많이 한다. 
백 번을 응모해서 한 번이라도 당선되면 자기 작품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혹은 고생하다 어떻게든 한 작품을 하면 그것을 보고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다. 
또 집안 환경이 좋아서 인맥을 통해 일을 해가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들이 아니면 대부분은 직장생활을 한다.

진석 씨는 고생을 해가면서 다행히 회사를 조금 궤도에 올려놓았다.
그러던 중 기회가 왔다. 
음악을 했기 때문에 미디어 관계자들과 연결이 되어 있었는데 아주 우연한 기회에 ‘러브하우스’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서민들의 집을 고쳐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방송으로 유명해지면서 일에 도움이 되었지만 유명세에는 부작용도 있었다. 
하지만 건축가로서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았기에 잠시의 유명세에 휘둘리지 않았다.

자기 앞에 수많은 길을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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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대해서 아니면 내가 살아가는 데 대해서 정말 많은 가능성을 내 앞에 좀 펼쳐봤으면 좋겠어요.”

진석 씨는 학생들이 너무 정형화된 성공에 대한 공식을 접하기보다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중고등학교 때는 그런 수많은 가능성을 펼쳐놓고, 하나하나 알려고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자기의 길을 알 수가있는데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적성이 뭔지 모르겠다’ 이렇게만 얘기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중퇴했다. 
그 후 트럭운전수를 하고 복싱선수가 되었다가 결국 건축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유럽으로 떠났다. 
유럽에서 스케치 여행을 한 뒤에 건축가가 되었다. 
고등학교 중퇴인데 동경대 교수도 되고, 하버드대 교수도 되었다. 
그의 눈앞에는 여러가지 인생이 있었던 셈이다. 
트럭운전사의 길도 있고 복싱선수의 길도 있고 그런데 건축가가 그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김기덕 감독도 용접공 같은 일을 하다가 미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프랑스로 가서 미술 유학을 했다. 
거기서 ‘퐁네프의 연인들’이라는 영화를 보고 영화감독을 해보자고 생각해 독학을 했다.

결국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어느 한 순간에는 정말 죽도록 열심히 한 순간이라는 것들이 있다. 
진석 씨도 인생에서 몇 차례 정말 열심히 했던 기간들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열심히 한 순간들. 예를 들어 고등학교 때는 잠도 자지 않고 스무 시간씩 한 달 동안 공부해본 적이 있었다. 
또 유학 가서 일본어로 논문을 쓰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하는 건 기본이다. 
그러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된다. 
진석 씨는 조금이라도 참아야 한다거나 자신을 좀 눌러야 된다거나, 나 자신이 아닌 것 같은 일을 하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스스로 마음이 움직여서 해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즐거워야 하고 내가 납득이 가야 한다. 
내가 행복해야 하고, 중심에는 내 기준이 있어야 한다.

진석 씨는 김용 총장이 한 말 중에 항상 가슴에 새기는 말이 있다.

“무엇이 되기 위해서 여기 온 게 아니라 무엇을 하기 위해서 난 여기온 것이다.”

자신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무엇이 되기 위해서’ 한다면 참 슬픈 일 아니겠는가? 
무엇이 되려면 아부도 해야 하고, 좀 타협도 해야 한다. 
런데 자신이 ‘무엇을 하기 위해서’ 한다면 당당해질 수 있을 것이다. 
더 집중하게 되고, 좋아하게 되고, 즐기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진석 씨는 무슨 일을 하든 ‘무엇을 하기 위해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직 건축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진석 씨는 앞으로도 건축가로서 열심히 활동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제가 잘할 수 있는 일들이 꽤 많아요.”

그는 아직 건축 안에서 자신이 잘해내고 개선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고 느낀다. 
만약에 그런 것들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는 과감하게 그만둘 것이라고 말한다. 
또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활을 보면 ‘갑 같은 을’이 되기 위해서 굉장히 애를 썼던 것 같다고 한다. 
결국 실력과 전문성을 갖고 있어야 갑 같은 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작품과 능력을 보고 찾아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한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또 최선을 다하면서 건축가의 삶이 이어지고 있다. 
결코 녹록치는 않지만 그런 건축가 생활을 즐기고 있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6665&curPag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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