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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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인 인터뷰

interview 외교관 김영희

외교관 김영희

김영희  외교부 외교관

서울시 공무원, 독일의 간호보조원, 직업외교관, 우석대학교 교수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 현실에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로 도전하는 모범을 보이고 있다.

궁금해요
청소년 시절의 꿈은 무엇이었는지요?
외교관 김영희 김영희
저는 어렸을 때 꿈이 외교관이었습니다. 왜 꿈이 외교관이었냐고 물으신다면 시골에서 9남매 가운데 8번째 막내딸로 태어났어요. 젊은 사람들한테는 제 이야기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 같아요. 그럴 때 언니 오빠들이 읽던 책도 보면서 그 때 정말 여기 모르는 세상이 있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예를 들자면 톰 소여 모험이라든지, 빨강머리 앤, 알프스 소녀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때 외교관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정확히 모르면서도 넓은 세상에 나가서 살고 활동을 하려면 외교관이 되면 되겠구나하고 생각했어요.
궁금해요
처음에 하신 일이 서울시 공무원이죠. 공무원이 되겠다고 생각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외교관 김영희 김영희
그 당시에는 아시다시피 직업이 종류가 아주 단순했고, 우리가 산업화가 되지 않은 사회였으니까요. 직업이라고는 교사, 의사, 간호사, 약사, 은행원, 공무원 이정도 밖에는 거의 없는 세상이었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는 집안이 농사를 상당히 지었기 때문에 집이 넉넉한 편이었는데 9남매가 다 학교를 가다보니까 매년 논도 팔고 밭도 팔고 그랬어요. 제가 고등학교 들어가서 대학 갈 때쯤에는 팔 논과 밭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학을 갈 수 없는 것이 뻔하잖아요. 공무원이 된 이유는 직장도 다니면서 대학을 다니기 위해서 서울로 공무원하러 온 거예요.
궁금해요
안정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독일로 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외교관 김영희 김영희
서울시 공무원을 하고 있을 때 백화점에 선물을 사러 같이 갔는데 우연히 고등학교 친구 동창을?? 만났어요. 요즘에 너 뭐하니 그랬더니, 나 조금 있으면 독일에 간다고 그래요. 그래서 왜 어떻게 가? 그랬더니 간호원으로 간대요. 너 간호학교 안 갔잖아 그랬더니, 간호보조원으로 독일 가는 게 있어 그래요. 그 친구랑 차를 한잔 마시고 있는데 머릿속에 막 돌아가는 거죠. 왜냐하면 저는 항상 넓은 세계를 찾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젊은 사람들한테 하는 애기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 줄 알아야 기회가 순간에 지나갔을 때 그걸 잡는 거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어요라고 하면 기회가 지나갔는지도 모르고 이미 기차는 떠나 버리죠. 기차가 내 앞에 슬슬 지나갈 때 확 잡고 타야하는데. 저는 그것이 첫 번째 기회였죠. 이렇게 해서 독일로 갔지요.
궁금해요
공무원이라는 좋은 직장을 박차고 독일로 간다고 했을 때 주위 반응은 어떠했나요?
외교관 김영희 김영희
대학을 가기 위해서 독일 가서 3년 근무를 하고 돈을 벌어서 대학에 들어간다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어요. 그러니까 잘 생각해봐라. 이것은 네가 여기에서 공무원을 하면서 야간대학을 졸업을 하면 고위 공무원 시험도 볼 수 있고 중고등학교 교사도 될 수 있는데 이거는 너무너무 위험이 많은 그런 거다. 그런데도 저는 간다고 했죠. 그래서 해보고 위험이 많을 것을 안다.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은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 같다. 만일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될 수도 있지만 안 되더라도 나는 해보고 후회를 하겠다고 그랬어요. 그렇지만 저는 어렸을적 부터 완전히 자율적으로 결정을 했어요. 나는 충분히 생각했고, 후회를 해도 할 수 없다. 만약에 잘 안 되면 다른 일을 찾겠다고 생각했어요.
궁금해요
독일로 가고 싶은 생각이 확고하게 든 것은 넓은 세상에 동경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겁니까? 한번 제대로 공부를 해보겠다는 공부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습니까?
외교관 김영희 김영희
사실은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도 잘했고 좋은 학교도 다니고 그랬어요.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 공부다운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은 욕심, 넓은 세상을 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독일은 학비가 없거든요. 독일은 대학까지 국가에서 부담을 해요. 그러니까 미국으로는 갈 엄두도 못 냈죠. 간호보조원으로 독일만 갈 수 있었어요.
궁금해요
독일에서 한국 간호사들이 인기가 많았나요?
외교관 김영희 김영희
굉장히 많았어요. 왜냐하면 우선은 상냥하고 싹싹하고 기술도 좋았어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정이 있잖아요. 환자들한테 성심껏 하니까 그렇게 인기가 많았어요. 계약상 최소 3년은 일을 해야 하는 거예요. 우리들 비행기 값까지 내서 자기들이 데리고 갔으니까요. 그런데 간호사들은 3년이 끝나면 다 병원에서 연장하라고 난리였어요.
궁금해요
독일에 계실 때 외교관이 된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요?
외교관 김영희 김영희
아시다시피 제가 독일에 가서 대학 공부를 했고 그 때는 당연히 우리 사고방식으로는 박사 학위를 취득하면 대학교수가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독일통일이 1990년도에 되었고 그 전에 고르바초프가 등장하면서 우리나라의 외교 지평이 확대가 되었어요. 우리가 동구권 하고도 외교를 하고 그럴 때인 90년도에 외교부에서 다섯 분야의 전문가를 특채 한다는 공고를 냈어요. 그 때 러시아어, 중국어, 독일 전문가, 국제법 전문가, 국제관계 전문가를 초빙한다는 공고가 났어요. 저는 그 때 쾰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을 때인데, 그 공고를 보는 순간 어렸을 때 외교관 생각이 번개처럼 떠오르더라고요. 진짜 이거구나 이것이 내 기회다 하고 지원을 했고 많은 경쟁자들이 왔는데 시험에 합격했어요. 그래서 제가 독일 전문가로 발탁이 된 거예요. 1990년의 일입니다.
궁금해요
외교관으로 18년 정도 근무를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시면 외교관 생활이 만족스러웠습니까? 아니면 좀 아쉬운 점이 많았나요?
외교관 김영희 김영희
저는 만족스럽습니다. 저는 외교관도 만족스럽고, 공무원도 만족스럽고, 힘들었던 간호보조원 생활도 다 만족스럽습니다. 그 중에서 외교관은 제 직업 중에서 가장 원했고 가장 오랫동안 했고 국가차원에서 보아도 내가 기여를 했고, 개인적으로도 큰 성장을 했다고 각을 해요. 외교관은 제가 선택을 잘 했다고 생각하고, 저한테도 참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을 해요. 세상의 모든 일이 작은 일부터 시작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떠한 작은 일도 저는 최선을 다해서 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기준이 저는 다른 사람이 아니고 저에요. 다른 사람이 아무리 그 일을 잘했다고 칭찬을 해도 저 스스로 만족하지 않으면 불만이에요.
궁금해요
외교관으로서 개인적으로 얻은 것도 많았다고 하셨는데, 가장 얻은 것은 무엇인지요?
외교관 김영희 김영희
저는 한국 사람이지만 사실은 지금까지 33년을 외국에서 살았고 3~4년 정도만 다시 국내에서 살았어요. 해외에서 산 것이 훨씬 더 길고 저는 지금도 생각을 독일어로 하고 한국어로 번역할 정도입니다. 어렸을 때 꿈꿔온 넓은 세상을 만끽했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외교 활동을 하다보면 지금 글로벌, 글로벌 하는데 외교야 말로 글로벌이거든요. 무슨 현안이 떠오르면 그 현안에 대하여 전 세계의 150개 공관이 있다고 하면 그 공관들이 동시에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누가 보고서를 어떻게 썼고 누가 어떻게 크로스체크 했고 그런 것을 직접 매일 부딪히면서 일을 하면 정말 내가 살아서 움직이는구나. 지구가 여기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그만큼 외교관은 저에게는 맞는 직업이었고,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할 직업입니다. 그래서 저는 굉장히 보람을 많이 느꼈어요.
궁금해요
언론에서 나온 여러 가지 평가를 보면, 외교관으로서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일을 하신 것 같은데요. 외교관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자신만의 전략이랄까 비결이 있었습니까?
외교관 김영희 김영희
외교관이 현안 업무를 보려고 다른 나라 관계자 사무실을 찾아가서 아주 업무적으로만 하면 5~10분 얘기하면 현안은 끝나는 거예요. 그런데 현안만 얘기해서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밖에 나가서 워킹 오찬을 하는데 오찬은 1시간 반에서 2시간이잖아요. 오찬을 할 때 현안을 얘기해도 5분 내지 10분이면 끝나고 많아야 30분이면 끝나는데, 그러면 나머지 한 시간이나 한 시간 반 동안은 무슨 얘기를 합니까?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하지만 역사, 문화, 책, 여행, 날씨며 온갖 얘기를 종횡무진 해야 해요. 거기서 말만 잘해서는 되는 게 아니에요. 영어나 독일어가 아무리 유창해도 내용이 없으면, 알맹이가 없으면, 만나 주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외교에 성공을 하려면 그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아야 하고, 풍부한 대화 내용이 있어야 되고, 친구가 되어야 해요. 친구가 되어야 도와주고 속마음도 털어놓는 것이고, 속마음을 털어놓고 친구가 되다 보면 내가 도와달라고 하는 것도 도와주는 것이죠.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외국어를 잘하면 외교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죠.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거는 기본일 뿐입니다. 말하는 거 외국어는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고, 그것에 플러스로 내용과 내실, 아는 것이 많아야 해요. 책을 많이 읽어야 되는 것이죠. 그리고 외교관은 거짓말 한다고 하는 것은 소설이에요. 외교관도 진실해야 해요. 서로 진실은 통하잖아요. 외교관은 거짓말 하면 안 돼요. 한번은 속지만 두 번은 속나요.
궁금해요
전주에서 여고를 졸업하고 나서 큰 성취를 이루기까지 힘이 되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시나요?
외교관 김영희 김영희
따듯한 가족의 사랑, 특히 헌신적인 우리 어머니의 헌신. 평생을 자녀 교육을 위해서 사셨던 어머니의 힘. 어머니께 내가 실망 시킬 수 없다는 생각. 나아가서는 내 삶은 내가 책임이라는 것. 누구에게 어떻게 얘기를 할 수도 없고 어렸을 때부터 모든 것이 내 책임이었기 때문에, 내 책임이라는 것. 그리고 아무도 나를 구속하거나 속박하지 않았다는 것. 내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 그런 것이 아마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궁금해요
김영희 선생님은 인생의 최종 목표를 어떻게 정하셨습니까?
외교관 김영희 김영희
저는 평생 동안 제 좌우명이 정직하라, 최선을 다하다, 그리고 남을 배려하라. 남을 배려하라는 것은 제가 그런 고충을 겪으면서 살았기 때문에 제가 배운 거예요. 직장을 다니면서 정말 이렇게 이런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남을 배려하면 결국은 자기한테 훨씬 이익이 되더라고요. 예를 들자면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거기에서 고위직이나 공부도 많이 하고 거만한 사람들은 간호보조원이라고 거만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보니까 결국에 자기가 손해더라고요. 왜냐하면 간호보조원이면 그 사람이 직위가 높다고 특별히 잘하는 거 없어요. 자기한테 친절하고 잘하는 사람에게 간호보조원도 잘하게 되는 거예요. 자기가 한 만큼 받더라고요. 그걸 내가 터득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변으로부터 아니면 후배들로 부터 인정받고 존경받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면, 제 삶은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은 외교부에서 나와 있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지만. 제가 남편이 있는 미국으로 가지 않고 한국에 있어요. 그 이유 중에 하나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노하우와 그 경험을 통해서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궁금해요
청소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외교관 김영희 김영희
전지구상에서 내 직업을 찾아라, 이 손 바닥만한 한국에서만 일류대학을 나와서 어느 직장을 찾는 다는 생각을 말아라. 이제는 국경이 없다. 자본이 과학이 정보가 국경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사람도 국경이 없다. 다른 나라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일을 하고, 우리나라 사람이 다른 나라에 가서 일을 찾는다. 21세기에 너무 국수주의적인 사고방식에서 탈피해라. 그게 제가 젊은 사람들한테, 그리고 이 사회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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