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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디자인으로 공간의 마음을 훔쳐라


황지은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미술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는 건축가가 있다. 
미국 하버드대 디자인스쿨을 졸업한 재능 있는 디자인 전문가지만, 분야가 전혀 다른 순수미술 분야에 작품을 내기란 쉽지 않다. 
건축가는 더더욱 희귀하다.

이 건축가는 지난 2012년에는 구 서울역 건물을 개조한 ‘문화역 서울 284’에서 전시를 했다. 
전시가 끝난 뒤에는 다시 서울 금호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 작품을 선보였다. 
‘우연구름’이라는 이름의 이 작품은 두 장소에서 거의 같은 아이디어와 형식을 따랐다. 
하지만 놀랍게도 각각 느낌이 크게 달랐다. 
공간의 특성을 잘 아는 건축가다운 재해석이었다.

어떤 작품이었을까. 
흔히 건축가니까 건물 모형을 세웠을 것이라 추측하기 쉽다. 
아니면 입체 도형을 이용한 기기묘묘한 형상으로 양감을 표현했을까.

둘 다 아니다. 
우연구름은 빔프로젝터로 만든 움직이는 그림자와 역시 빔프로젝트로 표시한 온라인 SNS ‘트위터’의 메시지가 흰 스크린과 건물 외벽에 전시되는 작품이었다. 
몇 개의 기념물들도 전시가 돼 관람객을 불러들였다. 
관람객의 그림자 역시 그림자의 형태로 스크린에 비쳤다. 
현실과 가상이 경계 없이 섞여드는 광경이었다.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한 일종의 미디어 미술인 셈이다. 
황지은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의 작품이다.

건축의 경계를 탐구한다

“제가 하는 연구나 작품을 보고 ‘도대체 건축에서 왜 저런 걸 하지?’하는 의문이 든다면 좋겠어요.”

황 교수는 '디자인 정보학' 또는 ‘디자인 테크놀로지’라고 하는 세부분야를 연구한다. 
과거에는 캐드(CAD)라고 부르던 영역을 포함하는 분야로, 지금은 더 발전해 훨씬 다양한 소프트웨어와 도구를 다루고 있다.
컴퓨터가 디자인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 건축 안에서 혁신적인 디자인을 이끌어내는 과정은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또 하나는 건축적인 지식을 컴퓨터가 이해하는 형식으로 바꾸는 연구다. 
건축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건축 지식이 없는 사람도 건축물에 대해 이해하고, 나아가 서로 제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이 두 가지는 건축 중에서도 가장 새로운 분야고, 그만큼 낯설다. 
렇다 보니 종종 황 교수의 작업은 때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도대체 건축에서 왜 저런 걸 하지?’라는 질문이다. 
건물을 설계하거나 짓는 ‘전통적인’ 건축학에서는 다루지 않는 분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의문은 황 교수가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은 낯선 분야에서 뭔가 희미하나마 건축과의 연관 관계를 느꼈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성공이에요. 
결과적으로 건축의 영역이 넓어질 수 있으니까요. 
과거에는 건축이 아니었던 내용을 건 축학에서 다루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우연히 선택한 세부전공

어렵기도 하고 첨단이기도 한 세부 전공을 택한 배경은 우연이다. 
래 황 교수는 대학에서 건축과 주거환경학을 복수전공했다. 
좀더 물리적인 대상을 다루는 건축학과, 사회나 심리 같은 인문학적인 내용과 실내 설계를 동시에 다루는 주거환경학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야다. 
서로 보완을 하며 도움을 줄 수 있어 시너지 효과가 크다. 
대학 졸업 후 직접 현장에서 일을 3년간 했는데, 어느날 충분히 경험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홀연 대학원에 진학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한다는 목표와 함께였다.

하지만 운명이 바뀌는 계기가 찾아왔다. 
주거환경학에서도 환경심리학이나 사회학과 관련된 주제를 연구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는데, 대학원에 입학하기 보름 전 집에 불이 났다.
가지고 있던 많은 게 불에 타 사라졌다. 연구실 생활을 할 형편이 안 됐다. 
어쩔 수 없이 첫 학기는 연구실은 가지 않고 수업만 들었다. 
그 사이에 대학에 막 부임한 교수의 수업을 들었다. 
캐드를 연구하는 수업이었다.

“제가 컴퓨터는 좀 했어요. 
일을 할 때도 컴퓨터 관련한 일은 늘 제 차지였죠. 
그래서 '교수님이 나보다 캐드를 잘 할 리는 없을 텐데'라는 생각에 수업에 들어갔죠.”

하지만 오해였다. 
당시 교수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개발하는 연구를 했다. 
자신은 사용자 측면에서 최고였을 뿐이지만 그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는 생각이 들자, 교수의 연구가 더욱 큰 인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 교수의 연구실로 지원했다.

이후 미국에서 한 유학 생활은 즐거우면서도 힘든 시기였다. 
하버드 디자인스쿨은 세계 각국에서 파란만장한 경험을 한, 다양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가득했다. 
늘 신기하고 재미난 아이디어와 연구가 넘쳐났다. 
더구나 근처의 메사추세츠공대(MIT) 등 영감을 주는 다른 학교도 있었다. 
황 교수는 지적 자극을 주는 이 모든 분야를 다 섭렵할 수 없다는 사실에 오히려 괴로울 정도로 의욕적이었다. 
MIT에서 인공지능도 배우고, 그들이 자랑하는 미디어랩의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한편, 간섭하지 않고 지도도 해주지 않는 '완전 방임형'의 연구실 분위기 때문에 힘들기도 했다.

“한 달 동안 집 밖으로 안 나간 적도 있어요. 
뭔가 해내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시절이죠. 
지금 생각하면 박사과정 때 흔하게 겪는 어려움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렇지만 당시엔 몹시 힘들었고, 따라서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당시에는 몰랐겠지만, 황 교수는 대학의 교수가 됐다. 
이제는 가르침을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똑같은 고민을 하는 학생들을 위로할 처지가 됐다. 
스스로 겪은 고민이기에 자신있게 후학들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다.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의사결정을 돕는 미디어 건축

황 교수가 최근 주력하는 것은 건축이나 도시계획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돕는 범용 건축 미디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이다. 
소프트웨어 자체의 구축이 중심이 아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도시의 각종 자료를 구하고 통합하는 과정이 핵심이다. 
이는 황 교수가 미국에 있을 때 참여했던 미국의 시민참여형 도시계획에서 영향을 받았다.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주체들이 모여 도시계획을 주제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는데, 때로는 지나치게 계획이 더딘 경우가 있었다. 
이해관계에 충돌이 일어나 의견 통일이 안 되는 경우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도시의 공간 구조를 미디어 소프트웨어를 통해 가상으로 확인하고, 또 시간에 따른 공간의 변화도 시험해볼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서울시가 공개한 1970년대 이후의 서울 항공사진을 이용해 서울 한 지역의 공간 변화를 시간순으로 비교해 봤어요. 
직접 보면 예상과 굉장히 다릅니다. 
미디어를 통해 직접 구체적으로 본다는 것은 이렇게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과정이에요.”

마지막으로 건축을 전공하려는 학생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이 있을지 물었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잘 알 수는 없어요.
세심하게 학습해봐야 합니다. 
직접 해봐야 크더라 작더라 이야기를 할 수 있죠. 또 하나는 공간에 대한 감수성이에요. 
학생들을 데리고 설계실에 가보면 자신의 공간을 잘 정리해서 자신만의 공간으로 순간 맞추는 학교가 있고 그냥 대강 쓰고 마는 사람이 있어요. 
그게 바로 공간에 대한 감수성 차이에요. 
거주성에 대한 욕구라고 할까요. 
개인마다 차이가 있어요.”

또 하나 재미있는 예는 학생들을 데리고 유명 건축물 답사를 가봤을 때 보이는 태도 차이다. 
유명 건축물을 보면 대부분 멋있다는 말만 하게 마련이다. 
정말 멋있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공간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해 대강 남들이 하는 말을 하는 긍정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거주성에 대한 욕구가 낮다.

물론 건축학에는 다양한 분야, 다양한 요소가 포함돼 있다. 
자신의 취향이나 관심도, 적성에 맞춰서 여러 진로가 가능하다. 
거주성에 대한 욕구가 낮다고 건축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 알기 위해서도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분야가 뭔지, 공간에 대한 호오는 분명한지 판단하는 게 좋다.

“건축가는 의외로 전문성을 위협받기 쉬운 사람들입니다. 
누구나 집에 살고 있고, 건축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도 아마 같을 정도로 길지요. 
누구나 한 마디씩 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집을 여러 채 지어본 사람도 건축가 못지 않게 잘 알아요. 
이런 분야에서 견디려면 지구력도 있어야 하죠.”

건축가의 인기는 여전하다. 
자신이 머리로 구상한 공간 구조가 눈 앞에서 정말 실현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건축가만의 특권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묵묵함과 끈기도 건축가에게 요구되는 큰 덕목이다.

다양한 건축의 세계를 꿈꾸며

건축은 영역이 넓다. 
황 교수가 하는 연구들이 그 영역의 끝에 있다.
글의 서두에 이야기한 전시는 건축과 직접 관련이 없는 황 교수 개인의 일이지만, 황 교수는 역시 넓은 의미에서 연관이 된다고 본다. 
적어도 최근 건축가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는 된다.

“원래 순수미술을 하는 쪽에서 디자이너를 부르는 일은 별로 없었어요. 
둘은 크게 다르니까요. 
하지만 최근에는 현대미술계가 변하면서 디자이너에게 기회가 가고 있어요. 
예전처럼 미술가가 완성해 놓은 결과물만 다루지 않아요. 
과정 중심으로 전시를 하지요. 
결과물 말고 만든 사람이 누구였나에 대한 이야기 즉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 가치가 높아집니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자주 참여합니다. 
디자이너는 원래 산업물을 만드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산업물 쪽은 예전부터 과정을 대중에게 알리는 전시를 많이 했어요. 
그게 순수미술 전시 쪽에도 영향을 미친 사례지요. 
이렇게 최근 디자이너의 미술 전시가 늘고 있습니다.
건축가라는 정체성 자체가 전시의 좋은 요소가 되는 것 같아요.”

시민들의 도시계획에도 영향을 미치는 건축, 소프트웨어 등을 활용하며 학문의 영역을 다시 쓰는 건축. 
뿐만 아니라 이제는 미술 전시에 참여하는 디자인으로서의 건축까지, 건축은 스스로의 세계를 계속 넓혀가고 있다. 
가장 오랜 시간 인류와 함께 해 온 공학이자 예술이니, 인류의 보편적인 요구에 두루 부응하는 건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6669&curPag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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