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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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산악인 엄홍길

산악인 엄홍길

엄홍길  - 산악인

세계에서 가장 높고 험하다는 에베레스트 히말라야 8000미터 16좌를 세계 최초로 등정한 산악인 엄홍길.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이룩한 도전기를 들어보자.

궁금해요
‘산을 오르는 것은 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산이 허락하여 잠시 그 자리를 다녀온 것이다.’라 말씀하신 대장님과 산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산악인 엄홍길 엄홍길
고향은 경상남도 고성인데 제가 3살 때 부모님과 의정부 원도봉산 중턱에 터를 잡고 생활하게 됐습니다. 3살 때부터 2000년 5월까지 살았으니까 40여 년간을 산에서 산 셈입니다. 어릴 때는 산에 사는 것에 대해 부모님을 원망하고 산이란 존재 자체가 불평불만의 대상이었어요. 어린 나이에 산은 살기 힘든, 버텨내기 힘든 고생스러운 곳이라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언제부턴가 제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몸과 맘속에 산이란 존재가 커다랗게 자리를 자치하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산을 알고 싶고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어요. 그 후 산은 원망의 대상이 아닌 저의 놀이터이고 쉼의 공간이었습니다. 늘 바위에 올라가고 계곡을 뛰어다니고 나무에 매달리고 열매 따먹고 그렇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산과 교감하고 신체적으로 산에 맞게 만들어졌습니다.
궁금해요
산을 좋아하는 것과 전문산악인의 길로 들어선 것과는 좀 차이가 있는데요. 언제부터 전문산악인이 되시기로 결심하셨나요.
산악인 엄홍길 엄홍길
주말이 되면 저의 집 위에 커다란 암벽지대가 있어 주변에 전문 암벽 클라이머들이 많이 왔습니다. 그분들과 친하게 되고 어울려 쫓아 올라가 암벽을 타면서 재미를 붙였어요. 그 후 급속도로 암벽 등반에 빠져 들었습니다.
제게 산은 어머니 품 속같이 편한 곳이었습니다. 산을 계속 오르면서 기술적인 면도 향상되고 제 나름대로 새로운 방식도 터득해 가면서 취미로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산을 오르게 되었습니다. 제주도의 한라산부터 전국의 많은 산을 오르면서 하나씩 몸으로 터득해가고 그런 경험들이 쌓이다보니까 이제는 좀 더 어려운 곳으로 가서 도전해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히말라야 8000m에 도전하게 된 것입니다.
히말라야를 도전하면서 산을 오르는 것은 인간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능력이 있고 기술적, 체력적,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해도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엔 한계가 있단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이 감히 거스를 수 없는 대자연의 힘,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산을 그냥 올라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점점 정신적인 세계에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산을 오를 때마다 수도승과 같은 마음으로 자세가 바꿨습니다. 산에 올라갈 수 있는 것은 내가 산과 하나가 될 때에만 가능한 일이며 산이 저를 받아줘야지만 제가 산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입니다.
궁금해요
대장님을 보고 ‘나도 전문 산악인이 되고 싶다.’ 라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을 텐데요. 전문산악인이 되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산악인 엄홍길 엄홍길
전문 산악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적인 차원을 떠나 우선 마음가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물론 산이 좋고 산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하지만 산에서는 매 순간 순간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다칠 수도 있고,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강한 정신력과 근성입니다.
체계적으로 기술을 배울 방법으로는 사설 등산학교나 비공인 단체들이 운영하는 등산학교에 들어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곳에 입회하면 가장 기초적인 등산의 기본을 배우고 프로그램에 따라 차근차근 기술적인 것까지 배울 수 있습니다. 유럽이나 프랑스 등 외국의 경우는 국가가 공인하는 등산학교, 국립등산학교가 있어 암벽등반, 빙벽등반, 설산등반 등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도 외국의 등산학교 프로그램을 그대로 가져와 교육하기 때문에 과정은 매우 동일합니다.
제 경우는 이런 등산학교 같은데서 배운 것이 아니라 선배 전문 클라이머나 전문 등반 산악인 단체, 알파클럽 등 산악회에 들어가 선배로부터 차근히 기초를 배웠습니다.
궁금해요
대장님이 히말라야 16좌를 완등하기까지 20여년을 넘게 히말라야에 가셨고, 50차례가 넘는 등반을 하셨어요. 성공보다 실패의 기록이 훨씬 많다고 보이는데요. 등반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셨나요.
산악인 엄홍길 엄홍길
안나푸르나를 도전하면서 자그마치 네 번을 실패 했습니다. 동상에 두 번 걸려 수술을 했고 발가락도 잘랐습니다. 그때 전 제가 그동안 뭘 하고 산 것인가라는 자괴감과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도전에서는 동료를 잃고 산을 내려 왔습니다. 그때의 심경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전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산이 제게 많은 실패와 고통을 안겨주고 내 신체 일부를 가져갔지만 반드시 이루겠다는 목표와 신념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가 실패할 때마다 항상 저를 믿어주고 따라줬던 가족과 동료, 세르파가 있었기에 끊임없이 실패와 도전을 반복하면서도 산을 오르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어느 순간 지금의 제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궁금해요
8,000미터 16좌 완등의 목표를 다 이루셨는데 앞으로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도전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산악인 엄홍길 엄홍길
16좌 완등을 하고 이제는 산을 내려와야 될 때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2의 인생을 위해 또 다른 8000미터 17좌에 도전한 것이 바로 엄홍길의 휴먼재단이라는 산입니다. 이 산의 정상에 서기 위해 이제 또다시 새로운 인생의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완등하고 무사히 살아 돌아온 것은 산이 제게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산을 오르는 내내 저는 맘속으로 산과 약속을 했습니다. 산이 제게 목표를 이루게 해주고 꿈을 이루게 해주었으니 저는 살아남은 자의 의무로 산에게 받은 만큼 내려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은혜를 베푸는 그런 삶을 살겠다고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육이었습니다. 교육이야말로 저개발 빈민국가 특히 제가 다녔던 히말라야 산간오지의 산골짜기에 사는 아이들에게 부모세대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들에게 단순히 빵이나 옷, 구호물품들을 주어서 돕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커서 독립적이고 자립적으로 삶을 개척할 수 있는 방법론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의료시설 지원입니다. 워낙 척박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 살다보니까 조금만 상처도 제때 치료하지 못해서 되돌릴 수 없는 큰 상처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때 치료만 했어도 불구가 되는 일은 없을 텐데 그런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의료시설과 의료봉사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또 제가 지난 20여 년 동안 여러 산들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보고 직접 현장에서 깨닫고 느낀 것들을 청소년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청소년들이 도전정신과 모험정신, 진취정신을 고취하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고 싶습니다.
궁금해요
어릴 적 닮고 싶은 롤 모델이나 존경하시는 분이 있으셨나요. 있으셨다면 지금 와 돌아보면 대장님은 어느 정도 닮아 있으신지요. 아님 더 나아지셨나요.
산악인 엄홍길 엄홍길
어릴 적엔 성웅 이순신 장군을 존경했습니다. 그분이 살아오신 삶의 과정이나 생을 마감하실 때까지 조국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진 그 정신에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커서 군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산에 빠지고부터는 전문 산악인이셨던 어드먼트 힐러리경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힐러리경은 에베레스트 등반을 하시고 재단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네팔 에베레스트 지역에 사는 아이들을 위해 오지에 학교를 지어주고, 병원도 건립했으며, 다리나 교량공사, 비행장 등 의 건설로 사회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고 큰 업적을 남기신 분이십니다.
또 한분은 실질적인 등반 스타일과 등반정신에서 제가 큰 영향을 받은 폴란드 산악인 예지 쿠쿠츠카입니다.
이분들 모두의 공통점이라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부딪치고 이루셨다는 점입니다.
궁금해요
대장님이 평소 가슴에 품고 계시는 좌우명이나 가치관은 무엇인가요.
산악인 엄홍길 엄홍길
저의 좌우명은 자승최강(自勝最强)입니다. '자신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강한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제가 그동안 많은 산행을 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존재는 자연의 변화무쌍한 기후나 기상, 악조건의 눈사태, 크레바스 등의 그런 환경적인 요인이 아니라 제 자신이었습니다.
제 자신과의 싸움에서 자신을 이겨내지 못하면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산을 오르는 것은 삶과 죽음을 오가는 순간입니다. 그때 자신과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에 산을 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만이 모든 환경적인 어려움 속에서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궁금해요
요즘 대장님이 대학 강당에서 강의를 하신다는데 젊은 친구들과 어떻게 소통하시고 무엇을 알려주려고 하십니까?
산악인 엄홍길 엄홍길
상명대학교 석좌교수로 있습니다. 전 학생들에게 이론적인 강의도 하지만 한 학기에 무조건 두 번씩 산에 갑니다. 학생들이 산행을 안가면 학점을 주지 않습니다.
산에 학생들을 데리고 갈 때 전 출발 전에 항상 이런 얘기를 합니다. “우린 하나다. 절대 둘은 있을 수 없다. 나란 것도 있을 수 없고 혼자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이 순간부터 완전히 우린 하나다. 그러니까 나를 생각하기 전에 동료를 생각하고, 이해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우린 함께 올라간다는 것이다. 한명의 낙오자도 있어서는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라고요.
처음에는 각자의 페이스에 맞게 저만치 앞서서 빨리 가던 친구들도 산행이 진행됨에 따라 뒤를 돌아다보며 쳐진 친구들을 챙기고 서로 손잡고 용기 북돋아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함께 올라가는 겁니다. 뒤에 쳐져 못가겠다던 친구들도 자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이 못 올라간다는 생각에 힘을 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결국 모두 함께 정상을 밟게 되고, 하나가 돼 정말 행복해합니다. 그렇게 산행을 마치고 나면 수업분위기 자체가 달라집니다. 서로의 마음이 소통한 것입니다.
궁금해요
마지막으로 청소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으신 말이 있으신지요
산악인 엄홍길 엄홍길
요즘 청소년들을 보고 있으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나약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험을 좀 못 봤다고 극단적으로 자살을 하고 같은 반 친구들을 괴롭히고 왕따 시키고 이런 것은 결국 인간이 물질문명의 편안함과 안락함속에 빠져 물질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컴퓨터야 말로 21세기 대재앙 같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이 자연과 사람과 소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모니터 앞에만 앉아있으니 점점 더 삭막해지고 메마르고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문제는 결국 인간이 자연을 등한시 하고 자연과 동떨어져서 생활하기 때문에 생기는 병폐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좀 더 자연과 친숙하게 자연과 더불어 함께하는 체험을 해야 합니다. 자연과 함께 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을 사랑하는 맘이 생기고 풀 한포기 돌 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모여 주위사람에 대한 애정과 동료애로 번져가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고 맘과 맘이 거침없이 소통하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주변의 가까운 산을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올라가보세요. 그 작은 실천이 많은 것을 변화하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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