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 인터뷰

여러 분야의 진로∙직업 전문가와 사회 각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분들의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직업 세계를 확인하고 진로선택 방법을 알아보세요.

커리어패스

과학분야

(과학) 짜릿한 수학, 평생 즐기는 세계적인 수학자


금종해 고등과학원 원장

청명한 가을날, 서울시 동대문구에 위치한 고등과학원을 찾았다. 
고등과학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이론 기초과학 연구기관으로, 수학부, 물리학부, 계산과학부로 구성돼 있다. 
이곳은 국내외 뛰어난 석학들이 연구에 전념하는 곳이다.

2013년 9월 2일 수학부 금종해 교수는 고등과학원 제6대 원장으로 선임됐다. 
금 원장은 최근 ‘2013년 대한수학회상 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되며 연구하는 기관장으로 입지를 굳히며 석학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세계적인 수학자이자 고등과학원 원장으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를 어렵게 만났다. 
학창 시절, 그는 어떤 학생이었을까?

“넌, 수학자가 되는 게 좋겠다!”
검사를 꿈꾸다 수학자로 진로 변경

군산이 고향인 그는 학교 수업을 마치면 일과처럼 바닷가에 들르곤 했다. 
그곳엔 늘 여가 시간을 함께 보낼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낚시를 좋아했던 그는 주말마다 친구들과 낚시하기를 즐겼다. 
물론 공부에 대한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중학교 시절까지는 실컷뛰어놀았다.

다행히 시험 기간에 집중해서 바짝 공부하면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성적이 나왔다. 
특히 수학 과목은 타고난 감각 덕분인지, 친구들이 못 푸는 문제도 종종 풀 수 있었다. 
사실 친구들이 못 푸는 문제를 풀 때, 가장 짜릿하고 즐거웠다. 
그때부터 수학자가 될 운명이었나 보다.

그는 고등학교 입학 당시만 해도 검사가 되고 싶었다. 부모님께서 원하셨던 진로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학 선생님의 한마디가 인생을 바꿔 놓았다. 
당시 수학 선생님이 그의 남다른 수학적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시곤, “넌, 수학자가 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기 때문이다. 
그도 어려서부터 ‘수학’만큼은 자신 있었기에, 수학자 쪽으로 마음이 점차 기울었다. 
우선 부모님 모르게 조금씩 관련 진학 자료를 모으며 수학자를 꿈꾸기 시작했다. 
수학과 진학을 반대하시던 부모님 설득은 나중 일이었다.

하지만 서울보다 입시정보가 취약한 지방에서 고등학생 혼자 입시를 준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입시정보는 물론, 모의고사 문제집과 같은 자료도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서울 명문고 학생들이 보는 참고서나 문제집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럴 때마다 수학 선생님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관련 참고서나 문제집을 아낌없이 지원해주셨고, 격려도 잊지 않으셨다. 
또한 그가 다녔던 고등학교에는 이과생이 적어 당시 ‘이과생을 위한 심화 수학’이었던 ‘수학Ⅱ 수업’이 개설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을 쪼개서 독학으로 공부해야만 했다.

특히 수학 과목에 있어서는 어려서부터 도전적인 문제를 좋아했기 때문에, 기회가 될 때마다 일부러 어려운 문제, 새로운 문제를 찾아다녔다.
특히 다른 학교 모의고사 문제를 모아 발행하는 잡지를 꾸준히 구독하며, 경쟁자들 사이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가늠하곤 했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만날 때면, 이틀이고 삼일이고 답안을 보지 않고 깊이 있게 생각하는 훈련을 했다. 
문제를 풀 때마다 스스로 작성한 답안과 풀이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다시 의심하고 추론하는 과정을 반복해 정답을 찾아갔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 그는 ‘서울대 이공계열’에 넉넉히 합격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한 가지
수학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다

하필 나라가 시끄러운 때 대학 생활이 시작됐다. 
마음을 굳게 먹고 혼자라도 공부를 열심히 해볼까 생각했지만, 시대적 흐름 자체가 대학생에게 공부를 권장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실제로 운동권에 있던 친구들이 눈앞에서 잡혀가는 상황 속에서, 현실적으로 수업을 집중해서 듣는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대학교 2학년 때 전공을 ‘수학과’로 결정한 뒤 본격적인 공부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던 학부 시절을 보낸 제자들이 안타까운 지도 교수님은 다음과 같은 조언으로 학생들을 이끌었다.

“젊었을 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나라도 구할 수 있을 거 같지만 ‘인생의 목표’가 없이는 힘들다”며, “네가 가장 잘하는 한 가지를 찾아서 목표로 삼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지도 교수님의 조언을 새겨들은 그는 몇 달 동안 하루에 3시간씩만 잠을 청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워낙 잠이 많아서 고3 때도 8시간씩 챙겨 자던 그로서는 엄청난 결심을 한 셈이다. 
비로소 ‘수학’을 스스로 가장 잘하는 한 가지 목표로 삼고,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군복무를 서둘러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 유명 5개 대학에서 모두 장학금을 지원해 준다는 조건으로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중 가장 혜택이 좋았던 미국 미시간대 수학과에서 5년 동안 공부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던 10년
교사 양성을 위해 힘쓰다

박사 학위 취득 후 1988년부터 1991년까지 미국 유타대 수학과 교수로 지냈다. 
그러다 향후 거취를 고민하던 중, 건국대에서 교수 임용 제안이 들어왔다. 
귀국을 결심한 터라 좋은 기회라 여기고, 수학교육과에서 교직생활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사범대 교수로 지내면서, 철없던 학생들이 훌륭한 교사가 되기 위해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서 좋았다. 
솔직히 교수 입장에서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 듣는 학생들에게 눈길이 더 갔지만, 때론 말도 안 듣고, 수업을 밥 먹듯이 빼먹던 학생들이 마음잡고 공부해서 현직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볼 때 더 보람을 느끼곤 했다. 
대학생은 성인이긴 하지만 예민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학생이므로, 멘토로서 ‘스스로 변화하는 때’를 기다려주는 게 필요하다고 느낀 시기이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10년이 아니었나 싶다. 
정말 학생들과 뒹굴며 즐겁게 보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서서히 ‘연구’에 대한 갈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론 교수로 지내면서도 틈틈이 연구를 병행하고 있었지만, 연구에만 집중할 수 없었던 건 사실이었다.

“이젠 다시 연구에 집중해야겠다”
수학자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와

‘수학자의 꿈,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던 찰나, 고등과학원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연구를 집중해서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꿈꾸던 수학자의 길을 갈 수 있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학생들과 보내는 시간이 행복했기 때문에 조금 망설여졌다. 
하지만 인생은 한 번뿐 아니던가. 2000년 9월, 주어진 기회를 움켜잡기로 결심했다.

자리를 옮기고 나니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수학계 이슈를 예전보다 더 빠르게 접할 수 있었다. 
학회에 참석할 기회도 많아졌고, 고등과학원이라는 명성답게 세계적인 석학들과 함께 연구를 공유하고 이야기할 기회도 많았다.

그 덕분에 그는 2006년 대수기하학 분야에서 20년 넘게 풀리지 않았던 난제인 ‘유한 대칭군 분류’를 해결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그는 이 공로를 높이 평가받아 2007년 과학기술훈장, 2008년 한국과학상, 2013년 대한수학회상 학술상을 수상했다. 
이 연구 성과로 수학 분야의 최고 학술지인 ‘수학연보(Annals of Mathematics)’에 논문이 소개되기도 했다.

금 원장은 지금도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수학자 중 한 명이지만, “세계적인 수학자가 되는 것은 평생의 꿈이고, 수학자는 평생 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고등과학원 원장을 맡고 있는 현 상황에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는 것은 어려울지 모르지만, 해오던 연구는 계속해서 조금씩이라도 진행하려 한다”며, “같이 연구하던 수학자들을 도우면서 평생 수학자로 살고 싶다”고 자신의 연구 의지를 밝혔다.

“고등과학원, 더 높이 도약할 때”
세계 최고 기초과학 연구기관을 꿈꾼다

금 원장은 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고등과학원을 세계 최고의 기초과학 연구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고등과학원은 단순히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닌 ‘깨닫기 원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 먼저 우수한 연구 환경을 만들기에 힘쓰겠습니다.”

수학자를 포함한 연구원들은 연구에 실패할 때 찾아오는 좌절감이 정말 크다. 
하지만 금 원장은 그럴 때마다 동료들끼리 서로 치유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다고 했다. 
두뇌로 하는 연구이기 때문에 매일같이 영감이 떠오르고, 깨달음의 희열을 맛볼 수 있는 곳이라면 더 좋겠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수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일본의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쓴 <학문의 즐거움>이란 책을 추천했다. 
다음과 같은 책의 한구절을 인용하며, 마지막으로 히로나카 박사처럼 유쾌한 사람이 되길 당부했다.

“수학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마다 나는 ‘난 바보니까’를 중얼거린다. 
차피 나는 바보니까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 머리가 한결 가벼워진다.”
-<학문의 즐거움> 중에서

그는 덧붙여 “수학이라는 학문은 원래 어려운 학문이어서, 천재 수학자들도 좌절을 많이 하고 중간에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며, “수학자가 되고 싶다면 유망직종이라서 선택하기보다, 스스로 정말 좋아서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6658&curPage=4

목록보기

교육부 한국직업능력연구원 국가공인 웹 접근성 품질인증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