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잘한다는 칭찬도 많이 듣고, 학교 미술 실기 대회 같은 데 학교 대표로 많이 나가게 되면서 상도 탔어요. 아무래도 잘 한다는 칭찬을 받으면 ‘내가 잘 하는구나’ 하는 착각을 하게 되죠? 그러면서 이 과를 전공하게 된 거 같아요.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는 물론 창의력도 중요하지만 먼저 사물을 관찰하는 방법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입시 학원에서는 석고 데생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우리 대학에서는 소묘에서 석고 데생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데생에서 연필로 계산하고, 훈련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사물을 관찰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서양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대나무를 그리려면 마음속에 이미 대나무 그린 모습을 생각해 두고 그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나무를 잘 그리려면 우선 대나무를 사랑해야 합니다. 대나무를 똑같이 묘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대나무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대나무를 잘 그릴 수 없습니다. 이처럼 내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정말 좋아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나무를 심고 가꾸면서 그 대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관찰해야 합니다. 또한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의 변화를 관찰해야 하고, 또 비가 올 때나 눈이 올 때도 지켜봐야 합니다. 그러면 그림을 그릴 때 굳이 연필로 재지 않아도 잘 그릴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동양의 그림 그리는 방법입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저도 중· 고등학교 때 동양화라든가 한국화라든가 그런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림이라고 하면 미술시간에 수채화나 풍경화, 정물화 등을 그렸습니다. 그것은 근대 우리나라의 미술교육이 일제시대 일본 사람들에 의해 서양의 미술방법을 그대로 들여오면서 우리의 미술교육 방식을 무시하고 왜곡시킨 측면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유래가 없을 정도로 미술 교육이 오래 됐는데 조선시대가 건국하면서 미술전문교육기관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화원입니다. 지금은 회복하려는 노력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동양에서는 문학과 역사, 철학 그리고 예술이 항상 같이 간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서양과는 다른 점이지요. 따라서 학과 성적도 중요하지만 철학이나 문학 등 인문학적인 교양도 중요하고 현대에 와서는 특히 음악이나 무용 등 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천문학이나 물리학 등 과학적인 분야에도 소양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다양한 분야를 소화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요. 또한 기본적으로 미술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으로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는 성실함 없이는 절대 제대로 그림을 그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화가가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 좋은 작품을 그리기를 희망하거나, 또 저 같이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중· 고등학교 미술교사가 되어 미술교육 분야에 종사하거나 미술작품과 대중을 연결해주는 큐레이터로도 활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 외 일러스트 작가나 애니메이션 작가로도 많이 진출하고 있습니다.
저희 미술대학에서는 수능시험 성적, 내신성적(학과성적)과 실기 시험, 그리고 학과 적성테스트(면접) 등 세 가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우선 학과 성적이 좋아야 하고, 실기는 공통 실기인 소묘, 전공 실기인 수묵채색화를 보고 있는데, 그 평가 기준은 사실적 표현 능력 이외에도 얼마나 창의적인 표현 능력이 있는가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동양화과에 오려면 학과 적성에 맞아야합니다. 자신이 별로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은데 오는 학생들은 없겠지만 아무튼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림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더불어 여러 가지 체험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독서를 통한 간접 체험이나 여행을 많이 다닌다든가 전시회나 문화 공연을 통한 체험 등도 빠뜨릴 수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