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미니어처 작품은 컬렉터들에게 판매되기가 쉽지 않다.
작품 비용이 많이 들고 그 비용 자체도 유동성이 많은 데다 일반 미술품처럼 호수로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최근 5~6년 사이에 작품 판매가 활발해진 것은 그의 독특함 때문이다.
그는 꾸준히 ‘나는 내 이야기를 할 거야’라는 글을 발표해왔고 그 기사들이 10여 년 동안 입소문으로 열려지면서 ‘류승호 스타일’을 인정해주는 팬이 생겼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작품을 해왔기 때문에 그는 다방면에 걸쳐 있는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다.
남들이 하지 않은 방식으로
류승호 작가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업계 전문대를 다니면서 건축을 전공했다.
특별하게 건축에 대해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기보다는 건축 분야에서 일하고 계신 아버지께서 건축을 배워보라고 권하셨기 때문이었다.
건축도 미술의 한 분야지만, 그는 하기 싫은 공학이나 수학 관련 공부를 많이 해야 해서 학교생활이 재미없었다.
그래서 그는 건축과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는 마음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
홍익대학교 겸임 교수로 계신 분이 ‘건축과 영화’라는 과제를 내주셨을 때, 책이나 자료를 찾는 데 급급한 다른 학생들과 달리 그는 친구와 둘이서 팀을 이뤄 과제를 위한 촬영을 했다.
당시 가지고 있던 무비카메라로 인터뷰를 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는 여러 대학을 찾아다니기로 하고 가장 먼저 서울대학교를 찾아갔다.
문전박대하는 교수님도 계셨지만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처럼 문이 활짝 열리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 김현철 교수님이셨죠.
저의 인생을 바꾼 사람 중 한 분이세요.
그분은 영국에서 공부를 하셨고 「건축과 영화」라는책도 쓰셨어요.
도서관에서 자료만 찾고 있었다면 못 만났을 분이었죠.
자신의 수업에 조교를 올려 보내면서까지 시간을 내서 저와 인터뷰를 해주셨어요.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조교와 수업하고, 전문대 학생이었던 저는 그 교수님에게 일대일 과외를 받은 셈이에요.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많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 외에도 여러 대학교를 돌면서 과제를 위한 인터뷰를 했어요.
그렇게 ‘건축과 영화’라는 소재를 가지고 「지우개」라는 단편 영화를 찍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도면이나 논문으로 과제를 제출할 때 그는 비디오테이프로 과제를 제출했고, 교수님은 그 영상작품을 가지고 수업을 하셨다.
그때부터 그는 영화를 보면서 영상 속에서 건축물들은 어떻게 표현되는가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는 과제뿐만이 아니라 졸업 작품도 특이했다.
졸업을 하려면 꼭 해야 하는 작업이건만 이미 건축보다 설치나 미술 분야에 관심이 많아진 그는 ‘도면을 그려서 그것을 벽에 걸진 않겠다.’고 선언했다.
“교수님께서 졸업을 하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졸업 작품전이 이루어지는 장소의 전체적인 인테리어를 제가 관할하겠다고 했어요.
일반적으로 건축과 졸업 전시는 하얀공간에 패널로 만든 모형을 전시하는데, 저는 그 틀을 깨고 싶었죠.
건물 내부에 아시바 파이프를 일정한 간격으로 디자인하고, 그게 밖으로 나가서 공간이 확장되게 만들었어요.
건축에 관한 전시 공간을 건축의 가장 기초가 되는 거푸집 형태로 만들어서 ‘거기서 시작했다’는 주제를 표현했죠.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교수님들이 반대를 했어요.
친구들이 하는 전시가 굉장히 다양하니 그 다양성을 끌어 담을 전시 공간 또한 우리 학교만의 특별한 뭔가가 필요하다고 교수님들을 설득했죠.
다행히 전시의 반응이 좋아서 칭찬을 들었어요.”
‘영구아트’에 입사
류승호 작가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한국인테리어협회’라는 곳에 입사할 수 있도록 교수님이 써주신 추천서를 받았다.
IMF 시절, 심각한 취직난 속에서 관공서급 기관에 입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그는 그 자리를 마다했다.
그를 아끼던 교수님은 화를 내셨지만 그는 ‘쉬고 싶다’며 조용히 물러났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 한 달 후에 그는 바로 취직을 했다.
영화사 구인 공고 앞에서 쉬고 싶었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가 들어간 회사는 영화사 ‘영구아트’였다.
국내 영화사로서는 드물게 미니어처팀을 가지고 있던 회사로, 영화 제작에 필요한 기본적인 팀들을 다 갖춘 것은 물론 할리우드 방식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
다른 회사와 다르게 CG팀을 매일 회사에서 만날 수 있으니 미니어처를 촬영할 때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서로 이야기하고 이해할 수 있는 구조가 되었다.
“영화 미술, 괴물 같은 캐릭터를 만드는 디자이너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았어요.
저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 망설임 없이 선택했죠.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조금 이름이 알려지긴 했지만 완벽하진 않았어요.
대학을 나와서 다시 사회 초년생이 된 후에도 완벽하긴 힘들었어요.
완벽하고 전문적인 작업자가 되기 위해서 적지 않은 실수와 많은 고생을 했죠.
하지만 그 회사에서 방향을 잡았고, 더 잘하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되었고, 나아가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미니어처만 전문적으로 하는 국내 기반산업은 아직 많지 않다.
그러나 국가지원사업인 3D프린팅 안에도 미니어처가 할 역할이 있는데 얼마만큼, 어떤 식으로 접목하고 응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에너지는 무한대다.
컴퓨터와 아날로그를 같이 사용한다면 좀더 완벽한 시너지가 창출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공원1’은 미니어처 작업을 제외하고 컴퓨터 그래픽으로만 영화를 만들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물론 시대적으로 기술이 그리 발달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감독 자신이 원한 만큼의 그림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다시 미니어처로 만든 공룡과 3D를 접목해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요.
그 영화가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죠.
영화 속에 진짜 공룡이 등장했다고 생각할 만큼 똑같았기 때문이었어요.”
미국과 중국에서는 차기 성장산업으로 미니어처 산업을 설정할 정도로 굉장히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한국도 많은 움직임이 있지만 아직 미비하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우리나라 미니어처 산업이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확신한다.
사람과 소통하고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
류승호 작가의 앞으로의 목표는 현재 만들고 있는 60~70년대 추억의 거리들, 시대적 감성을 담고 있는 감성미니어처 작품들을 완성시켜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전시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60~70년대의 다방이나 자전거포, 고물상 등 추억 속에 남아 있는 건물들을 미니어처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영상이나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는 풍경들을 작은 미니어처로 작품화해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공감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처음 전시를 했을 때, 인형도 들어가 있지 않은 딱딱한 실사 미니어처 건물을 보고 중년 어른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어요.
제가 만든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의 가치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전시를 통해 작품이 팔리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전시 자체로 수익을 내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끊임없이 다른 분야와의 융합을 시도하여 새로운 창작,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호기심을 가지고 직접 체험해야
“학생들은 일단 즐겁게 놀아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물론 제도교육 안에서 기본적인 것은 배워야 하지만, 즐겁게 노는 과정을 통해서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분야에 대한 관심을 키울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어릴 때 가지고 있던 ‘호기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호기심이 생겨 탐구하다 보면 열정이 생기고, 열정적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 어느 순간 자신이 전문가가 되어있는 것을 발견할 거예요.”
류승호 작가는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놀이 문화를 많이 접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모니터에서 보여주는 것만 보지 말고 직접 현장에 가서 경험하기를 권한다.
방학 기간을 이용해서 미니어처 미술관에 가보고, 모델링 아트도 체험해 보고, 피규어 등도 관심 있게 보면서 호기심을 갖는 것이 전문가가 되는 첫걸음이다.
“저 역시 미술이 아닌 건축을 전공했지만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만드는 것에 취미가 있다면 미니어처의 축소 개념을 이해하고, 그 다음으로 재료를 이해하고, 방법이나 기술 등을 익히면 됩니다.
물론 그런 것이 다 이루어진 다음에는 관련 산업을 찾아야죠.
제가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기술을 배우려거든 나에게 배우지 마라. 기술을 가르쳐줄 사람들은 많이 있다. 나한테 배울 수 있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감성이다.’
자신이 만들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그 이야기가 작품이고 곧 산업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을 정립할 수 있을 때 작가로서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