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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 미니어처 아트를 다른 분야와 융합하여


류승호 미니어처 아티스트

미니어처는 실물과 같은 모양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작은 모형(模型)을 말한다. 
먹음직스런 스파게티를 동전 만하게 만드는가 하면, 만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괴물이나 전설의 생물체를 눈앞에 만들어내기도 하고, 60~70년대의 마을을 마치 시간을 되돌린 듯 재현해 추억으로 빠지게도 만든다. 
류승호 작가는 이런 미니어처 작품을 창작하는 아티스트이다.

여러 산업 분야에서 활용되는 미니어처

“영화 쪽 작업을 많이 한 이유는 제가 이전에 영화미술작업을 하는 회사에서 일을 했기 때문이에요. 
거기서 미니어처를 담당했죠. 
미니어처는 건물을 작게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음식 모형, 캐릭터 피규어, 인형, 인형의 소품 등, 이 모두를 다 포함한 것이에요. 
아파트 건축에 필요한 건축모형을 만들기도 하고 디자인 목업(mockup, 실물 크기의 모형)에서 미니어처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류승호 작가는 미니어처 아티스트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관련된 다른 산업 분야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고, 미니어처 전시를 기획하는 회사의 운영자기도 하다. 
미니어처 제작은 우리가 평범하게 하는 미술 작업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손으로 하는 미술 작업인 미니어처 제작은 굉장히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응용,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치과에서 사용하는 ‘치기공 기술’은 치아를 복제해서 좋은 치아를 만드는 기술인데 이때 사용하는 조형 기술도 미니어처 안에 포함되는 기술 형태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저는 주로 손으로 작품을 만들어요. 
물론 저희 회사도 손으로 만든 작품을 주로 취급하죠. 
저희는 설치미술도 같이 하기 때문에 전시 형태의 거대한 미니어처들도 만드는데, 그런 것조차도 컴퓨터로 작업하는 것보다 손으로 하는 게 더 빠른 사람들이에요. 
사람마다, 기술마다 차이가 있어서 손으로 하는 것이 편한 사람이 있고 컴퓨터로 했을 때 능률이 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손으로만 했는데 이제는 컴퓨터, 3D프린터라는 새로운 기계가 등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분야가 되었죠.”

그의 말대로, 생각해보면 많은 산업에 미니어처 작업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처럼 얇고 아담한 휴대전화가 나오기 전, 휴대전화는 붉은 벽돌만한 크기와 무게가 거대했다. 
이것을 축소하고 또 축소하는 과정 자체가 미니어처다. 
이처럼 어떤 분야와 융합하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초 작업이 필요하다. 
그가 현재 ‘상상마당’에서 진행하는 수업은, 기초 작업을 경험하고 습득하면서 어떤 산업 분야와 융합할 것인가 하는 아이디어를 창조하는 내용이다.

아이디어 창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미니어처

류승호 작가는 영화를 제작할 때 미니어처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데 실제 없었던 것, 있었는데 사라진 것, 또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현장 촬영이 불가능한 것들을 미니어처로 만든다. 
예전에는 세트를 미니어처로 작게 만들어 촬영을 했는데 최근에는 미니어처와 CG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 
최근 영화 중에는 미니어처로 제작해 촬영하던 부분을 다 CG로 처리한 영화도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미니어처로 만든 기본세트가 없이는 완성할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CG만으로 영화를 만들 수는 없어요. 
그런데 영화 속에 미니어처가 들어가고 그것을 기초로 CG작업을 할 때, CG감독 이름은 기록으로 남는데 미니어처 제작자는 그런 제도가 없어서 좀 아쉬워요. 
국내에는 아직까지 조금 미흡한 부분이 있죠. 
하지만 다방면에서 미니어처를 필요로 하는 산업들이 많으니 앞으로는 이 분야가 더 확장되고 그만큼 인정받는 분야로 자리 잡게 될 거라고 봅니다. 
‘미니어처’라는 결과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니어처라는 행위가 여러 산업과 만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벤처라고 해서 꼭 IT산업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미니어처는 IT산업만큼이나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모트’라는 회사가 캐릭터 미니어처를 종이 소재로 만들어 디즈니사와 합작을 해서 성공한 사례가 있다. 
그는 이처럼 미니어처에는 다양한 형태의 산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에너지가 충분하니 학생들도 소재의 다양성은 물론 참신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기를 당부했다.

그의 강의를 듣는 수강생 중에는 미니어처로 창업을 한 사람도 있다.
납골당에 미니어처를 납품하는 아이디어로 회사를 만들었는데, 납골당이라는 협소한 공간에 고인들이 생전에 좋아했던 것을 작게 만들어 넣어주는 사업이다. 
예를 들어 생전에 고인이 골프를 좋아했다면 골프채를 만들어서 넣어준다거나, 자전거나 자동차를 좋아했다면 멋진 자전거나 자동차를 만들어서 넣어준다거나 하는 식이다. 
제품을 만들어서 팔 수도 있지만 본인이 제품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아이템을 가지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이것도 다른 산업과의 융합이인 것이다.

“미니어처의 기본적인 것을 잘 알고 차근차근 만들어 가다가, 어느 정도 전문적으로 작업이 이루어질 때쯤 되어 다른 산업과의 융합을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산업 형태를 발굴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게 창업이 시작되는 것이죠.”

너는 미술 분야에 가능성이 있는 것 같구나

“저는 미술수업 시간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당시의 미술 수업은 ‘이러이러한 것을 만들어 와라’ 하고 그것과 똑같이 잘 만드는 학생들에게 높은 점수를 주는 식이었죠.
어느 날 미술수업에서 찰흙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했는데 찰흙이 잘 안 굳잖아요. 
그래서 집에서 말렸는데 그늘에 말려야 한다는 것을 몰라서 햇볕에 내놓았더니 논바닥처럼 다 갈라져 버렸어요. 
모레까지 제출해야 하는데 작품이 바짝 말라서 부서진 거예요. 
고민 끝에 급하게 다시 만들었죠. 
제가 살던 집에서 관악산이 보였는데 겨울 관악산에 눈이 내린 것을 보고 찰흙을 하나 더 사서 동글동글하게 솔방울처럼 만들었어요. 
그리고 부서져 있는 찰흙덩어리들을 붙였죠. 
그리고 산 모양에 갈색과 녹색 등의 색깔을 칠하고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는 솔방울 끝부분에다가 흰색을 칠했어요. 
누가 보아도 솔방울에 흰색을 칠해 놓은 것처럼 보였을 거예요. 
저는 그걸로 눈이 내린산을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류승호 작가의 설명을 들으며 그 작품을 한참 보시던 미술 선생님은 ‘수업 끝나고 미술실로 와라’ 하셨다. 
처음 들어가 보는 미술실. 유화 냄새가 풍겨나는 미술실 안쪽, 이젤이 놓여 있는 곳에 선생님이 앉아서 그의 작품을 보고 있었다. 
그 작품을 만들게 된 경위를 자세히 듣고 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너는 다른 수업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이 작품을 보니 미술 분야에는 분명히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 
그런데 어떤 식으로 꼭짓점을 찾느냐가 중요한데, 적어도 네가 좋아하는 일이 이쪽 분야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네가 주축이 되어서 미술시간에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해 봤으면 좋겠구나.”

선생님은 다른 수업에는 항상 뒷전이고 미술 과목만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던 그에게 미술수업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 주셨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 표현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미술시간만큼은 전교 1등 부럽지 않았다. 
그때의 경험이 기반이 되어 그는 미술사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재료에 대해서도 조사하면서 미술에 관한 여러 가지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일러스트 강의를 할 때 평범하기만 했던 한 학생을 우리나라 최고의 미니어처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알아봐 주신 선생님의 대한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꼭 들려준다. 
선생님의 감성적인 말 한마디로 학생의 미래가 변할 수 있다는 것, 선생님은 그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인생의 변화를 가져다 준 사람들

중학교 시절 선생님 외에도 류승호 작가의 인생에 변화를 주었던 사람들이 있다. 
직장을 다닐 때였다. 
화가의 작업실에 가서 직접 작업하는 모습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널브러져 있는 회화도구들을 보면서 그는 감성적인 충격을 받았다. 
‘아, 이런 것이구나, 이런 냄새와 분위기.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또 한 사람은 직장 다닐 때 만났던 학교 선배였다. 
설계사무실을 다닐 때였는데 선배와의 대화 속에서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선배는 맥주를 따르더니 넘치는 맥주 거품을 보면서 ‘이 컵 안에 갇혀 있는 물이 되지 말고 저 거품처럼 흘러나가서 더 멀리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 곳에 멈춰 있는 생각이 아니라 계속 변화할 수 있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저 역시 학생들에게 ‘상상하라, 상상은 당신의 미래다’라는 말을 합니다. 
계속 상상하고 그 상상을 이루어갈 수 있는 자기만의 도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도전 없이 멈춰만 있다면 그것은 단지 꿈일 뿐입니다. 
상상하고 있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해서 상상을 하고 행동을 해야 한다는 말을 내포하고 있어요. 
제가 만난 고마운 분들 덕분에 제가 변화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내 이야기를 할 거야

고등학교 때 프라모델이라는 장난감을 좋아했던 류승호 작가는 관련 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받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일반부로 참가해 여러번 수상을 하며 조금씩 그는 그 분야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미니어처 작업에 대한 인지도가 거의 없었는데 얼마 지나자 관련 잡지가 출간되었다. 
그는 그 잡지에서 필진 활동을 시작했다.

“1992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취미가」라는 월간잡지를 통해 등단했어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잡지에서 12년 동안 필진 활동을 했죠. 
그 책이 만들어진 지 1년 후부터 시작해서 그 책이 없어질 때까지. 
창간호는 함께하지 않았지만 폐간호는 함께한 셈이에요. 
그곳에 제가 하고 싶었던 작품들을 실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많이 만들던 탱크, 비행기, 로봇, 건담에서 벗어나 제 스타일대로 제 이야기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죠.
‘우리나라 구미호는 왜 흰색 옷만 입고 뛰어다닐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잖아?’라는 생각으로 다른 형태의 구미호를 만들어 본다든가, ‘이무기는 왜 귀신이어야 할까, 프레데터나 에일리언 같은 괴물일 수 없을까?’ 그런 식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접근해보고자 했어요. 
제가 시도해보고 싶은 작품의 도구로서 미니어처를 사용했던 거죠.”

그 외에도 그는 5.18민주화항쟁 같이 정치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미니어처를 만들기도 했고, 또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박아놓은 말뚝을 뽑으러 다니는 독립유공자의 외로운 싸움 등을 작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런 작품들은 수집가들에게 고가에 판매되었다.

원래 미니어처 작품은 컬렉터들에게 판매되기가 쉽지 않다. 
작품 비용이 많이 들고 그 비용 자체도 유동성이 많은 데다 일반 미술품처럼 호수로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최근 5~6년 사이에 작품 판매가 활발해진 것은 그의 독특함 때문이다.

그는 꾸준히 ‘나는 내 이야기를 할 거야’라는 글을 발표해왔고 그 기사들이 10여 년 동안 입소문으로 열려지면서 ‘류승호 스타일’을 인정해주는 팬이 생겼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작품을 해왔기 때문에 그는 다방면에 걸쳐 있는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다.

남들이 하지 않은 방식으로

류승호 작가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업계 전문대를 다니면서 건축을 전공했다. 
특별하게 건축에 대해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기보다는 건축 분야에서 일하고 계신 아버지께서 건축을 배워보라고 권하셨기 때문이었다. 
건축도 미술의 한 분야지만, 그는 하기 싫은 공학이나 수학 관련 공부를 많이 해야 해서 학교생활이 재미없었다. 
그래서 그는 건축과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는 마음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

홍익대학교 겸임 교수로 계신 분이 ‘건축과 영화’라는 과제를 내주셨을 때, 책이나 자료를 찾는 데 급급한 다른 학생들과 달리 그는 친구와 둘이서 팀을 이뤄 과제를 위한 촬영을 했다. 
당시 가지고 있던 무비카메라로 인터뷰를 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는 여러 대학을 찾아다니기로 하고 가장 먼저 서울대학교를 찾아갔다. 
문전박대하는 교수님도 계셨지만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처럼 문이 활짝 열리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 김현철 교수님이셨죠. 
저의 인생을 바꾼 사람 중 한 분이세요. 
그분은 영국에서 공부를 하셨고 「건축과 영화」라는책도 쓰셨어요. 
도서관에서 자료만 찾고 있었다면 못 만났을 분이었죠.
자신의 수업에 조교를 올려 보내면서까지 시간을 내서 저와 인터뷰를 해주셨어요.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조교와 수업하고, 전문대 학생이었던 저는 그 교수님에게 일대일 과외를 받은 셈이에요.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많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 외에도 여러 대학교를 돌면서 과제를 위한 인터뷰를 했어요. 
그렇게 ‘건축과 영화’라는 소재를 가지고 「지우개」라는 단편 영화를 찍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도면이나 논문으로 과제를 제출할 때 그는 비디오테이프로 과제를 제출했고, 교수님은 그 영상작품을 가지고 수업을 하셨다. 
그때부터 그는 영화를 보면서 영상 속에서 건축물들은 어떻게 표현되는가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는 과제뿐만이 아니라 졸업 작품도 특이했다. 
졸업을 하려면 꼭 해야 하는 작업이건만 이미 건축보다 설치나 미술 분야에 관심이 많아진 그는 ‘도면을 그려서 그것을 벽에 걸진 않겠다.’고 선언했다.

“교수님께서 졸업을 하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졸업 작품전이 이루어지는 장소의 전체적인 인테리어를 제가 관할하겠다고 했어요. 
일반적으로 건축과 졸업 전시는 하얀공간에 패널로 만든 모형을 전시하는데, 저는 그 틀을 깨고 싶었죠. 
물 내부에 아시바 파이프를 일정한 간격으로 디자인하고, 그게 밖으로 나가서 공간이 확장되게 만들었어요. 
건축에 관한 전시 공간을 건축의 가장 기초가 되는 거푸집 형태로 만들어서 ‘거기서 시작했다’는 주제를 표현했죠.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교수님들이 반대를 했어요. 
친구들이 하는 전시가 굉장히 다양하니 그 다양성을 끌어 담을 전시 공간 또한 우리 학교만의 특별한 뭔가가 필요하다고 교수님들을 설득했죠. 
다행히 전시의 반응이 좋아서 칭찬을 들었어요.”

‘영구아트’에 입사

류승호 작가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한국인테리어협회’라는 곳에 입사할 수 있도록 교수님이 써주신 추천서를 받았다. 
IMF 시절, 심각한 취직난 속에서 관공서급 기관에 입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그는 그 자리를 마다했다. 
그를 아끼던 교수님은 화를 내셨지만 그는 ‘쉬고 싶다’며 조용히 물러났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 한 달 후에 그는 바로 취직을 했다. 
영화사 구인 공고 앞에서 쉬고 싶었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가 들어간 회사는 영화사 ‘영구아트’였다. 
국내 영화사로서는 드물게 미니어처팀을 가지고 있던 회사로, 영화 제작에 필요한 기본적인 팀들을 다 갖춘 것은 물론 할리우드 방식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 
른 회사와 다르게 CG팀을 매일 회사에서 만날 수 있으니 미니어처를 촬영할 때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서로 이야기하고 이해할 수 있는 구조가 되었다.

“영화 미술, 괴물 같은 캐릭터를 만드는 디자이너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았어요. 
저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 망설임 없이 선택했죠.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조금 이름이 알려지긴 했지만 완벽하진 않았어요.
대학을 나와서 다시 사회 초년생이 된 후에도 완벽하긴 힘들었어요. 
벽하고 전문적인 작업자가 되기 위해서 적지 않은 실수와 많은 고생을 했죠. 
하지만 그 회사에서 방향을 잡았고, 더 잘하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되었고, 나아가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미니어처만 전문적으로 하는 국내 기반산업은 아직 많지 않다. 
그러나 국가지원사업인 3D프린팅 안에도 미니어처가 할 역할이 있는데 얼마만큼, 어떤 식으로 접목하고 응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에너지는 무한대다. 
컴퓨터와 아날로그를 같이 사용한다면 좀더 완벽한 시너지가 창출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공원1’은 미니어처 작업을 제외하고 컴퓨터 그래픽으로만 영화를 만들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물론 시대적으로 기술이 그리 발달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감독 자신이 원한 만큼의 그림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다시 미니어처로 만든 공룡과 3D를 접목해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요. 
그 영화가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죠. 
영화 속에 진짜 공룡이 등장했다고 생각할 만큼 똑같았기 때문이었어요.”

미국과 중국에서는 차기 성장산업으로 미니어처 산업을 설정할 정도로 굉장히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한국도 많은 움직임이 있지만 아직 미비하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우리나라 미니어처 산업이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확신한다.

사람과 소통하고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

류승호 작가의 앞으로의 목표는 현재 만들고 있는 60~70년대 추억의 거리들, 시대적 감성을 담고 있는 감성미니어처 작품들을 완성시켜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전시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60~70년대의 다방이나 자전거포, 고물상 등 추억 속에 남아 있는 건물들을 미니어처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영상이나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는 풍경들을 작은 미니어처로 작품화해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공감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처음 전시를 했을 때, 인형도 들어가 있지 않은 딱딱한 실사 미니어처 건물을 보고 중년 어른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어요. 
제가 만든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의 가치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전시를 통해 작품이 팔리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전시 자체로 수익을 내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끊임없이 다른 분야와의 융합을 시도하여 새로운 창작,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호기심을 가지고 직접 체험해야

“학생들은 일단 즐겁게 놀아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물론 제도교육 안에서 기본적인 것은 배워야 하지만, 즐겁게 노는 과정을 통해서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분야에 대한 관심을 키울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어릴 때 가지고 있던 ‘호기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호기심이 생겨 탐구하다 보면 열정이 생기고, 열정적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 어느 순간 자신이 전문가가 되어있는 것을 발견할 거예요.”

류승호 작가는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놀이 문화를 많이 접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모니터에서 보여주는 것만 보지 말고 직접 현장에 가서 경험하기를 권한다. 
방학 기간을 이용해서 미니어처 미술관에 가보고, 모델링 아트도 체험해 보고, 피규어 등도 관심 있게 보면서 호기심을 갖는 것이 전문가가 되는 첫걸음이다.

“저 역시 미술이 아닌 건축을 전공했지만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만드는 것에 취미가 있다면 미니어처의 축소 개념을 이해하고, 그 다음으로 재료를 이해하고, 방법이나 기술 등을 익히면 됩니다. 
물론 그런 것이 다 이루어진 다음에는 관련 산업을 찾아야죠. 
제가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기술을 배우려거든 나에게 배우지 마라. 기술을 가르쳐줄 사람들은 많이 있다. 나한테 배울 수 있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감성이다.’ 
자신이 만들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그 이야기가 작품이고 곧 산업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을 정립할 수 있을 때 작가로서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164&cur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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