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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분야

(대안학교) 행복이란, 노력으로 자기 인생의 가치를 높이는 데에 있다


강요섭 현대무용수

대안학교인 ‘한빛고등학교’를 졸업한 강요섭씨는 고등학교 시절 활동한 댄스 동아리에서 무용을 접하게 된다. 
남들보다 다소 늦은 고3 때 무용 입시를 준비한 그는 무용학과에 진학해 현재 프리 현대무용수로 활동을 하고 있다. 
늦은 시작이었으나 춤추는 것을 사랑하고 경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가 들려준 인생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대안학교에 진학한 친형이 부러웠어요

전라북도 순창에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요섭씨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본래 성격은 밝고 개구쟁이였지만 낯선 사람과 잘 어울리는 성격은 아니었다. 
목사였던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요섭씨와 형제들에게 자신을 이어 목회자가 되란 말 대신 ‘꿈과 비전을 크게 갖고 살라’는 말을 했다.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야 한다던 아버지의 말씀처럼 그는 강요받지 않는 상태에서 스스로 노력하여 쟁취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청소년으로 자라났다. 
꿈이 많은 그 나이 또래의 친구들처럼 그 역시 중학교 때는 지금과 전혀 다른 꿈을 가지고 있었다. 
요리사도 되고 싶기도 했고, 헤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으며, 피아노를 쳤을 당시엔 지휘자를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한 살 위의 형이 아버지의 추천으로 한빛고등학교에 입학해 생활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대안학교의 자유로움에 흥미를 느꼈다.

“중학교를 다닐 때 머리를 스포츠 헤어로 해야 하는 획일화된 규칙 같은 게 너무 싫었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시절에 형이 대안학교를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았죠. 
열린 교육을 원하셨던 아버지가 대안학교 설립 배경이나 선생님들을 알고 계셨던 한빛고등학교를 추천받아 형이 먼저 학교를 다녔어요.”

고등학교 시절,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죠

형을 따라 요섭씨가 입학한 ‘한빛고등학교’는 전라남도 담양에 위치한 대안학교였다. 
가족과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그가 배운 것은 문제 해결 능력이었다.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좋았던 건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많아졌던 거예요. 
학생 때는 같이 어울리기만 해도 재밌잖아요. 
하지만 늘 가까이 있는 만큼 폭력 문제도 간과할 순 없었죠. 
그런데 한빛고등학교는 문제가 생기면 학생들이 같이 해결을 했어요. 
문제를 두고 선생님들이 일방적으로 혼내거나 정학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총회를 열어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잘못한 사람이 직접 나와 공개 사과를 하기도 하고 대자보 같은 것도 붙이구요. 
그 과정 자체가 무척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 그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동아리 활동에서 무용을 만났어요

고등학교 진학 후 그의 꿈은 다시 한 번 바뀌었다. 
중학교 때 품었던 지휘자의 꿈이 작곡가로 바뀌었고, 남들보다 좋았던 기초 체력을 살려 운동 쪽으로 진학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을 하든 어중간하단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앞으로의 장래를 진지하게 생각할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그의 고민은 더욱 커졌다. 
대학 진학이라는 큰 방향은 정했으나 적성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진로가 너무 막막했어요. 
음악을 하려면 어릴 때부터 많이 배웠어야 하는데 어중간한 실력이었고, 공부도 중간, 운동도 어중간 했거든요. 
냥 점수에 맞춰서 대학을 갈까 하는 생각도 했었죠.”

그러나 길은 뜻하지 않게 열렸다. 
동아리 활동이 활발했던 한빛고등학교에서 그 역시 여러 동아리 활동을 경험했다. 
친구들과 함께 노래 동아리를 만들어 콘서트를 열기도 하는 등 학교생활에 열심이었지만, 그 중 제일 활발하게 활동을 했던 건 워십 댄스(찬양율동) 동아리 ‘제네시스’ 였다.

“저희 형제들 모두 H.O.T나 젝스키스 같은 방송 댄스를 췄었죠. 
저도 형들을 따라 춤추고 싶었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동경만 할 뿐이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때 워십 댄스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무용에 눈을 떴죠. 
또 형이 고3때 무용을 시작해 대학을 무용과로 진학했어요. 제가 고3이 되면서 형의 공연을 보니 너무 멋있는 거예요. 
운동신경도 있고 피아노를 쳤었으니 음악성도 있고 율동 동아리에서 활동도 했었고. 
그런데 열정이 생겼어도 겉으론 내색을 못했죠.”

무얼 해도 어중간하다 생각했던 그의 재능들이 합쳐져 무용이란 적성을 만났지만 그 길을 무작정 걸어가기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서포트가 필요한 무용을 하기엔 그의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가 무용을 포기하고 다른 진로를 고민할 때, 형의 언질로 부모님이 그 역시 무용에 뜻이 있단 걸 알게 됐다. 
꿈과 비전을 내내 강조했던 부모님은 그에게 지원을 약속하고 그는 망설임 없이 무용과 진학 준비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부터 입시를 준비한 그는 결국 강원대학교 무용학과에 진학했다.

뒤처지고 싶지 않단 절실함으로 앞만 보고 달렸죠

“어렵사리 진로를 춤으로 정하고 실제로 시작한 시간은 수능을 본 이후였어요. 
대학 실기고사로 2분짜리 작품을 연습해서 시험을 봐야 했죠.
학교를 들어가서도 남들보다 많이 뒤쳐진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그 점이 오히려 제게 절실함을 주었고 그 절실함으로 남들보다 더 열심히 연습했어요.
대학생활이 좋다, 나쁘다 라는 이런 느낌을 가질 새도 없었어요.”

대학교 2학년 때 그는 ‘전국 무용대회’에 출전한다. 전국 시, 도에서 대표를 뽑아 대표들끼리 경합을 하는 큰 규모의 경연대회에 처음 나간 그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나이도 어렸고 무용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기에 선생님들이 수많은 훈련을 시켰죠. 
준비 과정 전반에서도 힘든 점이 많았어요. 
그런데 공연을 끝내고 나니 많은 관중들이 제게 박수 갈채를 보내는 거예요. 
고난을 이겨낸 후 받은 박수갈채는 몸에 전율을 흐르게 했죠.”

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같은 대학교 무용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용 분야에 계속 머무르기 위한 학위 취득과 군 문제를 고민한 결과였다.

20대의 남자 무용수들의 가장 큰 딜레마는 군 입대에 대한 고민이다.
쉬지 않고 신체를 단련해야 하는 무용수의 특성 상 군 입대를 통한 약 2년의 공백은 무용수의 커리어를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남자 무용수들을 위한 해결책은 공인된 국제무용대회에 나가 수상을 통한 병역 특례(군 면제)였다. 
운동선수들이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 같은 국제 대회 메달 획득으로 군대를 면제 받듯이, 무용 역시 공인된 국제대회에 나가 수상을 하면 면제를 받을 수 있었다. 
대학원 졸업 후엔 군대를 가야하는 상황에서 요섭씨는 2010년 열린 ‘제7회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컨템포러리 무용 시니어 부문에 참가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권위 있는 무용올림픽으로 알려진 서울국제무용콩쿠르에서 그는 영예의 2위를 차지하며 1, 2위에 한해 주어지는 병역특례 혜택도 함께 얻었다.
무용 커리어가 중간에 끊길 지도 모르는 고민은 없어졌지만 문제가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공연예술계통은 힘들어요

대한민국에서 무용을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고 몸으로 예술을 표현한다는 화려한 면이 존재하는 반면 학연, 지연, 혈연, 경제적 어려움 등의 문제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는 지방에 있는 강원대학교를 나왔어요. 
민감한 얘기지만 어쩔 수 없이 학벌은 굉장히 중요하고 경제적인 문제도 크죠.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긴 해도 현재 어려운 부분들이 많아요. 
무대에 서는 사람들이 걱정 없이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석사 학위 취득 후, 그는 국립 현대무용단에 입단했다. 
월급이 나오고 근무 시간도 정해져 있는 안정된 직장이었지만 단점도 있었다. 
일반 회사처럼 계속 근무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6개월, 1년 계약 등 계약 기간에 구속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국립 현대무용단과의 계약 종료 후, 그는 프리랜서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려면 사람들에게 저를 계속 어필해야 돼요. 
내가 어디서 작업을 하고 있고 계속 공연을 하고 있다는 걸 SNS를 통해 알리고 지인들이나 선생님들, 공연 관계자들에게 직접 연락을 해서 직접 스케줄을 짜나가야 되죠. 
스스로 공연기회를 찾아야 하는 거죠.”

이 일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는 열정이 있기 때문이에요

무용 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에 관심이 있던 그는 뮤지컬 주연에 캐스팅 되어 연습을 준비했던 적도 있다. 
두 달씩이나 연습을 한 상태에서 계약을 차일피일 미루던 제작사의 문제로 결국 뮤지컬 공연은 무산됐다. 
얼마 전, 결혼을 해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지만 그의 무용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저는 경험주의자이고 죽을 때까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경험해 보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저 역시 이 분야에 계속 종사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하는 고민도 했어요. 
조금은 불안정한 삶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잖아요. 
창작 작업은 시간도 많이 소모되고, 몸도 힘들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요. 
과정들은 정말 힘든데, 무대에 올라가서 공연을 하고 관객들이 무대를 향해 박수를 쳐주는 그 시간이 제일 좋아요. 
힘들었던 모든 것이 날아가는 기분이거든요. 
이 일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는 열정이 있기 때문이에요. ”

처음 무용을 시작했을 때 가졌던 ‘이거다’라는 막연한 느낌에서 나중에는 ‘이것이 아니면 인생을 바칠 것이 없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단 그는 ‘열정’을 가장 중요히 여겼다. 
열정이란 것은 요섭씨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다양한 경험을 겪으며 쌓여온 것이다. 
그는 요즘 학교들이 입시위주의 학업에 치중되어 있는 점이 학생들의 경험을 쌓는 기회를 줄이는 것이라 지적했다.

“제가 한빛고등학교를 다닐 땐 너무 좋았고 자유로웠어요. 
선생님과의 관계도 수직관계가 아니라 수평관계였고 공부를 하는 것도 자율적이었죠. 
내가 하고 싶은 걸 동아리 활동이나 여러 활동을 하면서 찾게 되었어요. 
직접 해봐야 나에게 맞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누구에게 백번 말하고 듣는 것보다 직접 자기가 체험을 하는 것이 필요한 거죠. 
그러려면 용기도 필요하고 기회비용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자기의 인생을 살기 위해선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해요.”

안무 분야로 발을 넓히는 게 목표에요

무용 안무자는 무용수들에게 동작을 주고 구성을 하고 무대를 꾸며 공연을 올리는 연출자이다.
스스로를 경험주의자라 말하는 요섭씨는 살면서 느낀 것들을 머릿속에 저장하는 일이 스스로의 안무 창작에 큰 경험으로 쌓이는 일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오랜 시간 무용을 한 것에 비해 경험이 많지 않다 느낀 그는 여건이 되면 안무법이나 연출법, 안무 테크닉 등을 배우기위해 유학을 떠나고 싶어 했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안무가가 되어 한국의 무용을 외국에 알리고 싶은 것이 그의 향후 목표였다.

무용이 대중화되어 있지 않고 범위가 좁은 대한민국은 무용 분야에서는 변방국가다. 
그러나 무용 공연이 열리면 찾는 관객이 한정된 한국과 달리 외국은 무용에 대한 위상과 지원이 높기 때문에 외국에서 인정을 받는 것은 무용가에 있어 선망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 저만의 단체를 만들고 싶어요. 
내가 원하는 무용수를 뽑아서 좋은 작품을 만들고 그 무용수들에게 정당한 급여를 주는 모습을 그려보는 거죠.”

행복이란 노력으로 자기 인생의 가치를 높이는 데에 있어요

유명한 안무가가 되어 무용계의 위상을 높이는 것도, 인생에 있어 경험을 쌓는 것도 모두 중요하지만 그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다 여기는 것은 ‘스스로가 행복한 것’ 이었다.

대안 학교가 갈 곳 없는 문제아들이 가는 학교란 인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보며 그는 안타까워했다.

“저는 지금 고등학교로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돌아갈 수 있어요. 
그만큼 공부, 교우 관계, 사제 관계 등 모든 것이 좋았고 그 시절이 너무나 행복했어요.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죠. 
현재 우리나라 교육은 좋은 대학 진학을 해서 高스펙을 쌓고 대기업에 취직해야 한다는 루트에 억압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환경 탓에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 하는지도 모르고 따라가게 되는 거죠. 
그냥 남들이 하니까, 남들이 좋아하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어요. 
힘들어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기 인생의 가치를 높이면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겠죠.”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156&cur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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