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 인터뷰

여러 분야의 진로∙직업 전문가와 사회 각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분들의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직업 세계를 확인하고 진로선택 방법을 알아보세요.

커리어패스

문화콘텐츠분야

(문화콘텐츠) 학문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 번역


윤혜진 영상번역가

번역 분야는 크게 출판번역, 기술번역, 영상번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영상번역은 외국어를 잘해도 영상번역 기법을 익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전문적인 일이다. 
자막을 넣을 수 있는 공간에 제한적이기 때문에 번역 시 글자 수를 고려해야 하고, 싱크를 맞추는 기술적인 부분도 배워야 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미국 드라마나 영화의 대사를 번역하고 자막을 넣는 일까지, 영상번역가가 하는 일은 출판번역, 기술번역과는 많이 다르다. 
미디어 매체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과 더불어서 ‘영상번역가’란 직업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도 많아졌다. 
영상번역가가 하는 일의 범위가 어디까지고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경로를 거쳐야 영상번역가가 될 수 있는지,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현장에서 직접 일하고 있는 윤혜진 씨를 만났다.

영상번역가가 하는 일

모든 영상번역가들의 꿈은 극장용 영화 번역이다. 자기 이름 세 글자가 스크린을 타고 올라갈 때의 뿌듯함도 있고 최신작을 누구보다 먼저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번역료나 작가 대우면에서도 케이블TV의 드라마 번역보다 좋다. 
현재 윤혜진 씨는 영화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영화번역가는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를 번역하는 일을 해요. 
영화사에서 동영상이나 대본을 미리 받아 집에서 번역 작업을 한 다음 영화사에 보내는 일이죠.”

1차 번역은 2박 3일에서 3박 4일 정도 걸린다. 
극장 개봉작일 경우에는 광고홍보 마케팅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마케팅에 넣을 자막도 굉장히 중요하다. 
1차 번역 이후에도 마케팅 담당자와 계속 대본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받는데 이때 걸리는 시간이 일주일에서 열흘. 다 완성되어 관계자들끼리 시사를 할 경우에는 더 걸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코미디영화에서 재미있는 캐릭터가 나올 경우 번역 자체를 재미있게 해야 해요. 
마케팅 담당자들이 ‘이 영화는 코미디영화고 타깃이 20대입니다’라는 콘셉트를 잡아주죠. 
2014년 5월에 개봉했던 「라스트베가스」란 영화가 들어왔을 때는 할리우드판 꽃할배 분위기로 가도록, 대사를 20대처럼 해달라는 요청이 왔어요. 
그러면 그 요구에 맞춰 제가 번역을 합니다. 
어떤 영화사는 최근 유행하는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를 많이 넣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해요.”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잘 파악할 수 있어야 하고 센스나 재치도 필요하다. 
영화의 어느 부분을 잘 살려야 하는지, 자막을 통해 어떤 캐릭터를 살려야 하는지 파악해야 함은 물론이다. 
때로는 영문 자체로는 굉장히 평이한 대사지만 영화 전체를 놓고 볼 때 굉장히 중요한 대사일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직역으로 그 맛을 충분히 살릴 수 없기 때문에 조금 멋스럽게 번역해야 하는데, 가장 적절한 대사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영화 전체의 분위기나 캐릭터의 성격을 살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배경지식이에요. 
번역가들마다 자신이 강조하는 부분이 다른데, 저는 배경지식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지식을 섭취하면서 항상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영화 한편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잖아요. 
영화에서 나온 문장 하나를 해석하지 못하면 영화 전체를 해석하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다 찾아보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녀는 영화 「마네의 제비꽃 여인 베르트 모리조」를 번역할 때도 마네와 모리조에 대한 자료를 다 찾아 공부했다. 
그와 관련된 영상자료도 보면서 초벌 번역에서 잘못 해석한 부분이 없는지 꼼꼼히 살피는 작업을 했다. 
그녀는 번역할 때 가장 힘든 부분이 마감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영화를 심의하는 데 10~12일 정도 걸리는데, 심의를 받아야 개봉이 가능하고 심의가 끝나야 개봉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에 영화사 입장에서는 나중에 고치더라도 빨리 번역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면 밤을 새워 일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저는 코미디나 멜로드라마가 좋아 하는데, 대사를 번역할 때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작품들도 좋아해요. 
「씬시티2」는 번역하는 동안 너무 즐거웠어요. 
주인공들이 무겁고 어두운 히어로 캐릭터고 영상도 그런 분위기라서 대사를 멋스럽게, 짧지만 강렬하게 넣어야 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저에게는 오히려 즐거워요.”

영상번역가가 되기까지

윤혜진 씨는 학창시절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보다는 일단 대학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른들도 대학에만 가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이라고만 했다. 
그러나 대학 진학만이 목표였던 그녀에게 대학생활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했고 공부에도 별 흥미가 없었다. 
그녀는 대학에 들어가서야 중고등학교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진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런 대학생활 중에서 가장 즐거웠던 추억은 호주에 있는 자매학교에서 1년 동안 어학연수를 한 것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이유도 목적도 없이 하라는 대로 공부하고 대학에 왔는데, 와서 보니 대학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꿈, 희망, 그런 걸 기대하기 힘들었죠. 
취업을 위해 준비하면서 앞으로 정말 뭐 하면서 살아야 할지 눈앞이 막막하더군요. 
그러다가 호주로 어학연수를 하러 간 거였어요. 
1년 가까이 경치 좋고 아름다운 나라에서 간섭 없이 혼자 생활해보니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녀는 오토바이 의류를 만드는 회사에 취업을 했다. 
그러나 일 자체가 적성에 맞지 않고 조직사회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아 그녀는 2년 만에 회사를 나왔다. 
나이가 많고 경험이 있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주는 것쯤을 당연시하는 선후배 관계, 상사와 부하직원 관계와 문화가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사장님과 마찰이 있었고 두말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던 것이다. 
그 뒤 한 달 동안 유럽여행을 하면서 그녀는 진로에 대해 고민했지만 쉽게 답을 찾지 못했고, 거의 하루 종일 집에서 미국 드라마를 보며 몇 달을 보냈다.

“그런 생활을 하는 자신이 스스로도 한심하게 생각 되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미국 드라마와 미국 영화를 좋아하고 영어에도 관심이 많으니 이 둘의 교집합을 생각해낸 거죠. 
번역가가 되면 되겠구나 싶어서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죠.”

그녀가 번역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걱정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고 걱정도 많은 성격인데 이상하게도 그때만은 사람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인터넷 구직사이트에 ‘번역’이라고 친 다음 영상번역회사를 검색해서 이력서를 보내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모든 곳에서 거절을 당했지만 계속 이력서를 넣다 보니 테스트를 받으러 오라는 곳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나 막상 일을 시켜놓고 번역료를 주지 않는 곳도 있었죠.”

이러저러한 일들을 몇 번 거치는 가운데 그녀에게 제대로 된 일이 들어왔다. 
물론 처음에는 번역 단가가 무척 낮았지만 경력을 쌓아가다 보니 일을 주는 회사도 많아지고 점점 좋은 곳에서 일이 들어왔다. 
당연히 번역료도 올라갔다. 
그렇게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7년 동안 미국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같은 케이블 채널 번역을 하다가 3, 4년 전부터는 영화 번역 쪽 일을 하게 되었다.

영상번역가란 직업의 장단점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제대로 된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었을 때 작가다운 대접을 받으면서 일을 시작 하고 싶어요. 
제가 일을 시작할 때는 그런 경로를 몰라서 주먹구구식으로 덤볐기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너무 힘들었거든요.”

경력이 없을 때 윤혜진 씨는 거래처에서 시키는 일들을 그들의 일정에 맞춰서 뭐든지 다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못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일이 들어오면 아무리 바쁘고 다른 일이 쌓여 있어도 무조건 ‘예스’라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다음 기회가 안 오지 않으니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그들의 일정에 맞춰야만 했다. 
기존에 일을 하던 작가들보다 실력이 월등한 것도 아니니 그녀는 성실함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급한 일에 대응해 주는 것 또한 경쟁력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힘들게 지금의 자리를 만든 그녀는 후배들에게 좀 더 나은 방법으로 영상번역가의 길로 들어서길 권했다.

“프리랜서라는 직업은 눈에 보이는 승진 코스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가 많아요. 
갑자기 일이 끊길 때도 있고, 사소한 실수 하나 때문에 거래처에서 일을 주지 않겠다고 할 때도 있어요. 
그럴 때는 갑자기 실업자가 되는 거잖아요. 
잘하고 있던 시리즈에서 하루아침에 잘린 적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그럴 때마다 세상에 혼자만 덩그러니 있는 것 같아 불안했는데, 지금은 프리랜서에게 흔히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덤덤히 받아들여요.”

어느 직업에나 장단점은 있다. 
누군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만큼 수입 면에서 불규칙한 게 사실이다. 
일이 없다고 조바심을 내거나 절망하지 말고, 그때는 자신을 좀 더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아 공부하면서 재충전을 하면 된다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호기심을 가지고 많은 지식을 쌓기

윤혜진 씨는 중·고등학교 다닐 때 수학과 과학을 너무 싫어했지만 번역가가 된 다음부터는 모든 장르를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싫어했던 분야도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를 아무리 잘해도 내용이 뭔지 모르면 번역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녀는 다큐멘터리 번역을 하면서 과학공부를 시작했다. 
20대 후반, 그녀는 「과학동아」를 정기구독하고 2~3시간밖에 못 자가며 과학 공부에 몰두했다. 
과학뿐만이 아니었다. 
뉴스를 번역할 때면 우리나라 정치에도 관심이 없던 그녀가 미국 정치까지 알아야 했다. 
힘은 들었지만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사이 어느새 뉴스를 유심히 보는 습관이 생겼다.

“‘학문의 즐거움’이란 말을 고리타분하게 생각했는데 정말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재미가 있었어요. 
지식의 폭이 넓어지면서 점점 더 재미있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학창시절에도 하지 않던 공부를 번역을 하면서 하고 있어요.”

영화번역 작업은 마감이 있어서 밤을 새우며 일하는 경우가 많다. 
녀는 그럴 때마다 너무 힘이 들어서 ‘아, 이것까지만 하고 다시는 안 할래’라고 마음을 먹지만 다음 영화가 오면 또 가슴이 뛴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다.

“영상번역가가 되기 위해서는 호기심을 가지고 폭넓은 지식을 갖추는 것이 전공학과에서 A학점을 받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166&curPage=1

목록보기

교육부 한국직업능력연구원 국가공인 웹 접근성 품질인증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