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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오로지 자동차, 외골수로 앞만 보고 달리다


최낙빈 Monx 감독

카레이싱은 이세창, 류시원 등 연예인들이 하는, 돈 많이 들고 폼 나는 스포츠라라고 생각하기 쉽다. 
얼마 전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바 있지만, ‘카레이서’란 직업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카레이서가 타는 레이싱카를 정비하는 미케닉 분야는 더더욱 미지의 세계다.

최낙빈 감독은 어릴 적부터 손에서 바퀴달린 장난감을 놓지 않았다.
그만큼 차를 좋아했던 그는 아마추어 레이싱팀 Monx의 감독이 되어 경기용 자동차를 제작하고, 정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단 한 번도 좋은 직업을 선택했다고 칭찬받지 못했다는 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평상시에는 소형차, 연비 좋은 차만 탄다고

우리나라에는 월급을 받는 프로 레이서는 많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차가 너무 좋아서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 레이서들이다. 
최낙빈 감독은 그런 아마추어 레이싱 팀의 감독을 맡고 있다.

“카레이서라니까 평소에도 굉장히 빨리 달릴 것 같죠? 
하지만 도로에서는 굉장히 천천히 달려요. 
속도가 빠르면 기름을 아무래도 기름이 많이 드니까 적정 속도를 유지하지요. 
기름 값이라도 아껴야 하고 싶은 것을 더 할 수 있으니까요.”

카레이싱을 하는 연예인들은 대부분 프로팀에서 영입하여 프로선수로서 돈을 받으며 레이싱을 한다. 
하지만 아마추어 레이서들은 모든 경비를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또한 경기용으로 제작된 차는 일반 도로를 달릴 수 없기 때문에 경기장까지 캐리어로 옮겨야 하고, 경기장을 이용할 때마다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아마추어 레이서들이 취미 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는 생활비를 절약할 수밖에 없다. 
생활이 여유로워 멋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취미라는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늘 인생의 중심에 있었던 자동차

최낙빈 감독이 자동차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것은 중학생 때 무선조종 자동차를 만들면서부터였다. 
자동차에 관한 책과 잡지를 사 모으고, 차를 만들고, 자신이 만든 차로 경기에 나가는 그에게 차는 인생의 전부였다.

“저 인생에서 차는 항상 중심에 있었어요. 
대통령이 되고 싶다거나 대기업에 들어가는 미래에는 관심이 없었죠. 
더 어렸던 중학생 때 그때 제 꿈은 전파사 주인이었죠. 
어른이 되면 반드시 전파사 주인이 되리라, 그게 제게는 가장 멋진 꿈이었어요.”

그는 어릴 적부터 다 만들어진 장난감보다는 직접 만드는 장난감이 좋았고, 가전제품 파는 곳에서 사 온 멋진 라디오보다 직접 조립한 허름한 라디오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3년 내내 라디오를 조립하는 교내 과학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고, 그것을 계기로 교육청에서 주최한 과학경진대회에 나가기도 할 정도로 손재주도 좋았다. 
‘미케닉’ 일을 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최낙빈 감독에게는 당연한 결과였다.

손으로 만드는 일이 좋았던 그는 공고에 가고 싶었지만 그의 부모님은 ‘공고’가 아니라 ‘공대’를 가라며 반대하셨다.
결국 원치 않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게 된 그는 공부보다 무선조종 자동차를 만드는 동아리 활동에 푹 빠져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생 때 무선 모형자동차를 만들어 본 경험이 제가 지금 하는 일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무선 모형자동차는 실제 자동차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죠. 
차의 구조나 원리 정도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차를 만지고, 세팅하고, 조종해 보니 또 달랐어요. 
이 경험 덕분인지 큰 차가 오히려 쉽게 느껴지더군요.”

그가 고등학생 때부터 7년 동안 무선 모형자동차를 만들면서 들어간 비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평범한 고등학생이면 해봄직한 반항이나 탈선한 번 없이 오로지 자동차에만 몰입하는 아들을 위해 부모님은 묵묵히 지원을 해주셨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그는 모형 자동차 만드는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자동차, 오로지 머릿속에는 자동차 생각뿐

최낙빈 감독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주대학교에 지원해 합격을 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4년 동안 들어갈 학비와 졸업 후의 진로를 생각해 보니 그는 고민이 많아졌다. 
그는 차라리 대학 입학 대신 자동차 정비를 배우고 싶었지만 또 다시 반대에 부딪혔다. 
그의 부모님은 정비 일을 하고 싶다면 자동차보다 기왕이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비행기 쪽을 선택하라고 하셨다. 
사업을 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던 아버지는 아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기에 최낙빈 감독은 부모님의 권유대로 항공정비를 교육하는 기관에 들어갔지만 오래 있지는 못했다.

“비슷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비행기는 재미가 없더라고요. 
땅에 붙어서 굴러가는 바퀴, 저는 그게 좋았어요. 
머릿속에서는 온통 ‘나는 자동차를 하겠다’ 그런 생각만 가득했죠. 
군입대를 하기 전 차를 개조해서 카레이싱 아마추어 경기에 나가기도 했어요.”

군대 역시 항공정비 교육을 받았으니 공군항공정비 쪽으로 지원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차를 포기하지 못하고 공군 육군병으로 입대했다.
그는 군대에서 차를 뜯어보고 만들어 보면서 정비 자격증도을 땄다. 
제대 후 아주자동차대학에 입학을 했지만 한 학기를 다니다가 그만두었다.

“아주자동차대학에 모터스포츠학과가 있어요. 
레이싱 관련학과가 생긴 거죠. 
제가 1기였어요. 
하고 싶었던 공부라서 고등학교 다닐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질문이란 걸 해본 적이 없는데, 여기 다닐 때는 질문이 많았죠.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제 궁금증을 해결해 줄 사람이 없었어요. 
다른 학생들에게야 새롭고 대단한 지식이었겠지만 저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죠. 
책을 봐도 이론만 있을 뿐이었고, 교수님께 여쭤 봐도 이론만 말할 뿐 실무에 대해서는 뾰족한 답을 주지 못하시더라고요. 
현장에서 직접 쓸 수 있는 실무와 그것을 응용한 방법을 알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 미련 없이 학교를 그만뒀어요.”

세상의 잣대에서 한 발 떨어져

“다들 뚜렷한 목표를 가지라고 말하지만, 가끔은 뚜렷한 목표가 안 좋을 때도 있어요. 
단체 생활을 할 때 다른 사람들과 대화가 어려웠어요.
저는 차밖에 모르니까 소외되더라고요.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이것저것 하다 보면 산만해지잖아요. 
그래서 원래 좋아했던 분야에 소홀할 수도 있고요. 
차라리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 일에 대해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렸어요.”

그래서인지 최낙빈 감독 주위에는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선조종 자동차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 자동차 동호회 형들까지 그렇게 알게 된 인연 중에는 수입차를 튜닝 하는 형도 있었다. 
그는 그 형의 회사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짧은 시간 안에 부품을 빨리 교환하고 서둘러 다음 일을 해야 해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계속 서둘러 일해야 돈을 벌 수 있거든요. 
차를 좋아하니까 튜닝도 하고 싶었던 건데, 현실에서는 그저 노동일뿐이더라고요. 
나중에는 차를 만지는 것조차 싫어졌어요. 
차에서 손을 떼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가 생각했던 튜닝은 특정한 부분에서 원하는 성능이 나오도록 바꿔 주는 일로, 예를 들어 오디오를 튜닝 한다고 하면 음질을 더 좋게 세밀하게 맞춰 주는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기존 것보다 비싼 제품으로 바꾸면 당연히 좋아질 것이라며 빨리 달아 주라고만 했다. 
정성을 들여 정교하게 바꾸고 싶은 그의 마음과는 달리 빨리빨리 해치우고 다음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일에 대한 흥미를 잃은 그는 스물여덟 살의 나이로 회사를 나왔다. 
신입사원 채용을 만 27세까지로 정하고 있는 곳이 많았던 당시 그가 취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돈과 꿈의 타협은 없다

“창업을 하자니 모아 놓은 자금도 없고, 도움을 받기에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죠.
주위에서는 돈을 벌어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설득했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돈을 벌기위해 하기 싫은 일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안 벌고 안 쓰기로 했어요. 
돈 쓸 데가 없으면 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죠.”

최낙빈 감독은 튜닝회사를 그만둔 이후 간간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차비 정도를 벌었을 뿐 돈을 벌기 위해 취업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러던 중 그는 부모님이 다니는 교회의 아는 분으로부터 창업을 제안 받았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주관이 뚜렷하고, 시작만하면 잘해낼 것 같은 사람이 꼭 그 일만 하겠다고 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우셨는지, ‘내가 돈을 빌려줄 테니 일단 사업을 시작하고, 대신 이자를 다오’ 하시면서 돈을 내주시더라고요. 
그렇게 29살에 창업을 했죠.”

회사를 차린 그를 두고 주위에서는 걱정이 더 많았다.
어느 정도는 타협을 해야 한다고, 돈을 벌려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고 수많은 충고를 들었지만 그는 그런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가 돈을 빌리면서까지 창업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였기 때문이었다.

“차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놀러 갈 곳이 없어요. 
그런 분들에게 우리 사업장을 열어놓았죠. 
언제든 놀러 오시라고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시작했어요. 
창업을 한 지 이제 5년째인데, 처음에 한 번 왔던 손님이 아직까지도 단골로 찾아오세요. 
다른 사업장에서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고생스런 작업은 잘 안 하려고 하는데 저는 그런 일이 더 반가워요. 
차를 만들고 고치는 작업이 정말 좋아서 이 일을 하는 거니까요. 
그런 점이 고객들에게 신뢰를 주는 것 같아요.”

계속 파고 들어가면 끝과 끝은 만난다

“주위에 차를 좋아하는 동생들이 많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저를 부러워하죠. 
그래서 너도 하면 된다고 말하면, 부모님이 반대해서 못 한대요. 
부모님들 눈에는 자동차 정비가 손에 기름 묻히는 지저분하고 험한 일로 보일 테니 반대를 많이 하세요. 
부모 마음에는 자식들이 험한 일로 고생하는 것보다 대기업에 들어가 깨끗한 셔츠 입고 볼펜 들고 일하기를 바라죠.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부모님을 이해시켜야 해요. 
부모님이 ‘그래, 한번 해봐라’하고 말할 때까지 열심히 설득하고, 승낙이 떨어지면 그때 이 일을 하라고 동생들에게 말합니다.”

최낙빈 감독은 항상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하고 싶은 일을 해온 사람이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내 편인 부모님조차 설득시킬 수 없다면 세상에 그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누가 보아도 이 길이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을 만큼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설득의 방법이라고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꼭 대학에 들어가거나 학원에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론적으로만 배우면 오히려 재미를 잃어버리기 쉽죠.
저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어린 친구들이 차를 좋아하면 어른들은 진로를 먼저 정해 주죠. 
공고 자동차과, 공대 자동차학과 이런 곳에 가라고 말해요. 
거기에만 가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최낙빈 감독의 꿈은 ‘죽을 때까지 즐겁게 살자’다. 
가까운 목표로는 세계대회에서 타이틀을 따는 것이고, 그가 다녔던 대학교 강단에 서서 차를 정말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강의를 하는 것이다.
그는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에 대해 더 많이 알기 위해 노력하고 시간을 투자하면 결국에는 하고 싶었던 일이 구체화 되어 눈앞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속 좁혀 들어가면 끝과 끝이 만나는 것처럼, 파고 또 파는 외골수가 되어야 한다.

“좋아하는 게 있으면 그냥 하면 되지, 꼭 배워야만 되는 건 아니잖아요. 
정말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재미있게, 잘 노세요.”

*미케닉(Mechanic)은 경기용 차를 만들고 유지하는 사람을 말한다. 

사전적 의미는 ‘차량 엔진 정비공’이다. 

경기용으로 개조한 차가 안전하게 달릴 수 있도록 유지, 보수하는 일을 한다. 

외국에서는 엔지니어가 경기 차량을 개발하고, 미케닉은 개발한 경기 차량을 유지·보수하는 역할을 하지만 국내에는 아직 엔지니어와 미케닉의 구분이 없어서 미케닉이 경기 차량을 개조하기도 한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258&cur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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