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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 유명 증권사 그만두고 인력거 끄는 CEO


이인재 아띠인력거 대표

인력거를 아는가? 큰 세 발 자전거 뒤에 사람을 태우고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거나 관광가이드처럼 안내를 해준다.
19세기, 근대 시대에나 있었을 법한 인력거를 부활시킨 사람, 28살 이인재 씨다. 
미국 명문대 출신에 증권사를 박차고 나온 인재 씨는 직접 인력거를 끌지만, 모두 6대의 인력거를 운용 중인 연매출 1억 원 대의 어엿한 CEO다. 
서울의 거리를 누비며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영어 실력을 발휘한다. 
안정적인 직업을 마다하고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인력거 사업체를 창업한 인재 씨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서울 거리를 누비는 친한 친구 같은 인력거

‘아띠’는 ‘친한 친구’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한옥마을, 삼청동, 통의동 등이 있는 서울 종로의 북촌과 서촌, 인사동, 광화문 일대를 다닌다.
달리는 것만 하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동네나 명소, 명물에 대한 설명을 하는 여행 가이드를 하기도 한다. 
손님을 태우고 달리는 인력거꾼들을 라이더라고 하는데 이 라이더들은 체력 테스트를 거치고 또 승객들을 가이드할 수 있는 지식을 사전에 교육받는다.

처음에는 친구 두 명이 끌어도 충분하던 게 입소문을 통해 하루 40~50팀이 찾을 정도로 손님이 늘어났다. 
그래서 5명이었던 직원도 16명으로 늘었다. 
직원들은 대부분 20대, 절반 정도는 대학생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에만 인력거를 끄는 투잡족도 있다. 
의외로 여직원도 5명이나 된다.
‘놀면서 재미있게 일하자’는 그의 뜻에 맞는 젊은이들이 모인다.

날씨가 좋을 때는 매일 운행하지만 겨울이 되면서 주말에만 운행한다. 
인력거 한 대당 성인 3명까지 탈 수 있고 요금은 40분에 1인당 2만원이다.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탈 수도 있는데, 요금은 탑승객이 알아서 내는 시스템이다.

내 안에 있는 도전 본능은 숨길 수 없어요

인재 씨는 놀기 좋아하고 공부는 혼나지 않을 정도로만 하는,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1학기가 끝난 시점인 2000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유학이 한창 붐이었고 인재 씨도 더 넓은 곳에 가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

미국에서 혼자 지내며 명문대에 입학했고 경제학을 전공했다. 
동양인들 사이에서 컨설팅회사나 금융계로 가는 걸 좋은 직업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경제학을 선택했다. 
다시 한국으로 와 군대를 갔고 이라크 파병을 지원해 갔는데 그때 중동의 문화, 종교, 사람들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복학한 후에는 전공을 바꿔 역사를 공부했다.

미국 유학에 이라크 파병까지, 낯선 곳도 낯선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 덕분에 인력거 사업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다.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자연의 풍광을 즐기며 달리는 것, 건강하게 자리 잡은 팔과 다리의 근육만큼 마음의 근육도 튼튼해지는 느낌이다.

좋아하는 여자 친구를 위해 한 일이 계기가 되었어요

인재 씨가 미국 대학교에 다니던 때, 좋아하던 여자 친구가 있었다.
하루는 그녀의 동생이 학교에 놀러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그녀의 동생은 몸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야했고 인재 씨는 자전거에 휠체어를 묶어 돌아다니며 학교를 구경시켜줬다.

그것이 그가 처음 끌었던 인력거였다. 
그 후 2006년 여름 방학에는 보스턴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당시 유행 중이던 인력거 아르바이트를 통해 본격적인 인력거 끌기를 시작했다. 
한 번 나가면 다섯 시간씩 인력거를 끌었다. 
여름에는 더워서 힘들었지만 밤이 되면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것이 즐거웠다. 
무엇보다 인력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손님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덩달아 기뻐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좋은 회사에 다녔지만 나 자신을 잃어버린 기분이었죠

이인재 씨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엄친아’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는 직장에 입사도 했지만 회사에서 일하는 내내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2010년 보스턴에서 학교를 다니며 했던 인력거를 몰았던 생각이 났다.
무척 재미있었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회사 창문 밖으로 덕수궁 돌담길이 한 눈에 내려다보였거든요. 
저 길을 인력거로 달리면 좋겠다 싶었어요.”

서울에는 인력거가 없으니 ‘아 내가 해봐야겠다.’라고 생각했다. 
회사 상사에게 ‘인력거를 끌기 위해 퇴사하겠다’고 말하자 상사는 코웃음을 쳤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래도 인재 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인력거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던 미국인 친구에게 같이 해보자고 제안을 했더니 그 친구는 흔쾌히 한국으로 와줬다. 
그렇게 2012년 7월부터 ‘아띠 인력거’가 시작되었다. 
처음 두 대의 인력거를 끌고 시간한 후, 친구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혼자 사업체를 키워왔다. 
인력거를 끌고 서울 곳곳을 누비며 인재 씨는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부모님 반대도 있었지만 주변을 의식하지 않아요

퇴사를 하고 곧바로 부모님에게 알리지는 못했다. 
한 달 정도는 양복입고 출근하는 척을 해야 했다. 
그러다 오래 숨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확실히 말씀을 드렸다. 
증권사에 다니는 것보다 이걸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자신도 있었다. 
또 증권사 일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물론 부모님은 마음에 안 들어하셨지만 이제는 인정을 해주신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순간 부모를 이겨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인재 씨는 부모님의 말씀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부모의 기대에 끌려 다니면서 자신을 잃지 말라는 뜻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순간부터 모든 판단은 어차피 자기가 책임지고 하는 것이다. 
집이나 주변에서 조언을 해줄 수는 있지만 영향을 미치진 않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싶으면 최대한 빨리 주변의 시선과 그런 걸 의식하지 말고 빨리빨리 결정내서 그만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학교가 됐던, 직장이 됐던 어떤 일을 할 때는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인재 씨는 말한다. 
그리고 빨리 결단을 내리고 움직이는 게 좋다.

불확실성을 즐기면 어떤 일에도 좌절하지 않아요

창업 후 5개월간은 눈코 뜰 새 없었다. 
한국에서 인력거를 구할 수 없자 중국의 인력거 생산 공장을 찾아갔다. 
인력거를 수입한 뒤에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일단 자전거가 한 대 당 200만 원에서 250만 원 정도 했다. 
처음에는 두 대를 구입해 네 대를 더 늘렸다. 
그럴 때마다 당연히 돈이 들었다. 
또 인력거를 보관할 창고를 월세로 빌렸는데 쓸데없이 넓은 곳을 빌려 월세가 많이 들었다. 
인력거를 위한 부품과 공구도 필요했고 일할 때 입을 옷도 맞췄다. 
결국 창업 초기에 2천만 원 정도가 들었다.
주변 선배에게 돈을 빌리거나 투자를 받기도 해서 꾸려나갈 수 있었다.
창고를 살 수 있게 개조해 친구와 함께 살면서 자전거 수리까지 모든 일을 직접 했다.

그 후 사업이 안정되면서 여러 시도를 했지만 쉽지 않았다. 
여수엑스포 조직위원회를 찾아가 관광객을 태워보자고 제안했지만 번번이 거절 당했다. 
사업이 되겠느냐는 반응들이었다. 
여러 청년창업지원 사업에서도 ‘경찰이 제지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러나 인재 씨는 좌절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이러해서 안 된다’는 식의 반대나 부정적인 의견에 부딪칠 때마다 오히려 신이 났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한 것을 되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도전정신이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즐기면 좋을 것 같아요.”

창업을 한다는 것, 그것도 아무도 하지 않을 일을 한다는 것은 물론 불확실하다. 
그러나 인재 씨는 불확실한 것을 좋아하고 즐긴다. 
지구 어디에 떨어져도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 일 그 자체가 삶이 되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퇴근한 후나 주말에는 일을 좀 잊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24시간 내내 일을 생각한다. 
자신이 곧 회사 자체라는 생각, 뗄레야 뗄 수 없다.

도시의 풍경을 사람 냄새 나게 바꾸고 싶어요

현재 아띠 인력거는 북촌 코스 2개, 정동길 코스 1개, 서촌 코스 1개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특히 북촌, 서촌은 직접 가이드까지 해주는 40분 투어 코스를 개발해 관광 상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특히 여성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인력거를 끌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의 인력거는 소문이 나면서 가수 노영심, 두산 박용만 회장, 엄홍길 대장, 배우 박상원씨 등이 탑승하기도 했다.

최근 한국관광공사에서 주최하는 ‘창조관광사업 공모전’에서 대상도 수상했다. 
축제에 인력거를 부르고 싶어 하는 지자체들도 많아서 얼마전엔 군산에 다녀왔다. 
앞으로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 대구 등에도 인력거를 설치하는 게 그의 꿈이다. 
이인재 씨는 앞으로 꾸준히 인력거 사업을 늘려갈 계획이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서 인력거를 탈 수 있게 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인력거를 타면 길거리에서 가장 피부로 우리나라의 문제가 많이 와 닿는다. 
교통문제를 비롯해서 삭막한 도시의 압박감을 고스란히 느낀다. 
때문에 인력거를 점차 늘려가면서 자동차로 가득한 도시의 풍경을 바꾸고 싶다. 
사람 냄새나고 따뜻한 모습으로.

“우리는 언젠가 다 죽잖아요. 
그런 걸 생각하면서 지금 현재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살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가 죽고 난 후 다음 세대도 생각하게 되었다. 
다음 세대는 내 자식, 손자들이 살 건데 그들이 살기에 좀 더 좋은 세상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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