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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 어떤 식으로든 비즈니스를 하며 살겠다고 생각했어요

딜라이트
김정현 딜라이트 대표

스물여덟 살의 젊은 대표 김정현 씨는 ‘딜라이트’라는 보청기 회사를 운영한다. 
그러나 평범한 회사는 아니다. 
난청을 겪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 보청기를 구입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좋은 보청기를 공급한다. 
사회적으로 이로운 일을 하면서 수익까지 내는 이 착한 기업을 만들어낸 김정현 대표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업을 시작했을 정도로 사업가 기질이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창업했어요

‘딜라이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 보청기를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기술적 혁신과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저렴한 가격에 보청기를 공급하여 난청을 겪는 노인들이 훨씬 쉽게 보청기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해왔다. 
올해에는 ‘제1회 대한민국 사랑받는 기업’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수상할 정도로 업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젊은 CEO 김정현 대표는 대학교 때 딜라이트를 창업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 사회적 기업에 대해 우연히 접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사회적 기업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문제들을 해결해주면 굉장히 보람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음악을 남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지 않은가. 
정현씨도 남을 도와주는 것이 사람으로서 기쁜 일이고 그런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면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창업을 하겠다는 생각까진 하지 않았다.
그저 깊이 있게 검토해보자고 생각했을 뿐이다. 
자료 조사를 하며 사례들을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사업 아이템이 생겼다. 
그게 바로 보청기였다. 
연습 삼아 기획하기 시작해 2010년 여름부터 실제로 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현 씨는 2013년 2월에 학교를 졸업했다.

사업가 부모님 아래에서 철저한 경제관념을 배웠어요

정현 씨의 부모님은 두 분 다 사업을 하셨다. 
경제적으로도 풍족했다.
그런데도 정현 씨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는 신문배달을 시키셨다.
친척들은 어린아이한테 일을 시킨다고 좋게 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스스로 돈을 벌어서 쓸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정현 씨에게 경제관념을 확실히 새겨주셨다. 
돈도 아버지의 구두를 닦으면 500원, 마당을 청소하면 1,000원을 주는 식이었다. 
어려운 시절을 겪고 자수성가한 아버지의 교육방식이었다.

덕분에 정현 씨는 독립심을 키울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자라서도 친구들은 당연히 취업을 생각했지만 정현 씨는 회사나 조직에 의존하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정현 씨가 어릴 때부터 작게나마 사업을 하곤 했던 것도 어찌 보면 이런 아버지의 교육 덕분일 것이다. 
그 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감사한 일이다.

고등학교 때 처음 사업의 재미를 알았어요

정현 씨는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작은 사업들을 많이 했었다. 
거창하진 않지만 교환을 기초로 하는 장사였다.

시작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MP3나 전자사전이 막 나와서 많이 유행했다. 
정현 씨의 친구 A가 있었다. 
A는 우연히 전자사전을 두 개 갖게 되었다. 
엄마가 사줬는데 그걸 모르고 친척이 또 하나를 사준 것이다. 
친구는 두 개는 필요 없으니 하나는 처분하고 싶어 했다.

또 다른 친구 B가 있었다. 
B는 전자사전을 사라고 부모님에게 돈을 받았다. 10만 원을 받았는데 그 친구는 좀 싸게 사서 돈을 남겨 다른 데 쓰고 싶어 했다.

이 두 친구들을 보고 정현 씨는 무릎을 탁 쳤다. 
A는 전자사전이 두 개니까 새것이지만 싸게 5만 원에라도 팔고 싶고 B는 10만 원 받았는데 그걸 한 7~8만 원에만 사더라도 2만 원 남으면 떡볶이를 사먹을 수 있을 것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런 것들이 꽤 많이 있었다. 
그래서 정현 씨는 그런 것들을 사들였다. 
자기가 가지고 있다가 주변에서 누가 사겠다고 하면 그 친구한테 팔았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하던 게 커져서 물건도 늘어났다. 
그리고 아예 도매상에 가서 사입까지 했다. 
장소도 학교 안에서가 아니라 온라인까지 확장되었다. 
그렇게 소소하게 용돈벌이를 했다.

돈이 되는 것도 재미있고 필요한 물건을 산 사람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들으면 더 재미있었다. 
뭔가 부가가치를 창출해본 것은 그게 처음이었다. 
지금은 인터넷 중고장터 같은 게 활성화되어 있지만 예전에만 해도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게 쉽지 않았다. 
정현 씨는 그런 상황에서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물론 오랫동안 계속하지는 못했다. 
학생이니 공부를 해야 하기도 했고 인터넷 중고시장도 점점 전문화되면서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방황한 시기도 있었어요

정현 씨는 고등학교 때 방황의 시간을 거쳤다. 
서울 은평구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고등학교는 멀리 떨어진 서대문에 있는 고등학교로 갔다. 
정현 씨가 친구들이랑 밤늦게까지 어울려 다니자 부모님이 친구들과 떨어지게 하려고 한 조치였다.

그 고등학교에는 정현 씨와 같은 중학교에서 온 학생이 두 명 정도밖에 없었다. 
친구가 없으니 외로웠다. 
공부도 멀리하기 시작했다. 
학교에도 가기가 싫었다. 
시험 날에 무단결석을 한 적도 있었고 반에서 거의 꼴찌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2학년 때 만난 담임선생님이 정현 씨의 생각을 바꿔주었다.
선생님들한테 항상 부정적인 말만 듣던 정현 씨에게 그 선생님은 ‘너도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셨다. 
마음을 써주시는 선생님이 고마웠고 보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3학년 때는 담임선생님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 
대학에 원서를 넣을 때도 선생님의 조언 없이 혼자 알아서 해야 했다. 
결국 한 번 재수를 해야 했다.

정현 씨는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사실 대학에 갈 때만 해도 사업하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고 경영학과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그저 막연히 경영학을 배우고 싶었다. 
또 경영학이 제일 인기 있던 과이기도 했다.

“경영학을 배웠다고 해서 사업을 하는 건 아니긴 하지만 사업을 할 때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정현 씨는 어떤 형태로든 계속 비즈니스를 하면서 살겠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사업 경험이 있어서인지 사업에 대해 부담감이 없었다.

가장 힘든 건 사람을 잃는 거예요

정현 씨는 경영학을 전공했고 기술적으로는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보청기 사업을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다. 
자본은 물론이고 제품을 어떻게 만드는 게 좋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도 어려웠다. 
제품을 만들었어도 과연 사람들이 사용해줄지, 수익이 될지 하는 문제들도 걱정되는 것 투성이었다. 
그럴 때마다 정현 씨는 부지런히 여기저기를 다니며 사람들한테 많이 물어봤다. 
혼자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부에서 많이 보고 듣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사실 어려운 건 없었어요. 
기대를 얼마나 했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고, 성공의 정의에 따라 다를 수 있는 문제니까요.”

회사에 문제가 생기거나 적자가 나더라도 그건 힘들다기보다는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했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항상 쉽지 않은 문제다. 
업을 시작할 때 정현 씨가 같이 이끌었던 사람들에게 그만한 대가를 돌려주지 못했을 때는 미안하기도 하고 좌절감을 느꼈다. 
‘내 능력이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떠나거나 사람과의 관계가 좀 껄끄러워지거나 그래서 일하는 게 재미가 없을 때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나이가 어리다는 건 장단점이 있지만
크게 문제되진 않아요

어린 나이에 대표로 일한다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다. 
어린데 사업을 한다고 기특하게 봐주시고, 조금 더 기회를 주려고 하고,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다. 
어리니까 조금 더 편의를 봐주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절대적인 경험이 부족한 것은 단점이다. 
예를 들어 경영을 해나가는 데 전문성이 떨어질 수도 있고 아무래도 연륜이라는 게 있으니 말이다.

아직 군대도 안 갔고, 조직 생활을 한 번도 안 해본 대표인지라 지혜가 부족할 수도 있고 직원들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할 수도 있다.
또 어려서 챙겨주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리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걸 껄끄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나이가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정현 씨도 나이에 그리 연연하지는 않는다. 
나이는 스스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 나이 때문에 어려운 일이 생겨도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으로도 고민은 계속돼요

딜라이트는 창업 이념을 그대로 이어가며 발전할 것이다. 
즉 경제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최대한 자기 난청을 해결할 수 있게끔 하는 솔루션을 만들어서 해외로도 많이 진출할 것이다.

정현 씨 개인적으로는 환경이 어려운 사람들을 지원하는 일에 항상 관심을 두고 있다. 
그래서 비영리 미술학원도 3개나 운영하고 있다. 
제적으로 어려운 중고등학생들이 더 쉽게 미술을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술뿐 아니라 예체능은 돈이 많이 드는 것이 현실이다. 
꿈이 있어도 집안이 넉넉하지 않으면 접어야 하는 상황들이 많다. 
그런 아이들한테 무상으로 미술 교육을 해주는 학원을 만든 것이다. 
미대생들이 봉사활동으로 와서 아이들을 가르쳐주고 전임 선생님들도 월급을 주며 고용하고 있다. 
이처럼 경제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이라든가 학생으로서 당연히 받을 권리를 못 받는 현실을 바꾸고 싶은 게 정현 씨의 꿈이다.

한편으로 정현 씨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며 일을 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한다. 
거기서 삶의 이유를 찾기도 한다.

사람들을 돕는 일을 사람들과 함께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돈도 버는 생활, 이제까지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정현 씨는 그 목표만을 향해 달려왔다.

그런데 최근 정현 씨는 어떻게 살까 하는 고민을 다시 시작했다. 
내년에 군대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는 정현 씨가 없어도 잘 운영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정현 씨는 자신의 삶을 다시 생각할 시점에 닿았다.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직원들이 바라는 대표로서의 역할, 사회에서 바라는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모두 고민하고 어떻게 살지에 대해 생각해볼 것이라고 한다.

자신이 행복한 일을 하면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나가세요

“어떤 형태건 간에 자기가 행복한 대로 사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남의 기준보다는 자기의 행복에 맞춰서 사는 것이 정현 씨가 지향하는 삶이다. 
청소년들에게도 그런 조언을 하고 싶다고 한다.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것과 자기가 행복한 것은 일치할 수도,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의 기준에 따른 삶,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을 좇는 게 더 중요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돈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상황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그러면 하고 싶은 일을 돈이 되게 만들 방법을 고민하는 게 옳다. 
아니면 하고 싶은 일과 돈 버는 일을 병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행복한 걸 우선으로 두고, 필요한 걸 충족시 켜 나가는 것이 바른 순서라고 생각한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6881&cur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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