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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분야

(대안학교) 실패를 경험했다고 계속 실패하는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다

엔젤리너스
정세진 엔젤리너스 점주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프렌차이즈 카페 <엔젤리너스>의 점주가 된 정세진씨는 대안학교 화랑고등학교의 졸업생이다. 
특유의 밝은 성격으로 선생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그녀는 선생님들을 보며 모교의 선생님을 꿈꾸기도 했고, 자신의 재능을 살려 요리사의 길을 걷기도 했다. 
그녀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좌절을 경험할 때마다 새로운 길을 찾아나섰고, 또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이 아닌 기회를 따라 삶을 개척해온 그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젊음이 무기다’라고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화랑고에서의 시절을 되돌아보면 떠오르는 것은 재미있는 기억뿐이죠

대전의 한 인문계고등학교에 다니던 세진씨는 한 학기를 다니고 전학을 가야했다.
담임선생님에게서 전학을 권유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대덕고에는 맞지 않는 학생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원불교 교인이신 어머니는 그녀에게 경주의 화랑고등학교를 추천하셨다. 
그렇게 그녀는 1학년 2학기부터 대안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대안학교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어요. 
저는 모험을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 좋았죠. 
기숙생활을 하다 보니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을 자주 만날 수 없어 조금 아쉬웠지만 그 외에는 특별히 힘들었던 것도 없었어요.”

그녀는 화랑고에 다니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기억만 떠오른다고 했다. 
수업에는 다소 소홀했지만 여행, 봉사 등의 활동을 즐기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그녀였다. 
그녀는 막내 특유의 애교 많은 성격으로 전학을 오기 전과는 달리 선생님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 중에서도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국희 선생님과의 인연은 특별했다.

“국희 선생님과 2학년 때 담임선생님 그리고 한미라는 친구와 넷이서 놀러가거나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그랬어요. 
국희 선생님께 진로 상담을 한 적은 없지만, 선생님과 지내며 자연스럽게 선생님을 꿈꾸게 되었어요. 
대안학교 교사가 되고 싶었죠.”

그 당시 그녀는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거나, 진로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화랑고에서 많은 경험을 하며 그녀는 망설이기보다는 우선 결정하고 행동한 다음, 생각처럼 되지 않을 때는 다른 일을 찾는 마음의 여유과 결단력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많은 경험을 하면서 분명히 실패도 했을 것이고, 좌절하기도 했을 거예요. 
그런데 지나고 보면 인생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죠. 
경험해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것이 더 많다는 것도요. 
실패를 한 번 경험했다고 계속 실패하는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니까요.”

모교의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한계에 부딪쳐 새로운 길을 찾았죠

“대안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은 사립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것과 과정이 비슷해요. 
임용고시는 보지 않아도 되지만, 교직이수는 해야 하죠.
선생님들은 ‘세진이 네가 들어온다고만 하면 누가 안 된다고 하겠냐’며 격려해주셨죠.”

자신의 모교인 화랑고의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세진씨는 영문과가 있는 4년제 대학에 들어갔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학생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될 자신이 있었다. 
대안학교 전형이 있었기에 입학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학교생활은 생각처럼 녹록치가 않았다. 
선생님이라는 꿈이 있어 시작한 공부이기에 교직이수를 해야 하는데, 그녀는 자신의 실력으로 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졸업할 자신도 없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았던 그녀는 결국 자퇴를 하고 전문대학의 조리학과에 진학했다.

“조리학과를 선택한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어요. 
어머니가 요리를 굉장히 잘 하셨는데, 보시기에 제가 요리에 소질이 있다고 하셨어요. 
실 영문과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도 어머니는 내심 제가 조리학과를 선택하기를 바라셨죠.”

지금처럼 인터쉽의 기회가 많지 않았던 시절, 그녀는 선배로부터 인턴쉽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되었다. 
미국의 코네티컷이라는 지역에 있는 카지노 호텔에서 1년을 보내는 조리과 연계 프로그램이었다. 
그녀는 졸업을 앞두고 12월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굉장히 큰 카지노 호텔이었어요. 
호텔 안에만 레스토랑이 열 개가 넘게 있었죠. 
브런치 까페도 있고, 뷔페도 있고, 프렌치, 이탈리언 등 세부적으로 나누어진 레스토랑이 많아서 한국 사람들이 가면 레스토랑을 돌아가며 근무를 했어요.
이곳에서 한 달, 다른 곳에서 한 달 이런 방식으로요.”

그녀는 미국에서의 생활이 힘들지 않았다. 
주 5일, 일 8시간 근무 조건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있을 때면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미국의 법에 따라 근무시간이 지나면 그 만큼의 돈을 더 주었고, 쉬는 시간도 있었다. 
2학년 방학 때 그녀가 경험했던 신라호텔에서의 일과 비교하여 환경이 너무나 달랐다.

“우리나라는 설거지, 청소, 양파 깎기 같은 허드렛일만 시켰어요. 
나마 저는 호텔이었기 때문에 조금 나은 편이었죠. 
설거지 같은 것은 그렇게 많이 안 했으니까요. 
미국에서는 실무적으로 요리를 바로 시키더라고요. 
1년 동안 좋은 경험이 되었어요.”

서울에서 요리사로 일하며 여러 직장에서 경험을 쌓았어요

한국으로 돌아온 세진씨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녀는 주로 양식을 요리했다. 
몇 번 직장을 옮기기는 했지만, 그녀는 서울에서 3~4년을 요리사로 살았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존경할만한 쉐프를 만나기도 했다.

“깨끗한 주방에서 정직하게 요리하는 분이었어요. 
그 분은 본인이 쉐프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마다 직접 걸레질을 하셨어요. 
일을 할 때 그 분의 마음가짐을 정말 좋아했었죠. 
지금의 일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있었던 주방에서는 조금 힘들었어요. 
전형적인 우리나라의 주방이었죠. 
소개받아서 갔던 곳이었는데 쉐프가 나쁘다기보다는 일하는 분위기가 너무 좋지 않았어요.”

그녀는 자신의 경력을 인정받지 못 한 상태에서 일을 했고, 쉐프와의 인연으로 일하고 있는 다른 요리사들은 그런 그녀에게 텃새를 부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녀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 그녀를 존중해주지 않았다. 
쉐프는 바쁠 때만 잠시 와서 거들뿐 거의 주방에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에 들어가 청소하고 감자만 깎았어요. 
스테이크 집이라 청소할 때 엄청 많은데, 깨끗하지가 않아 자꾸만 예전에 있었던 레스토랑과 비교하게 되는 거예요. 
주방에 정이 떨어지니까 이쪽 일에도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서울에서의 요리사 생활에 지친 그녀는 당분간 휴식을 취할 생각으로 부모님 곁으로 돌아갔다. 
그 때 그녀의 마음 한 쪽에는 작은 규모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요리사를 그만둘 생각이라기보다는 그녀는 나중에 레스토랑을 운영하게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커피를 배웠다. 
그렇게 <엔젤리너스>에 취직한 그녀는 사장님 밑에서 3년 정도 일을 했다.

“사장님이 저를 좋게 보셔서 많이 가르쳐주셨어요. 
전반적으로 본인 매장을 저한테 맡기시면서 일을 시키셨으니까요. 
어느 날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꿈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제 인건비 벌자고 레스토랑을 만들어서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느냐고요. 
보람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다고 하셨어요. 
대전에서 엔젤리너스만 네다섯 개를 운영하던 분이었고, 사업을 오랫동안 해온 분이 그런 말씀을 해주시는데, 생각해보니까 전부 맞는 이야기였어요.”

그녀는 때마침 퇴직을 하신 아버지에게 투자를 받아 대전 외곽에 <엔젤리너스> 매장을 새로 열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가 프렌차이즈 카페의 점주가 된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그녀는 여느 직원들처럼 커피도 내리고, 손님도 맞이하고, 전반적인 매장 관리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제 가게이다보니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죠. 
한편으로는 사업이라는 것이 뭔가 문제가 생기거나 했을 때, 제가 모든 걸 결정해야 된다는 부담감도 있죠.”

헛된 경험은 제게 아무 것도 없어요

“저는 항상 ‘뭐가 되어야지’, ‘어떤 일을 해야지’하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나중에 무언가 더 해야겠다’라고 생각해왔죠. 
기회가 생겼을 때 그 일을 이룰 여건가지 마련되면 주저 없이 기회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듯이, 지금의 가게도 제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때 제의를 받았어요. 
그 시기에 제게 가게를 운영하고자 하는 계획은 없었죠. 
부모님이 계시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이를 가진 지금도 너무나 행복하지만 제 앞으로의 인생 목표는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에요.”

세진씨는 지금껏 하고 싶은 일,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일은 반드시 해왔기 때문에 그동안의 인생에서 버려진 시간이 없다고 했다. 
‘과거의 내가 있기 때문에 현재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헛된 경험으로 여길 경험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하고자 하는 일에 도전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도전해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으니까요.
지금 당장은 상관없는 일처럼 여겨져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상관이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거에요. 
제 생각에는 젊음이 무기인 것 같아요. 
무슨 일이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경험을 해보세요.”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158&cur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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