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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분야

(미술) 이야기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


문승지 펫(pet)가구 디자이너

고양이를 위해 만들어준 놀이터에 사람이 앉는다? 
람이 앉는 소파에 고양이 놀이터를 만들었다? 
그 어느 쪽으로 이야기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런 조화를 이루는 ‘캣 터널 소파’는 대학생 몇몇이 모여 만든 졸업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해외 디자인 관련 사람들과 언론 매체를 놀라게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자신의 작품을 세계 기자들에게 알린 한 젊은이의 패기와 도전 정신이다.

화제가 되고 있는 또 하나의 작품 ‘포브라더스’는 스웨덴 회사 ‘H&M’의 ‘COS’와 공동 작업으로 만든 4개의 의자다. 
왜 브라더(형제)인가 하면 4개의 의자가 한 장의 합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의자 하나를 만들기 위해 버려지는 합판이 절반 이상인 것이 마음에 걸렸던 문승지 디자이너가 생각해낸 친환경 디자인이다.

해외 디자인 회사의 협업 제의, 해외 유명 브랜드 매장의 디스플레이 의뢰 등 점점 바빠지고 있는 문승지 디자이너는 디자인이 하고 싶어 4년제 대학을 포기하고 제주도에서 무작정 올라온 청년이었다. 
그에게는 이야기를 디자인하여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매력이 있었다.

디자이너가 돼서 제주도로 돌아오겠습니다

일가친척 대부분이 운동선수 출신이고, 학교나 동네에도 주변에 유독 운동 하는 사람이 많았던 문승지 디자이너는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운동선수의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복싱을 하다가 다쳐 수술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혈우병(혈액이 적절히 응고되지 않는 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작은 상처라도 생기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대학은 가고 싶은데 그간 주특기였던 운동을 포기했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다행히 그림 그리는 취미가 있었죠. 
그림뿐만 아니라 만들기도 좋아해서 중학교 2학년 때 ‘전국 학생 발명품 경진대회’에서 큰 상을 받기도 했어요. 
미술로 대학을 가기로 마음먹고, 남은 6개월 동안 입시 미술을 공부해서 제주대학교 조형디자인과에 들어갔어요.”

그의 부모님은 그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거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강요하기 보다는 그를 존중해주시는 편이었다. 
그런 부모님들도 그가 대학을 그만두고 디자인을 배우러 서울로 가겠다고 할 때는 반대를 하셨다. 
제주도에서는 제주대학을 졸업만 하면 평범한 삶이 보장되는데 그런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니 속상해 하셨던 것이었다.
결국 그는 독립선언을 하고 ‘디자이너가 돼서 제주도로 다시 내려오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서울로 올라왔다.

“제주도의 지역 특성상 디자인을 하기에는 열악한 환경입니다. 
디자인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전시회라도 보려면 섬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매사에 위축이 되었어요. 
‘서울에 가면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시각이 트이면 더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죠. 
지금도 제주도에 내려가 후배들을 만나면 방학 때마다 서울에 올라오라고 권하고 있어요. 
꼭 학교를 다니지 않더라도, 서울에 있으면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면 그런 자극을 못 느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제주도라는 섬에서 바다에 갇혀 살아봤기 때문에 서울의 모든 것이 눈에 쏙쏙 들어왔죠.”

해보면 정말 쉽다

문승지 디자이너는 100% 면접으로만 학생을 뽑는 계원예술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했다. 
꼭 합격하고 싶었기 때문에 특이하게 만들려고 노력했고, ‘이 학교에 오기 위해서 4년제 대학을 자퇴했다. 비행기 타고 왔다’를 강하게 어필한 그는 결국 합격했다.

그는 출석을 잘 하지 않아 학사경고를 받던 제주대학교 학생일 때와는 다르게, 계원예술대학교에서는 장학금을 받으면서 디자인의 기본적인 스킬을 배우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선배 한 분이 ‘교수님 디자인 말고 네 디자인을 하라’고 조언해주었죠. 
저 역시 그동안 교수님에게 검사 받기 위한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 작업을 하던 저를 발견 했어요.
그리고는 모든 과제를 미뤄둔 채 친구들과 함께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모아 전시를 몇 번 열었습니다.”

작은 갤러리를 빌리고 전시 포스터에서 홍보까지 다 스스로 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일주일 동안 작품을 전시했지만, 그의 전시회를 찾아온 사람은 채 열 명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일은 문승지 디자이너에게 자부심을 갖게 한 커다란 경험이 되었다. 
‘이렇게 하는 거구나,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를 몸으로 부딪치며 배우며 그는 점점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1학년 때, 친구들은 과제를 하느라 정신이 없을 즈음 문승지 디자이너는 공모전에 출품을 했다. 
여름방학이면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학교에서 일을 했다.
다행이 디자인할 수 있는 공작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그는 일을 하면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1학년 여름 방학 때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 수만 10개가 넘었다. 
비록 상 받은 건 두세개에 불과했지만 그에게는 자신감이 얻을 수 있는 경험이 되었다. 
2학년이 되어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공모전에 나가라고 하셨을 때 다른 친구들은 겁을 먹었지만, 문승지 디자이너는 이미 열 번 넘는 공모전에 출전한 경험이 있었기에 너무 쉬웠다.

“하고 안 하고의 차이일 뿐, 해보면 정말 쉽다는 것을 알게 되죠. 
아무것도 아닌데, 레이아웃 잡는 데 하루면 되는데, 미리 겁을 먹고 고민만 하면서 한두 달 미루다 보면 결국 못하게 됩니다. 
이미 공모전과 전시회를 여러 번 치러본터라 졸업 작품 준비도 어렵지 않았어요. 
졸업 작품을 할 당시 동물 학대 이야기, 유기견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어요.
사람들이 ‘개 팔자가 상팔자’라고 생각하면 인식이 좀 바뀌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동물을 버려? 고양이를 위해 놀이터를 만들어주고 그것을 사람이 같이 쓰는 시대야’라는 메시지가 사람들의 인식을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동물과 함께 사는 현실에서 강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면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캣 터널 소파’다. 
세 명이서 학교에 천막을 쳐놓고 석 달 동안 거기서 생활하면서 만든 결과 졸업 전시회에서 1등을 했다. 
학교는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의 디자인이 어떠한지 점검하는 곳이지 어떤 디자이너가 될 것인지를 가르쳐주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4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게 느껴졌다.

“빨리 배우고, 빨리 사회에 나가 부딪치면서 배우는 게 오히려 낫다고 생각합니다. 
4년제 대학을 포기한 걸 아쉬워한 적이 없어요. 
디자인은 하면서 배우는 것 같아요.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날 때 마다 꼭 배우는 게 있더라고요.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는 거죠.”

기사 밑에 기자의 메일 주소가 있는 이유

군대를 면제 받고 2년제 대학을 나온 문승지 디자이너는 다른 사람에 비해 사회 진출이 빨랐다.
22세에 취직을 해서 보니 동기가 서른 살이었다. 
‘취직은 서른 살에 해도 되겠구나. 20대엔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마음에 입사 3개월 만에 직장을 그만두고 나왔다. 
그리고 월세 보증금을 빼서 사무실을 얻고 친한 형과 함께 회사를 차렸다.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1년 동안 일이 하나도 없었어요. 
사업자등록만 해놓은 거죠. 
그때 외국에 있는 수많은 잡지사, 언론사에 메일로 제 작품에 대한 소개 글을 메일로 보내 봤어요. 
혹시나 내 작품을 봐주지 않을까 해서 기사 하단에 있는 기자의 이메일 주소로 수백 통의 메일을 보낸 거죠. 
‘나는 한국에서 작업하는 몇 살, 누구인데 당신네 잡지를 좋아해서 재밌게 보고 있다. 내 작품을 한번 실을 수 있는 영광을 달라’고 했더니 한두 군데에서 실어 주더라고요. 
그러다 한 달 후에 영국 일간지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리고 또 한 달 후에 미국 NBC 방송국을 비롯해서 수많은 언론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모든 기사 끝에는 있는 기자의 연락처로 메일을 보낸 것이 좋은 전략이 되었다. 
반신반의하게 시작한 일이 정말 비즈니스가 된 것이다. 
그는 그때 학벌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냥 시도해보면 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 때 그는 해외에 이름을 알리려면 영어를 잘하거나, 좋은 학교를 나오거나, 유학을 다녀와야 하지 않을까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그 고민의 정답을 얻은 것이다. 
외국 기업들과 공동 작업을 할 때 그 누구도 그에게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디자이너는 작업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어떤 작업을 하느냐, 앞으로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문승지 디자이너는 말한다.

“작업을 하다 보니까 의자 하나 만드는 데 버려지는 나무가 절반 이상이었어요.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죠. 
이 합판 하나를 버리는 것 없이 다 사용하여 의자를 만들면 환경에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만든 ‘포브라더스’가 운이 좋게도 스웨덴 회사 ‘COS’의 러브콜을 받아 전 세계 50여 개 매장에 진열되었어요.”

제품을 직접 생산 해보면 하나의 상품을 만들기 위해 버려지는 쓰레기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이처럼 그 시기의 사회적 이슈에서 영감을 받아 스토리텔링이 시작된다. 
문승지 디자이너는 자신이 이런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문제 해결에 일조할 수는 있을 거라 생각했다.

디자이너로서의 사명감과 자부심

“하고 싶은 것은 해야 되는 것 같아요.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누군가가 시키는 일만 하다가, 또는 남의 꿈만 이루어주다가 인생을 마무리 한다면 얼마나 서러운 일입니까. 
사람들이 선택을 잘 못하는 이유는 눈치를 보기 때문이에요. 
부모님, 회사 상사, 이 사회의 고정관념……. 
디자인이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라면 한 번쯤 틀을 깨보는 것은 어떨까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젊을 때 도전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문승지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디자이너는 겸손해야 해요.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환상에 젖어 디자이너를 선택하면 안 돼요. 
실상은 반지하에서 컵라면 먹으면서 시장에서 장보고, 나물 값 깎고, 공장에서 아저씨들이랑 싸워야 해요. 
그런 일도 다 할 수 있어야 하는 직업이 디자이너예요. 
대신 반지하에 살면서도 연예인이나 유명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죠. 
잡지 기사에 종종 등장하는 겉모습이 화려한 디자이너 분들도 차고에서 시작했을 거예요. 
저도 지하 작업실에서 컵라면 먹으면서 작업해요. 
하지만 지금이 순간이 정말 행복해요.”

그는 몸은 힘들지만 지금 하고 있는 행동들이 결국 다 부메랑처럼 자기에게 돌아올 거라고 기대한다며, 계속 발전하고 개발하고 있는 중이니까 빚이 생겨도 재미있다고 말한다. 
‘24살에 넌 사업하다 빚 져본 적있냐?’고, 문승지 디자이너는 오히려 자랑스럽다고 웃으며 말했다.

“지금 하는 일을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 죽을 때까지 계속하면서 사회를 위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게 제 바람입니다. 
일본이나 유럽은 연예인뿐만 아니라 디자이너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커요. 
디자이너를 지망하는 학생들이라면 그런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236&cur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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