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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분야

(과학) 남아 있는 단서로 범인을 추리하라

경찰청
정연대 과학수사센터 범죄행동분석팀 분석관

“보통 사람들은 ‘토막 사체’라고 하면 그 끔찍함에 초점을 맞추죠. 
하지만 프로파일러는 사체를 ‘잘랐다’는 사실 역시 다른 범죄행동의 연장선상에서 고려합니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에서 만난 프로파일러 정연대 분석관(37). 
범죄의 패턴과 수집된 단서 등을 조합해 범인을 추리해내는 게 그의 일이다.

사체를 자르는 건 생각보다 힘들고 번거로운 작업이다. 
그리고 아무나 아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사람의 신체를 분리할 수 있는 완력이 있어야 하고, 독립된 시체처리 장소가 필요하며, 시신 훼손에 필요한 시간도 확보해야 하며, 토막 낸 시신을 옮겨서 유기할 장소와 운반 수단도 있어야 한다.

정 분석관은 “‘사람인데 차마 이 정도까지는 안 하겠지’와 같은 가치판단을 수사 과정에 개입시키면 수사가 어려워진다”며 “백지 상태에서증거를 통해 사건을 재구성해내는 게 프로파일러의 임무”라고 말했다.

진짜 범죄학자 되고 싶어서 선택한 프로파일러

정 분석관은 7년차 프로파일러다. 
대학에서 사회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원에 진학한 뒤에는 범죄학을 공부했다. 
범죄현상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고 싶었던 그가 프로파일러의 길을 선택한 계기는 석사 논문을 준비하면서 찾아온 회의감 때문이었다.

“제가 연구하고 싶은 것은 교과서 속에만 있는 범죄가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회현상으로서 진짜 범죄였어요. 
학교에서 공부를 통해 배운 것이 정말 맞는지 검증해보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학교에서는 실질적인 데이터에 접근할 방법이 없으니 연구를 통한 논의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죠.”

석사과정을 졸업하던 시기와 맞물려 그는 경찰청에서 사회학과 심리학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경장급 프로파일러를 특별 채용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제가 평생을 연구할 주제가 범죄라고 한다면 실제 경찰생활을 통해서 경험을 쌓고 이를 바탕으로 좀더 풍성할 연구를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죠.”

그가 지원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렸을 때 대학원 연구실에서는 놀라는 사람이 많았다. 
공부를 계속해서 학자의 길을 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갑자기 경찰이 됐고, 그것도 경찰 간부가 아닌 비교적 낮은 계급인 경장이라는 직급 때문이었다.

“계속 공부를 한다면 교수나 연구원이 될 수도 있는데, 여태까지 공부한 것이 아깝지 않느냐 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경장이라는 계급이 경찰 내에서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고…”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을 믿었고, 지금도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사실 프로파일링이라는 업무가 경찰에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범죄행동 분석 업무라는 것이 조직 내에서는 특수한 일이기도 하고, 오해도 많이 받아요.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아주 멋들어지게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화려하지도 않죠. 
그래도 진짜 범죄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것을 통해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은 제가 학교에 있었으면 절대 해보지 못했을 것들이죠. 
그냥 책에서 범죄를 접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경험이에요.”

프로파일러가 된다는 것

우리나라에 ‘1기 프로파일러’로 부를 수 있는 프로파일러들이 등장한 시기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매년 1기수씩 채용해 현재는 3기까지 활동 중이다. 
정 분석관은 3기다. 
한국의 프로파일러는 아직 그 수가 많지 않다. 
전국 지방경찰청 17 곳에 1~2명씩 배치돼 활동하고 있다.

프로파일러 중에는 사회학이나 심리학 전공자가 많다. 
정 분석관은 “프로파일링은 범죄를 포함한 인간행동에 관한 학문”이라며 “사람의 행동은 그 사람의 성격, 지식, 신체조건, 타인과의 상호작용, 행동이 이뤄지는 환경 등 수많은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사회학과 심리학은 이런 범죄자의 행동을 설명하는데 각각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심리학은 이상심리에 기반한 범죄현상을 설명하는데 강하다. 
어떤 사람들은 특정행동에 대한 비합리적 충동이나 습관적 행동을 현장에 남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시그니처 행동’이라고 한다. 
이런 행동이 나타나는 심리적 기제에 관해서는 심리학적 원인분석을 통해 범죄자의 특성이나 유형을 추정할 수 있다.

반면 사회학은 범죄를 사회현상으로 보고 범죄환경이나 범죄자가 속한 문화권 내에서 범죄행동을 설명하는데 강점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범죄의 공간적 분포를 통해서 범죄자의 거주지를 추정한다거나 범죄유발 환경을 분석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하지만 정 분석관은 실제 범죄현장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던 범죄에 관한 지식을 수정하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현장에 ‘오버킬(피해자에게 사망에 필요한 수준 이상의 폭력이 가해지는 것)’이 나타나면 보통은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얼마나 미웠으면 저렇게까지 난도질을 했겠나’ 하는거죠. 하지만 범죄 상황이라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극도의 흥분상태입니다. 
실제 현장에서 50번을 넘게 찌른 살인범에게 ‘몇 번 찔렀는지 기억하느냐’고 물어보면 ‘서너 번 아니냐’는 조심스런 반문이 돌아오기도 합니다. 
극도로 긴장한 상태에서는 본인이 기억도 못할 충동적인 행동이 튀어나오기도 하는 거죠. 
단순히 가격 횟수나 신체부위를 가지고 그 사람의 성격이나 동기 등을 설명하는 것은 오류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파일러는 현장을 분석하기 위해 현장에 나타난 범인의 행동을 면밀히 검토하고, 수사를 통해 확인된 사항, 기존의 범죄 관련 연구결과나 유사사건 등을 함께 고려해서 현장을 판단해야 한다.

“사람들은 프로파일러를 ‘점쟁이’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척 보면 척’ 하는 식으로 범인의 프로필을 알아낸다고 말이죠.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단서와 증거들을 토대로 경우의 수를 줄여 나가는 ‘소거법’을 자주 사용합니다. 
일반 범죄인지 이상범죄인지, 면식범에 의한 소행인지 비면식범에 의한 소행인지, 단서들을 모아 하나씩 좁혀나가는 거죠.”

범죄자와 범죄 상황 이해하기

그에 따르면 완전범죄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살인과 같은 강력 사건에서 긴장상태인 범인은 사고와 직관력이 줄어들고 습관이 노출되면서 의도하지 않은 단서를 흘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프로파일러에게 용의자의 표정이나 행동도 중요한 단서다. 
평상시에는 쉽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데도 긴장해서 말이 꼬이거나, 입으로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표정에는 드러나는 등 감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진술내용뿐 아니라 진술 당시의 행동도 주목하면 단서를 얻을 수 있다.

범죄현장행동을 분석할 때는 소거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노상에서 일어난 살인의 경우 면식범의 소행일수도 있고, 비면식범의 소행일수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평소와는 전혀 다른 길로 귀가하는 도중에 범행을 당했다면 계획적 범죄의 가능성은 떨어진다. 
이런 식으로 가능성을 반박하는 증거들이 겹치게 되면 면식 계획범의 시나리오는 소거된다. 
반대로 피해자가 평소 귀가시간대에 집 앞에서 공격을 받았거나 강제침입 흔적이 없고 피해자가 문을 열어서 범인이 침입한 경우 면식범의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 식이다.

“범인과 피해자가 서로 아는 사이인지, 범인이 원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만나서 어떤 공격을 했고, 사체는 어떻게 처리했는지 단서를 쫓으며 하나씩 가능성을 지워나가다 보면 용의자 범위를 좁혀나갈 수 있습니다. 
프로파일러는 이렇게 범인의 ‘프로필’을 채워갑니다.”

프로파일러의 ‘직업병’

항상 살인, 강간 같은 강력사건을 분석하고 종종 끔찍한 살인사건 현장의 시체도 봐야하는 프로파일러로서 힘든 점은 없을까.

“사실 이 일을 시작할 때는 사건현장에서 시체를 본다는 것에 대해 크게 무섭다거나 하는 건 없었어요. 
오히려 일이 익숙해지고 여러 현장을 보면서 어느 순간엔가 피해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군요. 
기가 살해돼서 토막이 난 현장이나 학교 갔다 온 딸이 살해된 엄마를 발견해서 경찰에 신고한 사건 등 마음 아픈 현장에 나가면서 수사관이 아니라 피해자나 유가족의 입장에서 현장을 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점점 현장을 나가기가 겁이 나더군요. 
무서워서가 아니라 가슴이 너무 아플까봐서요.”

프로파일러로서 범죄자를 분석한다는 것은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은 범죄행동을 상상해야 하고 가능한 범죄의 의도와 범죄은폐의 노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정분석관은 가끔 악몽을 꾼다고 한다.

“늘 그런 건 아닌데 가끔 컨디션이 안 좋을 때 꾸는 꿈이 있어요. 
누군가를 죽이고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꿈이에요. 
내가 누구를 죽였는지, 왜 죽였는지는 모르고 조마조마 하는 시점부터 꿈이 시작되고 끙끙거리다 일어나요. 
반면에 귀신 꿈은 거의 꾸지 않으니 고인이 된 피해자들이 저를 미워하는 건 아닌가 봐요.(웃음)”

‘수사=일’인 프로파일러도 범죄수사 드라마를 즐겨 볼까. 
그는 “웰메이드 드라마는 언제나 환영”이라면서도 “현장에 나타난 물리적·행동적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 이를 통해 범인을 추론하는 과정이 현실과 다르면 그 부분은 이입해서 보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범죄연구를 통해 범죄예방에 이르기까지

정분석관은 현재 경찰청 지리적 프로파일링 시스템 담당자로서 시스템의 개발과 운영도 맡고 있다.

“경찰이 가지고 있는 수사데이터를 활용해서 이를 전자지도상에서 구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범죄위험지역을 파악해서 범죄를 예방하고 연쇄범죄자의 거주지를 예측하여 수사대상자를 선별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에요”

지리적 프로파일링 시스템은 범죄자의 이동에 대한 프로파일러의 연구를 바탕으로 자체 개발된 알고리즘을 토대로 연쇄범죄자의 거주지를 추정한다. 
또한 지리적 프로파일링 시스템은 경찰이 보유한 수사기록, 인구구성, 기상정보, 유흥업소 수, 경찰관서와의 거리 등 다양한 범죄유관변인을 바탕으로 범죄발생 위험을 예측해 주기도 한다.

“범죄에 대한 공간분석 분야는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야 하는 분야에요. 
사회적으로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에는 더욱 그렇고, 빅데이터를 활용한 과학적 치안행정을 구현하기 위해서도 없어서는 안 될 기술이고 자료에요.”

정 분석관은 “오늘날 정말 필요한 건 범죄에 대한 환상을 깨고 범죄를 감소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로파일러가 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그가 프로파일러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여러 단서들을 토대로 특정한 용의자의 프로필이 검거된 범인과 딱 맞아떨어질 때는 정말 기분 좋죠. 
하지만 더 큰 보람은 수사가 난항에 부딪쳐 더 이상 돌파구가 없다고 생각한 형사들이 저희들의 분석결과를 받아들여 다시 의욕적으로 수사를 할 때입니다.”

프로파일러 역할을 하는 분석관이든 형사든 모두 한 마음으로 범인을 쫓는 동료이기 때문에 항상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범죄는 일반적인 상식이 통용되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프로파일러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연쇄살인이나 묻지마 범죄 같은 이상범죄의 경우 나와 내 주변 사람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소행이기 때문에 본인이 가진 사고체계에 갇혀 있어서도 안 된다.

“범인의 프로필을 제대로 추정하기 위해서는 교과서 밖 지식에 밝아야 해요. 
설사 ‘쓰레기 지식’이라도 상관없어요. 
우리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 사고와 판단을 추측하고 추리해야 한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둬야 합니다.”

아직 경찰 수사에서 심리학ㆍ사회학 전공의 프로파일러가 소수이고 업무적으로도 특수한 역할을 하다 보니 관련 전공자의 활동이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지만 정 분석관은 미래를 낙관한다.

“범죄자의 심리나 행동, 범죄현상에 관심이 많은 심리학·사회학 전공자라면 프로파일러에 도전해 보세요. 
또 앞으로는 프로파일러 외에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상담 등 심리학과 전공자들이 경찰 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분야가 점점 넓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범죄발생 현황 분석 및 효과적인 범죄예방 대책 등 범죄를 사회현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사회학에 대한 수요도 더 늘어날 것입니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115&cur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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