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사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단 정치외교학과에 간 다음 사학을 동시에 공부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하지만 정치외교라는 분야가 나라의 정책에 따라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하는 공무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러한 현실에 회의감이 들어서 결국엔 경영학과를 선택했어요.
경영학을 공부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글로벌 경영학과가 새로 생기면 새로운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처음 1년 동안에 그녀는 사학과에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사회에 나와 일을 하면서 경영학이 일상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때서야 대학에서 경영학 공부한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대학에서의 전공이 그대로 진로로 연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무엇을 전공했는지는 별로 상관이 없어요.
너무 전공에 구속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수능 점수로 갈 수 있는 최상의 학교를 선택한 후, 배우고 싶은 것이 있을 때는 복수전공 제도를 활용하면 되거든요.”
아프리카와의 인연이 시작되다
2009년 여름, 대학교 한 동아리에서 아프리카 부룬디로 단기 선교를 간다고 했다.
아프리카에 가고 싶었던 안지혜 대표는 그 동아리에 가입했고 함께 아프리카로 떠났다.
아프리카에 가면 자신이 원주민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뭔가 큰일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말도 안 통하는 아이들이 길을 가르쳐주고 자기네 먹을 것도 넉넉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현지 아이들을 보면서 빚을 지고 간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고민하던 끝에 배움의 기회가 적은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기 위해 동화책을 토착언어인 키룬디어로 번역해 보급하는 비영리단체 ‘북스 포 부룬디’를 만들었어요.
부룬디 아이들에게 손 씻는 법이나 오수의 위험성에 대한 책을 만들어서 보내주기도 했고요.
그렇게 아프리카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어요.”
조금만 투자하고 보살펴주고 지켜봐주면
‘에트리카’는 아프리카 민족의 감성이 녹아 있는 착한 패션을 추구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의 진정한 성장을 바란다는 의미에서 만들어낸 이름이다.
NGO를 거쳐 소셜벤처기업을 창업한 안지혜 대표는 기본적으로 ‘에스닉(Ethnic, 민족적이고 토속적인 양식)’을 좋아해서 흥미가 있었노라고 말한다.
“의류산업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라 개발도상국이 발전하는 기반이 되기도 하죠.
그런데 아프리카 현지 패션시장은 죽어 있어요.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후원해준 값싼 중고 의류가 시장에 넘쳐나기 때문에 비싼 돈 주고 자국에서 만든 새 옷을 사지 않게 되었죠.
그러면서 현지의 의류시장 규모가 40퍼센트나 줄었어요.
면화 농사는 활발하지만 완제품은 고사하고 원단을 만드는 공장조차 없어 면화 대부분을 수출할 수밖에 없죠.
그 대신 중국에서 만든 원단을 비싼 가격에 다시 수입하는게 현실이에요.
누군가가 조금 투자하고, 보살펴주고, 지켜봐주면 패션 생태계에서 끊겨진 고리를 찾아 연결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녀는 아프리카 원화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아름다움과 그 사람들이 가진 잠재력에 주목했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예비 디자이너를 4명 선발해서 2년간 디자인 교육을 시킬 계획으로, 올해 처음 현지에서 오디션을 통해 예비 디자이너들을 뽑았다.
2009년, 대학생 때부터 현지에서 비영리단체 일을 해왔던 그녀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현지에서 오디션을 진행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실력보다는 자세와 태도를 위주로 선발한 이들이 2년간 성실하게 교육을 마치면 에트리카의 정식 디자이너로 고용할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의류 생산의 전 과정을 아프리카에서 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아프리카의 패션산업을 부활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상품 자체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고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아프리카에서 온 원단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시장의 반응이 나쁘지 않아요.
아쉬운 점은, 제가 역량이 부족해서 판로를 충분히 개척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죠.”
그녀는 매일 여기저기 전화해서 상품 소개, 브랜드 소개를 하며 판로를 개척하고 있는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사회적 사업가 육성사업에서 선정되고 성균관대학교 사업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서울여대에서 은상을 받았지만 그녀는 그것은 그다지 큰 자랑거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시장에서 인정받았을 때 비로소 제대로 자랑하고 싶다는 게 그녀의 포부다.
진로의 폭을 넓게 가지세요
어릴 때부터 한 분야에 특출한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은 그 분야의 재능을 개발할 필요가 있지만, 아직 그런 분야를 찾지 못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여러 분야에서 골고루 평균 이상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 안지혜 대표의 생각이다. 그래야 진정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어차피 직업 하나로 평생을 살아가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저는 성격상 기쁠 때 많이 기뻐하고 슬플 때 많이 슬퍼해요.
어쩌면 창업은 제 적성에 안 맞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성격은 바꿔나갈 수 있고 싫어도 바뀌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재미없던 일에서 칭찬을 들으면 갑자기 그 일이 재미있어지기도 하고, 재미있던 일도 번번이 실수를 하면서 꾸중을 들으면 재미없어지기도 하잖아요.
그러니 중·고등학교 때 진로의 폭을 넓게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그녀의 부모님들은 그녀가 아프리카를 다니며 창업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외국어고등학교를 가겠다고 했을 때도 집안 형편이 어려워 걱정하셨지만 저소득층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으며 다니는 선택을 했고 아프리카에 갈 때도, 취업을 하지 않고 창업을 할 때도 내심 걱정을 하셨지만 그녀의 선택을 막지는 않으셨다.
“중·고등학생들 중에 ‘나는 나중에 창업을 할 거니까 굳지 좋은 대학에 안 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창업도 마찬가지로, 중간 이상의 수준은 맞춰 놓고 무언가 시작하겠다고 해야 부모님도 믿어주시지 않을까요?
작은 것도 못해내는데 큰 것을 하겠다고 하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거예요.
뭐든지 배워 놓으면 살면서 요긴하게 사용할 기회가 있어요.
그래서 부모님들도 자식들에게 기본 정도는 해주고 싶어 하시는 것이고요.”
결핍이 주는 기회
안지혜 대표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에너지를 재충전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만나 함께 놀면서 시간을 보낸다.
“누구나 결핍이 있어요.
남들만큼 부모한테 못 받았다고 하는 결핍, 성적이나 자존감에서 오는 결핍,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결핍…….
하지만 저는 결핍이 기회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외국어고등학교를 다닐 때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웠기 때문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어요.
집이 가난하다는, 제가 가진 결핍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처럼 결핍이 주는 기회들이 지금도 있어요.
결핍이 있기에 나만 공감할 수 있는 것들, 나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보세요.
나에게 지금 존재하는 이 결핍을 어떻게 기회로 만들지 생각하다 보면 직업도 그 생각 속에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결핍은 앞을 가로막는 장애가 아니라 한 걸음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안지혜 대표는 긍정적인 신념을 가지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