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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분야

(과학) 스포츠는 물리다

한국체육대학교
김혜영 교수

올림픽공원 동남쪽에 위치한 한국체육대학교는 여느 대학과 풍경이 사뭇 달랐다. 
정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널찍한 잔디 구장, 그 주위를 둘러싼 육상 트랙과 각종 운동 기구가 눈에 들어왔다. 
햇볕이 따가운 여름이었지만, 땀을 흘리며 운동하는 학생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교정을 지나는 동안 옆을 스쳐지나가는 학생들 모두 몸이 건장하고 단단했다.

그 곳에서 물리학자 김혜영 교수를 만났다. 
땀을 뻘뻘 흘리며 몸을 써서 운동하는 체육인들 사이에 물리학자라니 어딘가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물리학자가 체육대학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김 교수는 “물리학은 어느 분야에나 적용이 가능한 학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내에는 많지 않은 스포츠물리학 전문가다. 
스포츠물리학이란 응용물리학의 한 분야로 김 교수는 물리학 원리를 이용해 선수들이 어떻게 해야 효율적인 동작으로 경기력을 높일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 
경기력을 향상시키려면 훈련강도를 높여야 하기 때문에 자연히 부상의 정도와 빈도도 늘어난다. 
결국 부상을 예방하면서 경기력을 높일 수 있는 물리학적 요인이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한국체대에는 국가대표 선수도 있고 코치 선생님들도 있습니다. 
분들은 어떻게 몸을 움직여야 효율적인지 경험으로 잘 알고 있지요. 
지만 왜 그 동작이 효율적인 궁금해 합니다. 
제가 하는 게 바로 선수와 코치 선생님들과 함께 그 이유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동작을 정밀하게 분석해서 가장 효율적인 동작을 찾아 훈련에 반영한다면 경기력을 좀 더 높일 수 있습니다.”

동작분석 방법은 영화 촬영에서 많이 쓰는 모션캡처와 비슷하다. 
3차원으로 촬영한 영상을 가지고 위치와 속도, 운동학적 자료를 추출해서 세계적인 선수들의 데이터와 비교한다. 
주로 스포츠 현장 전문가와 함께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촬영해서 서로 비교하고 통계를 만들어 분석한다.
김 교수가 연구하는 종목은 육상, 체조, 양궁, 역도 등으로 다양하다.

요즘에는 2018년에 열릴 평창동계올림픽이 큰 관심사다. 
국내 스포츠물리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아이스하키협회 부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김 교수는 스키와 아이스하키처럼 우리나라가 아직 동계올림픽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종목을 연구할 계획이다. 
국내 업체와 협력해 넓은 공간에서 활강하는 스키 선수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센서도 개발하고 있다. 
꾸준한 연구를 통해 모은 결과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서 분석한다면 엘리트 선수에게 맞춤형 훈련법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생활체육에도 도움이 된다.

“앞으로 3년 동안은 평창에 초점을 맞춰 연구 성과를 내고, 그 뒤 2년은 그것을 바탕으로 연구를 좀 더 확장해나가는 3+2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스포츠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스포츠 산업도 부흥하기를 바라고 있지요. 
국제올림픽위원회인 IOC에서도 유럽과 북미로 제한된 동계스포츠 시장을 아시아로 확대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빨리 스포츠 장비를 개발해서 중국 시장을 잡아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스포츠과학은 물론 스포츠산업까지 발달한 스포츠 선진국이 되는 게 김 교수의 꿈이다.

‘추상’보다는 ‘실용’을 선호

어린 시절에 대해 질문을 던지자 처음에는 다소 심심한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굉장히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물어보자 앞으로 스포츠물리학자가 될 학생의 모습을 그릴 수 있는 대답이 나왔다.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는데, 친구를 좋아해서 친구가 굉장히 많았어요. 
스포츠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지요.
가장 좋아하는 건 테니스예요. 
어린 시절 테니스 가방을 질질 끌고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면서도 테니스 코트를 찾아갔던 기억이 나네요. 
학교 다닐 때도 체육 수업을 좋아했고, 교내 야구나 배구 시합이 있으면 선수로 출전했어요. 
운동을 너무 많이 하면 공부에 방해가 될까봐 조금 자제하기도 했었죠.”

운동 외에도 관심사는 다양했다.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으로 항상 만점을 맞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신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이 재미있어서 탐정소설에 빠져 지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주택설계에 관심이 생겨 건축가를 지망했지만, 공대는 남녀차별이 심한 분야라는 선친의 걱정 때문에 자연대로 진학했다. 
대학교는 과가 아닌 학부로 입학했다. 
대학 생활은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보냈다.

“어머니께서 대학은 노는 데라고 알려주신 거예요. 
또 제가 집안의 첫째로 아무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1학년 때는 정말로 미팅도 많이 하면서 엄청 놀았어요. 
2학년 때는 동아리 활동을 많이 했고, 3학년 때는 학생회 활동까지 했지요.”

이런 대학 시절은 스포츠물리학자로 일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다양한 경험과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 덕분에 선수, 코치, 공학자 등 다양한 사람과 협력해 가며 매끄럽게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학교 3학년이 되면서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오자 김 교수는 고민 끝에 물리학을 골랐다. 
원래는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수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은 기대와 달리 추상적이어서 당황스러웠다. 
오히려 수학을 활용하는 물리학에 더 흥미가 일었다.

“미적분학이 실제로는 어떻게 쓰이는지와 같은 실용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물리학은 수학을 가지고 실용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분야였기 때문에 물리학과에 진학하기로 결정했지요. 
그 뒤로 공부할수록 물리가 어려워져서 잠시 혼란스러워하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실질적인 연구로 눈을 돌렸어요.”

뜻하지 않게 들어선 스포츠과학의 길

대학원에서는 고체물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반도체와 관련된 연구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장차 스포츠물리학을 연구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석사학위를 받은 뒤 취업한 곳이 한국체대 체육과학연구소였다. 
당시 한국체대 학장이 스포츠는 과학이며, 무엇보다 물리학과 같은 기초과학이 운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해 물리학 전공자를 연구원으로 뽑았던 것이다.

“연구실에서 일을 하다 보니 스포츠에 물리적인 요인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연구와 함께 대학에서도 일반물리학을 강의하게 되었는데, 스포츠를 예로 들면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더라고요. 
강의를 하면서 제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좀 더 공부를 하고 싶었기에 박사과정에 진학했지요.”

그게 본격적으로 스포츠물리학을 연구하게 된 계기였다. 
대학원에 진학한 뒤 가장 먼저 연구한 종목이 역도였다. 
역도선수 학생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했는데, 역기를 들어 올릴 때 선수들이 발휘하는 힘을 압력판과 영상을 이용해서 직간접으로 측정하여 두 값을 비교하는 연구를 하였다. 
그때는 학생들도 이런 실험 경험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대단히 흥미로워했다.

김 교수는 역기를 들어 올릴 때 세계적인 선수와 연구에 참여한 학생들의 차이를 알아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리듬을 타며 두 번에 걸쳐서 역기를 순간적으로 끌어 올리는 반면, 학생들은 단 한 번에 낚아챘던 것이다. 
그 연구 결과 덕분에 코치도 고민하고 있었던 문제를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고 훈련에 적극 반영할 수 있었다.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는 다시 한국체대에 교수로 부임해 여러 종목을 대상으로 선수들의 동작분석 연구를 계속했다. 
김 교수는 기억에 남는 사례로 체조와 양궁을 들었다. 
체조의 2단 평행봉 종목에는 ‘힘 물구나무 서기’ 동작이 있다. 
굉장히 단순한 동작이지만, 분석해 본 결과 잘 하는 선수와 못 하는 선수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잘 하는 선수의 신체 무게중심은 깔끔하게 올라가는 반면, 못 하는 선수는 무게중심은 미묘하게 진동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묘한 차이였다. 
양궁도 비슷하다. 
활을 들어 올릴 때 동작이 일관적이고 무게중심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활을 놓는 타이밍이 일관적인지 활을 들었다 내리는 동작이 일관적인지를 계속 비교해서 훈련에 반영했다.

그는 국내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연구를 많이 했다. 
양궁 올림픽 메달리스트 임동현 선수, 허들에서 유일하게 올림픽에 출전한 박태경 선수, 높이뛰기의 이진택 선수 등이다. 
특히 육상은 동양인에게 불리한 종목이다. 
그러나 중국의 류시앙 선수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110m 허들 금메달을 따면서 훈련법을 개선하면 동양인도 가능하다는 기대가 생겼다.

“물론 원인을 파악한다고 해도 기록 향상이 쉽게 이뤄지지는 않습니다. 
경기력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아주 다양하거든요. 
훌륭한 코치와 스태프, 재능이 있는 선수, 그리고 뼈를 깎는 노력이 갖춰진 뒤에 스포츠과학으로 경기력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고 보는 거지요.”

“여성도 꼭 직업을 가져야 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김 교수에게 힘든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사실 김교수는 석사 학위를 받고 바로 결혼해 한동안 집에서 살림을 꾸렸다.

“직업 없이 결혼하다 보니 남편은 출근하는데 저는 집에 있잖아요. 
때 제 자신이 도태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물론 친구들도 직장에 다니며 소속이 있었지요. 
그래서 어디든 취업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사회분위기 상 물리를 전공한 여성이 취업할 곳은 별로 없었다. 
김 교수는 여러 번 좌절을 겪어야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체대에 연구소 연구원으로 취업이 된 뒤에는 여성 직업인으로서 일과 가정을 양립해야 한다는 위기가 찾아왔다.

“전 아이를 낳은 뒤에 박사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막 사회 경험을 시작한 뒤에 출산을 했고, 강의를 하면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껴서 시작했지요. 
석사 마치고 4년 반 만에 박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게다가 강의도 해야 했고, 아이도 길러야 했어요. 
그럼에도 스스로 하고 싶은 일과 공부를 하다 보니 공부는 정말 재미있게 했습니다.”

박사 과정은 김 교수가 인생에서 공부를 가장 열심히 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육아 때문에 애를 먹었고,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간신히 시간제 보모도 쓰고, 친정과 시댁의 도움을 받기도 하며 박사 과정을 마쳤다. 
그 때문에 박사 학위를 받는 데도 남들보다 오래 걸렸다.

김 교수가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데는 두 명의 영향이 가장 컸다. 
분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진로에 대해 의견 차이는 있을지언정 여자도 직업을 가져야 한다며 항상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었다. 
학창 시절에도 풍부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여행을 많이 보내주었고, 학위 공부를 할 때도 가장 힘이 되어 주었다.

또 한 분은 중학교 때 만난 가정선생님이었다. 
당시는 70년대로 사회가 보수적이었던 시기였으나, 그 분은 여학생들에게 무슨 일이든 꼭 직업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여성 대부분이 직업을 가지려고 하지만 스스로 포기하고 만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저에게 각인이 된 것 같습니다. 
힘들 때면 그 말이 생각났죠. 
누가 그만 두라고 말한 것도 아닌데 그만둔다는 건 스스로 포기하는 거니까요. 
목표가 있다면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쉬었다가 다시 시작해도 좋습니다.”

그는 요즘에는 전과 달리 2002년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고 이에 따른 정책과 예산 지원과 같은 사회적 시스템이 잘 갖춰진 편이므로 이공계 여성이라도 경력단절과 같은 공백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경험에 길이 있다

김 교수는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성과학자로서 여성과학인을 위해 봉사하는 게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포츠와 물리학의 경계에서 도울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있다. 
특히 스포츠라는 분야는 아직 남성 위주로 치우쳐 있어 앞으로 여성이 더 많이 진출해야 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도 각 종목별 연맹 회장단에 여성이 반드시 포함되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는 스포츠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평창동계올림픽 같은 큰 행사가 열릴 때 자원봉사를 해 보는 것도 좋다고 권했다. 
책상 앞에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참여와 경험이 중요하다는 소리다.

“학창 시절에 전 앞으로 제가 무슨 직업을 갖게 될지 정하지 못했습니다. 
10대 때는 정말 내가 무엇이 될지 모르지요. 
그래서 보편적인 기초학문으로 실력을 쌓으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게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106&cur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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