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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 창업은 예술, 문화전도사를 꿈꾸다


전아름 써니사이드업 대표

써니사이드업은 문화 마케팅을 하는 회사다. 
금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대중들이 문화예술을 조금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서 파는 회사다. 
이를 써니사이드업에서는 ‘컬처워크’라고 부른다. 
컬처 워크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먼저 가장 각광받고 있는 ‘갤러리 투어’다. 
갤러리나 궁, 박물관 같은 문화 장소를 아트가이드와 동행하면서 설명을 듣는 단체 투어다. 
청담 갤러리 투어, 북촌 갤러리 투어, 경복궁 투어, 북촌 한옥마을 투어 등 10여개의 투어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문화예술에 관련된 아카데미가 있다.
이 아카데미에서는 캘리그라프나 드로잉, 사진 강좌, 캐리커처 수업 등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기업에 문화 행사를 제공하는 B2B 맞춤 행사가 있다.

이제 겨우 스물여섯, 20대 여성 CEO의 좌충우돌 창업기는 어땠을까?
창작하고 소통하며 다양한 것들을 조합해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과정, 마치 예술과 같았다. 
남들보다 조금 특별한 경험으로 20대를 채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다양한 경험으로 나를 찾은 대학시절
꿈이 없다고 좌절할 필요 없어요

아름 씨는 서울여자대학교 멀티미디어학부 콘텐츠디자인학과를 휴학 중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까지 아름 씨의 꿈은 물리학자였다. 
그래서 대학에 갈 때도 기계공학부를 지원했다. 
그런데 기계공학부에 지원한 학교는 다 떨어지고 우연히 응시한 컨텐츠디자인학과에 붙었다. 
때만 해도 콘텐츠디자인학과는 전국에 몇 개 없었는데 아름 씨는 서울대, 연고대를 못 갈 바에야 그런 학교에 없는 새로운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콘텐츠디자인학과는 뉴미디어를 공부하는 곳이다. 
IPTV나 위젯이나 페이스북 같은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하고 기획한다. 
다행히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아름 씨에게 잘 맞았다. 
SNS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미디어가 속속 등장하는 사회변화에 따라 비전도 보였다.

아름 씨는 어릴 때부터 뭔가 하나를 파기보다는 다양하게 활동하기를 좋아했다.

“저는 그게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와 집만을 왔다 갔다 해야 하잖아요. 
그러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뭘 잘하고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게 당연하죠.”

꿈꿀 시간은 주지 않으면서 꿈이 없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몰고 가는 요즘, 아름 씨는 꿈이 없어도 된다고 말한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신 전제 조건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학생이니까 공부를 잘하는 게 좋다. 
그래야 선택할 수 있는 대학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또 당시에는 쓸데없다고 생각한 공부가 모두 든든한 밑천이 된다는 것을 사회생활을 하며 느낀다. 
지금 다시 책을 사다가 공부할 정도다. 
그다음은 가능한 한 많은 경험을 하고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우리나라 교육시스템 안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들이다.

콘텐츠디자인학과는 공모전을 내는 게 과제일 정도로 학생들에게 권한다. 
아름 씨는 공모전뿐 아니라 서포터즈, 마케터즈, 블로그 기자단 등 2년 동안 스무 개 가량의 활동을 했다. 
그 외에 봉사활동이나 학교에서 하는 학회 같은 것도 많이 했다. 
공부 역시 학과 수업만 듣지 않고 다른 과든 다른 학년이든 그냥 듣고 싶은 수업 있으면 다 들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2년 동안은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별의별 일을 다 하면서 자신이 잘하는 일, 못하는 일을 알아갔다. 
스스로도 모르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자신에 대한 분석을 해본 결과 아름 씨는 자신이 전문적인 기술이나 뚜렷한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콤플렉스가 되던 무렵, 누군가의 조언에 용기를 얻었다. 
‘두루두루 알고 그것들을 융합하는 것도 네 재능’이라는 말이었다. 
그런 자신의 성향이 창업에 잘 맞는다는 것을 이제는 느낀다. 
이처럼 ‘나를 파악하는 시간’은 훗날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또 언뜻 보면 창업과 관련 없어 보였지만 대학에서 배운 지식이 그녀의 사업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실 벤처회사는 많은 돈을 들여서 광고나 홍보를 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뉴미디어를 기획하고 활용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그 지식을 응용해서 회사 홍보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오프라인 콘텐츠를 만들고 있지만 향후에는 온라인과 접목한 활동을 계획 중이다.

대학 시절 엉겁결에 한 창업
아무것도 몰랐기에 가능했던 일

대외활동에 전념하던 시기가 지나자 아름 씨는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제 ‘내 일’을 직접 해보고 싶었단다. 
그래서 창업을 결심했다. 2010년, 4학년 1학기 때였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같이 재미있는 일을 해보자며 동업으로 시작했다.

이때까지 아름 씨는 창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 같은 것도 없었다. 
다가 사업 아이템도 없었다. 
회사 이름만 정하고 집 주소로 사업자등록증을 냈다. 
그러고 나서야 사업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없었을 때니까 가능했던 것 같아요.”

아름 씨는 계획을 세워서 하면 오히려 두려워서 창업을 못 했을 것 같다고 한다. 
사업계획서를 쓰고 돈이 얼마나 드는지 따졌다면 무서워서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아름 씨는 원래 시작하고 나서 고쳐가는 스타일이다. 
어릴 때부터 끈기는 부족했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즐겼다. 
그래서 요즘 아름 씨의 부모님은 ‘끈기 없는 우리 딸이 이렇 게 오래할 줄 몰랐다’고 한다.

사실 사업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나서야 부모님한테 털어놓았다. 
리 얘기했다가는 걱정만 안겨 드릴 것 같았고 결과로 보여주고 싶었다.
자식이 불안정한 일을 할 때 부모가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말로 설득하려고 애쓰기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면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아름 씨의 생각은 옳았다. 
2년이 지나서야 어머니는 아름 씨에게 “너도 이제 네 앞가림은 하겠구나”라고 인정해주었다.

물론 후회하기도 했다. 
너무 준비 없이 시작해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써니사이드업은 지금까지 아무데서도 지원이나 투자를 받지 않고 버텨왔다. 
처음 1년 반 정도는 돈을 안 받고 일하기도 하고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했다. 
그러다 보니 빚이 엄청나게 늘었다. 
함께 한 친구들은 하나둘 씩 떠났고 결국 혼자 빚을 안은 채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

“처음 1년 반 동안은 사업자등록증만 있었다 뿐이지 진짜 사업을 했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직원들 월급을 줘야 하니 사채 같은 것도 썼다. 
스물네 살의 나이에 엄청나게 늘어나는 이자와 빚을 감당해야 했다. 
대출에도 한계가 오자 돈을 벌어야겠다 싶었다. 
그동안 했던 행사들을 포트폴리오로 만들어 영업을 시작했다. 
그런 노력 덕에 행사 기획이나 블로그 마케팅 같은 일거리가 들어오면서 1년에 1억을 벌었다. 
그 덕분에 그동안 빚과 밀린 월급을 다 정리할 수 있었다.

돈 버는 법은 어느 정도 터득했지만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이벤트 대행사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초심으로 돌아가 ‘내가 뭘 하려고 했던가’를 고민했다. 
이벤트대행사를 하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처음부터 문화마케팅이라는 업종으로 사업자등록을 했었다. 
창업 당시였던 2010년은 문화마케팅이라는 것이 한창 떠오를 때였다. 
문화 공연이나 축제나 행사 같은 걸 홍보하는 것을 포함해 많은 기업들이 기업 이미지를 위해 문화 마케팅을 시작했다. 
렇게 회사의 정체성을 고민한 결과가 갤러리 투어의 탄생이었다.

그때 바닥까지 가봤다가 일어선 경험은 돈에 대해 의연해지게 만들었다.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또 언젠가는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힘든 어린 시절의 탈출구였던 문화생활
전 국민의 문화생활 습관화를 위해

아름 씨의 부모님은 공무원이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문제가 많아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다. 
3~4일 굶은 적도 많았고 집이 없어 창고에서 잔 적도 있었다. 
외동딸인 아름 씨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어머니뿐이었다. 
그래서 아름 씨는 어머니의 말을 천금처럼 여겼다. 
하라고 하는 건 무조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는 건 절대 하지 않았다.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문화생활뿐이었다. 
만화책을 즐겨 읽었고 코스프레도 했다. 
밴드부 활동을 하고 서예, 그림, 글짓기 등 닥치는 대로 했다. 
물론 돈이 들지 않는 방법으로 말이다.

“그런 생활이 지금 저의 바탕이 된 것 같아요.”

어려웠던 환경의 탈출구이자 구원자였던 문화로 다른 이들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다면, 이런 생각은 창업으로 이어진 원동력이었다. 
사람들에게 문화를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지금의 일, 아름 씨는 이 일을 하면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푼다. 
갤러리 투어에 갈 때마다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행복하고 뿌듯하다. 
느긋하게 삶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그림을 감상할 시간도 없는 현대인들이 오랜 시간의 생각을 표현한 작품들을 보는 모습은 더없이 아름답다.

써니사이드업의 비전은 ‘전 국민 문화생활 습관화’다. 
문화생활을 어쩌다가 한 번 하면 삶에 그리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은 삶이 풍부해진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생활과 머리에 스며든 문화는 정신적으로 풍족한 삶을 선물한다. 
문화예술을 사람들이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름 씨와 써니사이드업의 목표다. 
물론 기업이니까 문화예술로써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활동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문화적으로 바꾸는데 일조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크다.

갤러리 투어의 핵심 역할인 아트가이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써니사이드업에서만 있는 직업이지만 직업으로 등록을 하고 더 활성화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써니사이드업이 신종 직업 하나를 창조한 것이다. 
간혹 어떻게 하면 아트가이드가 될 수 있는지 질문하는 사람이 있다. 
문화예술적인 소양과 커뮤니케이션 능력, 그리고 강인한 체력이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아름 씨는 써니사이드업이 더 잘되면 비슷한 업종이 많이 생기면서 아트가이드라는 직업도 더 발전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컬처워크를 시작한 지 1년 정도가 되었다. 
이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다. 
아름 씨는 새로운 상품을 기획 중이다. 
‘컬처박스’라는 것인데 3만원을 내면 공연을 볼 수 있는 15만 원 상당의 티켓을 주는 패키징 서비스다. 
이런 식으로 문화 분야의 서비스를 계속 늘려나갈 생각이다. 
써니사이드업(sunny side up)은 한 면만 익힌 달걀후라이를 의미한다. 
노른자가 마치 태양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처럼 써니사이드업의 미래는 태양처럼 빛나며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미래를 밝힌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리더란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사람

아름 씨처럼 막 시작한 회사의 대표는 멀티플레이어야만 한다. 
대표의 역할은 물론이고 관리자의 역할, 실무자의 역할도 해야 한다. 
일이 무척이나 많을 수밖에 없다. 
아름 씨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전화 예약 받는 것, 홈페이지 블로그, 페이스북 관리, 게다가 직접 가이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영업도 해야 하고 일 들어오면 행사 기획도 하고, 직원들 관리도 해야 하고, 돈 관리도 해야 하고… 
그야말로 오만가지 일을 다 해왔다. 
일곱 명의 직원들 역시 아름 씨처럼 만능 일꾼이 되어야 했다.

지난 3년 간 시작하는 단계에서 어쩌면 주먹구구식으로 일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2, 3년 고생하면서 근성도 생기고 내공도 쌓였다. 
엇보다 중요한 인적 네트워크도 쌓였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새로운 아이템도 나올 수 있었고 그것을 잘 운영하는 힘도 갖출 수 있었다.

지금 회사에는 가이드가 세 명, 영업사원이 한 명, 디자이너 한 명, 그리고 인턴이 두 명 있는데 이제는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늘어나는 서비스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분담 할 필요가 있다. 
좀 더 효율적인 내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창업 초기에는 거친 파도를 타며 기술과 체력을 익혔다면 이제 좀 더 체계적인 모습으로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할 시기다.

“리더는 일을 한다기보다 일을 되게 만드는 것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아름 씨는 창업을 꿈꾸며 조언을 구하는 이들에게 “창업하겠다고 마음먹고 6개월 안에 창업을 안 하면 당신은 창업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동안 자신의 경험으로 보면 CEO란 없는 걸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어떻게든 자금을 조달해와야 하고 직원이 없으면 꼬드겨서라도 데러오는 게 대표의 책임이다. 
그런데 돈이 생기면 해야지, 사람이 생기면 해야지 하는 식으로 말만 하고 있다면 창업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아름 씨는 지금도 항상 고민한다. ‘과연 내가 대표 자질이 있는 걸까.’,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사람 문제는 아직도 힘들다. 
사회 경험 없이 대학생 시절에 바로 창업을 했던지라 직원들을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아름 씨는 분명 이제 막 취업한 대부분의 친구들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사업을 하며 책임감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를 느꼈다. 직원은
물론 회사와 연관된 모든 파트너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 취업해서 자신의 인생만 책임지면 되는 친구들과는 삶의 무게부터가 다르다.
지만 이왕 시작한 일, 뭐가 되든 끝까지 가보고 싶다. 
스물세 살 때 일을 시작해 10년 후인 서른 살 때까지 이 일을 꾸준히 하면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취업한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30대의 자신을 그린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6870&cur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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