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농부 이외에 다른 꿈은 없었어요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꿈을 적으라고 하면 늘 농부라고 적었죠.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역시 농대를 나와 바로 농사를 지었어요.
꾸준히 농부라는 꿈을 키워나가며 일종의 코스를 밟은 셈이에요.”
하늬씨가 농부를 꿈꾸게 된 데에는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그의 부모님은 ‘친환경농업’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 남들보다 일찍 친환경농업, 유기농업을 시작하셨다.
농사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그는 자연스럽게 농사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가 농부의 꿈을 키우며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그의 부모님은 반대하지 않으셨다.
그의 부모님 역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졸업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렇게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 들어갔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 때는 공부 못 하고, 말썽피우는 친구들이 ‘농사나 짓고 살래’라고 말하는 시절이었어요.
공부 잘하는 친구는 외지로 나가서 회사에 다니는 것이 당연했으니까요.
그래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 오는 대부분의 친구들은 부모님의 권유로 들어온 친구들이었어요.
대안학교에 대한 관심이 커지던 시기여서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이 꽤 있었는데 부모님이 교사이신 경우가 많았어요.”
농사에 대해 알게 될수록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졌어요
“부모님 덕분에 자주 갔었고, 선생님들도 잘 알고 있었던 학교라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는 너무나 익숙했어요.
농사에 대한 주입식교육을 하지 않으니까 공부 부담도 없어서 더 좋았어요.
공동체 생활, 노동을 같이 하고 먹고 자고 하는 생활도 좋았고요.”
대안학교에 대한 관심으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의 경쟁률은 치열했다.
전국에서 농사를 배우겠다고 찾아오고, 그런 사람들에게 농사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에 그는 자부심을 느꼈다.
농사에 관한 수업을 비롯한 학교생활에 열심이던 그는 농사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는 수시로 지원한 농대에 당당히 합격했다.
“대구에 있는 경북대 농업과를 들어갔는데 농악과를 다녔던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 했었던 풍물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풍물패 동아리에 들어가 활동했는데, 학과 생활보다 더 많은 시간을 풍물에 집중해서 보냈거든요.
경북대가 워낙 외지에 있고 말투도 억세고 하니까 처음에 되게 낯설었는데 풍물이 전통이 있다 보니까 그런 분위기가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나 시골정서하고 공유도 많이 되었죠.”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던 그가 수업보다 풍물패 활동에 더 충실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실용적이지 못한 내용을 가르치는 수업에, 점수와 시험이 중심이 되는 대학 교육에 그가 크게 실망을 했기 때문이었다.
“농사를 짓는데 전혀 불필요한 교육 같았어요.
지금 대학을 가면 제게 필요한 부분들을 얻고 올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외우고 시험보고 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이해할 수가 없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20살은 대학에서 무언가 배우기에는 어린 나이인 것 같아요.
전문지식을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했던 나이였죠.”
농부의 삶도 좋지만 농촌에서의 삶도 좋죠
“씨를 뿌리고, 심으면 다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농사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요.
한 해 실패하면 그 다음해에 농사를 지어야 하잖아요.
한 해에 한 번밖에 시도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만큼 준비를 잘 해야 하죠.
해마다 농사를 지으며 얻는 경험으로 다음해 농사를 준비하는 거예요.”
대학공부를 마치고 27살에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하늬씨는 고된 일이 힘들어도 농사를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고생하는 만큼 수확했을 때의 보람도 큰 일이 바로 농사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단지 농사를 짓는 것뿐만 아니라 농촌에 산다는 사실에 큰 기쁨을 느끼며 살고 있었다.
“농사는 어떻게 보면 ‘삶’ 그 자체예요.
아침에 출근해서 밤에 퇴근하면 끝이 아니라 밤에도 나가서 농작물을 들여다보고 고민해야 하죠.
출퇴근 없이 계속되는 일이 힘들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농사가 적성에 맞아요.
제가 체력도 좋고 튼튼한 편이라 몸을 쓰는 일이 잘 맞기도 하고요.
세 살 된 제 아이가 흙에서 뛰노는 모습을 볼 때면 새삼 농촌에 살고 있다는 것이 기쁘죠.”
그에게 중요한 것은 농사를 짓는 다는 것 그 자체였다.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유통에 신경을 쓰다보면 본질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그는 항상 농사를 짓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농사를 짓는 스스로가 즐겁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배우며 살아갈 자신의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그의 목표였다.
“지금은 여유가 없어서 못하고 있지만 겨울이나 농한기에는 자기계발을 위해 책을 많이 보는 편이에요.
농사라는 것이 건강한 몸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거든요.
그리고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농사를 짓는 것도 좋지만 자연 속에 살면서 자연을 즐기지 못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아쉽더라고요.
아내도 그렇고 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여유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죠.”
아직 농부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어요
“농사라는 것이 환경, 정책, 시장의 영향을 받거든요.
그런데 환경, 정책, 시장이 올바른 길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저도 아버지처럼 농촌운동에 뛰어들어야겠죠.
저만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제 자식도 농사를 짓고 살아야 하니까요.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삶이 보기보다 녹록치가 않아요.”
쌀시장 개방으로 농촌에 위기가 찾아오면서 농사를 짓는 삶에 대한 하늬씨의 고민이 깊어졌다.
옛날과는 달리 빠르게 변해가는 농촌 생활의 변화를 몸소 느끼며 그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는 농사짓는 농부뿐만아니라 귀농을 꿈꾸는 사람, 농산물을 먹는 사람 할 것 없이 모두가 고민해야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똑똑한 사람이 농사를 지었으면 한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순서가 바뀐 것이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더 똑똑해져야죠.
공부도 많이 하고요.”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그는 농사짓는 농부의 삶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으로는 응원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생활도 해보고 여러 경험이 있으며 경제적인 능력 역시 뒷받침이 되는 사람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어린 친구들의 귀농은 정말 사회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힘들어요.
나라에서 지원금을 준다든지 무료로 교육을 시켜준다든지 전체적인 체계가 잡혀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농업 분야에 인력이 육성되지 않고 있어요.
지금 상황으로서는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만으로는 정말 힘들 거예요.
오히려 일일농장체험을 하고 섣불리 농사에 흥미를 가지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어요.
농사로 먹고 살겠다고 하는 거랑 농사를 지면서 농촌에 살겠다고 하는 건 많이 다르거든요.
농사로 먹고 살겠다고 하는 건 현실적으로 그런 환경이 안 되어 있으면 힘들어요.”
사회가 아니라, 자신에게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세요
“어린 학생들에게 ‘너의 꿈을 가져라’라고 말하는데, 꿈을 가진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어른들이 먼저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하죠.
꿈이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하늬씨는 꿈을 꿀 시간도 경험도 없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공무원, 의사, 변호사를 꿈꾸기보다는 세상을 넓게 바라보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꿈꾸는 것이 현명하다고 그는 말했다.
“저는 사회에서 제일 필요한 일이 농부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먹거리가 기본이잖아요.
저는 미래를 내다보면 이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농사를 짓겠다고 생각했죠.
남들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찾아서 꿈을 꾸면 될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