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 인터뷰

여러 분야의 진로∙직업 전문가와 사회 각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분들의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직업 세계를 확인하고 진로선택 방법을 알아보세요.

커리어패스

방송분야

(방송) 성악을 전공했지만 스포츠 아나운서가 되었어요


이재형 스포츠 아나운서

이재형 씨는 SBS ESPN(SBS스포츠)에서 스포츠 중계를 하는 아나운서다. 
좋아하는 스포츠를 마음껏 보며 성악을 전공한 목소리를 힘껏 뿜어낸다. 
그래서 재형 씨는 이 일을 하는 것이 매우 즐겁다고 한다. 
꿈이 바뀌고 진로가 바뀌고 때로는 좌절해도 열정을 놓치지 않은 덕분에 천직을 찾았다.

스포츠 중계를 하는 스포츠 아나운서예요

이재형 캐스터는 SBS스포츠에서 현재 스포츠 중계를 하고 있다. 
아나운서의 영역 안에는 MC, 뉴스, 앵커 등 여러 분야가 있는데 그중 스포츠 중계도 있다. 
재형 씨처럼 스포츠 중계를 하는 아나운서를 스포츠 캐스터 또는 스포츠 아나운서라 부른다.

스포츠 캐스터는 해설자와는 다르다. 
해설자는 그 종목을 직접 경험한 선수출신이기에 경기에 대한 경험과 전술을 말한다.
반면 스포츠 캐스터는 경기의 전반적 진행을 따라 가며 ‘슛~골!’ 등을 외치며 경기의 흐름을 설명해준다. 
또 해설자가 깊이 있는 내용을 잘 풀어내도록 리드하는 역할을 한다. 
즉 스포츠의 상황이 잘 묘사되어 마치 경기 현장에 시청자들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전달을 한다.

그래서 경기 전에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선수의 이름은 기본이고 키, 몸무게, 이적 여부, 골 횟수 또 팀의 포메이션, 이전 경기 기록 등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생방송 경기 중계 때 더 풍부한 내용의 중계를 할 수 있다.

어릴 때는 스포츠와 음악을 좋아했어요

“제가 어렸을 때 갖고 있던 세 가지 꿈이 있습니다. 아나운서, 성악가, 선생님이었지요.”

재형 씨는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와 음악을 좋아했다. 
재형 씨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1986년에 월드컵이 열렸다. 
그때 우리나라가 우리나라가 8회 연속 월드컵에 진출한 첫 회였다. 
(86 멕시코, 90 이탈리아, 94 미국, 98 프랑스, 2002 한일, 2006 독일, 2010 남아공, 2014 브라질월드컵 연속 본선 진출 성공) 
그때 재형 씨는 우리나라 어떤 선수가,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골을 넣었는지 아직도 영상으로 다 기억하고 있다.

그 외 배구나 농구 등 그 나이에 알 수 없는 선수들도 다 알고 있었다.
이런 경험이 지금 스포츠 캐스터 일에도 많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한 운동을 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뛰어난 스피드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신에 약간은 재치 있는, 센스 있는 플레이를 하였다.

또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찬송가를 부르며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 
피아노도 쳤고, 기타 치는 것을 좋아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데에는 집안의 영향도 있었다. 
아버지께서 당시 나훈아 남진 시절 음악 PD로 일하셨고, 3명의 누나가 모두 피아노를 치고 그 중 한 명이 음악을 전공하였다. 
그래서 음악에 대한 관심이 늘 있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했던 재형 씨는 초등학교 내내 반장을 놓치지 않았다. 
학급 회의 진행도 잘하고, 앞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교회에서 기타를 치기도 했다.
공부는 뛰어나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선생님이셨던 어머니, PD를 그만두시고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 그리고 외할머니에게 인성교육을 잘 받았다.

성악가로 진로를 정하고 성악과에 진학했어요

재형 씨는 교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선생님을 꿈꾸기도 했다. 
러나 고등학교 때부터는 성악가가 되고 싶었다. 
그가 다니던 대광고등학교가 미션 스쿨이라 합창반이 유명하였다. 
그때 음악 선생님이 전교생을 대상으로 음악 시험을 보았다. 
선생님이 전교생 중 3명에게만 성악을 전공해 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재형 씨가 그중에 들었다. 
음악으로 전교3등 안에 들었다는 사실이 뿌듯해 그렇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고 성악가의 꿈을 꿨다.

성악을 시작할 때 집에서 큰 반대를 하진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음악을 전공한 누나의 반대가 조금 있었다. 
음악계는 1등이 아니면 크게 성공하기가 힘들다며 조언을 해주었다. 
아버지의 경우는 음악이 어려운 길이라 말씀하시며 그의 사업을 물려받길 원하셨다. 
하지만 자식 이긴다는 부모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아들의 뜻을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 주셨다.

성악 전공으로 대학에 지원했지만 한 번 실패를 했다.
그렇게 재수를 한 끝에 경희대 성악과에 진학했다. 
노래라는 것은 좋아했지만 뭔가 공허한 마음이 들었다.

“성악가의 꿈은 대학에서 전공을 한 것으로도 충분히 이뤘다고 생각해요.”

얼핏 생각하면 성악과 아나운서의 일이 전혀 연계될 것 같지 않지만 전공 공부가 현재 중계방송 샤우팅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좋은 발성을 할 수 기 때문이다. 
올바른 발성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중계를 할 때도 이점이 있다. 
팬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도 ‘아름다운 샤우팅’이다.
좋은 발성을 하다 보니 아무리 샤우팅을 해도 목이 잘 쉬지도 않는다.

대학에서도 학생들 앞에서 MC 관련 활동을 관련 활동을 하다가 아나운서에 관심이 생겼어요

대학에서는 JOY 기독교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임원까지 하였다. 
한번은 그 안에서 연합으로 전국 학생들이 만났을 때, 그가 아침 체조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레크레이션 진행도 맡고, 또 후에는 동아리 OT 진행을 맡기도 했다. 
그래서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는 생각에 레크레이션 자격증을 따러 갔는데 거기서도 잘하는 편이었다. 
심지어 군대 전역후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기도 할 정도였다.

또한 교회에서 찬양대 지휘자를 했고, 또 찬양 페스티벌을 기획한 적도 있다. 
그리고 합창 지휘자 과정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며 자신의 길을 모색해나갔다.

대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그의 목표는 학점을 잘 받는 것이었다.
교직이수와 ROTC(학군장교)를 하기 위해서였다. 
선생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은 내 적성에도 맞고 또 어머니의 길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교직 이수 대상 학생 수를 대폭 줄이는 일이 발생했다.
안타깝게 교직이수에 실패한 후 본격적으로 아나운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나운서로 진로를 정한 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다.
당시 음악방송 PD 겸 아나운서로 일하셨던 아버지는 후에 할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방송국 일을 그만두셨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명예를 내려놓으신 아버지의 길을 잇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어렸을 적 교회에서 추수감사절에 전 교인이 모였는데 그 때 아버지께서 혼자 MC를 보신 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무척 멋있어 보여서 자신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방송을 염두에 둔 후 입대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ROTC에 지원하였다. 
그곳에서 조금이나마 아나운서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ROTC가 되기 위해서는 학점이 중요하기 때문에 2학년 1학기 때까지도 학점관리를 꾸준히 하였고, 또 체력장 합격을 위해 틈틈이 체력 단련도 하였다. 
또한 2학년 때부터 신문 사설을 소리 내어 읽으며 조금씩 준비를 해나갔다.

좌절도 있었지만 결국 열정이 있으니 기회가 생겼어요

제대 후 군대에서 모은 돈으로 바로 아나운서 아카데미에 등록을 하고 수료했다. 
이후 여기 저기 시험을 보러 다녔다. 수차례 시험에서 떨어지다 마침내 강원민방(춘천SBS) 리포터에 합격을 하였다. 
이곳에서 일을 하던 중 그가 다니던 아카데미에서 ‘스포츠캐스터 전문반’이 개설되었다. 
스포츠만 전문적으로 중계하는 걸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학원에 등록했고, 배우다 보니 ‘이것이 내 길’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좀 더 구체화된 선택과 함께 준비를 하였다.

그 후 다시 스포츠 전문 캐스터로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그러던 중 지역방송에 스포츠 캐스터 프리랜서로 합격은 했는데, 연락이 오지 않아 결국 일을 해보지도 못하였다. 
원래 프리랜서는 그런 경우가 왕왕 있다.
그 후, 한 스포츠채널 공채에서 최종면접에 까지 올랐지만 아쉽게 탈락하기도 했다.

29살이 되던 해, 일을 구하지 못하고 굉장히 실의에 빠져 있었다. 
러던 어느 날 밤에 TV를 보다가 자막에서 KBS N 아카데미 1기를 뽑는다는 광고를 보고 등록을 결심했다.
이 아카데미에서는 그가 다른 친구들보다 앞설 수밖에 없었다. 
아카데미만 해도 3번째 다니는 거였고, 리포터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다. 
리고 그곳 선생님들이 KBSN에서 중계를 직접 하시는 캐스터 분들이었다. 
그래서 그분들이 오실 때마다 그는 지금으로 치면 포트폴리오라고 할 수 있는 CD를 만들어 드렸다. 
TV에 스포츠 경기 화면을 틀어놓고 앞에 서서 중계하는 자신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것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런 식의 포트폴리오는 획기적이고 창조적이었다.

그중 한 선생님은 그 CD를 보고 그의 열정을 높이 사며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셨다. 
그 결과 인턴에 뽑힐 수 있었고, 1주일에 3분이지만 축구 하이라이트 장면에 그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었다.

방송에 새 목소리가 나오니 타 방송사에서 누구인지 관심을 갖고 재형씨가 다니던 아카데미 선생님들에게 물어왔다. 
선생님들께선 아카데미에서 열심히 하던 그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씀을 해주셨다.

그러던 중 SBS 스포츠 시험이 열렸다. 
SBS 스포츠 관계자들이 방송을 통해 이미 그의 목소리를 알고 있었고, 지인들을 통해 그에 대한 열정과 실력, 그리고 인성 등의 정보도 들었기에 유리한 점이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최종합격까지 하여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그는 CD에 담겨 있던자신의 열정, 그리고 CD를 선생님들께 드릴 수 있던 용기가 초석이 되어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열정을 갖고 아름다운 샤우팅을 하세요

그는 이 직업이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마음이 울적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스포츠 중계를 준비하면 정말 즐거워지기 때문이다. 
떤 이들은 좋아하는 일을 일로 하다 보면 싫어지지 않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정말 그 일을 사랑하세요?”라고 되묻고 싶다고 한다.

만약 그가 일반사무직의 직업을 가졌더라면 새벽에 좋아하는 축구 경기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일을 졸면서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스포츠캐스터의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마음껏 좋아하는 경기를 볼 수 있고, 새벽에 잠을 자지 않고 보는 것이 직업의 연장선이기도 하기에 늘 행복하다.

그는 아직까지도 꾸준히 스포츠를 많이 본다. 
경기장에 나가 직접 관전을 할 때는 특히 더 경기를 분석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며 본다. 
또 직업 특성 상 체력소모가 많기에 시간을 내어서 운동(에어로빅)을 꼭 하려고 한다. 
그는 아직도 열정이라는 연료로 쉼 없이 움직인다.

그만큼 캐스터는 ‘열정’이란 단어를 가장 좋아한다. 
그가 열정을 정의하기를 짝사랑에 비유한다. 
늘 그 소녀 혹은 소년을 생각하고, 그 아이에 대해 알고 싶고, 어떻게 하면 그에게 잘 보일지 연구하고, 주변인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처럼 자신의 꿈에 대해도 열정을 갖고 다가가라고 말한다.

또한 A라는 꿈을 가지고 노력하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B라는 꿈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A라는 목표를 위해 달린 것이 헛된 것이 절대 아니다. 
A라는 꿈을 그리며 노력했기에 B라는 꿈을 새롭게 꿀 수 있었고, 또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열정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혹시 다른 꿈을 이룰지라도 그것은 자신만의 성공스토리가 될 수 있다. 
열정을 가지고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는 노력을 한다면 하늘도 나를 도와줄 것이라 확신한다. 
그 진리를 믿기에 오늘도 하늘을 감동시키는 노력을 하며 이재형 캐스터만의 아름다운 샤우팅을 외친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6515&curPage=1

목록보기

교육부 한국직업능력연구원 국가공인 웹 접근성 품질인증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