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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동물과 인간이 함께 살아갈 날을 꿈꾸는 수의사


김재영 태능동물병원 원장

길에서 우연히 만난 고양이가 예뻐서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애교가 많은 고양이였는지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다가와 몸을 비비적거렸다. 
이 애교에 못 당해 눈앞에 있는 슈퍼에 들어가서 고양이에게 줄 소시지를 사려는데 슈퍼 주인이 한 마디를 날렸다.

“걔 오늘 많이 먹었어요~.”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리는 애교는 고양이 나름의 생존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예전엔 분명 주인 없는 고양이는 도둑고양이라며 욕했는데 대체 언제부터 세상이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줄 정도로 너그러워졌을까?

고양이 의사 1세대

햇볕이 따가운 어느 여름 날,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고양이 의사, 김재영 태릉동물병원장을 만났다. 
1991년 지금의 자리에 자리 잡은 뒤 꾸준히 고양이를 치료하고 있다. 
인터넷 고양이 커뮤니티에서 김 원장의 병원은 외과 수술에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평이 자자하다.

길고양이를 중성화 수술에 있어 보통은 암고양이는 배를 크게 절개해 자궁을 들어내는데, 김 원장은 고작 2cm 정도만 절개한 뒤 난소를 잘라내 수술을 한다.
절개 부위가 작기 때문에 상처를 꿰맨 뒤 생체 접착제를 이용해 감쪽같이 수술부위를 붙인다. 
김 원장은 “길고양이는 최소한의 치료만 받은 뒤 야생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후유증이 많이 남는 자궁 절제를 대신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이 방법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1988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수의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시만 해도 수의학과는 지금처럼 수의학부로 따로 분리되지 않고 농과대학에 소속돼 축산과와 수의과로 나뉘어졌다. 
당연히 수의사도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보다는 돼지나 소 같은 축산업 동물의 진료에 집중됐다. 
그러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과 함께 우리나라에 애완동물 붐이 찾아왔다. 
당시에는 주로 개를 애완동물로 취급했다. 
김 원장은 서울에서 개를 전문적으로 진료하던 조기춘 원장 밑에서 1년 동안 일하며 애완동물 진료에 대한 기본기를 쌓았다.

길고양이로 시작해 길고양이와 함께 한 인연 

그렇다면 김 원장은 언제부터 고양이와 인연을 맺은 걸까. 
그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동물을 유난히 좋아하던 여동생이 야생 고양이를 데려와 키우기 시작한 것이 김 원장이 고양이와 맺은 첫 번째 인연이었다.

본격적으로 고양이 의사로서 길을 걷게 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였다.
2000년대 초반 서울여대 학생이 아픈 길고양이를 데려온 것이 계기가 됐다. 
그 때 만났던 인연은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김 원장은 “그 때 만났던 학생들이 지금은 아기 엄마가 되었는데, 아기를 키우면서 다들 고양이도 키우고 있다”고 웃었다.

2000년대 초반 국내에는 고양이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었다. 
김 원장은 인터넷과 해외 도서를 이용해 개인적으로 고양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얻은 지식으로 길고양이를 돕는 활동에 많이 참여했다. 
히 도둑고양이라는 이름을 길고양이로 바꾼 것도 김 원장이 기여한 유명한 사례다. 
‘도둑’이라는 호칭은 어감부터가 부정적이고, 무조건 잡아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김 원장은 본인이 운영하던 인터넷 카페에 도둑대신 ‘길고양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길고양이라는 이름을 김 원장이 만든 것은 아니지만 고양이 커뮤니티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김 원장의 성원 덕분에 길에서 사는 고양이는 도둑고양이 대신 ‘길고양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김 원장은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아픈 길고양이를 무료로 치료하거나,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기도 했다. 
그러던 도중 이것이 개인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공문을 보냈고 2007년에는 서울시 조례를 제정하는 자문위원으로도 참여했다.

김 원장의 노력 덕분일까. 
환경부에서는 고양이를 인간이 살지 않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야생 고양이, 인간의 보살핌을 받으며 집안에서 사는 집 고양이, 인간과 함께 공간을 공유하지만 거리에서 살아가는 길고양이로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한때 고양이라면 질색하던 한국인들도 이제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다. 
길고양이가 다가오면 쓰다듬으며 작은 먹을거리를 주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전문가를 만든다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면서 자연히 고양이를 진료하는 의사도 늘어났다. 
김 원장은 “한국고양이수의학회에서 올초 치룬 행사에서는 300명 정도 모였는데, 7월 행사에서는 600명 정도로 두 배나 늘었다”고 말한다. 
최근 수의학계에서 전문의 바람이 부는 것도 한몫했다. 
고양이, 개, 토끼같은 동물별 의사가 많아졌고, 안과나 치과처럼 특정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의사도 늘었다. 
그렇다면 김 원장은 고양이 진료에서도 어느 분야 전문의일까. 
김 원장은 자신을 비뇨기과 전문의라고 소개했다.

고양이는 본래 사막 동물이었다. 
이 때문에 물을 조금만 먹어도 오래생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생존에 유리하다고 해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이 부족하면 신장에 치명적인 무리가 온다. 
실제로 고양이 커뮤니티에서는 소변을 잘 보지 않아 고민이라거나, 요로 결석 때문에 혼쭐이 났다는 후기를 자주 볼 수 있다.

사람의 경우 신장에 문제가 생기면 1차로 치료를 한 뒤 불가능할 경우 다른 사람의 신장을 이식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양이는 어떨까. 
신장과 관련된 질환이 자주 발생하는 만큼 고양이 신장 이식이 가능하다면 가족과 같은 고양이를 좀 더 오래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김 원장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고양이 신장 이식 수술에 성공한 고양이 의사다. 
이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고양이 신장 이식에 관심을 처음 갖게 되었을 때 김 원장은 수소문 끝에 우흥명 강원대 수의학과 교수를 찾았다. 
애완견으로 인기가 높은 코카스파니엘의 신장 이식을 성공시킨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김 원장의 열정으로 2005년 국내에서 첫 번째로 신장 이식을 받은 고양이가 생겼다.

하지만 아직은 국내에서 실험실 외에 신장이식을 받은 고양이는 없다.
신장 이식은 단순하게 신장을 이식 받는다고 모든 병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수명이 다할 때까지 매일 면역억제제를 먹여야 하고, 수술 부위가 덧나거나, 출혈이 멈추지 않는 등 다른 합병증이 생길 수도 있다. 
비용도 큰 문제다. 
김 원장은 신장이식에 대해 상담 했던 보호자들은 대부분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 수술을 포기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객도 없는데 굳이 연구할 필요가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생명을 오랫동안 다루면서 책임 의식이 생겼고, 살릴 수 있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싶어서”라고 김 원장은 답변했다.

인간과 고양이가 함께 살아갈 길을 찾다

김 원장은 “무료로 수술해준 길고양이만 3만 마리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반신반의였지만 김 원장이 길고양이를 수술하는 것을 보고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 과정이 복잡하다는 암고양이도 한 시간이 채 안 걸렸기 때문이다.

최근 김 원장은 동물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도둑고양이라는 이름을 길고양이로 바꾼 것도 이런 고민의 발로다. 
하지만 고양이를 보호한다는 말은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일방적인 입장이라는 것이 김 원장의 생각이다.

“인도주의적이라는 말은 인간 중심 사상이 들어있습니다. 
인도주의보다는 생명주의라는 말이 더 좋지 않나요?”

김 원장은 충주댐 근처의 고양이를 예로 들었다. 
충주댐 인근에는 길고양이가 30~40마리 정도 살고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야산을 등지고 있어 고양이는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영역 동물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개체수가 무한정 늘어나지도 않는다. 
이곳에 누군가가 찾아와 소시지라도 꺼내면 마치 모이 주는 사람을 발견한 비둘기 마냥 몰려든다.
관광객은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를 만나 ‘힐링’하고 고양이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살아갈 수 있다. 
김 원장이 그리는 이상적인 공간인 셈이다.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 김 원장은 길고양이의 특징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김 원장이 주목하는 지역은 여수에 있는 작은 섬, 거문도다. 
처음에 섬에 있는 쥐를 잡기 위해 들여놓은 고양이가 지금은 골칫거리로 전락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 
김 원장은 적절한 중성화 수술을 이용하면 길고양이 개체수를 조절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거문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고양이는 약 400~500마리. 
이중 81마리를 포획해 부적합한 8마리를 제외한 73마리에게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다.
올해 다시 거문도에 들어가 고양이 생태가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하려 했지만 세월호 사고로 거문도에 들어가는 것이 여의치 않아 진행하지 못했다.

김 원장은 “윤리적으로 거문도 고양이의 생명을 연장하고 안락사를 방지하고 싶은 부분도 있지만 학자로서 목표도 있다”고 말했다. 
“거문도 고양이는 고립된 공간에서 독자적인 생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고양이 생활 패턴에 따른 질병을 파악하기 쉬워, 국내 고양이 질병 연구에 표본으로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025&cur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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