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윤 씨는 절망스러웠던 나머지 학교를 그만둬야 하는지,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어폰을 귀에 꽂고 하루 종일 음악을 듣던 중 그는 문득 깨닫게 된 사실이 있었다.
산울림의 13집 수록곡인 <무지개>를 듣던 그는 문화나 예술이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을, 문화운동이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 그는 음악공연 기획을 하기 시작했다.
홍대 앞에서 인디 밴드들의 공연을 다니고, 밴드들을 만나고, 공연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공연을 만들고 싶었는데 배울 데가 없더라고요.
하지만 일자리는 있었어요.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공연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일주일에 5일 동안 조명 올리고, 케이블을 꽂는 등 잡다한 일을 했어요.
돈을 주지 않아도 좋으니 배우게 해달라고 부탁을 해서 시작한 일이었죠.
전력 케이블과 음향 단자들의 이름과 기능을 배선을 그려가며 외웠어요.
2학년 2학기 겨울방학에는 인쇄소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어요.
강남 유흥업소 전단지를 만들었는데 출연 가수가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컴퓨터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전화로 연락이 오면 빨리 다른 가수의 사진으로 바꾸어야 하는 일이었죠.”
그는 총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축제를 기획하기도 했다.
수요영화제를 만들어 수요일마다 영화를 틀고 당시 한창 유행하던 일본 애니메이션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일본에 가서 그 당시 유행했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LP를 구매해서 학교에서 전회를 연속 상영한 적도 있었는데, 총17시간 동안 빔 프로젝트의 열을 식혀가며 상영하고 맥주를 팔았더니 100만 원이 남았었다.
프로그램과 LP를 복사한 비디오테이프를 서울대와 이화여대 총학생회에 팔아서 그는 일본에 다녀온 비용을 마련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일이 많은데 대부분 돈이 있어야 하잖아요.
돈 없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재미있는 것이 책읽기에요.
대학교 3학년까지 연세대학교 도서관 분류번호 800번, 그러니까 소설인데, 그걸 다 읽었어요.”
게임회사에서 희망시장으로
김상윤 씨는 군대를 졸업하고 대학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IMF시대에 학비를 마련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가능성을 보이던 영역이 게임이라고 생각한 그는 게임 디자이너 겸 기획자로 게임회사에 입사했다.
“게임 기획에 대해 공부한 적은 없지만 기획서를 잘 쓰고, 파워포인트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고, 그래픽도 만들 줄 알았기에 입사가 가능했던 것 같아요.
물론 당시 게임이 흑백 화면과 폴더 형식의 핸드폰에서 작동하는 방식이었기에 가능했을 수도 있고요.”
그가 만든 게임이 게임 다운로드 순위권을 오르내리게 되면서 그는 기획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그는 심리학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서비스를 만드는 곳으로 회사를 옮겨 아이들을 위한 MBTI 검사가 되는 게임을 만드는 팀에 기획자로 들어갔다.
그는 그곳에서 일하며 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심리학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시작해서 어떻게든 공부를 하면서 기획을 해야 했어요.
사실 회사에는 좀 미안했죠.
월급 받으면서 공부를 한 셈이니까요.
책을 읽고 모르면 물어보는 것을 반복하다보니 어느 순간 ‘감’을 잡았어요.
뭐 사회학을 전공했으니까 비슷한 부분이 있기도 하긴 하죠.
그 때 어떤 것을 공부해서 기본 지식을 쌓아두면 다른 곳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죠.
지식이라는 게 완전히 다 다른 게 아니고, 하나를 어느 정도 알면 다른 것도 알 수 있다는 거.
그때부터는 무슨 일이 들어와도 겁이 덜 났어요.
꼭 문화예술 분야가 아니어도 공부를 해 두면 나중에 다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개발한 게임이 ‘올해의 게임상’을 받을 정도로 능력을 발휘했던 그는 1개월간의 유급휴가를 받았다.
그렇게 며칠을 쉬며 무료해진 그는 홍대로 나갔다가 문화기획자로 일하고 있는 지인을 만나 ‘희망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희망시장은 예술가들이 자신이 만든 작품을 팔 수 있는 예술장터에요.
예술가들도 자신의 작품을 팔아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데, 작품설명에 서툴거나, 작품을 걸 곳이 없다는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죠.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그동안 갈고 닦은 기획서 작성 실력으로 그들의 기획서를 대신 써주고, 그들의 작품을 보여줄 방법들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희망시장에서 하는 사업에 대한 기획서를 써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원금을 받고, 기업과의 협력 사업으로 명동에 희망시장 매장을 만들기도 했고요.”
기획서 작성에서 기획컨설팅까지
홍대 앞에서 기획서를 정말 잘 쓰는 사람으로 소문이 났던 김상윤 씨에게 한 선배가 부탁을 해왔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예술교육 축전이 아프리카 문화예술이라는 주제로 한국에서 열리는데, 전 세계에서 온 참가자들이 손으로 써온 발표문을 파워포인트로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5박6일 동안 커피와 박카스로 버티면서 밤을 새워 파워포인트 87개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만든 사람이 아니면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는 거예요.
원래 썼던 것과는 내용이 달라졌으니까.
그래서 낮에는 파워포인트 페이지를 종일 넘겨주고 밤에는 내일 할 프리젠테이션을 만들 수밖에 없었죠.
5일간 87개를 하고 나니 손가락이 부르텄어요.
일이 끝나고 사흘 동안 병원에 입원까지 했죠.”
설명이 매끄럽지 않거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다른 사례들을 찾아 인용하고, 더 효율적인 설명을 찾다 보니 기획컨설팅의 일까지 모두 그의 몫이었다.
제약 회사에서 음료수를 개발하고, 담배 신제품을 만드는 컨설팅부터 스키장의 문화마케팅 전략 컨설팅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그는 5년간 기획 컨설팅 일을 했다.
그러면서 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예술위원회 등의 단체와도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
기획에 대한 생각들을 블로그에 정리해 올린 글을 본 상상마당 담당자가 강의 의뢰를 해서 그는 <독립문화기획자> 라는 이름으로 강의를 3년 넘게 대학교 등 여러 곳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는 남들이 보기에 기획서를 잘 쓰는 사람, 아이디어를 정리해서 기획안으로 잘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런데 제게는 예술가들과 잘 먹고 사는 데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거나, 공연을 만드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들이 조금씩 커진 거예요.
문화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말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직업을 가지게 된 거죠.
스무살 때 꿈 그대로 지금도 살고 있는 거예요.
넓게 보면.”
능력이 없으면 시간을 더 들이면 돼요
기획서는 공간, 자본, 예술가의 동의를 다 얻어야 진행이 되기 때문에 열 개를 쓰면 그중 한 두 개가 채택되는 정도의 확률이다.
모두가 동의를 한다고 해도 상황적 한계 때문에 일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일을 하면서 실망은 하더라도 지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김상윤씨는 말했다.
기획자로 10년을 넘게 일하고 나니 그 동안 채택되지 못하고 남은 아이디어들이 쌓여있기 마련인데, 그는 마치 자판기처럼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전업기획자로 사는 사람들은 누군가 와서 ‘이런 거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으면 대답이 척척 나온다.
이런 책을 읽고 누구를 만나고, 전화번호는 여기 있고….
그렇게 되기까지 그들은 수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사람들을 만나왔던 것이다.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으니 한결 수월해졌지만 그가 처음 일할 때만 해도 녹록치 않았다.
“제가 산울림의 팬이었어요.
한 번은 산울림의 김창완 씨와 콘서트를 기획했는데 연락처를 알 수 없는 거예요.
김창완 씨가 EBS에서 어린이 프로를 하고 계시다는 걸 알았어요.
인터넷이 없을 때니까, 이런 정보 하나도 알기가 쉽지 않은 때였죠.
그래서 EBS 공개홀 앞에서 일주일 내내 기다렸던 적이 있어요.
수위 아저씨가 분명 오기는 온다고 하시기에 무작정 기다렸는데 결국 못 만났죠.
나중에 알고 보니 2주마다 한 번씩 녹화하러 오시는 거였어요. 기다린 지 12일 만에 결국 만났어요.”
김상윤 씨 외에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당장 녹화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에 딱 1분 동안 기획서를 들고 이야기를 했다.
김창완 씨는 녹화 끝나고 기다릴 수 있겠냐고 했고, 그는 다시 5시간을 더 기다렸다.
녹화가 끝나고 방송국 사람들과 라디오 팀까지 모인 회식 자리에서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고 나서야 그는 승낙을 받을 수 있었다.
“한 번의 만남으로 승낙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나만 김창완을 원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내가 조금 더 절실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더 나은 대가를 제공하면 되겠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요.
김창완 씨가 했던 인터뷰를 다 읽었고, 신문 인터뷰도 모두 스크랩했고, 책이나 음반도 구입해서 노래 가사까지 모두 외웠어요.
그때 아무리 실력이 없는 기획자라고 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하면 괜찮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실력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죠.
실력이 없으면 그만큼 시간을 더 들이면 돼요.
기획자에게 필요한 건, 그 동안 안 지치는 거죠.
그건 능력의 문제인 거 같아요.”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를 찾아보자
김상윤 씨는 자기계발을 위해 요즘도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다.
지금 움직이고 있는 문화에 관심이 많은 그는 주로 ‘현상’을 다루는 책을 많이 읽는다.
그가 이야기하는 ‘현상’은 사회적 동향만이 아니라, 조금 더 자세하고 조금 더 일상적인 것들이다.
“올 겨울에 어그부츠가 유행할 것인지를 생각해보고, ‘도대체 나는 왜 그리도 어그부츠가 안 예뻐 보일까’를 생각하고, ‘나 말고도 많은 남자들이 여자들과 다르게 어그부츠를 좋아하는지 않는가’를 생각해요.
이 카페는 왜 장사가 잘 되는지, 저 식당은 왜 맛이 있는데 손님이 없는지, 저 가수는 저 노래로 어떤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싶은 건지를 생각하죠.
또 마트에서 어떤 손님이 치약을 고르고 있으면 관찰을 해요.
왜 이 치약을 골랐을까. 때로는 직접 물어보기도 하고요.”
소비자의 선택과 판단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유행을 만드는지, 이유가 무엇인지. 사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자신 스스로의 이유를 명확하게 말하는 건 쉽지 않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사실, 기획이라는 게 요약하면, 내가 왜 이걸 하고 싶은지를 다른 사람에게 잘 말하고, 그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거예요.
난 이게 너무 좋고, 너무 하고 싶고, 이게 있으면 너무 좋을 거 같은데, 당신도 만약 그러하다면, 좀 도와달라는 거죠.”
그가 ‘문화기획자’라는 분야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문화기획을 시작하겠다는 생각보다 자신이 지금 영향을 받는 문화들, 혹은 자신이 영향을 주고 있는 문화들에서 재미를 찾아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왜’를 명확하게 찾으면 찾을수록, 더 좋은 기획을 할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일을 하면서도 공부를 계속해야 하고 일상생활과 공부가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시작할 때 자신이 재미있어 하는 분야를 선택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것을 찾고 익히며 시간을 보내는 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지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어요.
옛 어른들의 말씀이 틀린 게 없는데,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죠.
그래도 나름 기획 일을 길게 해 오면서 느낀 건, 정말 사랑하는 친구들만이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는 자신의 취향을 숨기지 말고 내가 무슨 영화를 좋아하고 어떤 음악을 즐겨 듣는지, 그것들 중 특히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잘 찾아보아야 한다고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파고 들어가 그쪽의 지식을 쌓다 보면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상윤 씨는 그것이 곧 기획의 시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