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 인터뷰

여러 분야의 진로∙직업 전문가와 사회 각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분들의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직업 세계를 확인하고 진로선택 방법을 알아보세요.

커리어패스

스포츠분야

(스포츠) 감정이 담긴 언어로 소통의 감동을 만들다


임보라 스포츠통역사

농구나 배구, 축구 같은 운동경기에서 우리 선수들과 함께 뛰는 외국인 선수들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용병’이라고 부른다. 
용병 선수가 같은 팀 선수들, 감독, 코치와 소통할 수 있도록 곁에서 그의 귀와 입이 되어주는 사람이 바로 스포츠통역사이다.

임보라씨는 지난 시즌 여자프로배구에서 우승한 GS칼텍스의 선수 ‘베티’의 통역을 맡았던 스포츠통역사이다. 
스페인어 전공인 그녀는 스포츠통역 이외에도 관광이나 IT, 의료 쪽의 통역을 하고 있다. 
베티와 함께 아파트에서 살며 음식 취향, 건강관리, 경기 전 컨디션 조절에 이르기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베티를 챙겼던 그녀는 학창시절부터 스포츠에 대한 꿈을 키워온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늘 스포츠에 대한 꿈이 있었죠

어린 시절 보라씨는 체육과목을 가장 싫어했다. 
운동에 소질이 없었던 그녀는 실기에서 늘 좋은 점수를 받지 못 하여 체육점수로 수우미양가 중 ‘양’ 아니면 ‘가’를 받았다. 
그녀가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히 TV에서 방송하는 농구경기를 보게 되면서였다.

“키가 좀 작은 선수가 키 큰 선수들 사이에서 슛을 넣는데, 정말 멋있는 거예요. 
점프해서 넣는 덩크슛도 아니라 가장 기본이 되는 레이업슛이었는데도 말이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당시에 최고로 인기가 많던 ‘이상민 선수’였어요.”

그녀가 중학교 2~3학년이었던 무렵에는 서너 명씩 모여 자유롭게 농구를 하는 ‘길거리농구’가 유행이었다. 
그녀는 친구의 길거리 농구경기를 구경 가기도 했다. 
농구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 때부터였다. 
그녀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농구경기는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농구를 보니 TV에서 보던 것보다 더 재미있는 거예요. 
그 때부터는 TV에서 하는 농구경기도 더 열심히 챙겨보기 시작했죠. 
<슬램덩크>라는 농구만화를 보며 친구들은 여자주인공인 ‘채소연’같은 사람이 되기를 꿈꿨는데, 저는 매니저가 되고 싶었어요. 
단순히 응원만 하는 것보다 팀의 한 사람으로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죠. 
친구들이 H.O.T 같은 가수를 좋아하는 동안 저는 이상민 선수에게 빠져 그를 만나기 위해 연세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세웠죠.”

아침마다 배달되는 스포츠신문을 모아 스크랩하는 것은 그녀의 취미였다. 
부모님은 한창 공부할 시기에 스포츠에 빠진 그녀를 걱정하실 만도 했지만, 목표를 정하고 노력을 멈추지 않는 그녀를 믿어주셨다.
비록 연세대학교 입학이라는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농구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농구 동아리 활동을 할 정도였다.

스페인어가 서툴다는 것이 답답해서 눈물이 난 적도 있어요

“원래 언어에 관심이 많아서 언어 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가려고 했어요. 
국어는 늘 배우던 거라 지겨웠고, 영어는 누구나 하니까 싫었는데 그 때 마침 스페인어를 배우는 편이 앞으로 유리할 것이라고 조언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셨어요. 
스페인어 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갔는데 제가 동아리에 너무 빠져서 농구부 활동만 열심히 하다 보니 성적이 너무 안좋았어요.”

그렇게 대학에서 3년을 보낸 보라씨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당시 그녀의 꿈은 ‘스페인어를 잘 하는 방송작가였기에 신문방송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하기도 했지만 그 실력으로는 스페인 관련 방송을 할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스페인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회화 수업의 학생들이 대부분 유럽 사람들이라 그런지 수업 주제가 늘 유럽에 대한 것이었어요. 
잘 모르는 주제인데다가, 제가 스페인어가 서툴러서 말도 못 하고 너무 답답했어요. 
어느 날은 수업이 끝나고 가려는데 참았던 눈물이 터지더라고요. 
왜 우냐고 묻는 선생님께 ‘나는 말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유럽에 대해 하는 것도 많지 않다’고 이야기더니 선생님이 웃으시며 ‘너는 문법이 정확하다. 다른 친구들은 같은 언어권이라 맞게 들리지만 사실 틀리게 말하고 있으니 용기를 내라’고 하셨어요.”

이후 다양한 수업 주제로 그녀가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선생님 덕분에 그녀는 스페인어를 보다 빨리 배울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그녀는 통번역대학에 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짧은 시간에 빠르게 늘었던 언어 실력이 금방 사라지게 될 것이 걱정되어 어학원을 등록했다. 
고급반 수업을 들음에도 너무 쉽게 느껴진다는 그녀의 의견에 학원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제안했다. 
그렇게 그녀는 대학교 4학년부터 대학원에 다니면서까지 5년 동안 스페인어 수업을 했다.

통역사 일을 해보고 싶어서 성적을 포기하고 스페인으로 향했죠

“대학교 4학년 때 알고 지내던 어학원 아저씨로부터 통역을 제안 받았어요. 
그분이 축구를 좋아하셔서 축구 관련 일을 하셨는데, 우리나라 유소년 축구팀을 데리고 스페인 유소년 축구대회에 참가하시게 된 거예요. 
4학년 1학기 여름방학이라는 중요한 시기였지만 너무 가고 싶었어요. 
원래 스포츠를 좋아하기도 했고, 통역사를 한번쯤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마지막 기말고사 성적을 포기하고 스페인까지 따라갔어요.”

처음에는 보라씨가 할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중학교 아이들이 하는 말은 먹고 싶은 것을 달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경기 중에 자신이 선수들 간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녀는 그곳에 있다는 자체가 즐겁고 뿌듯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프로 축구 경기를 보러 갔는데, 축구를 보는 아이들의 눈이 반짝이는 게 정말 예쁜 거예요. 
아이들이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너무 뿌듯했어요. 
외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해 알려주는 것도 좋았는데, 반대로 스페인에 대한 것을 한국인들에게 알려주는 것도 뿌듯하더라고요.”

유소년 축구팀 통역을 하며 번 돈으로 그녀는 2개월 과정의 계절 학기 수업을 들으며 스페인어 고급 자격증(DELE)을 땄다. 
한국에 돌아온 그녀는 별다른 준비 없이 통번역대학 시험에 도전했다가 실패를 맛본 후, 스페인에 대해 더 공부하고자 유럽연합학과가 있는 대학원에 들어갔다. 
대학원에 다니던 중 코트라(Korea Trade-Investment Promotion Agency : 대한 무역 투자 진흥 공사)의 인턴이 된 그녀는 스페인으로 가서 일하고 싶었지만 교수님의 제안으로 도미니카공화국으로 가게 되었다.

“중남미 지역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한번 가볼까?’하는 생각으로 도미니카에 갔어요. 
중남미 선수들 중에서도 스페인어를 쓰는 선수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중남미 국가에서도 축구나 배구 등의 스포츠를 잘해요. 
반 년 정도 인턴을 하며 무더운 날씨에 환경도 열악해서 힘들기도 했지만, 많은 것을 배웠어요. 
중남미에서의 경험을 쌓으니, 인턴을 다녀온 후 통역 일이 더 많이 들어왔어요. 
아직까지는 스페인보다 중남미와의 교류가 많아서, 그쪽 경험이 많으면 통역 일을 하는데 유리해요.”

베티 선수와 함께 살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챙겼어요

보라씨는 대학원에 다니던 중 지인을 통해 통역제의를 받았지만 학업문제로 거절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배구에서도 스페인어 통역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얼마 후 그녀가 졸업한 외대 홈페이지에서 베티선수의 통역을 구한다는 공지를 발견하고 지원을 했다.
그렇게 그녀와 베티선수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남자 선수에 비해 여자 선수는 예민한 편이어서 감정을 잘 조절해줄 필요가 있어요. 
단순히 언어만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보모나 엄마 같은 역할도 해줘야 해요. 
저는 베티와 아파트에서 같이 살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챙겼어요. 
아무래도 몸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음식이 중요했어요. 
베티가 새로운 음식은 잘 못 먹었고 한국음식 중에는 소갈비만 먹었어요. 
베티가 음식에 있어서는 좀 까다로운 편이었어요.
프로였기 때문에 세심하게 신경 썼던 것이었죠.”

베티 선수는 한국식 훈련을 지겨워하고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쉬지 않고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며 운동을 하는 선수였다. 
그런 베티 선수가 부상으로 힘들어했을 때 누구보다 걱정했던 사람이 바로 곁에서 늘 지켜보며 그녀의 이야기와 감정을 대변하는 보라씨였다. 
베티 선수가 좋은 성적으로 경기를 마무리하고 인터뷰를 하기 전에 부상으로 아픈 부위를 감싸 감았던 테이핑을 풀어버리는 모습을 보며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베티는 인터뷰 중에 자기 손가락에 대해서 물어볼 것 같아서, 다친 이야기를 하기 싫어서 테이핑을 풀었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프로의식이 있었어요. 
챔피언 결정전 때도 베티가 아파서 저를 필요로 할까봐 경기 내내 계속 베티만 보고 있거든요.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참고 경기에 임하는데 그 모습에 마음이 너무 짠했어요. 
경기가 끝나고 정말 이기고 싶었다며 울먹거리며 인터뷰하는 베티를 보는데 저도 눈물이 났어요. 
베티는 성격도 좋고, 성적도 좋았어요. 
아쉽게도 이제는 터키리그로 가서 지금은 너무 보고 싶어요.”

선수가 영향을 받기 때문에 통역사는 몸도 마음도 건강해야 해요

“시즌 중에 제가 감기에 한 번 걸린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난리가 났었어요. 
감기는 옮을 수가 있잖아요. 
핵심선수인 베티가 저와 얘기를 하다가 감기에 옮으면 큰일이었죠. 
그래서 베티에게 감기를 옮길까봐 1주일 동안 감기에 좋은 대추와 생강 등을 넣어서 차를 다려 마시고, 선수들에게도 돌리고 1~2주정도 그렇게 노력했었어요. 
그 때 ‘내가 아프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라씨는 선수에게 있어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선수만큼이나 통역사들의 건강관리가 중요하다고 했다. 
또한 통역사가 경기에 나가지 못하게 되면 외국인 선수와 감독이 대화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녀는 통역사라면 절대 아파서는 안 된다고도 말했다.

“스포츠 통역을 하려면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이 좋아요. 
애정이 있어야 빨리 배우거든요. 
처음부터 다 알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어요. 
처음엔 아예 모르는 상태에서 ‘멘 땅에 헤딩’하는 것이죠.
스포츠에 흥미가 없다면 지겨울 수가 있어요. 
매일 똑같은 훈련이 반복되고, 경기의 승패에 따라 선수들의 컨디션이 달라지거든요. 
그에 대한 스트레스도 엄청나요. 
이기면 정말 즐겁고 좋은데, 지면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모두가 다 우울하거든요. 
그게 저에게도 영향을 많이 끼쳐요. 
그래서 스포츠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그녀는 통역사가 긍정적인 기운으로 선수들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에 내성적인 성적이라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또한 외국선수와 대화도 중요하지만 팀 코칭스텝과의 교류 또한 중요하기 때문에 선수와 구단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고 그녀는 조언했다.

“성격적인 부분이 중요하기 때문에 스포츠 통역사를 뽑을 때 이왕이면 경험이 있는 사람을 뽑으려고 해요. 
이번 시즌에 여섯 개 여자팀 중에서 한 팀을 제외하고는 영어권에서 선수가 왔어요.
나머지 한 팀에 브라질 선수가 왔는데, 포르투갈어를 사용해요. 
포르투갈어는 스페인어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사실 완벽하게 같지는 않기 때문에 맞춰가야 할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도 그 팀에서 저를 통역으로 불러주시더라고요. 
마 경험이 있어서 일거예요.”

통역으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보라씨는 통역사가 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다. 
처음으로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게 한 농구선수 이상민, 스페인에서 만난 사람들까지 모두가 자신에게 멘토와 다름없다고 말하는 그녀는 한 가지 특별한 기억을 떠올렸다.

“기자들의 통역을 맡았던 저는 방송통신위원장님의 출장에 함께 한 적이 있어요. 
그 때 위원장님의 개인 통역사 분이 장관님, 대통령님, 위원장님을 통역하는 것을 봤어요.
위원장님이 안타깝다고 말하면 통역을 할 때 안타까운 표정으로, 기분 좋은 이야기를 하면 기분 좋은 톤과 표정으로 말하시는 거예요. 
누구나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더라고요.
통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본인의 생각을 말하는 것 같았어요. 
끝나고 사람들이 그 통역사 분에게 박수까지 쳐줬어요.
그 분을 보면서 ‘통역은 저렇게 말하는 사람의 감정까지도 전달하는 것이구나.’하고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식사 시간에도 통역을 해야 하는 통역사들은 밥을 제 때 먹지 못하여 초콜릿으로 끼니를 대신하기도 한다. 
그리고 목을 많이 쓰기 때문에 밤이 되면 목이 쉬어 항상 따듯한 물을 마시며 목을 관리해야 한다. 
그런 전문 통역사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통역사라는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지금도 통역사로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녀는 같은 고민을 하며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도 그 분처럼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통역사는 바다에 떠있는 두 개의 섬을 연결하는 다리인 것 같아요. 
다리가 없으면 갈 수가 없잖아요. 
이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뿌듯해요.”

꿈은 많을수록 좋으니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세요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스페인어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라든가 ‘제가 하고 싶은 꿈이 있는데, 스페인어가 도움이 될까요?’라는 질문을 자주 해요. 
둘 다 바보 같은 질문인 것 같아요. 
스페인어를 잘하려면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하죠. 
또한 이력서에 쓰기 위해 하는 공부라면 재미가 없어 실력이 늘지 않을 거예요. 
좋아서, 관심이 있어서 하는 공부가 결국 실력이 되죠. 
언어를 잘하고 싶다면, 언어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 나라와 문화에 관심을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아직 꿈을 찾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보라씨는 자신 역시 스포츠 통역사보다 더 적성에 맞는 일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 그녀에게 다양한 경험을 쌓는 일을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대학교 4학년 때 성적을 포기하고 떠난 스페인이었지만 지금도 후회가 없다는 그녀는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어릴 때는 원래 욕심이 많잖아요. 
의사가 되면 돈을 많이 벌 것 같고, 공무원이 되면 안정적일 것 같고, 통역하면 재밌을 것 같고 해보고 싶은 일이 많을 거예요. 
꿈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한 가지 일만 생각하며 사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아요. 
인생에서 실패를 경험했을 때, 나 아닌 누군가가 그 인생을 책임져 줄 수는 없어요.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세요.”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253&curPage=1

목록보기

교육부 한국직업능력연구원 국가공인 웹 접근성 품질인증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