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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분야

(애니매이션) 지금이 아니면 안 되기에 오늘도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장형윤 애니메이션 감독

TV에서 방영하는 유아용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부터 최근 큰 사랑을 받은 극장용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 이르기까지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통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그런 애니메이션이 한 편 완성되기까지 캐릭터를 만들고, 이야기를 구상하여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하며 애니메이션 작업의 모든 부분에 관여하여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2002년 <어쩌면 나는 장님일지도 모른다>로 데뷔한 장형윤씨는 <편지(2003)>, <아빠가 필요해(2005)>, <무림일검의 사생활(2007)>,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2013)>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며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지금이 아니면 안돼’라는 스튜디오 이름에 숨겨진 그의 좌우명처럼 하고 싶은 애니메이션을 하기 위해 지금껏 그는 쉼 없이 달려왔다.

정치외교 전공인데 문화, 예술 분야에 더 관심이 많았어요.

형윤씨는 초등학생 시절 <건담>(1979년 TV 아사히에서 최초로 방송되었던 로봇 애니메이션) 의 열렬한 팬이었다.
건담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었던 그의 취미는 건담을 그리는 것이었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그였지만, 그의 첫 번째 꿈은 애니메이션 감독이 아닌 사장님이 되는 것이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어려운 집안 형편을 극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중학생 시절 그의 목표였기 때문이었다.

“철이 들면서부터 집안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다른 친구들은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은데 우리 집만 그대로인 것 같았죠. 
가난한 환경에서 벗어나려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대학의 경영학과를 나와 사장님이 되기로 마음먹었죠.”

그는 경영학과 대신 비교적 점수가 낮은 정치외교학과에 지원했다.
정치외교학과는 생각보다 그의 적성에 맞는 편이었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공에 흥미를 잃었다. 
학과 동기들과 관심사가 다르다는 것은 그가 전공을 잘못 선택했음을 깨닫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렇게 그는 한 학기를 다니고는 휴학을 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전공은 정치외교였지만 예술분야 수업을 많이 들었어요. 
문화, 예술 쪽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미학>하고 <대중예술론>을 가르쳤던 박성봉 교수님이라고 계시는데, 그분 수업을 많이 들어서 지금도 대학 시절 선생님하면 그 분이 가장 먼저 떠오르죠.”

말 한마디의 마법에 이끌려 애니메이션을 다시 시작했어요.

정치외교학과를 휴학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던 형윤씨는 애니메이션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노량진에 있는 애니메이션 학원을 등록했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것과 비슷하게 다른 사람과 대화 없이 지루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해야 하는 학원 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그는 한 달 만에 학원을 그만뒀다. 
그는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한 채 군 입대를 했다. 
군 생활을 하던 중에 그는 자신의 꿈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 일이 있었다.

“군대에는 정훈장교라고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이 있어요. 
정훈장교가 군인들을 다 모아놓고 ‘여기 꿈이 있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라.’라고 하는 거예요. 
그 때는 제가 애니메이션을 계속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던 때였는데, ‘청춘이 꿈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냐.’는 말에 손을 들고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고 싶다고 말하게 되더라고요. 
그것을 제외하고는 달리 꿈이라고 말할 것이 없었어요.”

그는 말 한마디에도 마법의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꿈이 애니메이션 감독이라고 말하고 나니 그는 정말 전역 후 애니메이션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국내에서 매킨토시 컴퓨터로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던 전승일 감독을 찾아간 그는 그 분의 워크샵을 들으며 처음으로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애니메이션은 전부 필름카메라로 찍었어요. 
크기도 엄청 크고, 거의 1대 당 1억 8천정도 하는 고가의 카메라가 있어야 했죠.
그리고 필름을 현상해서 단편을 만들다보니 제작비가 3천~4천정도가 들었어요.
그러다가 98년~99년도 즈음에는 컴퓨터로 작업해서 비디오로 출력할 수 있어서 큰 비용 들이지 않고 혼자 창작할 수 있는 플랫폼이 갖춰지기 시작한 것이죠.”

워크숍에 참여하여 애니메이션을 배우고, 만드는 과정에서 그 재미를 알게 된 그는 취업을 포기하고 애니메이션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작품을 만든다고 바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아니었기에 한편으로 걱정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는 그보다도 자신에게 과연 애니메이션에 대한 재능이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더 컸다. 
그는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을 배우기 위해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갔다.

잘하고 싶은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으며 희열을 느꼈죠.

“한국영화아카데미는 대학이 아니라 영화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 같은 곳이에요. 
대학처럼 학점이나 졸업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죠.
동기들이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오는 사람들이다보니 만나면 항상 작품 이야기만 했어요.”

형윤씨는 한국영화아카데미를 다니며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배울 수 있었다. 
2년 동안 세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었는데, 작품을 완성시키자마자 다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촉박한 일정에도 그는 그곳에서의 시간이 즐겁기만 했다.

“어떤 일에 자신을 내던지고 싶은 욕망이 있던 그 때 저는 반드시 이루고 싶고, 제 자신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았던 것이죠. 
정말 잘하고 싶은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으면서 희열을 느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힘들었던 시기이기도 했는데,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제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이죠.”

스물일곱에 아카데미에 들어갔던 그보다 동기들은 서너 살이 많았다.
너나 할 것 없이 영화에 푹 빠져 열정을 쏟아내던 동기들 속에서 그의 열정 역시 뒤처지지 않았다.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이 애니메이션을
처음 시작할 때처럼 어려웠어요.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까지 그 과정이 굉장히 복잡한데, 보통 그림을 많이 그리고, 그림을 보며 재밌을 것 같은 이야기 여러 개를 생각을 해요. 
이야기에는 지금의 상황, 현실적인 문제도 반영되죠.”

2002년 <어쩌면 나는 장님인지도 모른다>를 시작으로 <아빠가 필요해>, <그 여자네 집> 등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들어온 형윤씨는 2013년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라는 제목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에 도전했다. 
초반에 2년 동안 투자를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던 그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으로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는데, 그 사이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단편 애니메이션을 작업하며 어느 정도 궤도에 다다랐다 싶었는데 장편은 또 다른 문제였죠. 
사실 처음에 애니메이션 시작 할 때만큼 혼란스럽고 힘들었어요. 
단편 애니메이션은 영화제를 통해 작가로서 예술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만, 보다 많은 대중들의 관심과 호응 더 나아가 상업적인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하죠. 
그러나 장편은 단편과 제작비 차원에서 그 차이가 매우 커서 시작 단계부터 어려움이 있습니다.”

디즈니, 픽사와 같이 큰 큐모의 애니메이션 회사의 경우 제작비가 천억인데, 국내 장편 애니메이션의 경우 마케팅 홍보비까지 포함하면 50억 정도가 든다고 한다. 
지금까지 전체 10억 정도의 예산으로 작품을 만들어왔다는 그는 투자를 받으면 그 만큼 이익을 내야 하기 때문에 투자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그는 극영화의 경우 한 해 평균 기획되는 영화가 천편, 제작이 되는 영화가 백편, 그 중에 개봉되는 영화가 90편 정도라고 했다.

“천 편 중에 열 편. 백에 하나 정도가 손익분기점을 넘고 그중에 세 네편 정도가 많은 돈을 버는 거예요. 
당연하게도 돈을 벌 수 있는 회사를 가지고 있는가, 제작이 가능한가, 배우를 캐스팅 할 수 있는가, 이 모든 것에 있어 투자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제작비를 투자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사실 투자자를 설득하는 일이 감독의 역할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모가 큰 픽사나 디즈니 같은 애니메이션 회사에서는 감독은 감독의 역할을 할 뿐이며, 테마파크 등 애니메이션 관련 사업을 함께 진행하기 때문에 한 두 작품이 망한다고 회사가 큰 타격을 입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정은 다르다. 
감독이나 제작사 사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방황 후에 시작해도 늦지 않아요.

“감독에게 있어서 그림 실력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느냐’에요. 
작품에 대한 명확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고, 그 세계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사람이 감독이 되어야겠죠. 
물론 감독이 그 세계의 모든 것을 그림으로 그려야 되는 건 아니에요.
애니메이션은 혼자 하는 직업이 아니니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랑 같이 일하면 되죠.”

형윤씨는 정치외교를 전공했던 자신이 감독이 되었듯이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전공이나, 그림실력은 아니라고 했다. 
만,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뭐든지 어렸을 때부터 남들보다 빨리 배워야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조기교육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길 때 시작해야 오래 일할 수 있죠. 
애니메이션은 바이올린이나, 피겨처럼 어린 나이부터 훈련이 되어야 하는 일과는 달라요. 
열 몇 시간씩 계속 앉아서 해야 하는 일인데 너무 일찍시작하면 그만큼 금방 질리게 되겠죠.”

형윤씨는 쉽게 흥미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충분히 경험하고, 방황한 후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애니메이션은 오래 해야 잘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열심히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으면 실력도 빨리 늘게 되는 일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첫 장편 애니메이션을 끝내고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였던 <아빠가 필요해>를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자 준비 중에 있다.

“<아빠가 필요해>는 소설 쓰는 늑대가 여섯 살 여자아이를 키우게 되는 그런 내용이에요. 
앞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 상업적으로 성공도 거두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상업적이라는 것이 특별한 의미가 아니에요.
좀 더 대중적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268&cur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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