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필름을 현상해서 단편을 만들다보니 제작비가 3천~4천정도가 들었어요.
그러다가 98년~99년도 즈음에는 컴퓨터로 작업해서 비디오로 출력할 수 있어서 큰 비용 들이지 않고 혼자 창작할 수 있는 플랫폼이 갖춰지기 시작한 것이죠.”
워크숍에 참여하여 애니메이션을 배우고, 만드는 과정에서 그 재미를 알게 된 그는 취업을 포기하고 애니메이션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작품을 만든다고 바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아니었기에 한편으로 걱정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는 그보다도 자신에게 과연 애니메이션에 대한 재능이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더 컸다.
그는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을 배우기 위해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갔다.
잘하고 싶은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으며 희열을 느꼈죠.
“한국영화아카데미는 대학이 아니라 영화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 같은 곳이에요.
대학처럼 학점이나 졸업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죠.
동기들이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오는 사람들이다보니 만나면 항상 작품 이야기만 했어요.”
형윤씨는 한국영화아카데미를 다니며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배울 수 있었다.
2년 동안 세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었는데, 작품을 완성시키자마자 다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촉박한 일정에도 그는 그곳에서의 시간이 즐겁기만 했다.
“어떤 일에 자신을 내던지고 싶은 욕망이 있던 그 때 저는 반드시 이루고 싶고, 제 자신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았던 것이죠.
정말 잘하고 싶은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으면서 희열을 느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힘들었던 시기이기도 했는데,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제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이죠.”
스물일곱에 아카데미에 들어갔던 그보다 동기들은 서너 살이 많았다.
너나 할 것 없이 영화에 푹 빠져 열정을 쏟아내던 동기들 속에서 그의 열정 역시 뒤처지지 않았다.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이 애니메이션을
처음 시작할 때처럼 어려웠어요.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까지 그 과정이 굉장히 복잡한데, 보통 그림을 많이 그리고, 그림을 보며 재밌을 것 같은 이야기 여러 개를 생각을 해요.
이야기에는 지금의 상황, 현실적인 문제도 반영되죠.”
2002년 <어쩌면 나는 장님인지도 모른다>를 시작으로 <아빠가 필요해>, <그 여자네 집> 등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들어온 형윤씨는 2013년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라는 제목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에 도전했다.
초반에 2년 동안 투자를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던 그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으로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는데, 그 사이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단편 애니메이션을 작업하며 어느 정도 궤도에 다다랐다 싶었는데 장편은 또 다른 문제였죠.
사실 처음에 애니메이션 시작 할 때만큼 혼란스럽고 힘들었어요.
단편 애니메이션은 영화제를 통해 작가로서 예술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만, 보다 많은 대중들의 관심과 호응 더 나아가 상업적인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하죠.
그러나 장편은 단편과 제작비 차원에서 그 차이가 매우 커서 시작 단계부터 어려움이 있습니다.”
디즈니, 픽사와 같이 큰 큐모의 애니메이션 회사의 경우 제작비가 천억인데, 국내 장편 애니메이션의 경우 마케팅 홍보비까지 포함하면 50억 정도가 든다고 한다.
지금까지 전체 10억 정도의 예산으로 작품을 만들어왔다는 그는 투자를 받으면 그 만큼 이익을 내야 하기 때문에 투자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그는 극영화의 경우 한 해 평균 기획되는 영화가 천편, 제작이 되는 영화가 백편, 그 중에 개봉되는 영화가 90편 정도라고 했다.
“천 편 중에 열 편. 백에 하나 정도가 손익분기점을 넘고 그중에 세 네편 정도가 많은 돈을 버는 거예요.
당연하게도 돈을 벌 수 있는 회사를 가지고 있는가, 제작이 가능한가, 배우를 캐스팅 할 수 있는가, 이 모든 것에 있어 투자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제작비를 투자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사실 투자자를 설득하는 일이 감독의 역할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규모가 큰 픽사나 디즈니 같은 애니메이션 회사에서는 감독은 감독의 역할을 할 뿐이며, 테마파크 등 애니메이션 관련 사업을 함께 진행하기 때문에 한 두 작품이 망한다고 회사가 큰 타격을 입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정은 다르다.
감독이나 제작사 사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방황 후에 시작해도 늦지 않아요.
“감독에게 있어서 그림 실력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느냐’에요.
작품에 대한 명확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고, 그 세계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사람이 감독이 되어야겠죠.
물론 감독이 그 세계의 모든 것을 그림으로 그려야 되는 건 아니에요.
애니메이션은 혼자 하는 직업이 아니니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랑 같이 일하면 되죠.”
형윤씨는 정치외교를 전공했던 자신이 감독이 되었듯이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전공이나, 그림실력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뭐든지 어렸을 때부터 남들보다 빨리 배워야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조기교육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길 때 시작해야 오래 일할 수 있죠.
애니메이션은 바이올린이나, 피겨처럼 어린 나이부터 훈련이 되어야 하는 일과는 달라요.
열 몇 시간씩 계속 앉아서 해야 하는 일인데 너무 일찍시작하면 그만큼 금방 질리게 되겠죠.”
형윤씨는 쉽게 흥미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충분히 경험하고, 방황한 후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애니메이션은 오래 해야 잘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열심히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으면 실력도 빨리 늘게 되는 일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첫 장편 애니메이션을 끝내고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였던 <아빠가 필요해>를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자 준비 중에 있다.
“<아빠가 필요해>는 소설 쓰는 늑대가 여섯 살 여자아이를 키우게 되는 그런 내용이에요.
앞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 상업적으로 성공도 거두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상업적이라는 것이 특별한 의미가 아니에요.
좀 더 대중적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