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 인터뷰

여러 분야의 진로∙직업 전문가와 사회 각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분들의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직업 세계를 확인하고 진로선택 방법을 알아보세요.

커리어패스

과학분야

(과학) 원효대사의 눈물까지 복원하고 싶다”

한국문화기술연구소
박진호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선임연구원

2013년 11월, 세계 4대 박물관인 미국 뉴욕시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황금의 나라, 신라’를 주제로 특별전시가 열렸다. 
전시회를 방문한 외국인들은 한 전시물 앞에서 발길을 자주 멈췄다. 
신라 문화의 정수, 경주 석굴암이었다. 
UHD TV에서 3차원 입체영상으로 복원한 석굴암이 흘러나오자 곳곳에서 탄성이 나왔다. 
전시회가 열린 108일 동안 무려 20여 만 명이 석굴암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돌아갔다.

석굴암을 3차원(3D)으로 복원한 주인공이 박진호(41) 한국문화기술 연구소 선임연구원이다. 
그는 “문화재의 디지털 복원 작업에 뛰어든 15년 역사를 통틀어 뉴욕 전시는 최고의 경험”이라며 “외국인들이 석굴암을 보며 감탄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한다. 
그의 말에는 4분짜리 짧은 영상 안에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생생히 담아냈다는 자부심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디지털 문화재 복원전문가다. 
황룡사 9층 목탑, 백제 무령왕릉,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등 국내외 중요 문화재를 디지털 영상으로 복원해 왔다. 
불에 탄 숭례문을 복원할 때도 그의 역할이컸다. 
원형이 사라진 유산은 주춧돌이나 기와처럼 남은 유물에서 실마리를 잡아 가상현실에 3차원으로 복원한다. 
실제 유적을 복원할 때 이런 디지털 복원 영상이 큰 도움이 되곤 한다.

9월 3일 서울 동대문에 위치한 K-POP 홀로그램 콘서트장에서 그를 만났다. 
빅뱅과 2NE1, 싸이 등 한류 스타들의 홀로그램 공연을 보러 온 내·외국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대전에서 공연을 보기 위해 올라왔다는 박 연구원은 풍채도 좋고 에너지가 넘쳤다. 
“이제는 문화재도 한류의 시대입니다.” 
그는 K-POP 콘서트처럼 우리 문화재도 홀로그램 기술을 통해 전 세계로 퍼트릴 꿈을 갖고 있었다.

땅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라

“어릴 때는 뉴턴을 꿈꿨어요.” 
박 연구원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뉴턴의 전기를 읽고 깊게 감명 받았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과학사에 없던 새로운 길을 개척한 사람, 뉴턴은 어린 그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뉴턴이 발견한 물리학 법칙을 이해하는 건 아니었지만 뉴턴처럼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는 책을 많이 읽었다. 물리, 생물, 천문학 등 자연과학뿐 아니라 기술과 예술, 음악, 인문과학 전 분야에 걸쳐 약 1500여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독서광’이다. 
박 연구원의 아버지는 ‘땅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국영수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학교생활에는 잘 적응하지 못했지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할 때였다.

부모님은 그에게 특별히 뭘 하라고 강요하지 않으셨다. 
의사가 되라, 변호사가 되라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셨다. 
덕분에 학교 공부에 얽매이지 않고 지적인 탐구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맞는 적성이 무엇인지도 발견했다. 
그는 지금 일이 적성에 맞느냐는 질문에 “확실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여러 사람을 만났지만 자신의 적성을 이렇게 단호히 확신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자신의 삶에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다.

어릴 때 가졌던 다양한 방면에 대한 관심은 지금 현재 문화재를 복원하는 일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문화재를 복원하려면 만들어질 당시의 역사와 생활상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화재를 복원한다는 건 단순히 건축물을 복원하는 게 아니에요. 
당시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 문화재를 무슨 생각으로 만들고 이용했는지 알아야 해요. 
결국 문화와 사람에 대한 이해입니다.” 
역사책만 보고서는 결코 문화재를 제대로 복원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원효대사가 황룡사에서 왕과 신하 등 천 명을 모아놓고 법문을 했는데, 사람들이 감동을 해서 모두 눈물을 흘렸대요. 
얼마나 법문을 잘 했으면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을까요. 
그때 황룡사에 모인 대중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런 장면을 복원하는 게 진정한 복원입니다. 
황룡사 ‘9층 목탑 건물’을 복원하는 건 핵심이 아니에요.”

그는 문화재 복원이 “사람들을 타임머신에 태워 과거로 돌려보내는 작업”이라고 표현했다.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력과 창의력을 더해 1500년 전 벌어졌던 일을 체험하게 하는 것. 컴퓨터 기술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문화재 디지털 복원은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분야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독서를 하면서 간접경험을 하고,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직접 경험하면 돼요. 
기술은 대학과 대학원에 와서 배우면 돼요.”

컴퓨터로 복원한 ‘노아의 방주’

그가 디지털 문화재 복원전문가의 길을 걸어간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젊은 시절 대만에서 유학하며 중국 문화에 심취하셨다. 
박 연구원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중국의 역사나 전설을 들으면서 우리나라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품게 됐다. 
버지는 공학에도 관심이 많으셨다. 
지금으로 치면 ‘문·이과 융합 인재’였던 셈이다. 
덕분에 박 연구원도 폭넓게 지식을 접할 수 있었다. 
인류의 기원과 진화를 다룬 인류학자 리차드 리키의 고전 ‘오리진(Origin)’
을 고2 때 읽었다.

뉴턴처럼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했던 어린 시절 꿈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현실이 됐다. 
문화인류학으로 전공을 결정한 박 연구원이 디지털 복원이라는 생소한 영역에 눈을 뜬 건 대학교 3학년 때였던 1993년, 대전엑스포에서 ‘노아의 방주’ 컴퓨터 복원작업에 참여하면서 부터다.

당시 한국해사기술연구소는 노아의 방주를 가상으로 만들고 안전성능을 실험해 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방주의 외형이나 구조에 대한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다. 
박 연구원은 성경에 적힌 방주의 규격(길이 135m, 너비 22.5m, 높이 13.5m)과 터키의 고고학적 기록을 바탕으로 3D 디지털 설계도를 만들었다. 
연구소에서는 이를 토대로 50분의 1 크기 축소모형을 만들었는데, 실험 결과 높은 파도와 빠른 조류에서도 안전성을 보였다. 
그는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전설이 눈앞에서 현실이 된 것이다.

그가 기뻐했던 건 구약성서에 적힌 내용을 증명했다는 ‘종교적인 열정’ 때문은 아니었다. 
고고학적인 기록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봤기 때문이었다. 
“과거 사람들은 종교적인 열망으로 사원 같은 문화유적을 많이 만들었지요. 
지금도 그런 열망을 가진 채 복원에 욕심내는 사람들이 있고요. 
그걸 이해하긴 하지만 복원할 때는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종교도 하나의 문화현상이나 고고학적 기록으로 보고요.”

대학을 졸업한 1999년에는 신라의 불국사를 디지털로 복원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건축, 미술, 정보통신 분야의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독학을 했다. 
2000년부터 신라시대 경주의 모습을 3차원으로 복원하는 일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고고학과 기록보존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일하면서 ‘디지털 복원전문가’라는 새 길을 본격적으로 개척하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탈레반 정권이 파괴했던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석불을 디지털로 복원하는 데 성공한다. 
이어 2003년 고구려 고분벽화 안악3호분, 2004년 고구려 평양성 안학궁, 2005년과 2006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2007년 개성 고려왕궁 만월대,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석굴암에 이르기까지 그의 노력이 담기지 않은 것이 없으며 신라 황룡사와 사마르칸드 아프라시압 궁전벽화 등 그가 복원한 문화재 상상도는 국사 교과서에 6개나 실려 있다.

‘명량’ 다음은 ‘황룡사’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디지털 복원작업을 산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 봤다. 
“영화 ‘명량’을 본 관객이 1800만명을 넘었잖아요. 
영화에 나오는 판옥선이나 안택선도 일종의 디지털 복원작업을 통해 탄생한 겁니다. 
제가 황룡사를 디지털로 복원했는데, 나중에 영화의 가상 세트장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만약 김한민 감독 같은 분이 ‘황룡사’라는 영화를 만든다면 말이죠.” 
그는 앞으로의 역사 교육이 텍스트를 넘어서 시각화로 갈 것이라 진단했다. 
선덕여왕이 다스렸던 시기를 국사 교과서에서는 한 줄 글로 적고 있지만, 디지털 복원에서는 황룡사 9층 목탑을 만드는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다.

제2의 한류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석굴암 디지털 전시가 대표적이다. 
그는 우리 문화재들을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전시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더 나아가 세계 문화유산들을 디지털로 복원해서 세계가 공유하는 일도 꿈꾼다. 
과거 한때 위대한 문명을 이뤘지만 지금은 폐허만 남은 유적이 전 세계에 수없이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네팔 등 개발도상국의 유적들은 복원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 문화기술전담 연구기관인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선임연구원 자격으로 이런 나라를 찾는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세계 최대 불교사원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드르 사원을 디지털 기술로 복원했다. 
2년 뒤에는 사원 전체를 복원할 계획이다.

박 연구원은 해외 문화유산을 복원할 때는 현지 학자들과 함께 작업하며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나중에 자신이 떠나도 스스로 자신의 문화유산을 디지털로 복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그의 목표다. 
디지털 복원기술도 ‘한류(韓流)’의 일종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드라마나 노래, 영화만 한류가 아닙니다. 
이렇게 문화를 대하는 자세와 기술 역시 한류가 될 수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 직업을 선택하겠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사람답게 그 역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기에는 어떤 작업이 실현 가능할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연구비를 받기 위해 정부에 제출하는 제안서 10개 중에 절반은 떨어졌다. 
지금은 노하우가 생겨서 시행착오도 많이 줄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한 덕분에 고생은 많았지만 그만큼 보람도 많았다. 
얼마 전 특강 중에 인도네시아 학생에게 “보로부드르 사원을 복원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듣고 박 연구원은 큰 감동을 느꼈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 직업을 선택할 겁니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112&curPage=1

목록보기

교육부 한국직업능력연구원 국가공인 웹 접근성 품질인증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