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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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 꿈이 없었지만 이제는 요리를 통해 좋은 사회를 꿈꿔요

오가니제이션
한영미 오가니제이션

홍대앞에 자리한 한식 레스토랑 ‘카페 슬로비’는 건강한 슬로푸드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이 레스토랑은 평범한 가게가 아니다. 
사회적 기업 ‘오가니제이션’이 운영하는 곳으로 그저 음식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요리를 통해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는 한영미 씨를 만났다.

요리를 통해 청소년들을 직업인으로 키워내요

한영미 씨는 사회적 기업 ‘오가니제이션’을 경영하면서 ‘요리를 통한 사람의 성장’을 지향한다. 
구체적으로는 ‘청소년의 성장’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과정을 만드는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대표적인 사업은 ‘영셰프스쿨’로 청소년을 위한 요리대안학교다. 
주5일 나와서 요리를 하고, 식당을 직접 운영하고, 전문 셰프가 와서 수업도 한다. 
요리뿐 아니라 인문소양 교육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다.

우선 처음 1년 과정은 트레이닝을 하는 기간이다. 매일 한식 요리를 하고 저녁에는 일식 등 여러 전문적인 요리를 배운다. 
그러고 나서 2년 차가 되면 본인이 진로를 정해서 인턴십을 나갈 수도 있고 대학에 가는 경우도 있다. 
바로 취업을 해야 되는 급박한 아이들은 현장과 바로 연결을 시켜준다.

단순한 요리학교가 아니라 대안학교인 이유는 단순히 요리를 가르치는 데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요리를 배운 후 진출할 현장들을 고민한다. 
특히 인턴십은 무척 중요하다. 
현장에서 체득해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해보고 싶을 수도 있다. 
이렇게 스스로 느껴 공부하면 학습효과는 훨씬 더 높은데 막연히 남들 가는 방식대로 갔을 때는 시간을 소모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사실 우리나라는 많은 직업교육이 있고 취업률도 높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이 6개월 안에 그만둔다고 한다. 
직업에 대한 인식이 약하고, 자존감이 낮아 치열한 현장에서 견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외식업은 무척 터프한 현장이다. 
주방은 칼과 불을 쓰는 데기 때문에 엄격할 수밖에 없는 조직 문화가 있다. 
이런 환경에서 자존감이 있고, 진짜 요리사가 되겠다는 의지가 강한 아이들은 어떻게든 제대로 해내려고 하는데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튕겨져 나가기 너무 쉬운 조건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도움을 주고 안정감 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카페 슬로비라는 일터를 만들었다.

실제로 요식업은 매우 힘든 업종이다. 그래서 이 진로를 택하더라도 계속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서 오가니제이션은 취업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계속 그 일을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점을 고민한다. 
그러려면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족 같고 커뮤니티 같은 일터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의 삶을 계속 붙들어주고 지속가능하게 해주는 관계가 이루어지는 일터가 필요하다.

사람이 직업을 갖는 데 있어 관계는 무척 중요하다. 
실제로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일 자체보다는 인간관계에서 온다. 
오가니제이션은 직업을 기술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성장을 독려해주고, 자존감을 높여주면서 일하는 방법도 정확하게 알려주는 일터를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카페 슬로비가 탄생했다. 
동시에 이곳을 통해 식재료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더불어 사는 사회를 꿈꾸는 카페 슬로비

카페 슬로비는 홍대 앞에서 2011년에 오픈했다.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어가며 제주 지점을 2013년에 오픈했고 성북점도 9월에 오픈한다. 
소년들이 일할 곳이 늘어나야 청소년들이 진출할 수 있는 현장들이 더 많이 생긴다. 
뿐만 아니라 농가들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추가로 가능한 일터를 늘리고 있다. 
이런 구조를 만들면서 오가니제이션은 외식업의 대안적인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더 나아가서 사회적 경제 생태계라고 볼 수 있다.

‘슬로비’는 ‘슬로우어 벗 베러 워킹 피플(slower but better working people)’의 줄임말이다. 
느리지만 자기 일을 훌륭하게 해내는 사람을 뜻한다. 
도시 사람들은 너무나 속도에 묻혀서 계속 앞만 보고 달린다. 
러나 한번쯤은 멈춰서 뒤를 돌아보고, 내 가족이나 영혼, 친구, 동료들이 나와 같이 가고 있는지를 보자는 의미다.

슬로비의 로고는 얼굴 옆모습이다. 
이 또한 슬로비라는 이름과 의미를 같이한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황야를 달리다가 한 번씩 멈춰 말에서 내려서 자기가 달려온 곳을 응시한다고 한다. 
혹시 내가 너무 빨리 달려서 내 영혼이 나를 못 쫓아온 건 아닌가 해서 그 영혼을 기다려주는 배려라는 것이다.

카페 슬로비의 출발은 장사보다 사람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식재료도 정직하게 신선한 재료를 쓴다. 
누구의 농산물인지, 어떤 얼굴을 가진 농부의 농산물인지를 아는 거래들을 시작하면서 신뢰를 통해 거래를 확대한다. 
그런 식으로 농부와의 관계, 지역과의 관계들을 넓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직거래다.

영미 씨는 그런 관계망들도 다 우리의 삶을 지속하게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삶을 지속한다는 것은 이렇게 얽혀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조금씩 도와주면서 지속가능한 삶을 만드는 것이다.

요즘 친환경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유기농을 먹는다고 친환경적인 삶이 아니라 전체적인 삶 그 자체의 문제라고 영미 씨는 말한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생각하고 식재료도 우리 로컬 푸드를 사용한다. 
이런 것들이 곧 우리 삶을 회복시킨다.

왜 꿈을 강요하죠? 전 꿈이 없었어요

영미 씨는 어렸을 때 꿈이 없었다고 한다. 
꿈이 뭔지도 모르고, 있어야 하는지도 몰랐단다. 
그저 무척이나 평범했던 일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때는 꿈과 직업을 혼동하는 경우들이 많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꿈을 써내야 했는데 아이들은 당연한 듯이 직업을 썼다. 
선생님들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한번은 꿈을 써내는 게 아니라 학급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 시간도 있었다. 
꿈이 뭔지 얘기를 하라는데 꿈이 없으니까 할 얘기가 없었다. 
런데 대답을 강요받으니까 무척 피곤하다고 느꼈다.

“저는 아이들한테 너는 꿈을 가지라고 요구하고 강요하는 것도 굉장히 스트레스고 폭력인 것 같아요.”

꿈이 없어도 된다. 
꿈은 나중에 생길 수도 있고, 그냥 편하게 생각했으면 한다. 
영미 씨는 학창시절에는 친구들과 잘 놀고, 잘 사귀며 좋은 관계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영미 씨는 공부를 참 못했다고 한다. 
집에서는 상업고등학교에 가라고 했다. 
영미 씨의 아버지는 굉장히 실용적인 사람이어서 고등학교만 마치면 직업을 가지고 가정에 보탬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영미 씨에게도 상업고등학교에 가고 미싱을 배우라고 했다. 
그때는 그게 너무 싫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미싱을 배웠으면 좋았을 것 같다.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빛나는 일인 거예요.”

대학을 가려고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가정형편이 안 좋았지만 먼 친척이 미술학원을 해서 저렴하게 다닐 수 있었다. 
그것도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다녔다. 
당연히 대학은 잘 못 갔다. 
여러 번 떨어졌다. 
속 대학에 떨어져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는 대학 밖에 길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암울한 시기였다. 
다른 길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몇 백만 원을 남겨주셨다. 
그걸 가지고 화실을 차려서 운영하면서 대학을 다시 준비했다. 
마침내 대학에 붙고 그 화실은 접었다. 
대학 생활을 마음껏 즐겼다. 
우연찮게 학생회 일을 했고 거리미술전 같은 것도 몇 년 동안 계속 기획했다.

하자센터가 일생일대의 전환점이었어요

영미 씨는 미대를 졸업하고 좀 그럴듯한 직업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기획하는 일이 재미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학교 다닐 때 거리 미술제 같은 것을 기획하면서 능동적으로 움직이면서 하는 일들이 맞다는 것을 느꼈다. 
미술을 배웠으니 직업적으로도 그럴듯하면서도 무언가를 기획할 수 있는 일을 찾았는데 그 때 눈에 띈 것이 큐레이터였다. 
큐레이터가 되자고 마음먹고 대학원에서 관련된 공부도 시작했다.
그런데 너무 재미가 없었다. 
실제 큐레이터의 일은 무척 학문적이라 현장하고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너무 생동감이 없다고 느꼈다.

영미 씨는 자신에게는 생동감 있는 일이 맞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래서 대학원을 그만두고 미술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일들을 했다. 
민족미술협회도 잠깐 있었고, 여성문화예술기획이라는 단체에서도 활동했다.
그러던 중 여성계의 대모급인 조한혜정 교수님이 하자센터에서 창의적인 실험을 할 만한 사람을 찾았고 영미 씨가 추천을 받았다. 
이때 하자센터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하자센터는 서울 시립 청소년 직업체험센터다.

“하자센터가 결국 일생일대의 전환점이었죠.”

조한혜정 교수님은 영미 씨에게 훌륭한 멘토가 되었다. 
그런데 사실영미 씨는 청소년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교육에 뜻도 없었다.
그래서 중간에 그만둔 시기도 있었다. 
자신의 진로를 다시 한 번 방황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뭔가 시도해볼 수 있는 가능성들과 기회들이 열려 있는 하자센터의 매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영미 씨는 자신이 그런 것을 즐기고 아이들하고 같이하는 것이 즐겁다면 자신은 교육마인드가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다.
그래서 2년 만에 다시 하자센터로 돌아갔다. 
2005년이었다.

다시 돌아가서는 운영부에서 일했다. 
1년 반 정도 후에는 다시 기획일로 넘어갔다. 
하자센터에서 기획을 하면서 10대 창업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하고 스낵바 창업 같은 것도 했다. 
그런데 창업 실험들을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계속 실험에 그치고 지속가능하지 않았다. 
흉내내보다가 끝나는 것이었다. 
그런 점들을 같이 고민하면서 ‘하자마을 만들기’도 진행했다. 
하자마을이라는 커뮤니티를 구상해보는 것이다. 
그러던 중 하자마을에 회사가 있다면 사회적 기업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사회적 기업을 인큐베이팅 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2007년에 오가니제이션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독립했다. 
그러나 영셰프스쿨은 여전히 하자센터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또 하자센터와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교육적 협력을 계속하고 있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져요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지혜 중에 그런 게 있대요. 
만 번 이상을 말하면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내가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을 계속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게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영미 씨는 이 얘기를 듣고 나서 직접 시도해봤다. 
하고 싶은 일을 수도 없이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랬더니 정말 이루어졌다. 
카페 슬로비를 만드는 것도, 제주도점을 낸 것도, 모두 말한 대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항상 주문을 외운다. 
이야기를 하면 자기가 말한 것을 거짓말로 만들지 않기 위해 더 노력하게 된다. 
또 그걸 듣는 사람들이 이런 거 있어요, 저런 거 있어요, 하면서 정보를 주고 자원을 연결시켜주기도 한다. 
내 꿈을 소문내야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영미 씨는 소셜 프랜차이즈를 꿈꾼다. 
기존의 프랜차이즈는 착취 구조가 많다. 
그런데 소셜이라는 말이 붙으면 공생 관계의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농가도 먹고 살고, 고객들, 소비자들의 건강도 음식을 돌보고 커뮤니티를 지향한다. 
외식업자로서 이 모든 관계들을 연결시키면서 청소년들을 직업인으로 키워내고 착한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이를 더 확대 생산해내는 것.

이제까지 일일이 손으로 만들었다면 이제는 이 경험들을 자산으로 확산시키고자 한다. 
가능성을 봤고, 자신감도 좀 더 생겼다. 
이 컨셉을 더 확대시키면 조금 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쉽지 않은 외식업,
많이 도전해보고 관계를 소중히 여기세요

‘카페나 할까’라는 식으로 외식업에 대한 환상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쉽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영미 씨는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시작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영미씨 같은 경우에는 교육문화사업을 한 것이 근거도 되고 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키워내기 위해 이 일을 하기 때문에 맹목적이지 않다. 
만약 모든 걸 다 걸고,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만 했다면 자존감도 떨어지고 금방 지쳤을 거라고 한다. 
돌아오는 경제적 보상이 생각처럼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요리사를 비롯해 외식업에서 일한다는 것은 무척 고된 일이다.
노동 강도가 높고 시간도 길지만 보수는 적은 편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기대할 수 없다. 
남들 외식할 때 일해야 한다. 
그렇게 보면 무척 우울한 직업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직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바로 직업의식이다. 
그래서 이 일을 계속한다. 
고되지만 계속하는 것, 직업인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어려운 일들을 스스로 극복해낼 수 있을 정도로 단련이 된 사람들.

“좋아하는 일을 해야 되고요. 그리고 그 좋아하는 일이 반드시 직업이 되지는 않을 수 있어요.”

영미 씨는 이렇게 조언한다. 
직업은 잘해야 한다. 
그런데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 그런 것들을 찾아보고 부단히 시도해보는 것이 좋다. 
그렇게 도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좋아하면서도 잘 할 수 있는 일이 찾아진다.

그리고 작고 소박하게 무언가를 세상에 이로운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래서 좋은 관계들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주변에 항상 사람이 있는 사람은 뭔가 실패해도, 크게 좌절하지 않을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사실 거기서 더 큰 걸 얻게 된다. 
작은 것을 얻으려고 하고 가지려고 하면 진짜 얻고자 하는 걸 얻지 못한다. 
얻고자 한다면 얻고자 하지 마라. 
작고 소박하게, 좋은 사람들과 지금 즐거운 일을 좋은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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