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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스포츠 분야의 YG를 꿈꾸다


안희욱 스킬트레이너

스킬트레이너는 엘리트 농구 선수를 대상으로 수치적 통계와 영상 분석,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을 통해 그들의 개인기량을 향상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안희욱씨가 자신의 특기를 살려 창업하기 전까지 스킬트레이너라는 직업은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직업이었다.

스킬트레이너는 일종의 농구 기술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희욱씨의 경우 자신의 특기인 드리블을 선수들에게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생활체육을 전공한 그는 농구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3학년때 농구를 시작한 후로 단 한 번도 농구에서 멀어진 적이 없었다.

농구는 제게 종교나 다름없었어요

“어렸을 때 제 꿈은 ‘피구왕 통키’가 되는 거였어요. 
피구를 잘하는 사람이 최고로 인기가 많았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러다 우연히 TV에서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을 보게 됐는데 그 때부터 농구선수로 꿈이 바뀌었죠.”

희욱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생 형들과 어울려 농구를 하고 싶어 했다. 
자신들을 이기면 농구를 함께 해도 좋다고 조건을 내거는 대학생 형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는 매일 드리블 연습을 했다. 
이제는 그의 특기가 된 드리블 능력은 초등학생 때부터 이어져온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였다.

“요즘은 온라인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지만, 그때는 농구를 통해서 많은 사람을 사귈 수 있었어요. 
어디를 가도 공하나만 있으면 금방 친해졌거든요. 
농구가 소통의 수단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도 투어를 계속 하고 있어요.”

열 살에 농구를 시작한 그는 일찍부터 농구와 관련된 일을 했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나이키와 같이 일을 하며 이벤트나 기업의 프로모션 일을 했다. 
농구를 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아 공부에는 소홀할 만도 했지만, 그는 중고등학교 때 반에서 항상 3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도 열심히 했다. 
공부를 못하면 학교에 공을 가지고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밥을 먹을 때도, 영화를 볼 때도, 심지어 수능날까지도 농구공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클린샷을 넣으면 시험을 잘 볼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는 시험 전 날에도 농구를 했다. 
농구는 그에게 있어 종교와 다름 없었다.

“학창시절 매일 농구공을 들고 다니는 저를 보며 친구 부모님들이 ‘너희 아들 공부 못하지?’ 라고 부모님께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아! 내가 하고 싶은걸 자신 있게 하려면 공부도 잘해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그 때부터 부모님이 안 좋은 이야기를 듣지 않으시도록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농구와 관련된 새로운 직업을 만들고 싶었어요

희욱씨가 스킬트레이너로서의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자신의 자녀에게 드리블 기술만 가르쳐달라는 농구 국가대표 출신의 제안을 받으면서였다. 
드리블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그는 트레이닝을 시작하기 전에 자료를 찾던 중 NBA(미국 프로 농구 협회)에서는 이미 스킬트레이닝이라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대학에 다니며 스킬트레이너로 창업을 했다. 
그는 국가지원 프로그램 ‘청년창업 1000’을 신청하여 정부에서 8,000만원 정도를 지원받았고, 챌린지 1000을 신청하여 전문가들 분들 도움도 받았다.

“저는 취업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제가 생각하는 직업군을 만들고 싶었죠. 
선수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는데, 거절했어요. 
구가 좋았던 것이었지, 농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거든요. 
저 농구를 즐기고 싶었습니다. 
선수들은 제가 부럽다고 하더군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같이 올라온, 항상 같은 사람들과 농구하는 선수들과는 달리 저는 매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농구를 하니까요.

직원 없이 혼자 운영하던 회사는 그의 군 입대로 인해 폐업을 피할
수가 없었다. 군 전역 후 대학을 졸업한 그는 2년 정도 스포츠 미디어 회사에서 일을 했다.
지금 그는 그때 배웠던 것을 활용하여 직접 촬영, 편집한 영상을 제작하며 농구를 콘텐츠화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스포츠와 미디어가 만나면 그 파급력이 커지기 마련이죠. 
우리나라는 대부분 스포츠가 하이라이트 영상만 있고, 특정선수의 영상이 따로있진 않거든요. 
외국 콘텐츠의 경우 일반 화질의 영상이 아니라, 뮤직비디오처럼 만드는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 트레이닝 하는 선수들의 영상을 뮤직비디오처럼 만들어 콘텐츠화 하고 있습니다.
2년간 미디어 회사에 있었던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되고 있죠.”

자금을 마련하고 자료를 모으며 창업을 준비하는데 3년이 걸렸죠. 
희욱씨는 함께 행사를 하며 평소 친분을 유지했던, 형의 초대를 받았다. 
그를 자신의 작업실로 초대한 사람은 ‘쇼미더머니’에 출연하기도 했던 킹콩이라는 랩퍼였다.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무명으로 지내면서도 즐겁게 일하고 있는 형을 보며 그는 자신도 즐겁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창 직장생활을 하며 반복적인 업무에 지루함을 느낄 무렵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바로 포스트잇에 ‘힙후퍼 안희욱’이라고 쓰고는 눈에 잘 띄는 책상 한 쪽에 붙였다.

“원래 힙후퍼라는 직업이 우리나라엔 없었어요. 
길거리 농구를 통해서 이벤트도 하고 농구를 활용해서 기업의 프로모션을 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려고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어요. 
일주일 정도 고민하다가 스포츠 에이전트 회사를 찾아다녔어요. 
그러다가 우지원 선수 에이전트 회사를 들어가서 창직 인턴 생활을 3개월 하던 와중에 창직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가게 됐죠.”

우연한 계기로 TV 창직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그는 4개월간 트레이닝을 받았다. 
창업 자금이 부족했던 그는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 적금을 들어 돈을 모았다. 
2년 동안 다른 직장생활을 하며 기초 자금 2000만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그는 발품을 팔아 직접 인테리어 하고, 전기공사, 마감공사를 하여 현재의 ‘SLILL TRAIN’ 회사 공간을 만들게 되었다. 
자금을 마련하고, 자료를 모으며 차근차근 창업을 준비하는데 3년의 시간이 걸렸다.

“저는 어린 시절 한 때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아서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미술학원에도 다녔었는데 그 때 배운 미적 감각이 도움이 되었어요.
인테리어 공사를 하다가 남은 나무판에 그림을 그려서 벽에 걸어봤는데 어머니가 좋아하시더라고요. 
벽도 검은 색 흰색 페인트를 사서 조색한 후에 제가 직접 다 칠했어요. 
모든 점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선을 이룬다는 스티브 잡스가 했던 말처럼 어렸을 때 했던 일들이 다 연결되어 지금의 결과물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쇼맨십으로 관중을 즐거움을 주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요

스킬트레이닝에는 드리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슈팅, 전술 전략 등 다양한 기술 가운데 희욱씨는 드리블을 집중적으로 트레이닝 시키는 사람이다. 
쇼맨십으로 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법을 농구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을 길거리 농구의 프로선수라고 말했다.

“NBA선수들은 길거리 행사에 가면 너나 할 것 없이 즐깁니다. 
화려한 드리블도 보여주고요. 우리나라 선수들은 그런 행사가 있으면 바보가 돼요. 
승리를 위해 점수를 내는 것은 잘 하지만 쇼맨십을 보여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죠. 
길거리에서 돈을 받는다면 저는 프로에요.”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길거리 농구 행사에 참가하면 쇼맨십을 했을때 그것이 즐거운지, 창피한지를 묻는다고 했다. 
그는 농구를 즐기는 팬이 없다면 아무리 승리를 해도 농구의 재미와 인기는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기록에 도전하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돕고 있죠.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엘리트를 대상으로 트레이닝을 하는 희욱씨는 아이들을 뽑아서 3주 정도를 가르쳐보고, 자신의 실력을 넘어서지 못하는 아이들의 경우 전부 환불해주며 돌려보낸다고 했다. 
보통 한 달 수강료가 5만원인 다른 곳과 비교하여 10배인 50만원을 받는다는 그는 책임감을 가지고 아이들이 자신의 기록을 깨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어떤 부모님들은 아이가 즐겁게 운동하며 놀고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농구교실에 보내죠. 
그런데 거기에 프로선수들이 들어가면 서로 동기부여가 안 되는 겁니다. 
선수들은 치열한 경쟁을 하며 선수가 되기위해 노력하는데, 그저 운동하기 위해 온 아이들은 잘 따라오지 않아 갈수록 수업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만드니까요. 
그래서 못하면 환불해주고 돌려보내는 편이 낫죠. 
그러면 아이들은 긴장하고, 부모님들은 당황스러워 하세요. 
그런데 나중에는 고맙다고 전화가 오더라고요.”

그는 스킬트레이닝을 받으러 오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훈련을 마치고 또 다시 그를 찾아와 훈련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가짐이 다르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항상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도록 하고 있었다.

“너 지금 여기서 이거 훈련하고 있을 때 다른 선수들은 뭐하고 있는지 생각해봐. 
그럼 ‘놀고 쉬죠’ 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럼 ‘너는 뭐하는데’ 라고 되물어 보면 그제서야 자신이 특별한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요. 
여기는 1:1이기 때문에 모든 시스템이 그 친구를 위해서 존재해요. 
그것을 느끼도록 짚어줍니다. 
전 이 일이 재미있고 즐거워요.”

에이전트 회사를 만들어 우리 선수들을
NBA로 보내는 것이 목표에요

희욱씨가 스킬트레이너라는 직업을 선택한 데에는 농구에 대한 넘치는 애정 외에도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프로 농구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아야 하는데 한 해 2500명의 선수가 등록을 하는 것에 반해 지명을 받는 것은 많아야 30명뿐이라고 했다.
20년 간 해온 농구를 단 하루 만에 끝내버릴 수도 있는 날인 것이다. 
프로선수가 되는 길은 바늘구멍만큼이나 좁았다.

“지명을 받은 선수들은 사진을 웃으며 사진을 찍는데, 지명을 받지 못한 선수들은 부모님께 전화를 하며 울거나 그 허탈감 때문에 힘들어합니다.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지명 받지 못한 선수들은 군대에 가거나 농구를 포기한다고 하더군요. 
그럼 리셋인 거예요. 
‘0’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겁니다.”

정규 수업을 들어야 해서 두 시간 반 정도밖에 훈련하지 못하는 외국과 비교하여 우리나라는 선수들이 운동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프로로 지명을 받지 못 한 경우 상대적으로 다른 길을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희욱씨는 그런 선수들에게 스킬트레이너라는 직업은 그들이 오랜 시간 쌓아온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 인생의 최종 목표는 에이전트 회사를 만들어서 제게 트레이닝 받은 우리나라 선수들을 NBA를 보내는 것이죠. 
한국인으로서 NBA에서 멋진 경기를 펼치다가 화려한 플레이를 한 후에 바로 앞에 앉아있는 제게 세레모니를 해주는 것, 그것이 제 꿈입니다. 
제가 가르친 학생이 세계 최고의 무대에 선다면 그것만큼 기쁜 것이 또 있겠습니까? 
롤모델이 YG엔터테인먼트여서 벤치마킹하고 있어요. 
스포츠 분야에서의 ‘YG’가 되고 싶습니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241&cur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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