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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공연분야

(연극공연) 배우의 꿈을 꾸며 공연 연출가로 일해요


김병호 공연 연출가

김병호 씨는 난타의 연출가로 크게 세 가지 일을 맡고 있다. 

첫째, 신입 배우를 발굴하고 양성한다. 

둘째, 기존 배우들이 공연을 반복하다 보면 타성에 젖어 안이해질 수 있는데 그럴 때 옆에서 컨트롤을 해준다. 

마지막으로 공연을 모니터링 한다. 

공연의 전체적 부분들을 살펴보며 무대 감독에게 보완, 개선해야 할 부분들을 피드백 해주는 것이다. 

원래 배우 생활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연출 일을 맡게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온 병호 씨는 공연에 관련된 진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다.


어릴 때부터 끼가 많고 감성적이었어요


병호 씨는 굉장히 활발하고 까불대는 학생이었다.

어렸을 때 코미디 프로를 보며 개그맨들을 따라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친구들, 선생님들, 가족과 친척들 앞에서 재롱을 떨면 그들이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학교 수업시간에는 선생님들이 툭하면 그를 불러서 앞에서 노래도 시키고, 국사시간에는 위인을 연기해보라고도 하는 등 앞에서 장기를 보여주는 일이 많았다. 

특히 영어시간을 좋아했는데 대화를 주고 받으며 회화 연습을 하는 것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또 국어 수업의 경우 희곡을 공부할 때 역할 놀이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처럼 무슨 수업에서든 역할을 나누어 대사를 하는 것 자체를 즐겼다. 

그래서 대부분 모든 수업을 즐겼기에 따로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무척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이었지만 동시에 감성적이기도 하였다. 

팝과 클래식 같은 음악을 많이 들었다. 

한번은 음악 시간에 클래식을 들려주면 작곡가의 제목을 적어야 하는 시험이 있었다. 

이를 위해 카세트로 클래식을 종종 들으며 다녔는데 듣다 보니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또 당시 교회에 다니며 찬송가도 많이 듣고 불렀기에 정감 가는 부분이 있었다. 

이렇게 노래를 들으며 자신이 느끼는 감성들을 머리 속으로 상상하고는 했다.


감성적이면서도 활발한 학생이라 하면 뭔가 모순되는 것 같지만 그는 이 둘이 연결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느끼는 감성을 혼자만 갖고 있으면 소극적이게 되겠지만, 그 감성을 겉으로 표현하고 분출하면 적극적인 것 아닐까. 

그는 자신이 이 두 성향을 모두 갖고 있다고 말한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연기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병호 씨는 연기자가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코미디언들을 따라 하라 대사를 하는 것, 수업시간에 역할 놀이를 하는 것 들을 좋아

한다는 걸 알았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희곡에 대해 배우며 이제껏 자신이 좋아한 것들이 연극의 형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때부터 줄곧 배우로서의 꿈을 키웠다.


중, 고등학교 때는 내내 영어 성경 동아리 활동을 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을 연기하며 계속해서 연기자의 꿈을 꿨다.


부모님은 그가 법대나 육사에 진학하기를 바라셨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일목요연하게 말을 하는 것을 좋아했고 잘했기에 그의 성향과 잘 맞는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또 병호 씨의 형이 부산에서 알아주는 영재였다. 

공부도 굉장히 잘했고, 싸움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긴 소위 지금 말하는 ‘엄친아’였다. 

이렇게 형이 뭐든 잘했고 결국 의대에 진학하니 부모님께서는 그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을 못마땅해하셨다. 

가 명절 때 친지들 앞에서 재롱을 떨며 분위기를 띄우는 것 자체는 좋아하셨지만, 진로는 좀 더 안정적인 길로 가길 원하셨다.


그래서 대입을 앞두고는 부모님과 사이도 안 좋았고, 그런 부모님이 무서웠기에 한 번도 연기자의 꿈을 당당히 밝히진 못했다. 

그러나 혼자 꿋꿋이 꿈을 지켜나갔다. 

그래서 잘난 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열등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주변 어른들과 학교 선생님들이 ‘네 형은 얼마나 잘하는데, 넌 어쩌려고 그러니’라고 말씀하셔도 그에게는 자신만의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대학 입학 후 계속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 생활을 성실히 해나가니 결국엔 어른들도 인정해줬다.


연극과에 진학해 다양한 활동을 하며

배우로서 성장해갔죠


병호 씨는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에 진학했다. 

연극을 전공한 것은 연기자가 되는 등 진로에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 

꿈을 따라 연극과에 진학했지만 연극과에서는 연기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무대, 분장, 조명 등 연극 전체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웠다. 

그렇기에 연기자뿐만 아니라 연출자로서의 공부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학기마다 제작 실습을 하게 되는데 이 역시 큰 도움이 됐다.

극과 학생들이 모두 작품 연출, 제작, 마케팅, 홍보, 연기까지 공연이 상영되기까지의 전 과정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단순히 작품을 가져다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에 대해서도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그와 유사한 다른 작품들도 연구하고,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보는 등 많은 공부를 하게 된다. 

또 연기의 경우에도 서로 원하는 배역을 맡기 위해 오디션을 보는데 주연을 맡기 위해 열심히 고민하고 연습해야 하기 때문에 연기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었다.


병호 씨는 대학교를 다니며 직접 ‘판토스’라는 마임 동아리를 만들었다.

연기뿐만 아니라 직접 창작 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4~5명의 친구들과 함께 소규모로 시작했는데 지금까지도 이어져 현재 80여명 정도 후배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당시에 마임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없었기에 혼자 책을 찾아보며 공부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그리고 군인이었던 아버지로 인해 매일 새벽에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혼자 아침 일찍 학교를 가서 연습하곤 했다.

혼자 카세트를 틀어 놓고 노래를 들으며 몸을 움직였다. 

중고등학교 때 들었던 그 노래들을 이전까진 머리 속으로만 상상했다면 이젠 직접 몸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남들이 보면 참 우스꽝스러운 동작이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연습한 결과 ‘제2회 춘천마임축제’에 최초로 대학생 자격으로 참여해 공연도 할 수 있었다.


판토스에서의 경험은 창조, 창작 능력을 쌓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연출자와 연기자 모두에게 창조는 굉장히 중요하다. 

연출자는 무대 밖에서 무대 위의 모습을 구상하고 창조하는 구성능력이 필요하다면, 연기자는 무대 위에서 창조를 하는 것이다. 

연출자가 하드웨어라면 연기자는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역할 모두에 판토스에서의 창작 경험은 큰 자산이 된다.


또 병호 씨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대학로에서 창작극 위주로 연극을 종종 했다. 

그러다 1998년에 대학을 졸업하며 교수님의 제안으로 2인극을 같이 하게 되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연극 활동을 했다.


무명 배우로 힘들게 지내다 난타 배우가 되었어요


2000년까지 2년 정도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그러나 대학로에서의 무명배우로 활동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굉장히 힘든 일이다.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지지 않는 이상 돈을 받지 못하며 일하는 경우가 대다수기 때문이다. 

정말 꿈과 열정으로만 버텨야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책임감이 느껴지고 가족에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지인으로부터 제안을 받게 되었다.

난타를 공연하는 ‘PMC 프로덕션’에서 난타 배우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된 것이다. 

대사가 없는 공연이었기에 별로 매력을 느끼진 못했지만 급여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그래서 ‘2년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들어갔다.


사실 처음에는 굉장히 난타를 등한시했다. 

대사도 없이 두드리기만 하는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공연인가 싶어 연습도 열심히 하지 않고 공연도 설렁설렁 했다. 

그러던 중 한 선배가 그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였다. 

연극 공연 중 대사를 까먹은 적이 있냐는 선배의 질문에 그건 배우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라 말했다. 

그러자 선배가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은 연극 중 대사를 틀린 것과 마찬가지야. 난타는 소리가 대사인데 넌 지금 그 소리를 제대로 못 내고 있잖아”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 선배에게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하다가 결국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다. 


선배의 말이 옳았기 때문이다.

그 후로는 1년 간 극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계속 연습하고, 다른 공연들도 모니터링하고, 또 연습하고……. 

2년이 지나 끝날 때쯤이 되가니 난타에 재미가 붙었다. 

그 전까지는 난타를 즐기지 못했었는데, 이때를 계기로 그는 달라졌다. 

아무리 공연을 해도 힘이 들지 않고 신이 났다.

또 해외 공연을 자주 다니는 것도 좋았다. 

식견을 넓혀주고 창작 활동에도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딱 1년만 더 하자’라는 생각으로 PMC 프로덕션에 머물렀다.


그러다 3년 차가 되었을 때 그는 난타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보려다 난타가 브로드웨이에 진출하게 되어 좀 더 남기로 했다. 

결국 4년 5개월 만에 난타 배우를 그만두고 다시 대학로로 돌아갔다.


대학로로 다시 돌아가 여러 번 실패를 겪다가 

난타 연출자가 되었어요


난타 배우 생활을 마치고 대학로에 다시 진입한 후 2~3개월만에 다시 경제적으로 힘들게 되었다. 

그러던 중 PMC 프로덕션의 송승환 대표님께 연락이 왔다. 

PMC에서 새롭게 시작한 ‘도깨비스톰’의 모니터링 연출을 맡아달라는 제안이었다. 

주 3회만 일하며 급여 조건도 괜찮았기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경제력도 유지할 수 있겠다 싶어 다시 PMC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봤더니 작품에 문제가 많았다.

처음엔 적당히 할 생각이었지만 배우들의 열정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패전투수가 된 기분으로 배우들과 함께 열심히 의기투합을 했다. 

노력의 결과 작품 완성도가 높아졌고 관객들에게 인지도도 얻었지만 결국 회사에서는 ‘도깨비스톰’을 접게 된다. 

그리고 ‘비보이코리아’라는 작품에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걸고 연출을 맡게 된다. 

하지만 이 역시 1년 반 만에 접게 된다. 

결국 병호 씨는 다시 대학로로 돌아갔다.


다시 대학로 생활을 하던 중 ‘겨울 연가’를 뮤지컬로 기획하던 감독님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비보이코리아’ 때 그의 연출을 보셨던 것이었다. 

그렇게 MD(merchandising, 구매)실장으로 ㈜윤스컬러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별로 하는 일이 없어서 회사에 있던 선배와 함께 따로 나와 음반제작에 도전했다. 

그러나 이 역시 실패했고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지기만 했다.


안되겠다 싶어 평소 틈틈이 써 온 작품을 가지고 다시 송승환 대표님을 찾아갔다. 

그러자 대표님께서 그에게 난타 연출을 맡아보라는 제의를 했다. 

그때가 2009년,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


더 많은 꿈을 위해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않아요


“신입배우들을 연습시키고 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고 만족스럽습니다.”


병호 씨는 말한다. 

하지만 업무가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창조적 활동이 덜하기 때문에 제 스스로의 발전은 없다 느껴져 아쉬운 부분도 있다. 

그래서 병호 씨는 항상 배우로서의 꿈은 간직하고 있다. 

이 꿈은 절대 잃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후배 양성에도 뜻을 두고 있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다시 대학도 다녔다. 

서울예술대학을 나왔지만 그가 다닐 당시 전문대였기에 학사 학위를 받기 위해 청운대학 공연기획경영학과에 다시 진학했다.

조만간 대학원도 진학할 예정이다.


후배 양성을 위해 그 스스로도 공부를 하고 있다. 

또 계속해서 작품을 써나가고 있다. 

언젠간 자신이 쓴 작품을 꼭 공연으로 올려보고 싶다고 한다. 

또한 하루에 두 편씩 영화를 본다. 

이 모두 창작 능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실패한 사람들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세요


“꼭 성공한 사람만이 좋은 말을 해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실패한 사

람들의 이야기도 귀담아 들으세요.”


병호 씨는 어찌 보면 실패한 이들의 이야기가 더 현실적으로 와 닿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역시 아직까지 배우로서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입장에서 배우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말하자면 ‘버티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한다. 

잠시의 어려움에 굴하지 말고 스스로 최면을 걸며 끝까지 버티라는 것이다. 

계속해서 연극에 대해 고민하고 연기자로서의 미래를 꿈꾼다면 언젠간 보상이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5909&cur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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