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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분야

(대안학교) 사람을 만나는 일엔 공감과 소통이 필요하다.


이재은 사회운동가

이재은씨는 생태환경고등학교 ‘푸른꿈 고등학교’의 졸업생이다. 
환경운동가로서 다양한 사회운동에 참여했던 어머니의 영향과 대안학교에서의 경험은 그녀를 사회적 구조와 문제의 이유를 찾는 일을 하는데 큰 받침이 되었다.

서울시 산하의 청년 일자리허브 구성원으로서 청년 업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그녀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머니의 권유로 대안학교를 갔어요

재은씨는 환경운동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사회의 여러 단면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자랐다. 
제2의 강남으로 불리는 목동에서 중학교를 다녔던 그녀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학원에 메이는 생활도 싫었고 친구들과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현실 역시 부담이 되었다. 
캐나다 유학을 원했던 그녀는 어머니로부터 경제적 이유를 들어 캐나다 유학 대신 대안학교 진학을 권유받았다. 
어머니의 추천으로 가게 된 대안학교는 무주에 위치한 생태환경고등학교 ‘푸른꿈 고등학교’였다. 
반딧불이 유명한 청정지역 무주에서 그녀는 남들과는 다른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좀 많이 힘들었어요

대안학교 졸업생들이 학교의 장점으로 꼽는 것들에는 자유로운 생활과 부모로부터 떨어진 기숙사 생활, 다양한 경험, 소규모 커뮤니티에서의 유대 관계 등이 있다. 
그러나 마냥 좋은 것은 없듯이 반대로 생각하면 동전의 앞, 뒷면처럼 단점으로 바뀔 가능성 역시 존재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생활 속에서 생각의 폭과 깊이를 넓히고 한 학년에 정원이 25명인 학교에서 여자 학생은 8명에 불과했고 그들은 3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함께 지내야 했다. 
한정된 사람들과의 깊은 관계는 예민한 10대였던 그녀에게 마냥 좋은 기억으로 남지는 않았다. 
가뜩이나 예민한 고등학생 시절에 친한 상대도 싸우는 상대도 한정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소규모 관계에서 상처를 받았던 재은씨에게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라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던진 질문이었다. 
그 질문을 할 수 있게끔 한 것은 어머니의 영향과 대안학교에서 배운 공부의 힘이 컸다.

“윤리 수업 시간에 박상옥 선생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너무 가난해서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이 신변을 비관해서 자기 부모님을 죽이고 자기도 자살하려는 데 잡혔다. 
그 사람에게 무죄를 줄 건지 유죄를 줄 건지, 그 사람을 어떻게 판단할 거냐는 거였죠. 
저는 부모님을 죽인 행동은 잘못되었지만 ‘그 사람이 행동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을 생각해봐야 된다’라는 생각을 이야기했죠. 
그러면서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구조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자연 속에 있는 생태환경대안학교였기에 생태 텃밭, 민간의학, 연극수업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자연 속에서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것은 섬세한 감수성 형성에 중요한 부분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그녀는 단순히 대학을 가기 위해 대안학교에 온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됐다. 
흔히 대안학교에서 겪는 제2의 사춘기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한국 사회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았을 때 겪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고 20대로서 평범한 대학생활을 경험하고 싶었다. 
원래는 사회복지나 신문방송과를 전공하고 싶었던 그녀는 선생님의 도움으로 논술 지도를 받고 대안학교 특별전형으로 성공회대에 진학했다.

대학은 저에게 첫 번째 방어막이 되어주었죠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 구조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재은씨는 사회과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06학번으로 입학한 그녀는 사회학과 정치학, 평생교육을 같이 전공하며 동아리 활동 등 다양한 대학생활을 경험한 뒤 27살에 졸업을 했다. 
전교생이 2000명 정도로 큰 편이 아닌 성공회대에서 그녀는 많은 것을 배웠다.

“전공이 사회학이었는데 단순히 사회 현장을 분석하는 게 아니라 내 일상이 사회 구조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지를 고민하는 과정을 배웠죠. 
내가 사회에서 답답하게 느꼈던 부분들이 어떻게 사회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분석하고 공부를 했어요.”

수업 뿐 아니라 공동체 상영 영화 일을 하고 아나바다 장터를 열어 나눔을 베풀고, 인도 전통차를 판매해 수익금을 인도 아이들에게 보내는 활동도 했다. 
대학에서 경험한 여러 가지 활동들은 그녀를 단단하게 만드는 방어막이 되었다.

대안학교에서의 경험이 모든 사람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대안학교에서 배웠기에 훗날 진로를 선택했을 때 경쟁력이 생길 수도 있지만 분야에 따라선 입시교육이나 다른 부분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과의 경쟁에선 열등감을 갖게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막연한 두려움을 갖게 되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다. 
그녀 역시 그 부분에 있어선 큰 공감을 하고 있었다.

“예민한 시절에 인간관계로 갈등을 겪고 상처를 받은 상태에서 사회적인 열등감까지 쌓이면 진짜 세상에 나오기 두렵죠. 
이걸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한 부분이에요. 
저는 대학과 여러 가지 활동들이 그것을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했어요. 
대학이 방어막이 되어준 좋은 케이스죠.”

청년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통로를 만들고 싶었어요

학교에서 세 개의 전공(사회학/정치학/평생교육학)을 공부했던 재은씨는 졸업 후, 청년당이란 정당에서 잠깐 활동을 했다. 
청년당은 20대와 30대 등 청년층의 정치조직화를 목표로 2012년 3월 19일 창당된 신생정당이었다. 
정치학 전공으로 외부활동을 하던 중 안철수씨의 청춘콘서트에 참여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청춘콘서트에서 2~3000명 정도의 많은 청년들이 두,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녀가 처음으로 청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질문의 지점이었다.

“이렇게 모인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왜 이렇게 모여 있을까? 
그러면서 청년당 활동을 하고 어떻게든 청년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통로를 만들어야겠단 생각을 했죠. 
하지만 안철수 씨의 출마부터 대선 사퇴라는 일련의 과정을 보며 한 사람으로 이런 열망을 모은다는 건 불가능하단 걸 깨달았죠.”

청년당은 2012년 4월 11일 총선에 비례대표로 나갔지만 저조한 투표율로 결국 정당을 해산하게 됐다. 
1년 동안 자원 활동식으로 정당 일을 지원했던 그녀는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2012년 말 그녀는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청소년 교육 일에 뜻을 품고 하자 센터에 지원을하지만 떨어졌다. 
그러나 5일 후, 하자센터 센터장이었던 전효관 센터장이 2013년 1월에 신설되는 허브센터 청소년 센터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사람을 만나는 일엔 공감과 소통이 필요하다

그녀가 일하고 있는 첫 직장의 공식명칭은 ‘서울시 청년 일자리 허브’이다. 
서울시 청년 일자리 관련 정책을 개발하고 일자리 활동들을 정책과 연결시키는 일과 청년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곳에서 그녀가 하고 있는 일은 청년 참이란 일로 매월 20일까지 커뮤니티 모집신청을 받아 지원서를 검토하고 인터뷰 후 선정을 통해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일이었다. 
커뮤니티 선정 후에는 일 년에 최대 100만원의 비용 지원과 함께 매달 반상회를 연다고 했다. 
2~300명이 청년 카페에 모여 각자의 활동을 소개하고 발표하는 식이었다.

“지원 예산이 한정되어 있으니 경쟁을 통한 선발보단 적합성 여부를 판단해요. 
자발적으로 모여서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인생에 있어서 커뮤니티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설명해줄 수 있는 팀, 우리끼리 놀고 끝내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확장되는 부분을 고민할 수 있는 팀을 선정해요.”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이라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노력이 제일 필요했다. 
첫 직장의 일에 몰입해 자신의 삶과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체력에 문제가 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일을 하며 청년업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스스로 일에 몰입되는 지점과 어떤 사업을 맡아 진행하며 느껴지는 뿌듯함이 맞물리면서 그녀에게 그 일의 주인의식을 갖게 하는데 받침이 된 것이다.

“꼭 여기서 일을 해야 한다고 하기 보다는 내가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한 방향, 그리고 그 안에서 청년 관련 일을 어떻게 할지가 정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를 잘 살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재은씨 역시 진로를 고민한 적이 있었고 지금도 그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구체적인 진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삶을 살까하는 대안학교 시절부터 늘 해왔던 질문에 답을 찾는 일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끈질긴 질문 끝에 그녀가 내린 답은 사회를 잘 살리는 사람이 되고 싶단 것이었다. 
대안학교의 공동체 생활 덕에 기본 마인드가 잡힌 거라고 말하는 그녀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서로 도와주며 사회를 바꾸는 사회운동가가 되길 바라고 있었다. 
혼자 잘 사는 게 아니고 같이 잘 사는 걸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그녀는 예전의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어린 친구들에게 조언을 남겼다.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대안학교에 있으면 공동체 생활에 대한 기본적인 마인드가 잡혀요. 
또 자연에 대한 감수성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 어떻게 살아야 한단 것 자체를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충분하구요. 
또 다른 방향을 보게 되면 훨씬 볼 것이 많아지죠. 
내 마음 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라는 걸 깨달아 보는 것도 유용한 일이에요. 
무엇이든 실컷 경험하고 해보세요.”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136&curPag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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