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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분야

(과학) 살아가는 날만큼 큰 꿈을 꾸는 운석탐험가


이종익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

얼마 전 우리나라 최초 우주인 이소연 씨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퇴사한다는 뉴스에 나라가 들썩였다. 
어떤 사람은 애초에 우리나라에서 우주에 사람을 보내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기도 했고, 큰돈을 들여서 우주에 보내줬더니 ‘먹튀’였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기자가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에 사람을 보낸 뒤 후발 계획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문득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끊임없이 탐험하는, 마치 우주인과 같은 과학자가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오직 펭귄만이 밟을 수 있는 대륙, 남극에서 운석을 찾는 이종익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이었다.

대한민국 운석탐사를 이끌다

올 봄, 진주에서 떨어진 운석 덕분에 우리나라는 운석 열풍에 빠져들었다. 
너도나도 운석을 찾아 나섰고, 운석을 주운 사람은 벼락부자가 될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온갖 ‘썰’이 나돌 때 이 사태를 단번에 진정시켜준 사람이 바로 이종익 박사다. 
최변각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와 함께 우리나라에 둘 밖에 없는 운석 전문가다.

이종익 박사와 운석과의 관계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부터 최변각 교수는 이종익 박사에게 운석을 수집해야 한다는 제안을 해왔다. 
최변각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운석 연구실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연구하는 교수다. 
이 박사는 “당시 최 교수가 우리나라에 운석이 너무 없다며 남극에서 직접 운석을 가지고 와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회상했다.

남극에서 운석을 찾는 게 유리한 것은 문명이 닿지 않은 특수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지난 번 진주운석 사태에서도 나타났듯, 이미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에 운석이 떨어지면 기존 암석과 구별하기 힘들다. 
남극에서는 1년 내내 흰 눈이 쌓여있어 하늘에서 떨어진 암석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게다가 오래전 떨어진 운석도 빙하 속에 냉동되어 훼손되지 않은 채로 보존되어 있다. 
특히 빙하 속에 있는 운석은 특별한 지형에서 위로 솟아오르는데, 이 지역을 잘 공략하면 운석을 찾을 수 있다. 
게다가 남극에 기지를 세운 29개국 중 운석에 집중하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 이탈리아, 일본 정도여서 경쟁력도 있었다.

이종익 박사가 남극에서 처음 운석 탐사를 나갔던 2006~2007 시즌에는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수확이 적었다. 
하지만 이제는 노하우가 쌓여 지난 2013~2014 시즌에는 60개가 넘는 운석을 발견했다.
이 박사는 이제 대륙에서 운석을 찾으며 쌓은 노하우를 다른 분야 연구자들에게도 전수하는 중이다. 
장보고과학기지가 완성되기 전에는 운석탐사 대원만 대륙 깊숙이 들어갔지만 이제는 남극의 지층을 조사하는 연구원도 함께 간다. 
앞으로 이들 손에 의해 남극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질 것이다.

등산이 바꾼 운명

운석 탐험가로 유명한 이 박사지만 진짜 전공은 지질학, 그 중에서도 암석학이다. 
마그마가 만드는 암석인 화성암을 연구해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사범대(지구과학교육)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뒤, 해외에서 박사를 받고 돌아왔다. 
그가 주로 연구한 분야는 화강암. 
마그마가 지하 깊은 곳에서 굳어 만들어지는 암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북한산과 설악산에서 볼 수 있는 암석이다.

이 박사가 처음 극지연과 인연을 맺은 것도 이 때문이다. 
1992년, 이박사가 입사할 당시 극지연은 지금과 명칭이 달랐다. 
한국해양연구원(현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 소속된 작은 연구단인 극지연구센터였다.
세종과학기지가 자리잡은 킹조지섬에서 연구할 인력이 필요했는데, 킹조지섬은 전체가 화산섬이며, 마그마 관입으로 화강암도 있었다. 
암석전문가인 이 박사는 극지연구센터에 들어가 킹조지섬의 지질도를 만들었고, 화산이 언제 생성되었는지도 연구했다.

십수 년을 지질학자로 살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지질학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학에 진학할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막 산업화 과정에 들어가면서 물리학이 ‘핫’하던 시기였다. 
특히 원자력이나 반도체가 꿈의 기술로 불렸고, 이 박사도 처음에는 핵물리학이나 원자력공학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대 사범대를 진학했다.
당시 사범대는 전공을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 세부로 나누지 않고 신입생을 뽑은 뒤, 2학년이 되면 전공을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이 박사는 물리교육과를 진학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대학교 생활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 박사는 “물리는 잘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포기했다”며 웃었다. 
꿈을 포기하면서 학점도 학사경고를 너무 많이 받아 제적될 수도 있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꿈을 잃고 방황하던 중 인연이 닿은 것은 등산이었다.

이 박사는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 몰래 등산을 다녔다. 
집 근처에 있던 천마산을 어지간하면 매주, 안 가도 2주에 한 번은 오르내렸는데 매번 똑같은 길을 다녔지만 계절에 따라 모습이 변하는 것이 신기해 등산을 멈추기 어려웠다. 
대학에 다니면서 더 큰 산을 다녔고, 전공과 미래에 대해 혼란에 빠질 무렵, 동기와 후배와 함께 설악산을 오르게 됐다.

이 박사는 “조를 짜고, 물건을 준비하고, 부식을 만드는 과정을 즐기며 이런 산과 가장 가까이 있을 수 있는 학문이 지질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질학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3학년 때부터 강의도 열심히 듣고 성적도 많이 올랐다”고 웃었다. 
요즘 10대부터 미래를 찾는 것을 생각하면 꽤나 늦은 시기에 꿈을 찾은 셈이다. 
좀 늦은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이 박사는 “결국에 대학교에서 찾을 수 있었으니 행복하다”며 우문현답을 내놨다.

우주의 진짜 주인공은 지질학자다

왜 지질학이었을까. 
이 박사는 “최첨단 학문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결정하는 것이 지질학”이라며 자부심을 내보였다. 
최첨단 학문이라고 하면 단연 우주공학부터 생각한다. 
미국항공우주국이나 유럽항공우주국 같은 첨단 연구소에서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기술을 이용해 맨 다리로는 1m도 뛰어오르기 힘든 인간을 저 멀리 달까지 보낸다.
얼핏 생각하면 뛰어난 우주선을 만드는 기계 기술, 우주선과 지구, 달의 복잡한 궤도를 계산하는 물리학이 중요할 것 같다. 
이 박사는 그보다 먼저 지질학이 있다고 말한다.

“달이나 화성에 가려는 이유는 지구와 태양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기 위해서예요. 
그렇다면 달의 어느 곳에 우주선을 착륙시키고, 달에 도착한 우주인이 암석을 가져오거나 땅을 시추하는 등 어떤 작업을 해야할지 결정하는 것이 지질학자죠.”

실제로 아폴로 계획에서 달과 지구를 오간 우주인은 수많은 월석을 가져와 달과 태양계가 만들어진 과정을 밝히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월석을 분석하는 것은 지질학자의 일이다. 전혀 상관없는 분야 같아도 과학은 결국 하나로 모이는 셈이다.

이 박사의 운석 탐사도 같은 맥락에서 진행된다. 
운석을 모아 기본 정보를 연구하고 앞으로 우주 개발에 이용할 기초 자료를 만들어낸다. 
석을 찾아내는 체계와 보관 체계는 이제 충분히 갖췄다. 
그러나 운석을 연구하는 부분은 아직도 부족하다. 
이 박사의 최종 목표는 운석 분야에서 선진국 수준의 연구 결과까지 생산하는 것이다.

남극 외투, 남극 텐트를 개발하다

남극 운석 탐사를 하다 뜻하지 않은 경제 효과가 생겼다. 
바로 ‘장비’분야다. 
이 박사의 남극 탐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유한규 코오롱스포츠 이사다. 
처음 남극 운석 탐사 계획을 세울 때 남극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7대륙 최고봉을 등정한 전문 산악인과 함께 탐사를 진행했다. 
이들은 남극 최고봉인 빈슨매시프(4879m) 등정을 준비했기 때문에 혹독한 남극에서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마침내 전문 산악인인 유 이사가 운석 탐사팀에 합류했고, 유 이사는 지금도 이 박사와 함께 겨울마다 남극으로 떠난다.

처음 남극 대륙을 탐사하던 과학자들은 캐나다처럼 극한 기후를 갖는 지역에서 피복을 수입했다. 
그러나 운석 탐사대의 성과가 나오고, 사진이 매스컴에 돌면서 우리나라 연구진이 해외 브랜드가 버젓이 붙어 있는 피복을 입은 장면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이 박사는 유 이사와 함께 국산 극지 의복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고, 그 결과가 코오롱스포츠에서 나온 ‘안타티카’다.

텐트도 마찬가지다. 
장보고과학기지에서 만났던 이 박사는 2013~2014 시즌을 마무리하면서 운석 탐사 사진을 보여줬다. 
“이 텐트 개발에 성공하고, 남극에서도 쓸 수 있다는 것을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었다”고 자랑하던 이 박사는 “그런데 이승기가 ‘1박 2일’에 이걸 먼저 들고 나가는 바람에 자랑 계획이 무산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남극보다는 이승기가 세니까”라고 뼈 섞인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남극에서 성능 시험을 마친 제품은 최근 불고 있는 캠핑 붐을 타고 빠르게 팔려나갔다. 
이제는 다른 국산 아웃도어 브랜드에서도 앞다투어 극한환경용 장비를 생산하고 있다.

누렸으면 베풀 줄도 알아야 한다

이종익 박사는 지금까지 만났던 어떤 사람보다 청소년을 생각하는 마음이 강한 사람이었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개소식에서 “내게 진정한 VIP는 국회의장을 비롯한 의원들이 아니라 앞으로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들”이라며 21세기 장보고주니어 자격으로 참가한 학생 두 명을 가리키기도 했다. 
청소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하면 언제나 흔쾌히 승낙하며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그러나 그런 그도 최근 청소년의 태도에 속상하다고 말한다.

그가 강연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묻는 질문이 있다. 
“미국에서는 화성 탐사와 관련해 어마어마한 계획을 세우고 있고, 이 계획이 실현될 때쯤에 그 주인공은 지금 이 강연을 듣고 있는 너희들이다. 
그렇다면 누가 갈래?”라고 묻는다. 
미국 학생들은 절반 이상이 자신이 가겠다고 손을 든다고 하는데, 이 박사가 만난 우리나라 청소년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날고 긴다는 과학고 학생이나 영재학교 학생들도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에 속상해했다.

이 박사는 최근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해 자신의 자녀를 예로 들며 설명했다. 
남극에 다녀오기만 하면 얼굴이 반쪽이 되는 모습을 보고 이박사가 연구하는 지질학은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박사의 생각은 다르다. 
지금 우리가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누군가가 열심히 연구했고, 결과물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택을 누리면서 기여하지 않는다면 인류 문명은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인류 문명을 지금까지 이끌어 온 것은 사람의 호기심이다. 
인간의 호기심은 자연을 해석하고 지금과 같은 문명을 만들어냈다. 
이 박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과학적 능력을 투자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는 절실한 문제”라며 “지금 청소년들이 언젠가 어른이 되고 사회 주축이 되면 자신이 누린 만큼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생각을 하며 과학에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000&cur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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