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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분야

(미술) 시와 그림 그리고 디자인으로 생각을 표현하다


성혜진 UI디자이너

반짝 반짝 달빛 부어 바르고 / 달짝달짝 달내음 맡으며 꿈나라로 여행 가요 / 환히 비춰주는 달님이 있으니 곰돌이도 나도 무섭지 않아요

곰돌이 인형이 들어있는 페인트 통을 들고, 동그란 달 모양에 노랑색 페인트를 한 가득 칠하는 어린 소녀의 뒷모습이 그려진 그림과 함께 2012년 문화숲프로젝트 신인작가 발굴전 <성혜진 동시화전>에 전시되었던 <달>이라는 동시화 작품의 동시 내용이다. 
성혜진 씨는 어린 시절 동양화를 그리다가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후 UI 디자이너가 되어, 올해로 3년 차가 되었다. 
UI(User Interface) 디자이너란, 사용자(User)가 보다 편리하고 쉽게 정보를 얻고, 사용할 수 있도록 제품을 디자인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UI 디자이너이면서 동시에 평소 시를 쓰고 그림 그리기를 즐기는 시화 작가이기도 하다. 
책을 출판하고, 전시회도 열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신기하고도 신나는 일이었어요

혜진씨는 대전에 있는 한 작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슈퍼 하나 없고, 학교에 가려면 한 시간을 나와야할 만큼 깊은 시골 마을이었지만, 그녀가 자연을 친구삼아 그림을 그리며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해준 곳이기도 했다. 
그녀는 할아버지의 붓과 먹으로 자연 풍광을 담아내며 자연스레 동양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그녀는 줄곧 동양화를 그렸고 또 배웠다.

“제가 다닌 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한 반밖에 없는 분교였어요. 
그 학교에 계시던 미술 선생님이 한국화를 전공을 하신 분이셨는데, 제가 그림을 너무 하고 싶어 하니까 선생님은 저에게 무료로 과외를 해주셨어요. 
어린 애가 대회 나가서 상도 받고 하니까 기특한 마음에 가르쳐 주셨던 것 같아요.”

그녀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폐암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면서 그녀는 어머니, 오빠와 함께 시내로 이사를 나왔다. 
학교를 가기 위해 먼 길을 나서야 했던 남매를 걱정하신 어머니의 결정 때문이었다. 
등학교 2학년 때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기로 결심한 그녀는 입시 미술학원을 찾아갔다. 
그녀는 동양화를 배우고 싶었지만, 학원에는 동양화반이 없었다. 
당시 외삼촌이 운영하는 광고회사에 자주 놀러 다니며 광고디자인에 관심이 생겼던 그녀는 마침 새로 생긴 ‘발상과 표현’이라는 디자인반에 들어가 처음으로 디자인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림 그리는 일은 비슷할 것이라 생각해서 디자인반에 들어갔는데 막상 다니다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어요.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대로 옮기는 동양화와는 다르게,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신기하고 신나는 일이었어요.”

대학 입시를 치룰 때까지 그녀는 미술학원 생활을 즐기며, 광고디자인에 대한 꿈을 키워나갔다. 
실기 대회 성적이 좋았던 그녀는 우수반에 들어가 집중적으로 입시를 준비했다. 
농사짓는 부모님 슬하에서 자란 그녀는 유복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항상 주변에는 그녀의 꿈을 응원하고, 지원하는 사람이 있었다.

“저는 서울시립대를 가기 위해 특별반에 다녀야만 했어요. 
특별반에는 서울에서 유명한 분을 강사로 모셔 입시 특강을 하는 수업이 있었는데, 그 특강비가 방학 동안에만 200만원이라는 거예요. 
선생님한테 너무 듣고 싶은데 비싸다고,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학원 원장 선생님께서 공짜로 해주셨어요. 
원장 선생님은 억지로 하는 애들보다, 꿈이 있는 애들을 좋아하셨거든요. 
나중에 성공해서 학원 홍보를 좀 해달라는 농담반 진담반의 이야기에 당차게 알겠다고 대답했죠. 
열심히 하다 보니 예쁨을 많이 받았었어요.”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서울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죠

혜진씨는 우수했던 실기대회 성적으로 동덕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수시 합격생이 되었다. 
타이포그라피, 포스터, 에디토리얼 등 컴퓨터작업이 많은 학과 특성 상 손으로 직접 그림 그릴 일이 많지 않았던 것에 허전함을 느낀 그녀는 서양화를 배울 수 있는 회화수업도 들었다. 
만 아니라 활동적인 성격의 그녀는 광고, 농구, 커뮤니티 동아리 등 다양한 동아리 활동으로 서울에 있는 모든 대학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계속해서 장학금을 받을 만큼 공부도 열심히 했다.

“사실 1학년 때는 대학에 적응을 못 했어요. 
서울생활을 하면서는 시골에서 느꼈던 사람들의 정 같은 것은 느낄 수가 없고, 이기적으로 구는 사람들에게 상처도 많이 받았죠.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올라온 서울이었는데, 회의감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성적도 1학년 때가 제일 안 좋았고요. 
학교를 그만둘까 고민하기도 했었죠.”

회의감에 점점 더 마음이 지쳐가던 차에 그녀는 군자에 있는 사과나무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돈을 받지 않고 하는 봉사활동으로 미술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곳은 맞벌이 부부 아이들이 방과 후에 무언가를 배우며 시간을 보내는 어린이집이었다. 
그녀는 매주 토요일 아이들을 만나며 점차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녀는 그 때 아이들에게 받은 영향으로 그림책을 내거나 아이들을 위한 전시 기획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그랬지만, 진로에 대해서도 한창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상업 디자이너로서 삶도 좋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순수회화쪽도 좋았거든요.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에는 제가 둘 다 너무 좋아했어요. 
그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있는 일로 책을 내거나 전시를 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 때 깨달았어요.”

인사동 쌈지길 전시는 동시화 작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대학교 4학년이 된 혜진씨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아는 분으로부터 ‘디자인 5일장’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인사동 쌈지길에 그녀의 작품을 전시할 것을 제안 받았던 것이다. 
5일 동안 그녀가 전시한 작품은 <알록달록>이라는 유아용 그림책이었다.

“인사동 쌈지길 안에 크게 전시대 만들어서 판매도 하고 전시도 했는데, 저를 제외하고 다른 분들은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디자이너 분들이셨어요. 
저는 북아트 수업 때 만들었던 그림책 <알록달록>과 캘린더 디자인 했던 것을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들어 팔았어요. 
<알록달록>을 영문판과 한글판으로 제본하는데 30만원이 들었어요. 
제게는 큰돈이었지만 저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서 그동안 열심히 모아뒀던 돈을 썼죠.
다행히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어요.”

전시 이후 돈을 모으기 위해 다양한 공모전에 작품을 내던 그녀는 상금 뿐만 아니라 인턴의 기회까지 주어지는 <나인후르츠 미디어>라는 광고회사의 스킨 공모전에서 1등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한달 반 동안 인턴으로 생활하며 UX(User Experience) 디자인과 UI(User Interface) 디자인에 대해 배웠고, 그 경험을 토대로 대학 졸업을 앞두고 포털 사이트 네이버를 운영하는 회사 에 들어갔다. 
UX 디자인에 흥미가 있었던 그녀였지만 컴퓨터로 작업이라 그림을 그릴 기회가 많지 않다는 점은 아쉽기만 했다. 
대학생 시절 참여했던 ‘디자인 5일장’ 프로젝트의 쌈지길 전시를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던 그녀는 그 때부터 전시기회와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근처 카페나 헤이리 예술마을 같은 곳에서 작은 전시회가 열리고, 참여할 기회가 생기면 제가 기획하고 만든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했어요.
그 때부터 아이들을 위한 ‘동시화’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동시와 그림이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인데, 제가 쓴 시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서 그것을 엽서나 포스터로 만드는 것이었죠.”

쌈지길 전시는 여러모로 그녀가 동시화 작가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시작점이 되었다. 
우연히 인사동에 들렀다가 그녀의 첫 작품인 그림책 <알록달록>을 사서 읽게 되었다는 한 출판사 대표는 그녀에게 <알록달록>의 출판을 제안했고, 인턴생활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던 그녀는 그로부터 1년 후 다시 의논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 <무지개가 사는 숲 속>을 출판하게 되었다.

“제가 시를 좋아해서 블로그에 꾸준히 업로드 했었거든요. 
출판사 대표님께서 블로그에 있는 제 글을 보시고는 감각이 있는 것 같다면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책을 생각해 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썼던 스토리를 보완해서 <알록달록> 대신 <무지개가 사는 숲 속>이라는 책을 출판하게 되었죠. 
대표님과는 그 때 인연으로 지금까지도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받으며 잘 지내고 있어요.”

우리나라에 시화를 알리고 싶은 행복한 의무감이 생겼어요

대학생 때부터 유학을 떠날 계획이 있었던 혜진씨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퇴근 후에는 영어학원에 다녔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그녀는 고민 끝에 본격적으로 유학을 준비하기로 결심하고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녀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을 하며 유학을 준비하던 중에 서울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문화숲 프로젝트’라는 신인작가 지원 프로젝트를 발견하게 되었다. 
전시 목표와 필요성, 이유 등을 기획서로 만들어 제출한 그녀는 신인작가로 뽑혀 큰 규모의 개인전을 열 수 있었다. 
<성혜진 동시화전>이라는 이름으로 그녀는 첫 전시회를 열었다.

“유학을 가려면 전시 경력이나, 출판 경력 같은 부분이 중요하거든요.
회사 생활을 쉬는 기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자 싶어서 밤을 새워 가면서 한 달반 정도 개인전을 준비하며 보냈어요. 
많이 힘들었지만, 그만큼 만족감도 컸죠. 
엄마와 함께 전시회를 찾아온 아이들이 제 글과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좋았어요. 
아이와 어른의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점이 너무나 만족스러웠어요.”

그녀가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라며 느꼈던 추억들을 바탕으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 작품들은 ‘서정적이다’라는 평을 많이 받았다.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잃었던 감성을 되살릴 수 있는 일을 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전시회는 그녀에게 의미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작가로서 입지를 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첫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그녀는 우리나라에 시화를 알리는데 앞장서야겠다는 행복한 의무감과 책임감이 생겼다고 했다.

“시화는 어른이랑 아이가 동시에 같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는 점에서 좋은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어른들이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하고요. 
저는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이를 위한 순수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도 생각하고요. 
그래서 시화는 제게 잘 맞는 분야가 아닐까 생각해요.”

유학을 다녀오고 싶었지만 우선 디자이너로서 최고가 되고자
마음 먹었어요

“지금의 회사에 다니기 전에 삼성경제연구소에서 6개월 동안 일하며, 인포그래픽이나 콘텐츠를 담당하기도 했어요. 
삼성이나 네이버처럼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회사 다니는 것이 제게 중요한가 진지하게 생각해봤죠.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기보다는 회사가 우선인 큰 기업에서 생활을 하는 건 제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혜진씨는 유학을 다녀온 후 아동 일러스트 분야의 교수가 되고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 준비에 여념이 없던 그녀는 안정적인 회사에 다니며 살아가기를 바라며 걱정하시는 어머니를 외면할 수 없어 잠시 유학을 미루기로 결정했다.

“문득 내가 왜 이렇게 빠듯하게 살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무조건 당장 하려고 하다 보니까 짧은 기간 안에 많은 걸 해볼 수는 있었지만, 반대로 깊이 있게 무언가를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았어요. 
우선은 디자인을 전공했고, 디자인 분야의 경력을 쌓고 있었으니, 디자인 분야에서 최고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좀 더 일하기로 했어요. 
그림을 그리는 일에 압박감과 부담감을 느끼게 되면 그림이 싫어질 것 같아 겁이 나기도 했고요. 
지금은 디자이너로서 충실하게 살기 위해 ‘스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즈’라는 회사에서 UI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어요.”

그녀가 지금의 회사에서 일하며 디자인 한 것으로는 신한카드의 카드디자인, 엔젤리너스의 브랜드 이미지 등이 있다.

“저는 학창시절에 많은 경험을 했어요. 
그 중에는 실패한 것도 많았죠. 
겁내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고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요. 
생일 때 아니면 할 수 없는 경험이 많거든요. 
오히려 사회에 나오면 해볼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하게 되는 일이 많아요.“

혜진씨는 그동안 살면서 힘든 상황에 놓일 때마다 항상 그림을 그리며 이겨냈다고 했다. 
슬픔도, 어려움도 마음에 품고 괴로워하기보다는 그림으로 표현하며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그려온 그림은 그녀에게 꿈이 되었고 그녀를 디자이너로, 작가로 만들었다. 
마음이 힘들 때면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며 분위기를 새롭게 만들어나간다는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환경을 만들어보라고 조언했다.

“저는 가난도 겪어봤고, 소중한 사람이 떠나가는 일도 겪으면서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었지만 더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살고자 노력했어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현실의 안주하는 것은 위험한 것 같아요. 
스스로 기회를 찾아 움직여야만 기회가 주어지거든요.”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204&cur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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