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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분야

(대안학교) 비전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정충만 한옥목수

정충만 씨는 충남 홍성군에 위치한 대안학교 ‘풀무농업학교’의 졸업생이다. 
어린 시절부터 농부가 되고 싶었던 그는 대학교를 자퇴한 뒤, 아르바이트로 경험했던 한옥 목수 일에서 적성을 찾게 됐다. 
결국 그는 군 제대 후에 정식으로 한옥 목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옥 목수이자 한옥기능사로서 그의 일은 사찰과 한옥 같은 전통 건물을 전통 방식 그대로 수리하거나 짓는 일이다. 
목수 일을 한지 12년차에 접어든 그가 걸어온 지난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아버지의 권유로 대안학교를 갔어요

어린 시절 정충만 씨의 꿈은 목수가 아니라 농부였다. 
교과서에 실린 농부가 경운기를 몰고 가는 그림을 보며 그는 막연히 농부가 되어야겠단 생각을 품었던 것이다. 
목사의 아들이었던 그는 모범생 딱지를 붙이고 다니는 중학생이 되어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밤 11시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곤 했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과도한 공부를 하는 것이 좋지 않단 생각을 했고, 대안학교 중 기독교 계열의 학교였던 풀무농업학교 시험을 쳐볼 것을 권유했다.

아버지의 목회일로 고등학교 입학 전 이사를 스무 번 이상 경험했던 그에게 환경이 바뀐다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친구들과 재밌고 즐거운 학교 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산다는 해방감은 모범생으로 살아야 했던 그의 답답함을 폭발시켰다.

대안학교에서 무기정학을 세 번 맞았죠

청소년기의 방황은 부모와의 불화나 친구와의 관계 등 불만족스러운 상황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의 방황은 전혀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자유를 느끼며 시작되었다.

“중학교 때까지 부모님과 살면서 목사님 아들이기 때문에 어딜 가나 모범생이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된 고등학교에서 억눌렸던 게 풀리면서 내 마음대로 한번 살아보고 싶단 생각을 했죠. 
여자 친구도 사귀고 술, 담배, 가출도 했어요.”

학교에서는 음주를 하고 새벽에 기숙사로 돌아오던 그와 친구들에게 결국 무기정학을 내렸다. 
모두가 함께 하는 기숙사에서의 공동생활이었기 때문에 여러 번의 경고를 주고 그래도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집으로 한번 보내는 시스템이었다. 
정학을 맞아 집에 온 아들에게 그의 어머니는 화를 내거나 매를 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며 아들의 일탈을 눈감아 주었던 것이다. 
무작정 혼내고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행동을 이해한 어머니의 방식으로 그는 하고 싶었던 것들을 미련 없이 하고 끝낼 수 있었다.
어머니와 더불어 그의 무기정학과는 상관없이 그를 아끼던 학교 선생님들 역시 그에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대학을 갔지만 게임 때문에 짤렸어요

어릴 적부터 농부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었지만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겠단 구체적인 생각이 그에게는 없었다. 
풀무농업학교의 고등과정 졸업 후, 그는 같은 학교에서 농업 교육을 하는 전공과정 진학을 선택하려고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경험한 것을 토대로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는 가족들의 추천으로 전남대학교 농대에 진학했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 생활에 대해 가지는 환상이나 즐거움을 그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학 친구들과는 관심요소가 달라 대화가 잘 안됐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사촌동생이 하던 리니지 게임을 같이 하게 된 그는 게임을 72시간동안 자지 않고 하는 등 학교를 나가지 않게 되어 학사경고를 3번 받고 대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하나에 빠지면 끝을 보는 성격이었던 충만 씨는 게임 폐인이 되었고 게임을 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면서도 스스로 자제하지 못했다. 
그를 보다 못한 매형은 자신이 하고 있던 한옥 목수 일을 소개시켜 주었다. 
한옥목수 일을 하며 그는 보람이란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목수 일을 처음 가면 시키는 게 서까래(지붕판을 만들고 추녀를 구성하는 가늘고 긴 각재)를 깎는 일인데 8kg 정도 되는 기계를 들고 계속 손을 움직여야 해요. 
살도 빠지고 근육도 빠지고 땀이 줄줄 흘러 힘든데 기분이 상쾌하고 좋아지는 희열을 느낀 거예요.”

보람을 느낀 한옥목수 일을 계속하긴 했지만 그가 정식으로 한옥목수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군 제대 후였다.

한옥목수에게 필요한 건 끈기와 체력이에요

한옥은 기둥과 바닥은 나무로, 벽은 흙으로, 창은 한지를 발라서 만드는 친환경 가옥이다. 
모든 작업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며 국산 육송을 벌목해 운반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어 짓는 비용이 양옥의 1.5배나 된다. 
그러나 잘 지은 한옥은 내구성이 좋아 천 년을 갈 정도로 견고하고 튼튼하다. 
그는 한옥이 목재로 짓는 집이기 때문에 전체 공정을 지휘하고 관리하는 목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궁궐이나 사찰 등과 관련된 대규모 문화재복원사업이 많은 요즘, 살림집을 짓는 대목수들의 입장에서 얼핏 생각하면 민가와 문화재 관련 공사를 하는 것은 사회적 명예나 목수로서의 지위에 큰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한옥을 짓는 목수라면 살림집이건 궁궐을 짓건 상관없이 자부심을 느낄 거라고 자신했다. 
목수로서의 마음가짐과 더불어 그는 한 가지만 잘 해선 결코 한옥목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연장들로 다양한 기술을 연마했고 조선 시대 때부터 내려온 전통방법으로만 한옥을 짓고 있었다.

“전역 후 한옥목수로 살아야겠단 생각을 가지고서부터 연장을 사기 시작했어요. 
대패만 해도 3~40개, 끌도 50자루를 가지고 있는데 사용방법이 다 다르고, 더 나은 품질을 내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손대패라는 연장은 기계 대패와는 달리 날만 날카롭다고 잘 갈 수 있는게 아니에요. 
대패 날을 잡고 숫돌위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각도도 중요하고 세심하게 다뤄야 하죠. 
손대패를 제대로 사용하기까지 3년이 걸렸어요. 
한옥 목수는 끈기와 체력만 있으면 다른 건 필요 없어요.”

그렇게 끈기와 체력으로 12년차 목수에 접어든 그는 발전 없이 퇴보하는 우리 전통한옥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과거 삼국 시대에 일본은 자신들보다 건축 기술이 앞선 백제의 장인을 초청해 법륜사 금당이라는 큰 건물을 지었다. 
1400년이 지난 지금도남아있는 최초의 목조 건축물을 만든 백제 장인은 일본에 남아 금강조라는 목수협동조합을 만들어 일본에 여러 건물을 남겼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인 금강조가 지은 건물들은 일본의 잦은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고 남아있다. 
기술을 발전시켜 오래된 건물도 보존시키는 능력을 보유한 일본과 전통건축이 퇴보한 한국의 레벨 차이는 그로 하여금 전통 한옥 건축을 지켜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손연장을 쓰며 전통방식으로 한옥을 짓는 사람들과 함께 만든 고집쟁이란 협동조합은 그 다짐의 초석이다.

“이제부터라도 건축기술을 연구하고 우리 세대에 끝나지 않는 회사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 물려주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도시 환경과 건축물에서 남겨놓은 그들의 자취는 결국 아이들에게 전통의 미와 멋을 알게 하는 교육 효과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비전은 내가 만들어 가는 거예요

최근 한옥이 다시 주목 받으며 한옥을 짓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민가 건축에 의존할 만큼은 되지 않기 때문에 대다수의 한옥목수들은 주로 사찰과 절을 보수하거나 짓는 일을 한다. 
전통 민가 건축은 목수 개인이 담당하지만, 절이나 사찰의 보수 및 건축을 주관하는 곳은 개인보다는 문화재청인 경우가 많다. 
사찰 공사를 입찰 받은 전통 건축 문화재 회사에서 회사 소속 목수들에게 일을 의뢰 및 계약을 맺고 공사에 착수하는 것이 일반적인 매뉴얼이다. 
그러나 1년에 한 두 채 정도의 일만을 해야 하는 시스템은 그를 비롯한 많은 목수들에게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다른 목수에 비해 박봉에 끊임없이 객지 생활을 해야 하는 한옥목수일을 하고 싶다며 연락하는 이들에게 그는 먼저 부정적인 이야기를 꺼낸다고 했다. 
그래도 하고 싶은 사람들은 잘 버틸 수 있고, 그의 얘기를 듣고 맘을 접을 사람은 어차피 중도에 그만둘 것이라 생각해서였다.

“자기 전문성을 가지려면 한 가지 일을 꾸준히 오래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 본 책에서 기술자란 어떤 일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고 어떤 일을 오래하는 사람이란 글귀를 본 적 이 있어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비전이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비전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 일에 임하는 자세가 중요한 겁니다.”

그는 한국 사회의 시스템 자체가 대학 졸업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어준다는 생각으로 대학 건축과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건축과를 나왔다는 그 자체만으로 단종면허를 낼 수 있고, 이론 공부는 전통 건축관련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한옥 관련일이 하고 싶다고 꼭 대학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약 고등학생이 한옥목수가 꿈이라면 졸업하고 곧바로 목수 일을 시작해 자격증을 딸 수 있어요. 
자격증이 없어도 관련 일을 하고 싶은 경우엔, 부여의 한국전통문화학교나 명지대에도 전통건축과가 있죠. 
일반건축과를 가더라도 보수기술자 자격증을 따면 문화제 보수 회사나 연구실에 들어갈 수 있죠.”

나 때문에 사회가 굴러간다고 생각해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선 위대한 평민이라는 목표가 있어요. 
당시엔 별 생각이 없었지만 살면서 생각해보니 마음에 깊이 들어왔어요. 
제로 사회에서 내가 강한 권력을 가졌거나 잘 나가는 건 아니지만 나 때문에 사회가 굴러간다고 생각을 해요. 
이 세계를 구성하고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톱니바퀴의 한 이빨이 되는 거죠.”

이런 마음가짐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한옥목수로 일하고 있지만 그건 이 사회에 필요한 일이고 후손들한테도 필요한 일이란 마음가짐을 품게 했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을 만든 것은 대안학교의 영향이 컸다. 
그곳에서 지내며 습득한 경험과 긍정적인 마음이 전통한옥과 건축에 대한 그의 마음을 굳게 만들어 준 것이다.

오늘날의 중, 고등학생들은 입시라는 틀에 갇혀 대학을 목표로 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꿈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지도 못한 채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하는 친구들에게 그는 앞으로 다가오는 일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지금 당장은 꿈이 없어도 모든 일들은 다 연결돼 있기에 긍정적으로 열심히 하다 보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거에요.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에 자기의 커리어로 남는 거죠.”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141&cur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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