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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분야

(과학) 과학기술자가 창업하는 나라를 위해


천종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누구나 바이오인포매틱스(생명정보학)를 쓸 수 있게 하자.”

생명과학 벤처회사 ‘천랩’의 창업자이자 대표인 천종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의 모토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직업 중 하나인 교수가 역시 세상에서 가장 바쁘고 도전적인 일인 벤처 기업을 만들었다는 사실도 신기하지만, 무엇보다 흔한 정보통신 기술(IT) 분야가 아닌 생명과학 분야라는 점이 낯설다. 
아직도 벤처는 IT 분야에 기회가 많다는 생각이 편견인 걸까.

적어도 천랩을 보면 이 ‘편견’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천랩은 생명과학 분야, 그것도 생물학에서 가장 오래되고 전통적인 분야인 분류학을 기반으로 창업했다. 
하지만 이들의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IT다. 천랩은 생명과학 벤처이기도 하고, TI 벤처이기도 하다.

“요즘 애플의 앱을 보세요.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지요. 
저는 생명정보학이라는 하이테크 기술도 그렇게 만들 수 있다고 봐요.”

천 교수는 이것을 일종의 사회 공헌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IT 기업들은 모든 사람이 정보를 차별없이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데에 관심이 많다.
IT 특유의 '접근성'이 기존에는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나이가 어리거나 교육을 덜 받은 사람, 몸이 불편한 장애인 등은 예전에는 다른 사람보다 지식이나 기회, 사람들과의 교류에 제약이 많았다.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곳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거나(몸이 불편한 경우), 책도 읽을 수 없었다(눈이 불편한 경우).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손가락 하나 혹은 눈빛의 움직임, 심지어 생각만으로 정보를 불러오고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교통사고 뒤 목 아래 전신을 움직일 수 없게 됐지만, 입으로 기기를 조작해 e메일을 보내고 검색을 하는 ‘한국의 호킹 박사’ 이상묵 서울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잠재적인 능력이 IT 기술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많은 기업과 연구자가 사람들이 정보를 편리하게 이용하게 하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 
천랩이 하는 활동도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일의 일부다.

“예를 들어 미생물학을 배우지 않은 중고등학생도 프로그램만 있으면 미생물 유전자를 이용한 연구를 직접 해볼 수 있어요. 
우리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미생물이 있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잘 모르잖아요. 
사실 지금 손에 든 전화, 집안에 있는 냉장고, 먹는 음식, 심지어 우리 몸까지 모든 곳을 ‘점령’하고 있는 생물인데 아쉽죠.”

생명과학 연구자 개인이 쓰면 자신과 일부 연구자만 쓰고 마는 기술이 되지만, 이것이 IT 기술과 접목해 널리 퍼지면 일반인도 쓸 수 있는 보편적인 기술이 된다. 
전공자가 아니면 잘 모르던 미생물학 지식을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기술, 생명과학 연구 결과 쌓이는 수많은 데이터를 마치 게임을 하듯 간단하게 조작해 스스로 연구해볼 수 있게 하는 기술. 
이를 통해 모두가 지식에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기술. 이런 기술을 개발하는 일이라면 보람이 있지 않을까.

컴퓨터를 좋아했던 학생 시절

“제가 학생들에게 곧잘 말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후회할 일은 없다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에요.”

천 교수는 중학교 때부터 프로그램을 만들던 조숙한 IT 천재였다. 
퓨터와 프로그래밍이 좋았다. 
대학에 가서도 그쪽으로 계속 공부를 해볼까 막연히 생각한 적도 있었다. 
컴퓨터공학이라는 말은 없을 때고, 대신 전자공학과에서 비슷한 분야를 다뤘다. 
당시 모 방송사의 진로상담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전자공학을 하겠다고 말한 장면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갑자기 생물학으로 진로를 바꾼 계기는 스스로도 설명하기 힘들다. 
3 때, 문득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공학자와 과학자는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았고 과학이 하고 싶다고 느꼈다.
그리고 과학 중에서도 생물학을 선택했다. 
하지만 컴퓨터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학에 가서도 컴퓨터 연구를 계속했고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천 교수는 “요즘으로 치면 앱을 만드는 일에 푹 빠져 있는 셈”이라며 웃었다. 
천 교수가 당시 만들던 프로그램과 앱과의 차이가 있다면, 누구나 쓸 목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는 점이다. 
생물학에서 쓰는 통계 프로그램 같은 전문적인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왜 그런 걸 만들었냐고요?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이 좋았으니까요. 
공은 생물학이었고 프로그래밍은 하고 싶고. 
그러다보니 둘 사이에 어떻게든 연결고리를 찾게 되더라고요. 
심지어 대학원 전공도 컴퓨터를 가장 많이 쓰는 전공으로 택했습니다. 
그게 분류학이었어요.”

분류학은 생물의 분류 체계를 연구하는 분야다. 
가깝게는 린네와 같이 식물 분류를 한 학자가 있고 멀리는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그리스 학자들도 연구했던 학문이다. 
먹어도 되는 생물과 못 먹는 생물을 구분해야 했던 선사시대 사람들도 경험으로 터득하고 있는 분야기도 하다.
하지만 첨단 생명과학이 뜨면서 인기가 떨어진 분야기도 하다.

“분류학은 국내에서 대학원 과정을 하기도 힘들었어요. 
연구하는 분이 드물었으니까요. 
그래서 유학길에 올랐는데, 그 때 선배들이 했던 말이 지금도 선합니다. 
‘분류학 같이 고전적인 분야를 하면 힘들다’고요.”

하지만 미국에 가서 보니 꼭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남들이 안 하는 걸 하니 희소가치가 있었다.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건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도 알아야 해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갔기 때문에 새 길도 열렸다. 
천 교수가 최근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생명정보학이라고 불리지만, 천 교수가 공부할 당시만 해도 이름조차 없었다. 
그냥 '계산생물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최근의 빅데이터 열풍과 함께 생명정보학은 생물학의 역사를 다시 쓰는 첨단 분야로 떠올랐다. 
인간이 지닌 30억 쌍의 DNA 염기서열을 모두 분석하는 유전체학(게노믹스)이 대표적이다.

미생물의 유전체를 다루는 천 교수의 연구는 그 중 독특하다. 
미생물은 유전체가 다른 생물에 비해 작은 편이다. 
하지만 미생물은 종이 많으며 그 중 대부분을 인류는 구별조차 하지 못한다. 
길거리에서 흙 한 숟가락을 떠도 안에 1만 종 이상의 박테리아와 고세균이 나온다.

이를 하나하나 염기서열을 분석하고 종을 판별하는 일은 유전체가 큰 생물 하나를 분석하는 것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다. 
더구나 각각의 미생물 유전체를 서로 비교하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한다. 
미생물 하나하나를 배양해 염기서열을 분석한 뒤 비교해야 했던 과거에는 20~30개의 미생물 유전체를 비교하는 일도 버거웠다. 
하지만 이제는 1만 개씩의 유전체를 서로 한꺼번에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이를 이끈 것은 차세대 염기서열해독기술이라는 생명과학 기술과, 빅데이터를 처리하는 정보 기술의 합작 덕분이다. 
바로 천 교수가 가장 잘하는 두 가지 분야였다. 
원래 전공인 분류학까지 포함해서, 교수가 되고 10년간 꾸준히 연구를 계속했다. 
성과도 냈다. 
서울대 교수라는 남부럽지 않은 자리에서 안정된 생활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남들과 다른 생각을 했다. 
창업을 꿈꾼 것이다. 
자신이 중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사용하는 벤처 기업을.

과학기술자가 창업하는 나라로

천 교수는 2009년 말 '천랩'을 창업하고 2010년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교수가 된 지 10년이 되는 해였다.

“한 분야를 오래 해서 나름 인정을 받았어요. 
세계적으로 이름도 조금 알려져 있었죠(천 교수는 세균분류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학자다. 국제세균분류학회지의 부편집인을 했고 뛰어난 논문도 여럿 발표했다). 
이 분야에 그냥 있으면 안락할 거라는 사실을 물론 알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연구 자체보다, 연구가 널리 활용되게 하는 데 공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술 이전과 같이 전통적으로 교수나 연구자들이 많이 쓰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걸로는 널리 기술을 퍼뜨리기가 어려웠죠. 
그래서 창업을 결정했습니다.”

작할 때 인원은 네 명이었다. 
이들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에 마련된 천랩의 한켠에는 당시 고락을 다짐했던 네 사람이 추운 겨울에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시린 바람이 부는 듯한 건물 야외에서 두꺼운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다. 
냉혹한 벤처의 최전선에 선 사람들의 표정에는 웃음과 함께 비장함이 묻어났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나름 순탄하게 지금까지 왔습니다. 
직원 수가 34명으로 늘었고(2013년 10월 1일 기준), 회사 공간도 넓혔죠. 
특히 최근 1년 사이에 거의 두 배 가까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어요.”

천랩은 천 교수의 컴퓨터 지식과 미생물 생명정보학 지식을 결합해 미생물의 유전체 정보를 분석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생물의 유전체 따위 몰라도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미생물은 우리 주위를 '점령'하고 있다.

만약 어떤 기업이 태블릿 PC를 내놓으면서 항균(세균, 특히 인체에 해로운 세균을 제어하는 기술) 기능을 넣었다고 해보자. 
정말 효과가 있는지, 어떤 미생물에게 특히 효과가 좋은지, 시간에 따른 변화는 있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 
만약 일일이 미생물을 분석하다가는 제품을 영영 출시하지 못할 것이다. 
흙 한 숟가락에만 1만 종의 미생물이 있고 그 중 대부분(95%)은 정체조차 모르는데 어느 세월에 분석을 할까. 
하지만 차세대 염기서열분석기술로 한꺼번에 미생물 유전체를 해독하고, 이를 빅데이터 기술이 접목된 천랩의 소프트웨어로 분석하면 금세 알 수 있다.

김치의 숙성도에 따라 김치에 어떤 미생물이 어떻게 수가 변하는지 알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다. 
몸에 좋은 유산균이 많을 때를 쉽게 찾아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구체적인 비율까지 알아낼 수 있다. 
나아가 이런 실험 데이터만 있으면 천랩의 프로그램으로 누구나 데이터를 이리저리 가공하면서 재미있는 연구를 해볼 수 있다. 
암 세포 정보를 넣으면 암 유전자를 찾을 수도 있고, 피부에 사는 미생물이 무엇인지도 추적할 수도 있다.

천랩은 한창 성장 중이다.
천 교수는 천랩이 사람으로 치면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는 나이라고 말한다.

“회사도 사람과 똑같아요. 
처음엔 먹이고 재우는 일까지 일일이 챙겨줘야 할 정도로 손이 많이 가죠. 
하지만 어느 정도 키우면 스스로 밥 먹고 학교에 갈 수는 있게 되잖아요. 
천랩도 그래요. 
이제 혼자서도 어느 정도 살아가네요.(웃음)”

설립 초기에 어려움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천 교수는 “재미있게 했다”고만 말했다. 
하지만 남모르는 어려움이 없던 것은 아니다. 
연구만 하던 교수가 창업을 하는 일은 당연히 낯설고 어려웠다. 
당장 재무와 법 등 어려운 업무와 씨름해야 했다.
이 부분은 창업에 밝은 동료와 함께 창업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진짜 어려운 것은, 교수가 기업을 동시에 한다는 데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저는 부정적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수들에게는 좋은 하이테크 사업 아이템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이 창업을 해야 우리나라도 성장 동력이 생기지요. 
지금도 하는 분들이 소수 있지만, 최소 10배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요. 
특히 생명과학 같은 경우는 10년 정도 연구 이력을 쌓지 않고는 창업할 수 없는 하이테크 분야예요. 
이런 연구를 꾸준히 해온 연구자들이 더욱 창업에 많이 눈을 떠야죠. 
하지만 때로는 어려워서, 때로는 교수라는 안정된 직업의 틀에 만족해서 사회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에 공헌할 아까운 기회가 사라지는 거죠. 
물론 돈도 벌어야죠. 
직원도 고용하고 연구도 합니다. 
창업하지 않으면 이 모든 기회가 그냥 없어지지만, 창업하면 한꺼번에 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도전하라

천 교수는 창업을 결심했을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제가 2008년에 분류학에서 생명정보학으로 연구 방향을 틀 때 고민을 했어요. 
나름 쌓은 게 많았고 세계적으로도 알려져 있었는데 전공을 바꾸려니 당연히 망설여지죠. 
그 무렵 한국에 오는 비행기 안에서 미국의 생명과학자 크레이그 벤터의 자서전을 읽었는데, 크게 와닿는 부분이 있더군요. 
벤터도 원래 인슐린을 연구하던 생화학자였는데 생명정보학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그 때 나이가 당시 제 나이와 비슷한 40대 초반이었습니다. 
힘을 얻었어요.”

천 교수는 학생들에게도 도전을 권한다. 
도전하지 않으면 안락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훨씬 풍성한 기회를 얻을 수 없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 도전만 하고 금세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뒷걸음질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잘 될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매순간 경영에 임해야 한다. 
그러면 마치 어린 아이를 키울 때처럼 회사도 성장으로 보답할 거라고 말한다.

“저는 다른 사람의 인생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자서전도 많이 읽고 여러 명사들, 창업자들이 하는 강연 영상도 보지요. 
그러면 여러 인생이 보이고, 인생을 바꾸는 경험도 하게 됩니다. 
실제로 만난 적 없지만, 글로 강연 동영상으로 만난 그 사람들이 제겐 스승입니다. 
인생을 바꾸고, 사회에 공헌하며 더 많은 경험을 누리게 한 멋진 스승이요.”

실험실에서 연구만 하는 게 과학기술자가 살 수 있는 삶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기업가가 되고 싶다면, 특히 기술로 승부하면서도 일상을 움직이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먼저 과학기술자를 꿈꿔보는 게 어떨까. 
창업의 길이 손짓할 것이다. 
준비된 당신이라면.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6680&curPag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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