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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분야

(스포츠) 정보는 움직인 만큼 구할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
박성호 스포츠 마케터

우리나라에서 ‘스포츠 마케터’란 직업에 대해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각 매체를 통해 스포츠와 관련한 홍보·마케팅을 하는 직업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용어조차 아직 생소하다. 
영국 런던대학에서 축구산업학을 공부하고 스포츠 마케터가 되어 돌아온 박성호 씨를 만나, 꿈을 이루기 위해 좌충우돌한 그의 수많은 도전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상으로 말하고 싶었던 소년

박성호 씨는 중학교 때부터 영화잡지를 사 모으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영화를 보는 데 용돈을 다 쓸 정도로 영화를 좋아했다.
첫 번째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를 해서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한 그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즐겁게 대학생활을 했다. 
그는 영화학회, 영화이론공부 동아리 등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막연했던 영화감독의 꿈을 조금씩 키워 나갔다. 
자신의 메시지를 영상에 담아 세상에 전달하고 싶었던 그는 학교 내 TV방송국에 들어가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갔다.

“학교 졸업하기 전에 미국으로 가리라 결심했죠. 
방송국 동아리 선배, 친구들과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NYU(뉴욕대학교) 영화과에 가겠다는 꿈 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그중에 진짜 감독이 된 사람도 있지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유학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군대에 가게 되었다.
제대 후 곧바로 벤처 기업을 창업하다 보니 2, 3년의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서른이 가까워지자 그는 ‘이제 영화를 하기엔 너무 늦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실 전혀 늦은 게 아닌데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에는 영화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다가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에 그 일을 접고 용감하게 영화판으로 뛰어드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창업을 한 이후 박성호 씨의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가 하고 싶었던 일은 창조적인 영상을 만드는 일이었고, 영화감독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창업하고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다 보니, 콘텐츠나 마케팅을 지원해 주는 것 또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과 관련되어 있음
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회사를 운영하는 2년여 동안 그는 영화감독보다 영화 제작자가 되어야겠는 목표를 갖기도 했다.

실패 원인은 경험과 네트워크 부족

1999년 말에서 2000년 초기, 인터넷 사업을 하는 벤처기업이 막바지에 치닫고 있을 무렵이었다.
경제학과에 다니는 박성호씨는 친구와 함께 인터넷상으로 펀드에 투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투자자가 나서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모 기업에서 업무 제휴를 제안 받았을 때는 성공이 당장 눈앞에 놓인 것처럼 보였다. 
사업을 시작한 지 불과 1~2년 만의 일이었다. 
회원 수는 3만 명 가까이 되었고, 아이템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학생이던 그에게는 사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네트워크가 없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같은 건물에 여러 벤처 회사가 입주해 있었는데, 그중 휴대폰 콘텐츠를 만들어 제공하는 회사와 계약을 맺어 함께 일을 했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사업은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그때 깨달았어요. 
사업을 하기에는 아직 네트워크와 경험이 부족하구나, 사업을 키우려면 그런 게 더 필요 하겠구나……. 
벤처사업을 접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을 때 아는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영화사로 가게 되었는데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일단 영화 마케팅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10년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갔죠.”

영화감독이라는 꿈의 문턱에 서서 그는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마음만 먹으면 당장 영화사로 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영화계에서도 자신이 벤처기업을 운영하던 때 겪었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사에 들어간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던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요. 
이 세 가지가 일치 한다면 정말 행복한 거죠. 
박지성 선수를 보세요. 
자신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지금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잖아요. 
저에게는 좀 더 많은 경험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마케팅을 전문적으로 확실히 배울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생각했죠. 
소비자에게 상품을 잘 파는 방법을 배우면 영화 마케팅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고 마케팅을 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아 지원했어요.”

한 걸음 더 움직이면 그만큼 정보에 가까워진다

박성호씨의 첫 번째 직장은 마케팅으로 유명한 외국계 화장품 회사였다. 
그는 여느 대학생처럼 취업 준비를 하지 않았던 탓에 영어 점수가 좋지 않았고, 그로 인해 이력서를 넣는 곳마다 떨어지던 그에게 외국계 회사에서 기회를 주었던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회사가 좋아할 만한 것을 골라서 이력서를 썼어요. 
물론 그 전에 회사에 대한 사전 조사를 했죠.
그 회사 직원을 직접 만나 지원했을 당시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자료를 모아 분석도 했어요.
이미 다른 직장에 취업한 친구들에게 조언도 구했고요. 
나를 파는 일종의 마케팅인 셈이죠. 
현재 그 직업을 갖고 일하는 사람만큼 그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 직업을 가지려면 무엇을 잘해야 하는지, 어떤 면모를 갖추어야 하는지, 자격증은 어떤 것이 필요한지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이죠. 
막상 문이 열렸을 때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소중한 기회를 날릴 수 있으니 항상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해요.”

직원 중 95%가 여성인 화장품 회사에서 화장품에 대한 관심도 여성들과의 대화 능력도 부족한 그가 인턴을 거쳐 정직원이 되기까지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떤 상황 속에서든 그는 항상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그의 장점을 크게 봐주는 상사를 만나 팀을 이루면서 그는 마케팅에 대한 공부와 더불어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가 자신에게 부족했던 것들을 비로소 얻게 된 것이다.

마케팅이 필요했던 축구 시민구단

그러던 어느 날 박성호씨는 우연히 서울 유나이티드라는 시민구단을 창단한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스포츠를 굉장히 좋아했던 그는 축구라는 아이템으로 시민들이 팀을 결성한다는 사실이 자신에게 큰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품 회사는 화장품을 못 팔면 망하죠.
하지만 스포츠구단은 티켓을 못 팔아도 망하지 않아요. 
대기업구단은 모기업이 지원해 주니까요.
하지만 든든한 모기업이 없는 시민구단은 살아남으려면 마케팅을 해야죠. 
스포츠와 마케팅이라……. 
생각지도 않았던 분야에 도전장을 낼 기회가 온 셈이었어요.”

그의 머릿속은 앞으로 일어날 즐거운 상상으로 가득 찼다. 
아는 분을 통해 어렵사리 시민구단 관계자를 만난 그는 다행히도 시민구단 관계자와 사업 비전 면에서 뜻이 맞아 시민구단의 기획회의에 참가하고, 홈페이지 만드는 일을 도우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는 축구로 유학을 다녀온 사람, 구단에서 일하는 사람, 현재 스포츠 마케팅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면서 다양한 정보를 얻었지만, 전문 분야에 대해 알면 알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느꼈다.

“당장 구단에 들어가도 마케팅은 잘할 자신이 있었어요. 
하지만 제 자신을 잘 들여다보니 부족한 점이 많더라고요. 
특히 축구가 약점이었어요. 
제겐 축구마케팅에 대한 학위가 필요했는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게 없으니……. 
축구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으로 가야겠구나, 거기에 가서 좀 더 공부를 해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죠.”

유학을 가기 전, 영국에서 축구 마케팅을 가르치는 대학 중 리버풀과 런던의 두 학교를 염두에 두고, 대표 교수들의 논문을 읽어보며 비교하던 그는 축구를 비즈니스 관점으로 보는 런던 학교를 선택해 늦은 나이에 유학길에 올랐다.

절박하고 불안했던 영국 유학 생활

“비자도 끊기고, 돈도 없고, 친구도 없었죠. 
아무리 힘들어도 아르바이트로 시간낭비하지 말고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자고 아내와 약속을 했지만, 다급한 마음에 배달일이라도 하려고 했어요. 
절박한 순간, 한국에서 연락이 왔죠. 
맨유 홈페이지를 번역하지 않겠느냐고요. 
그렇게 2년 동안 맨유 홈페이지 번역과 잡지 관련 일을 했어요.”

영국에서의 유학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박성호씨는 글로벌 화장품 회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더 좋은 비자를 신청할 자격이 되었음에도 비자가 발급되지 않아, 1년 반 동안 3번의 소송을 했고 2년 만에 겨우 비자가 나왔다. 
비자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2년 동안 그는 20개가 넘는 제안서를 썼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다 때려치우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역 일이 힘들었던 건 아니지만, ‘내가 이거 하러 여기까지 왔나!’ 하는 생각과 ‘과연 내가 원하는 일을 다시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생겼죠. 
영국 구단에 제안하고 싶은 것들을 준비하면서 2년 동안 비자가 해결되기만 기다렸어요.”

열정과 노력으로 얻은 일자리

재판에 이겨 비자가 나올 즈음이었다. 
박성호씨는 지인으로부터 스포츠 마케팅을 한다는 사람을 소개 받았다. 
이름을 검색해 보니 맨체스터에 있는 작은 규모의 스포츠 마케팅 업체 CEO였다. 
그동안 준비했던 제안서가 영국 시장에서도 통용될지 검증받고 싶은 마음에 제안서를 보내려던 그는 맨체스터에 이름이 같은 사람이 한 명 더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사람은 맨체스터 시티의 마케팅 담당 이사장으로 그에게 더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그는 제안서를 좀 더 철저하게 준비하고 싶어 시간을 번 다음 그 사람이 구단으로 들어온 뒤 구단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조사했다. 
홈페이지를 분석하고, 이사장이 쓰는 언어로 제안서를 다시 만들고 나서야 페이스북에서 친구 신청을 통해 메시지로 뜻을 전달한 그는 1개월 동안 준비한 이력서와 제안서를 보냈다. 
다행히 이사장은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 달 뒤 이사장과의 만난 그는 영어는 서툴렀지만 최선을 다해 인터뷰에 응했고, 그 결과 비즈니스를 개발할 수 있는 일자리를 좋은 조건으로 약속받을 수 있었다. 
2년 동안 그가 준비하며 기다렸던 결과였다.

첼시 경기장에서 마시는 한 잔의 커피

박성호씨는 여러 문제로 그곳에서 정직원으로 일하지는 못했지만 영국에서 자신의 능력을 검증받았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같은 한국 사람들로부터 ‘아무리 지원해 봤자 아시아에서 온 사람을 써주는 곳은 없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던 그는 그 일을 계기로 큰 구단일수록 해외시장에 눈을 돌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오히려 큰 구단에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다섯 개 구단을 정해서 20주 동안 일주일에 하나씩 스포츠 마케팅 에이전시에 제안서를 보냈다. 
생각대로 소규모 구단보다 큰 구단에서 제안서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과 인터뷰 요청이 왔다. 
그러나 합격 통지를 받지는 못했다.
첼시에 보낸 제안서도 역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런데 이제까지 받았던 불합격 통보와 좀 다른 점이 있었다. 
‘당신의 제안서를 읽어봤는데 괜찮았다’라는 말과 함께 마케팅 담당자인 헤더의 친필사인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해 조사하면서, 그가 아시아 축구 비즈니스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판단이 섰다.

다시 한 번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제안서를 다시 만들어 헤더 앞으로 보냈다. 
번번이 거절당하다 보니 그런 일쯤에는 무덤덤해 있던 터라, 는 이번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다른 곳에 보낼 제안서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헤더에게서 첼시 경기장에서 커피 한 잔 하자는 답장이 왔다. 
그렇게 그는 프리랜서로 첼시에 마케팅 제안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이루고 싶은 꿈

스포츠 비즈니스에는 여러 분야가 있다. 
에이전트, 스포츠용품 제작회사, 후원을 통한 스포츠 마케팅, 경기 유치, 클럽 등 많은 분야가 스포츠 비즈니스와 관련이 있다. 
그 중 박성호 씨가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클럽이었다. 
클럽은 경기장을 기반으로 여러 가지 수익 모델을 만드는 활동인데, 한국에서는 그런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때마침 NC다이너스(야구팀)를 창단하면서 창원시에서 야구경기장을 새로 짓는다는 뉴스가 발표되었다. 
발표에 의하면 그가 생각하고 꿈꾸었던 것과 거의 내용이 비슷했다. 
영국에서 그 소식을 들은 그는 마음이 급했다. 
제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일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기획안을 만들어 NC소프트 김택진 대표 앞으로 항공우편을 보냈다. 
그리고 같은 내용을 이메일을 통해 관련자에게 보냈고, 또 하나는 지인을 통해 보냈다. 
물론 이 세 개는 모두 한 사람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에게 기다리던 NC소프트 단장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로 인터뷰를 한 뒤, 정식으로 인터뷰를 하기 위해 그는 한국으로 들어왔다. 
물론 첼시에서 계속 일하면 그가 제안했던 아시아 시장에 축구 교실을 론칭할 수도 있고 남들의 인정도 받을 수 있었을 것이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그는 미련이나 아쉬움은 없이 한국으로 향했다.

정보가 구체적일 때 현명한 판단이 가능

박성호 씨는 현재 스포츠 마케터 벤처기업을 운영하면서 대한축구협회 일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꿈꾸는 분야에서 실제로 일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알아보고 직접 만나 보라고 조언했다. 
발로 뛰면 정보가 훨씬 많아지고, 한 발 한 발 갈수록 더 구체적인 정보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식상한 얘기지만 공부 열심히 하세요. 
자기가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에요. 
지금 학생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 공부잖아요. 
성적은 자신을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죠. 
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기회가 많아져요. 
때로는 넘지 못할 것 같은 장벽이 앞을 가로막기도 하지만, 확실한 목표를 갖고 있다면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어요. 
뛰어넘을 때까지 도전하세요.”

대학 시절 창업에 실패하고, 그가 찾은 첫 번째 직장은 화장품 회사였다. 
단지 스포츠 관람을 좋아하고 마케팅에 관심이 많은 청년이었던 그가 지금 스포츠 마케터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이 ‘스포츠’ 관련업이 아니더라도 스포츠 마케터가 되는 데는 상관이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꿈은 구체적이어야 해요. 
스포츠 마케팅에도 여러 분야가 있죠.
멋있어 보이지만 고달픈 에이전트, 스포츠 협회나 조직, 스포츠 분석관, 선수 관리 분야 등 하는 일이 다 달라요. 
PR을 하고 싶다든가, 마케팅을 하고 싶다든가, 사업개발을 하고 싶다든가 분야를 좁혀서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나중에 우왕좌왕하지 않죠.”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248&cur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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