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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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분야

(미술) 우리의 보물을 지키는 직업, 레지스트라

국립현대미술관
권성오 레지스트라

한국직업사전에서는 ‘레지스트라(registrar)’를 소장품 관리원, 예술품 관리원, 또는 수집된 문화재 또는 예술품을 등록하고 보관·관리하는 직업으로 설명하고 있다. 
박물관(미술관)에서는 공공의 신뢰와 효과적인 관리를 위해 등록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소장품의 소장, 상태, 이동, 대여, 폐기 등에 관해 기록하는 것이 필수다.
이러한 작업을 담당하는 사람을 ‘레지스트라’라고 하는데 권성오 씨 역시 그 중의 한 명이다.

레지스트라는 아직 우리나라에는 생소한 직업으로, 국내에서는 삼성리움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단 두 곳만이 이 레지스트라를 두고 있다.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랜 세월 레지스트라 일을 하고 있는 권성오 씨. 
특별한 직업인만큼 그의 하루 일과 또한 특별했다.

미술관의 금고, 수장고

권성오 씨의 하루 일과는 굉장히 바쁘다. 
출근하면 가장 먼저 작품들의 오늘 스케줄이 어떻게 되는지, 나가는지 들어오는지에 대한 움직임을 점검한다. 
외부에서 작품 대여 요청이 들어오면 대여심의위원회를 구성해서 대여 여부를 심의해야 하고, 작품의 상태를 파악하는 업무와 행정 업무도 해야 한다. 
그는 ‘레지스트라’이면서 출납공무원으로, 수장고의 열쇠를 가진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다. 
또 한 사람은 그의 상사인데 두 사람 모두 단독으로는 들어갈 수 없고 반드시 2인 1조가 되어 들어가야 한다.

“수장고는 쉽게 은행의 금고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영화에서 보면, 은행 금고에 들어가기 위해 철문을 열고 들어가잖아요. 
그것과 마찬가지로 여기도 철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고, 철저한 보안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허가 등록된 사람 외에는 문을 열 수가 없죠. 
비상시에 열 수 있는 사람도 딱 두 사람뿐입니다. 
화재가 발생해도 불타지 않을 뿐 아니라 폭격을 당하거나 홍수가 나도 피해를 입지 않도록 방폭, 방수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내부 온도 20±2℃, 습도 55±5%를 항상 유지하고 있어요.”

그가 처음 근무를 시작했던 1988년, 포장도 채 뜯지 않고 쌓여 있던 작품 2천800여 점을 6개월에 걸쳐 한 점 한 점 일일이 확인하며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미술 공부를 하려고 시간이 날 때마다 봐두었던 「조선미술전람회도록」에서 본 듯한 작품이 작가 미상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작가 미상으로 남겨질 뻔 했던 유명 작품의 작가를 찾았을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때의 애정과 설렘 때문에 지금도 작품 관리 업무를 좋아하고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아요.”

국립현대미술관에 발령 받은 공무원

중학생 때까지 시골에서 자란 권성오 씨는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놀기 바쁜 학생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수원으로 전학을 온 그는 조금 내성적이지만 평범한 학생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학업에 큰 열의를 느끼지 못하던 그는 집안 형편까지 어려워지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왕이면 남들 하는 만큼은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당장 대학을 못 가도 나중에 필요하다 생각하면 갈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대학에 다시 들어갈 필요를 못 느꼈어요. 
제 경우 적성에 맞고, 재미있는 일을 발견했기 때문에 학벌이나 배경, 승진에 상관없이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하기도 했던 그는 적성에 맞지 않아 2년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공무원으로서 첫 발을 디딘 국립현대미술관의 인상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주변 환경도 마음에 쏙 들었고 미술 작품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점점 미술에도 관심이 생겼다.

“근무를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났을 때 직속상관이던 한 분이 돈과 함께 책 제목을 적은 리스트를 주면서 책을 사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책을 사와서 그분 책상 위에 쌓아 놓으니 도로 던져주시면서 다 읽으라고, 읽고 나서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해보라고 하시더군요. 
어렵고 재미없었지만 그때부터 틈나는 대로 미술관 관련 서적을 보기 시작했어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던 그는 책을 통해서라도 배움을 얻고 싶었다.
그 상관은 지금 대학교의 교수로 가 계시지만 그에게 이 직업의 정직성을 몸으로 익히게 해주신 롤모델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오래 일한 분들이 말씀하시길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 작품, 두 번째 작품, 세번째도 작품이라 했어요. 
그 다음이 사람이죠. 
여기에서 일하는 이상 미술작품으로 인해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니까요. 
선배들은 후배가 들어오면 그 부분을 가장 강조해서 교육을 시켰어요.”

그래서인지 하루는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작품이 쓰러지는데 그 주변에 있던 열명의 직원이 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 그 브론즈 작품 밑으로 들어가는 헤프닝도 있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필사적인 표정으로 버티고 선 서로의 얼굴을 보는 순간 모두 멋쩍게 웃었다고 한다.

‘레지스트라’라는 직업에 맞는 사람

“레지스트라가 되고자 한다면 미술을 전공하고, 작품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머리가 좋은 사람보다는 성실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곳에 있는 1만 점의 작품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어디에 보관하는지 메모하는 습관이 없으면 체계적으로 정리를 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 다음으로는 정직해야 합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란 말이 있듯이 수장고 안에 들어가면 손톱만한 보석부터 1000호가 넘는 대형 그림들이 있기 때문에 마음을 잘 못쓰면 불행한 일이 생길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마지막으로 레지스트라가 되기 위해서는 원칙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한 순간 융통성을 발휘하면 계속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규정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스스로를 자제하는 노력을 항상 해야 하는데, 원칙을 지키지 않아 한 번 일이 어그러지면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자꾸 거짓말을 하게 되기 때문에 일이 커지게 때문이라고 했다.

“이 일은 경험해가며 하나하나 익히는 일입니다. 
최소한 6개월이 지나야 흉내를 내고 1년쯤 지나야 대충이라도 알게 되죠. 
2~3년이 지나야 제대로 내용 파악을 할 수 있다고 보면 됩니다. 
학교에서 배워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직접 보고 몸으로 익히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레지스트라의 업무 내용을 문서화해서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실전과는 다르기 때문에 경험이 가장 중요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직원들은 문화체육관광부 중앙부처 공무원이다.
크게 행정직, 기술직, 학예직 등이 있는데 큐레이터, 에듀케이터, 콘서베이터, 레지스트라는 학예직 직렬에 포함된다. 
하지만 레지스트라는 전문경력관으로 따로 빼는 것이 맞다고 권성오 씨는 주장한다. 
2~3년 후에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는 공무원 제도로는 이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경험을 쌓아 체계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전문경력관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엄격할 수밖에 없는 이유

“저희 미술관에는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작품이 다섯 점정도 있습니다. 
이 작품들을 관리하는 데도 신경이 많이 쓰이지만 저한테 가장 어려운 작품은 현대미술에 나오는 미디어 작품입니다. 
요즘 미디어 작품들은 너무 다양해서 전자기기를 다루는 사람이 따로 있어야 하는데 우리 미술관에는 없으니 제가 그 관련 일을 할 수밖에 없어요. 
작품을 어딘가에 보내 전시할 때는 작가가 만들어준 매뉴얼을 사전에 다 익혀서 제가 설명을 해야 합니다. 
국내에서 이동할 때와 외국으로 나갈 때의 포장 방법이 다르고, 작품의 특성상 포장지도 달라야 하고, 포장을 풀때의 주의점도 각기 달라 일일이 간섭하고 제재해야 합니다.”

운반부터 설치에 이르기까지 대충하려는 사람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는 권성오 씨는 엄격한 지시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직원들 간의 유대관계는 잘 유지해야겠지만 업무할 때는 정확한 사람, 꼼꼼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미술작품들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사명감이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아니라, 현재 상태에서는 내가 챙기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원칙, 절차를 따져 꼼꼼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그러다 보니 일일이 지시하게 되죠.”

기관장이나 관리자를 거치는 절차를 무시하고 윗선에서부터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도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는 절차대로 진행하고, 안되면 그 이유를 밝혀 의뢰를 거절한다.

“여기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유산이고 훗날 우리나라의 보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함부로 할 수가 없어요. 
이것들이 우리나라를 문화강국으로 만들어줄지 모를 일입니다.”

권성오 씨를 너무 엄격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동료들도 있지만, 그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체계를 잡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미술관 직원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앞으로 꼭 필요한 직업

해야 할 일은 많은데 하나하나 원칙을 준수하며 하자니 1년 365일 중에 공휴일 빼고는 쉬는 날이 거의 없다. 
외부와의 스케줄도 많아서 휴가를 챙기지 못하는 일도 빈번하다. 
권성오 씨가 처음 이곳에 와서 일을 시작할 때 작품 3천 점까지는 외울 수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1만 점이 넘는 작품을 관리해야 하는 지금은 레지스트라가 4명은 있어야 한다.
몇 년 하다가 그만두는 계약직이 아니라 노하우를 축적하여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시급하다.

“미술계에서 배출하는 사람은 굉장히 많은데 실제로 직업군이 많지가 않아요. 
미술 분야의 직업은 더 개발이 되고 더 전문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미술이 사는 길이죠. 
저는 공무원이니 60세면 정년입니다. 
‘레지스트라’가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를 잡아서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이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20년 가까이 하면서 쌓아온 노하우를 누군가에게 가르쳐주고 넘겨줘야 하는데 계약직 직원밖에 채용이 안 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제가 그만두기 전에 이 일을 잘 전수해서 지속적이고 전문적으로 일할 수 있는 후임을 키우고 싶어요.”

현재 우리나라에는 레지스트라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없다. 
그나마 ‘박물관학’이 이 일과 가장 관련 있는 학문이므로, 박물관학을 공부한 사람에게 이 직업이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레지스트라는 꼭 필요한 직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이미 정착된 직업이지요. 
우리나라에는 공·사립 미술관이 엄청나게 많아요. 
큐레이터처럼 미술관, 박물관에는 반드시 레지스트라가 배치되어야 하는 인력으로 자리 잡으리라고 봅니다.”

권성오 씨는 지금도 미술관에서 진행하는 교육 행사가 있으면 뒤에 앉아서 유심히 듣는다. 
그는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것은 물론 외부 대학교수나 평론가들이 오면 강의를 듣는 등 늘 듣고 배우는 자세로 일하고 있다.

 ■ 레지스트라 이외에 미술관에서 일하는 직업 ■


 ● 큐레이터(curator) : 소장품을 연구,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 

  여기에 소장품의 구입, 보수, 관리 업무 등이 추가되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전시 기획이다.


  콘서베이터(conservator) : 회화(繪畵)나 조각 등 고미술품의 보존·수복을 하는 전문가.


  에듀케이터(educator) : 전시 내용의 이해와 흥미를 돕기 위해 어린이, 청소년, 성인 등 다양한 대상의 수준에 맞는 강좌, 실습, 전시실 탐구 등 학습 프로그램과 자료를 개발, 운영, 보급하는 사람.


  도슨트(docent) : 박물관과 미술관 등에서 일정한 교육을 받은 뒤 일반 관람객들을 상대로 전시물과 작가 등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을 제공하는 사람.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225&cur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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