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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분야

(과학) “진로 고민, 늦어도 괜찮아”


조장천 인하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바닷물 1ml를 퍼 올리면 그 속에 박테리아(세균) 100만 마리가 들어있다. 
우리가 아는 건 이 중 0.1%에서 0.001% 밖에 안 된다. 
지금까지 밝혀진 종이 약 1만 종이니 간단한 계산으로 지구상에 박테리아가 1,000만 종 이상이 있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종류가 무궁무진하다보니 분류학자들에게 박테리아는 노다지다. 
가끔 아마존강 밀림에서 신종을 발견했다는 뉴스를 봤을 것이다. 
이때 신종은 생물 분류 단계에서 맨 마지막에 있는 ‘종’이나 ‘속’ 단계다. 
하지만 박테리아는 다른 생물 분류군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새로운 ‘문(門)’을 발견하는 일이 가능하다. 
‘문’은 생물을 구분하는 두 번째로 큰 분류군인데, 척추동물 전체가 하나의 문일 정도로 넓은 범위다.

조장천 인하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2004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새로운 ‘문’에 해당하는 해양 박테리아를 찾은 사람이다. 
세계적으로도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의미 있는 발견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박테리아를 찾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람 입장에서는 우습게 볼 수도 있지만, 박테리아는 지구의 ‘진짜 주인’이다. 
생명이 죽어서 바다나 흙으로 돌아가고, 그곳에서 다시 생명이 탄생하는 물질 순환 구조에서 박테리아는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조 교수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신대륙을 찾는 ‘21세기 콜럼버스’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생명체를 찾아 바다를 뒤지는 ‘탐험가’는 어떤 모습일까.

과학자는 ‘안중에도 없었던’ 사람

“학생들에게 진로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요? 
어휴, 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에요.”

말이 시원시원하고 솔직했다. 
어려서부터 말을 잘 했다고 한다. 
그의 고향은 세월호 사건으로 잘 알려진 진도다. 
웅변대회나 말하기 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과학이랑은 거리가 멀었다. 
특히 과학자는 ‘안중에도’ 없었다. 집은 가난했고, 장래희망을 딱히 정할 상황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그가 법관이나 외교관, 의사가 되길 바랐다. 
“어린 시절 저는 ‘범생이’였거든요. 
나름 공부는 잘 했는데, 딱히 하고 싶은 일은 없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이과를 가야 취직이 잘된다고 해서 별 생각 없이 이과를 골랐어요.”

그는 1987년 서울대 미생물학과로 진학을 한다. 
“부모님은 의사를 바라셨지만 저는 피를 볼 것 같아 무서웠어요. 
그리고 당시 유전공학이 붐이었어요. 
포메이토 아시죠? 
뿌리에는 감자가 나고 줄기에는 토마토가 나는…. 
막연히 이런 걸 공부하면 좋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학과를 골랐어요.”

대학교 5학년 때 결정한 진로

그가 대학교를 들어간 해는 민주화운동이 가장 격렬하던 때다. 
시골에서 자라며 사회문제에 별 관심이 없던 그였지만, 대학에 진학해 탈춤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눈을 뜨게 된다. 
“공부 할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1학년 때 수업이고 시험이고 다 거부했고 당연히 전공 공부는 안 했죠.
시위도 많이 했고요.”

전공은 미생물학이었지만 그는 대학 4년 내내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줄기차게 읽었다. 
“닥치는 대로 읽었죠. 정작 전공학점은 선동렬 방어율(0.8)이었지만….” 
그는 웅변 실력에 힘입어 총학생회 부회장이 된다.
학교 4학년 때는 단식을 하기도 하고, 시위를 하다 감옥에 다녀오기도 한다.

감옥에서 나오니 대학교 5학년. 
대학 4학년 때 황망하게 어머니를 여의고 홀로 되신 아버지를 바라보던 그때부터 ‘현실적인 고민’이 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에 대한 고민.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재수강 삼수강을 하며 부족한 학점을 채워나갔다. 
남들에 비하면 훨씬 늦게 시작했지만 공부가 쉽고 재미있었다. 
전공을 살려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당시는 국내에서 시민 환경운동이 막 시작되던 시기였다.

그는 시민단체 ‘환경과 공해 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던 서울대 김상종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간다. 
김 교수 밑에서 환경미생물학을 공부하며 ‘전공이 사회적인 활동과 연결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그에게 미생물은 수질오염의 정도를 분석하는 도구였다. 
축산폐수로 오염된 수질에서 미생물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분석해서 박사논문을 썼다. 
대학원 때 남들이 한 편 낼까 말까 하는 SCI 논문을 6편이나 발표했다. 
“연구도 나름 꽤 잘 했어요.”

절망 속에 찾아 온 ‘신종 박테리아’

그는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2001년 당시로선 미개척지인 ‘해양미생물’로 연구주제를 바꿔 겁도 없이 미국으로 박사후과정(포스닥)을 떠난다. 
당연히 고생이 많았다. 
말도 잘 안 통하고, 연구방법도 낯선데다 주위에서 조언해주는 사람이 없어 거의 독학하다시피 했다.
“하루 종일 굿모닝, 굿바이, 딱 두 마디만 한 날도 수두룩했죠.”

더구나 지도교수는 그에게 경쟁을 시켰다. 
태평양 연안 오리건주 뉴포트 앞바다에서 가져온 샘플을 조 교수와 다른 동료에게 동시에 배양하라고 지시했다. 
바다에서 가장 많은 박테리아인 ‘SAR11’이라는 박테리아를 찾는 게 목표였다. 
학문적 가치가 높았지만 당시까지 아무도 배양에 성공하지 못했던 어려운 과제였다.

조 교수는 고생 끝에 배양에 성공한다. 
그런데 경쟁자보다 2주 늦었다. 
불과 2주 차, 그는 지도교수에게 후속 연구를 통해 논문의 공동저자라도 되고 싶다고 했지만 딱 한 마디가 돌아왔다.
“There is no secondin Science(과학에는 2등은 없다).” 
냉정했다. 
조 교수는 그 연구에서 아예 손을 떼야 했다. 
거의 두 달을 폐인처럼 살았다. 
좌절 속에서도 어쨌든 연구는 계속 해야 한다는 생각에 뉴포트 앞바다에서 가져왔던 다른 샘플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실험실이 문을 닫는 크리스마스 연휴에 혼자 출근했다. 
“미친놈처럼 혼자 끙끙대며 계통분석을 했어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네요.” 
행운의 여신은 그때 찾아왔다. 
기막히게도 새로운 박테리아 문에 해당하는 ‘렌티스페레’가 발견된 것이다. 
“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었죠.”

벌써 10년 전 일이다. 
그는 이제 국제미생물분류학회지(IJSEM) 편집위원이다. 
박테리아는 IJSEM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신종으로 등록된다. 
그만큼 조 교수가 학계에서 중책을 맡고 있다는 의미다. 
박테리아는 현재 1만 3,537종이 확인됐고, 매년 600여 종씩 새로 등록되고 있다.
그의 손을 거쳐 가는 논문만 매년 100편 가량 된다.

그가 박테리아를 찾는 이유

“제가 발견한 문이 세계에서 몇 번째였냐고요?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조 교수는 인터뷰 중간 중간 바쁘게 돌아다녔다. 
컴퓨터를 찾아보기도 하고, 연구실을 들렀다 오기도 했다. 
“23번째네요.” 
딱히 즉답이 필요한 질문은 아니었지만, 그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성미였다. 
“궁금한건 바로 바로 해결을 해야 기억에 남더라고요.”

그가 박테리아 신종을 찾는 이유도 “호기심 때문”이다. 
“박테리아를 연구해서 얻는 수많은 유용성을 열거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박테리아가 물질을 분해하고 새로 만들어내는 덕분에 자연계가 유지되는데, 우리는 그 과정에 대해서 너무 무지하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이름도 없이 지구에 살다 간 수많은 박테리아들이 궁금하지도 않냐고 그는 반문한다.

“지금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지식도 필요해요. 
19세기에 ‘종의 기원’이 뭐가 필요했겠어요. 
당시 사람들은 쓸데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오히려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증기기관으로 돈을 버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겠죠. 
그러나 불필요한 지식들이 쌓여서 인류에게 필요한 지식으로 바뀔 거라고 전 믿습니다.”

2013년 독도에서 해양 박테리아를 연구하던 중 그는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하는 발견을 한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함께 지구에서 가장 많은 박테리오파지(박테리아에 기생하는 바이러스)를 분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해양 바이러스는 해양 생물의 개체수를 조절하고 바닷속 탄소, 질소, 황 등 물질 순환에 영향을 준다. 조 교수의 발견은 생태학과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업적이다.

과학자는 글 쓰는 사람

조 교수는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분야를 가리지 말고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써보라고 권한다. 
“과학자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그는 과학자를 한 마디로 정의했다. 
“작가와의 차이점은 글의 소재가 자신의 연구결과라는 것뿐입니다.” 
아무리 연구를 잘 해도 글을 잘 쓰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찰스 다윈 역시 20~30년간 축적된 방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글(논문)을 쓰지 않아 역사에 등장하지 못할 뻔 했다고 지적한다. 
인문학을 포함해서 다방면의 책을 읽으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연습을 하라고 그는 조언한다.

자신과 같은 미생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는 성실을 강조한다.
“생물학은 머리가 아닌 엉덩이로 하는 학문입니다.” 
성실한 사람들이 학벌에 상관없이 과학자로 성공할 수 있는 분야가 생물학 분야라고 믿기때문이다. 
지긋이 눌러앉아 하루고 이틀이고 현미경으로 박테리아를 관찰하다보면 기회는 찾아온다. 
“이건 좀 비과학적이긴 한데, 신종은 특별한 느낌이 와요. 
남들이 못 키우는 박테리아는 굉장히 작아요. 
배양이 되면 아주 작은 게 밤하늘에 있는 별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어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눈앞에 밤하늘을 상상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천문학자다. 
1969년 인간은 달에 발을 디딘다. 
박테리아는 그로부터 8년이 지나서야 개수를 셀 수 있게 됐다. 
밤하늘 은하수의 별들에는 하나하나 이름이 붙어있지만, 박테리아는 아직도 태반이 이름이 없다. 
어찌보면 우주보다도 미지의 세계다.

진로고민, 늦어도 괜찮아

대학 다닐 때 조 교수를 알았던 친구들은 지금 그의 모습에 놀란다고 한다. 
공부는 뒤로 한 채 열심히 ‘운동’만 하던 그가 세계적인 미생물 학자가 돼 있는 모습 말이다. 
조 교수는 ‘운동권’을 떠나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데 대해 “부채의식도 물론 있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연구가 분명히 인류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현재를 긍정했다.

그런 그가 존경하는 학자는 라이너스 폴링이다. 
폴링은 과학자로서 유일하게 노벨상을 두 번 받은 사람이다. 
한 번은 노벨 화학상, 한 번은 노벨 평화상이다. 
조 교수는 폴링처럼 연구를 하면서도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도 과학적 지식을 사회로 환원하기 위해 대중강연이나 집필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다른 사람에 비해 미생물학자로 진로를 결정하고 뛰어든 시기는 늦었지만, 그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덕분에 누구보다 폭넓은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그리 늦게 시작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미국에 있을 때 나이 50이 된 분이 연구하는 모습을 봤어요. 
회사에서 20년 넘게 일하면서 아이들 다 키운 뒤에 제2의 인생을 찾은 거죠. 
저 나이에 뭐가 될까 싶지만, 그 분은 네이처에 논문을 2편이나 쓰고 대학원을 졸업했어요.”

조 교수는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밤 11시에 퇴근한다. 
스스로 “참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젊은 시절 ‘골프장의 환경파괴’에 대해 강의한 게 마음에 걸려 지금까지 골프도 한 번 못 치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미생물을 찾아내고 탐구하는 게 재미있어서 늘 바쁘다. 
얼마 전 열린 국제미생물학회에서 그가 발견한 ‘렌티스페레’가 언급될 때마다 항상 그의 성인 ‘CHO(조)’가 뒤에 따라다니는 걸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나는 죽어도 내가 발견한 미생물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언제까지고 남아있을 겁니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001&cur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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