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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분야

(대안학교)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엔 자신감이 필요하다


남휘현 기타리스트

남휘현씨는 2004년 설립된 감리교 대안학교 ‘산돌학교’의 2기 졸업생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좋은 대학교를 가는 인생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그는 대안학교에서 접한 밴드 활동을 통해 가수의 길을 걷게 된다. 
대학 대신 기타를 선택한 그는 현재 인디밴드 ‘The Roosters'에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196~70년대 로큰롤 뮤직을 연주하는 ‘The Roosters'는 2014년 8월 EBS 스페이스 공감 주최 신인 발굴 콘서트인 ‘헬로루키’에 입상하는 등 홍대 인디씬의 수많은 밴드 사이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젊지만 자기주관이 확실한 기타리스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의 음악만큼 매력적인 일이었다.

교사였던 부모님의 제안으로 대안학교 체험을 갔죠

남휘현씨는 공교육의 한계를 느낀 교사 부모님의 소개로 남양주에 위치한 ‘산돌학교’를 찾았다. 
공부도 곧잘 했던 그지만 대안학교 입학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산돌학교에서는 ‘학교체험’이라고 학생들이 정식 입학을 하기 전, 2박 3일 정도 직접 학교생활을 해보는 체험 프로그램이 있어요. 
거기서 본인이 거부를 하면 아무리 부모님이 보내고 싶어도 학교에서 받지 않거든요. 
제가 갔을 땐 학교가 예쁘고 다니면 재밌을 것 같아서 입학을 결정했죠.”

그는 그렇게 ‘산돌학교’의 2005년 입학생이 되어 5년 과정을 이수했다.

학교는 경험 자체를 가르쳐 주었죠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것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학교의 다양한 수업과 활동이 그의 그런 걱정을 없애주었다.

“대안학교에서는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보단 다른 것들을 알려줬죠.
기독교 학교라 영성과 같은 종교 관련 수업도 있었지만 그것 이상의 다양한 활동들을 했어요. 
학생의 관심분야를 위한 인턴쉽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매해 국토순례도 하고 여행도 많이 다녔어요. 
학교에선 여행을 통해 저희한테 고행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했죠.”

히말라야나 인도 등 여러 나라를 배낭을 들고 돌아다닌 여행은 그에게 있어 친구들과 추억을 만든 것 이상의 경험을 주었다. 
힘듦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세상을 보는 견문도 넓히고 다른 세계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느끼게 해준 것이다. 
이런 체험은 훗날 그가 음악 작업을 하는 데에 있어 큰 자산이 되었다.

짝사랑 그녀 때문에 기타를 치게 됐어요

공부도 곧잘 했고, 다른 사람들처럼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교를 가겠다는 그의 생각은 대안학교에서 만난 어떤 상대로 인해 180도 바뀌어버렸다. 
짝사랑하게 된 그녀가 기타를 치는 연예인을 좋아한단걸 알게 된 순간부터였다.

“원래는 기타를 아예 못 쳤어요. 
그런데 짝사랑하던 애한테 보여주고 싶더라구요. 
그 애가 좋아하는 연예인보다 내가 더 잘 칠 수 있단 걸. 
그래서 딱히 잘하는 게 없던 와중에 기타를 시작했는데 남들보다 덜 노력해도 더 잘하는 것 같았구요. 
내가 소질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되었죠.”

학교 밴드 동아리의 기타를 잘 치던 선배의 역할도 컸다.

“처음 기타 치는 법을 가르쳐 준 형이었죠. 
그 형을 많이 따랐는데 사고가 나서 죽었어요. 
충격을 많이 받았죠. 
어린 맘에 형 몫까지 내가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학교가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터라 선배가 별로 없었지만, 그는 친구들과 함께 독학으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공연을 많이 하고 싶어 시스템을 바꿨어요

산돌학교에서 생활한 5년 동안 그는 기타, 축구, 친구들과의 추억 등 다양한 추억을 쌓았지만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동아리 활동이었다. 
풍물과 신문 제작, 밴드부 활동 등 여러 동아리를 거쳐 그가 졸업 때까지 쭉 활동을 했던 곳은 풍물과 밴드 동아리였다. 
공연을 많이 하고 싶던 그는 동아리 시스템을 바꾸고 학교 축제를 개설하는데 일조했다.

“학교 밴드부에 악기도 별로 없고, 멤버도 적었어요. 
축제 때 공연하는 멤버가 항상 정해져있고, 잘하는 애들과 배우는 애들이 나눠져 있었거든요. 
학교 안이지만 레이블을 만들어서 밴드 만들기를 장려했죠. 
아리 안에서 스스로 연습을 하면서 맘에 드는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라구요. 
제가 4학년 때엔 밴드가 4개 정도 됐어요. 나중엔 레이블 쇼도 만들어 공연을 했죠.”

그가 학교 측에 제안서를 써서 만들었던 ‘동아리제’는 현재까지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축제가 되었다.

멤버 전원이 닭띠라 ‘The Roosters’(수탉들)이 됐죠

현재 휘현씨가 기타리스트로 속해 있는 ‘더 루스터스’의 나머지 세 멤버들(보컬 겸 베이스 김진우, 하프 겸 오르간 이찬희, 드럼 황성민)은 그와 마찬가지로 ‘산돌학교’를 졸업했다. 
친구인 그들이 대안학교 시절 함께 활동했던 밴드의 이름은 ‘j배고파’(존x 배고파) 라는 밴드로 ‘더 루스터스’의 전신이었다. 
2010년 그와 보컬의 졸업을 기점으로 잠시 소강상태에 있다가, 1년 뒤 다른 멤버들이 졸업을 한 뒤 멤버 재정비를 통해 현재의 ‘더 루스터스’가 탄생된 것이다. 
멤버 전원이 닭띠였기에 이름을 수탉들로 지은 그들은 홍대 앞 클럽에서 본격적인 음악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공연 환경도 잘 모르고 무작정 인디씬에 뛰어든 탓일까. 
성 초반의 공연들은 관객이 거의 들지 않았다.

“이 동네에(홍대) 공연하기 좋은 클럽들이 있고 사람들이 아무도 오지 않는 클럽도 있는데 처음 1년 동안은 좋지 못한 곳에서 공연을 했어요. 
클럽들을 보면 미성년자 출입금지라고 쓰여진 데가 많은데 저희가 딱 19살이니까 성인이 되어야 그런 곳에서 공연할 수 있다고 착각한 거예요. 
관객은 없었지만 1년 동안 편하게 부담 없는 공연을 하면서 실력이 늘긴 했죠.”

‘산돌학교’에서의 5년 과정이 끝나가던 해, 그는 학생이 원하는 직업현장, 단체 등에서 직접 수업 및 체험을 받을 수 있는 인턴쉽 제도를 들어야 했다. 
그가 인턴쉽으로 선택한 것은 밴드였다. 
밴드활동을 진지하게 생각한 그는 모두가 반대하는 가운데 밴드‘문샤이너스’를 따라다녔다. 
홍대 인디씬에서 인디밴드의 활동을 지켜보며 그는 음악적 롤모델 차승우(밴드 모노톤즈의 기타리스트)를 만나고, 하고 싶은 음악 장르도 발견했다. 
크라잉넛 같은 펑크 밴드를 좋아했던 그가 인턴쉽 때 따라다녔던 ‘문샤이너스’의 로큰롤 음악을 듣고 생각이 바뀐 것이다. 
드 선배들의 추천으로 영향을 받은 거장들의 로큰롤 음악을 들은 그는
1960~7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락앤롤 음악을 시대에 맞게 새롭게 바
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새 애들은 랩에 더 관심이 많죠. 
‘쇼미더머니’ 같은 프로그램도 인기가 많잖아요. 
인디밴드들은 인기도 없고 대중도 잘 모르구요. 
하지만 저희는 계속 락앤롤 음악을 지향할 거예요.”

대중의 후원으로 두 번째 앨범을 만들 수 있었어요

2012년 1월 공식적인 데뷔를 하고서 밴드 ‘더 루스터스’는 2012년 싱글 앨범 발매에 이어 2년 만에 EP 앨범을 발매했다. 
콘텐츠 제작 장벽이 높아 많은 아티스트들이 앨범 발매를 쉽사리 하지 못하는 가운데, 그들의 앨범 발매에는 특별한 점이 있었다. 
바로 앨범을 제작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이 대중들이란 사실이었다. 
일의 시작은 그들의 공연을 본 음악전문 커뮤니티 뮤직킹의 대표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앨범 제작을 제안하면서부터였다. 
크라우드 펀딩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해 소규모 후원이나 투자 등의 목적으로 인터넷과 같은 플랫폼을 통해 다수의 개인들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행위이다.

“일단 싱글앨범을 하나 녹음해 사람들에게 홍보를 하고 펀딩을 알려보자라는 취지였죠. 
그 다음에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어요. 
‘더 루스터스’ 앨범 프로젝트를 위한 목표 금액 500만원을 설정한 거죠. 
그 사이트에 서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앨범 제작을 성공한 최초의 밴드라더군요.”

거꾸로 읽으면 밴드명 루스터스로 읽히는 EP 앨범 ‘Ret`s Oor’는 휘현씨와 보컬 김진우씨의 곡들로 채워졌다. 
발매한 전 곡을 작곡 및 작사로 참여한 휘현씨의 작업 방식은 생활 속에서도 끊임없이 음악을 생각하는 것에 있다고 했다.

“제 경우엔 먼저 뭘 말하고 싶은지 생각하고 그거에 맞는 코드나 간단한 멜로디 후렴구를 떠올려요. 
그 다음에 대주제가 나오면 그걸 바탕으로 계속 부르면서 살을 붙이는 거죠. 
미술하는 거랑 비슷해요. 
무엇을 그릴지 생각하고 스케치 뒤에 색을 입히고 명암을 넣는 것처럼 제 방식대로 살을 계속 붙이는 거죠. 
항상 핸드폰에 메모해 놓고 떠오른 멜로디를 녹음하기도 하면서 브레인 스토밍을 해요. 
가사 같은 경우도 내가 사는 현실에 맞게 쓰는 걸 좋아해요.”

그가 음악을 할 때 항상 생각하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인생에서 겪는 여러 경험이 음악 창작에 있어서 중요하단 사실을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평소 지하철을 타고 다니던 경험에서 만들어진 ‘in the subway'나 ‘순환열차’, 학교 졸업 쯤에 만들어 오래 공연을 한 ‘come to me' 등의 자작곡들은 그 경험 속에서 만들어진 곡이다. 
현재 앨범으로 발표된 7곡 이외에도 그는 끊임없이 창작을 하고 있었다.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편하게 들을 수 있도록. 
그게 락앤롤의 장점이죠. 
올드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해요. 
저희 엄마도 좋아하세요.”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148&cur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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