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 인터뷰

여러 분야의 진로∙직업 전문가와 사회 각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분들의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직업 세계를 확인하고 진로선택 방법을 알아보세요.

커리어패스

과학분야

(과학) 좋아하면서 동시에 성장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라


노준용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스크린에서는 모든 게 가능하다. 
거대한 외계 우주선이 지구를 침공해 닥치는 대로 도시를 파괴하기도 하고, 판타지 세계의 기기묘묘한 풍경과 생물이 실제 있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나타나기도 한다. 
현실에서 일어나기는 하나 촬영하기 어려운 장면이 현실감 있게 펼쳐지기도 한다.

노준용 교수는 이와 같은 영화를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컴퓨터그래픽(CG) 분야의 전문가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쓴 박사 학위 논문이 컴퓨터그래픽 분야의 권위 있는 학회인 ‘시그라프’에 발표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시그라프의 위상은 쉽게 얘기하면 과학계의 네이처나 사이언스와 비슷하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이 이곳에 논문을 발표하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현재 노 교수는 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영화 제작에 필요한 CG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을 이용해 영화의 특수효과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콘텐츠 사업에서는 미국이 헐리우드를 중심으로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점차 세계로 퍼지는 상황이다. 
노 교수는 “뉴질랜드의 웨타가 반지의 제왕을 만들었듯이 다른 나라도 각자 자기 영역을 만들고 있다”며 “한국도 새로 시작되는 또 하나의 중심지로 자리를 잡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외에도 CG는 앞으로 더욱 많은 곳에 쓰일 전망이다. 
과학적인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거나 분자 단위의 반응처럼 눈에 안 보이는 현상을 보여 주는 과학시각화, 수술 과정을 시뮬레이션 해주는 의학시각화도 CG의 역할이 큰 분야다. 
마케팅 분야에서도 상품 디스플레이 같은 곳에 쓰일 수 있다. 
시각은 우리 일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CG 역시 우리 일상 곳곳에 묻어 있다.

영화를 좋아했던 컴퓨터공학도

노 교수가 CG기술 개발에 뛰어든 데는 취미 생활의 영향이 컸다. 
로 영화 감상이다.
미국 유학 시절 그는 일주일에 세 편 꼴로 영화를 봤다. 
주말이면 극장에 가서 연속으로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게 흔한 일상이었다. 
극장에 걸리는 영화는 거의 다 본 셈이다.

“하나라도 빠지면 뭔가 빼먹은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그러다가 보니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에 특수효과가 많이 들어가니까 그쪽 공부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마침 박사 과정에 진학할 때쯤에는 쥬라기공원이나 토이스토리 같은 영화가 나와 화제가 많이 됐고, 멀티미디어가 부각됐죠. 
그래서 컴퓨터과학의 여러 분야 중 CG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그는 영화 감상을 즐긴다. 
다만 과거와 달리 이제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고 있다. 
영화 작업을 할 때는 CG가 들어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촬영본을 보는 일도 많을 텐데, 영화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오히려 감흥이 더 큽니다. 
그린스크린 앞에 연기자 한 명만 있는 식의 허접스러운 영상을 볼 때도 많은데요, 나중에 극장에서 최종본을 보면 더 즐거워요. 
내가 그걸 이렇게 만들다니 하는 생각이 들면서요. 
하.”

하지만 그토록 좋아하는 영화를 자유롭게 보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다. 
학창 시절 그의 생활은 모범생 그 자체였다. 
국민학교(당시에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였다)에 입학한 뒤 처음 본 시험에서 전교생 6000명(당시에는 가능한 수였다) 중 유일하게 ‘올백’을 맞았다. 
조회 시간에 대표로 나가서 상을 받았는데, 왠지 앞으로 공부를 계속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 뒤로 다소 부침은 있었지만, 성적은 항상 상위권을 유지했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과목은 수학이었다. 
암기를 위주로 하는 과목은 반복되는 느낌이 있어서 별로 선호하지 않았지만, 수학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새로 배우는 게 확실하고 공식을 활용하면 답이 나오는 게 정말 재미있었다고 한다.

노 교수의 부모님은 많은 부모가 그렇듯 자식이 공부에 집중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영화를 보러 갈 여유를 잘 내지 못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는데, 부모님이 못 가게 해서 결국 보지 못했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성적뿐 아니라 생활에서도 모범생이었다. 
주변에 친구가 많고 모임의 주동이 되는 성격이었지만, 사회적인 통념상 하면 안 된다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수업 시간에 인사를 잘 하고, 길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배웠다면 실제로 그렇게 했다. 
어린 시절부터 지행합일의 경지에 다다른 셈이다. 
친구들이 교과서라고 놀릴 정도였다.

한국인이 아니라 지구인이다

노 교수는 학창 시절 장래 희망이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의 기술을 개발하고 강점을 가져야 나중에 사업을 해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공계를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학입시에서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원하던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것이다. 
당시 입시 체계는 3년을 잘 해도 단 하루만 학력고사를 망치면 돌이킬 수 없이 1년을 기다려야 했다. 
두 차례나 실패한 뒤 노 교수는 미국 유학으로 진로를 바꿨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내가 실패해서 떠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우울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재수, 삼수를 하면서 생각이 바뀐 게 도움이 됐죠. 
세상을 크게 봐야 한다. 
내가 활동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 세계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라 지구인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넓은 세상에서 공부할 수 있게 돼서 좋더라고요.”

대학에 진학하면서 선택한 전공은 전자공학이었다. 
첨단 기술을 나타내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전자공학이 무엇인지 잘 아는 상태에서 고른 전공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고등학생이 대학에 대한 정보를 미리 얻기가 쉽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보니 다행히 적성에 딱 맞았다. 
마침 입시에 실패하고 유학을 온 터라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공부에도 더 매달렸다.

“대학교 때는 정말 재미있게 공부를 했어요. 
배워야 하니까 배우는 식으로 살다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게 되니까 정말 재미있었지요.
수업 듣고 끝나면 바로 도서관에 가서 배운 내용을 공부했어요. 
교수님이 수업하다가 잠시 헷갈리는 게 있으면 제가 바로 알려주기까지 했지요.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는 교수님이 헷갈리면 으레 절 보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는 학창 시절부터 꿈꾸던 자기 자신만의 기술과 강점을 얻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석사 과정에 진학하면서는 당시 주목받던 컴퓨터공학을 택했다. 그
렇게 나만의 기술과 강점을 만들어 나갔다. 
박사 논문은 얼굴 애니메이션을 자동으로 만드는 기술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게 시그라프에 발표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가 공부했던 대학에서도 최초였다.

“원래 졸업 뒤에 사업을 준비하며 시간을 잠시 보냈어요. 
당시 벤처붐도 불어서 우리나라 정보통신부에서 벤처 경진대회를 열기도 했지요.
여기에 박사 학위를 받은 기술로 응모를 했는데, 상을 받았어요.
그러자 벤처 캐피탈리스트가 자금을 댈 테니 한국에서 사업을 하자고 제의했지요. 
하지만 사업을 하려면 미국에서 하지 뭐하러 한국에서 하나 싶었어요. 
벤처 캐피탈리스트는 한국에서 하기를 원했고……, 그런 차이를 해소하지 못해서 결국 성사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이 논문은 그가 졸업 후 몸담았던 직장인 리듬&휴즈 스튜디오와 이어주었다. 
노 교수의 박사 논문을 본 리듬&휴즈 스튜디오가 실제로 이를 구현해 사용하면서 교류가 시작됐는데, 나중에는 아예 스카웃 제의를 해온 것. 당
시 KAIST에서도 부르긴 했지만, 그는 사업을 하겠다는 꿈도 있고 하여 미국에 남아 현업에서 일을 했다.

개발한 기술이 아카데미상 받을 때 기뻤어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 때 원래는 불가능했던 게 기술 개발로 가능해지는 모습을 보는 게 보람찼지요. 
‘수퍼맨 리턴즈’를 할 때는 폭풍우가 치는 바다를 그리기 위해서 유체 시뮬레이션 기술을 개발했고, ‘나니아 연대기’에서는 지형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었어요. 
그걸 아티스트가 손으로 하려면 하루가 꼬박 걸리는데, 이 기술을 쓰면 몇 분만에 끝나지요. 
생산성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에 아티스트들이 고마워했습니다.”

‘황금나침반’을 위해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아카데미 기술상을 받기도 했다. 
이미 우리나라에 돌아온 뒤였기에 수상은 아깝게 놓친 셈이다. 
금 언급한 영화가 대표적일 뿐 실제로 그의 연구가 쓰이는 영화는 많다.
소프트웨어는 한번 만들어 놓으면 계속 쓸 수 있어 지금까지 몇 편의 영화에 관여했는지 일일이 셀 수가 없다.

CG 개발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까. 일일이 손으로 그리기는 어려워서 자동화하는 기술을 개발할 때도 있고,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한 표현을 구현하는 기술을 개발할 때도 있으며, 더욱 빠른 속도로 처리하는 기술을 개발할 때도 있다.
어떤 문제는 쉽게 해결이 가능하지만, 복잡한 수학을 넣어서 풀어야 할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얼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데 확률통계를 응용하기도 한다. 
모션 캡처한 표정이 있다면 다음에는 어떤 표정으로 변할지 확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자동 변환해 주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수식으로 만들고, 프로그래밍해서 아티스트들이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를 꼽자면 수학과 프로그래밍인 셈이다.

리듬&휴즈 스튜디오에서 4년 동안 일한 뒤 그는 KAIST 원광연 교수의 부름을 받았다. 
2005년 문화기술대학원이 생기면서 현장 경험을 갖춘 전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노 교수 역시 우수한 학생과 함께 연구하고 싶은 마음에 요청을 수락했다.

귀국해 KAIST 교수로 부임한 뒤에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꾸준히 기술개발을 하고 있다. 
그는 “지금 개발하고 있는 기술이 나중에 빛을 발하면 부자가 될 수도 있으니 어린 시절 꿈을 포기한 건 아니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교수가 사업을 운영하거나 투자해 큰돈을 버는 사례가 많다. 
우리나라도 최근에는 이와 비슷한 추세로 가고 있다.

최근 노 교수가 개발한 기술 중 하나는 ‘스크린X’다. 
보통 영화는 전방 스크린 한 곳에만 영상을 비추지만 스크린X는 좌우 양쪽의 벽에도 영상을 비춰 입체 효과를 낸다. 
즉, 관객은 270도의 각도로 찍힌 영상에 둘러싸여 영화를 보는 것이다. 
마치 영화 속에 들어온 것과 같은 효과가 나면서도 3D영화와 달리 안경을 써야 하는 불편함도 없다. 
이 기술은 이미 전국 40여 개 극장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수학과 프로그래밍은 필수

CG를 비롯한 영상 기술 개발에 종사하려면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앞서 이야기했듯이 수학과 프로그래밍은 필수다. 
하지만 어느 한 가지만 잘 해서는 높은 곳까지 올라가기가 어렵다.

“요즘에는 문과와 이과의 의미가 많이 사라지고 있어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그런 구분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느꼈지요. 
심리학 전공자가 프로그래밍을 잘 하고 수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왜 그러면 안 되냐’는 답이 돌아왔지요. 
반대로 공학을 하는 사람인데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경우도 있고요.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에서는 양쪽을 다 잘 하는 게 성공하는 길입니다. 
실제로 그런 사례를 아주 많이 봤어요.”

노 교수는 사실 학창 시절에 그런 자기계발을 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그 당시에는 이공계와 인문계 구별이 분명해서 이공계 학생이 그림을 그리거나 다른 공부를 해볼 여유가 별로 없었다. 
그는 “요즘은 그렇지 않으니 지금 세대는 이런 다양한 경험을 찾아서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대주의가 아니라 글로벌 시대에 여러 나라 사람과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누려면 현실적으로 영어가 가장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미국 회사에서 사람을 뽑을 때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요구합니다. 
냥 영어 능통자를 뽑는 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잘 하는 사람을 뽑는다는 거지요. 
내가 만들어낸 것을 효율적으로 설명해야 하고, 저쪽에서 요구하는 게 뭔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거든요. 
단순히 영어를 잘 하는 게 아니라 소통을 잘 해야 하는 겁니다.”

그는 직업을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점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평생을 살아간다면 삶이 피폐해진다. 
두 번째는 그 일을 함으로써 스스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도 성장할 수 없다면 희망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두 조건을 만족하는 직업을 택하는 게 가장 좋다는게 노 교수의 조언이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6704&curPage=3

목록보기

교육부 한국직업능력연구원 국가공인 웹 접근성 품질인증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