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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분야

(과학) 직업은 열정을 갖고 꿈을 실현시키는 것


조범동 VM 대표

“오늘날 주로 쓰이는 가솔린 내연기관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은 모두가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기술적인 차원에서는 수소연료 같은 차세대 에너지, 정책적인 차원에서는 대중교통 활성화 같은 방법이 있지요. 
현재 EU에서는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전기를 사용한 탈 것과 대중교통 활용의 연계가 가장 현실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전기자전거는 대중교통과 연계하기 위한 1인용 이동수단이지요. 
전기자전거가 가장 현실적이고 가시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겁니다.”

조범동 VM대표는 전기자전거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젊은 사업가다. 
현재 친환경 개인교통수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전기자전거를 널리 보급하겠다는 꿈을 갖고 직접 회사를 세워 경영한 지 3년 만에 대기업과 당당하게 경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회사 이름인 VM은 ‘Visionary Mobility’의 머릿글자. 이동성을 자유롭게 구현한다는 조대표의 어린 시절 꿈을 담은 이름이다.

어렸을 때부터 창업을 꿈꿔

이동수단에 대한 조 대표의 관심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 
것을 잘 보여주는 게 유치원 시절의 일화다. 
조 대표가 다니던 유치원 바로 옆에는 버스 종점이 있었다. 
버스가 들어오고, 정비하고, 청소하고, 나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던 나머지 조 대표는 그 자리에 서서 무려 3시간 동안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유치원에서는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소동이 일기도 했다. 
그는 “체감으로는 10분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며 “그 시절 이후로 관심 분야가 바뀐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주변 환경도 영향을 끼쳤다. 
자주 친척을 방문했던 아버지를 따라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움직이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탈 것에 관심을 갖게 됐다. 
게다가 국립중앙과학관이나 93 대전 엑스포처럼 꿈이 식지 않게 만들어준 환경도 있었다. 
엑스포는 당시 93일 동안 열렸는데, 조 대표는 무려 24번이나 엑스포를 구경하러 찾아갔다.

학창 시절 내내 조 대표는 변함없이 과학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등학교 시절에는 에디슨과 라이트 형제의 위인전을 읽고 꿈을 키웠다.
과학실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괜히 즐거워졌다고 한다. 
초중고 내내 장래희망은 과학자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암기식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해 성적이 하위 10%에서 머물렀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 생활을 하던 중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되든 안 되든 일단 해 보자는 거였죠. 
그 뒤로 고등학교 때까지는 학교에서 미친듯이 공부만 했습니다. 
대학에 원서를 내러 갈 때 우연히 만난 아주머니가 그래도 나중에는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질 거라고 이야기 했는데, 전 절대 아니었어요. 
공부만 했으니까요.”

창업을 하겠다는 꿈도 어린 시절부터 서서히 뿌리내렸다. 
조 대표는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방학이 되면 외국으로 산을 타러 다니는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상남자 스타일로 아이들에게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다. 
조 대표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건 정부나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잘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세상에는 돈을 가지고 투자를 하는 사람이 있고 투자를 받아서 기업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당장 투자할 돈이 어디서 생기지는 않아도 기업을 하는 건 시도해 볼 만한 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 경험은 이후 다시 머리에 떠오르면서 창업을 굳게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조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무턱대고 찾아간 일이 있다. 
사전 연락 없이 찾아가 나중에 여기서 일하고 싶은 사람인데 구경 좀 시켜주면 안 되겠느냐고 했던 것이다. 
그때 한 연구원이 조 대표를 보고 데리고 들어가 견학을 시켜줬다.

“그 분이 뼈 있는 한마디를 해줬습니다. 
왜 여기서 일하고 싶어하냐고요.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만들고 싶은 걸 개발하는 게 아니라 국가에서 만들라고 하는 걸 만드는 사람이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에디슨 전기를 다시 꺼내 봤습니다. 
다시 보니 에디슨은 과학자라기보다는 사업가더군요. 
내가 창업을 해서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게 바람직한 길이겠다는 생각을 그때 확실히 했습니다.”

부모 세대 조언 미래엔 안 통할 수도

조 대표는 스스로 고집이 세다고 인정한다. 
진로를 결정하는 문제도 부모님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학창 시절 아버지는 그가 법대에 진학해 판사나 변호사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는 부모님의 이야기가 마냥 진리는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때 아버지에게 이런 얘기를 했어요.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게 아버지 시대에는 맞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30년 뒤를 살아가는 내게는 틀린 이야기다. 
아버지가 바라는 변호사도 나중에 내가 살아가는 시대에는 경쟁 없이 편하게 살아가는 직업은 아닐 거라고 말씀드렸죠. 
지금 생각해 봐도 타당한 얘기 같아요.”

대학교에 진학한 조 대표는 여전히 자기만의 길을 걸었다. 
2000년대 초반으로 아직 우리나라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T I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효과를 발휘하던 때였다. 
벤처 신화도 아직 식지 않았고,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통신 쪽을 공부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조 대표는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하고 싶은 공부를 했다. 
모터와 관련이 있는 전력 쪽 수업을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 창업에 대비해 경영학을 부전공했다. 
당시만 해도 공대생이 경영학을 부전공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심지어 학교 행정실에서도 연락이 왔다. 
진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요즘에는 융합이 대세가 되면서 공대생도 다양한 경험을 쌓는 일을 권장하는 추세니 조 대표가 앞서 나간 셈이다.

처음으로 창업에 도전한 건 대학 재학 중이었다. 
전기스쿠터에 대한 엔지니어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였다. 
당시에는 처음이라 창업이라는 개념이 막연했다. 
학생 신분으로 개발한 기술에 대해 특허를 여러 개냈는데, 그 특허를 보고 한 회사가 R&D를 의뢰한 게 시작이었다. 
이때의 창업은 졸업 이후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사실상 회사를 만드는 게 어떤 일인지 알게 됐다는 면이 컸다.

조 대표는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서 과학기술 관련 정책을 공부했다.
이후 정부출연연구소 등에서 일을 하며 경험을 쌓은 뒤 30대 후반이나 40대에 창업을 하는 게 목표였다.

“원래는 정부출연연구소 같은 데 들어가 R&D 경험을 더 쌓으려고 했는데 젊을 때 도전해야 실패를 하더라도 타격을 덜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대학원에서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을 만나 많은 조언을 받은 뒤에 생각이 바뀌었지요. 
40대가 된 뒤에는 창업할 용기가 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걸림돌을 걸림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VM은 2008년부터 준비를 시작해 2010년 10월에 정식으로 세운 회사다. 
준비 기간부터 따져도 5년밖에 되지 않는 신생 회사다.
하지만 전기자전거 분야에서는 이미 상당한 인지도를 얻었다. 
이를 보여주는 일화가 JTBC에서 방영한 ‘남자의 그 물건’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일이다. 
우리나라의 탑4 전기자전거를 선정한 뒤 순위를 가리는 방송이었다. 
여기에 뽑힌 VM은 4개 업체 중에서 2위를 차지했다. 
나머지 3개 업체는 모두 대기업이었다.

“대기업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가 충분한 경쟁력을 지닌 물건을 만들고, 또 그 물건이 시장에서 잘 팔리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성과입니다.
요즘 새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 놓으면 1~2주 만에 전부 팔립니다.
얼마나 더 많은 자금을 갖고 더 많이 만들 수 있느냐가 중요한 상황이지요.”

회사를 만들고 이끌어 오는 일이 항상 순조로웠던 건 아니었다. 
예상치 못하게 병역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하려던 게 원래 계획이었는데, 바로 창업을 하면서 병역을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번은 초청을 받아 모로코에서 건설교통부장관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출국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만약 갔더라면 수주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조 대표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외부의 훼방으로 고생한 적도 있었다.
한 경쟁사가 제품에 대한 부당한 트집을 잡아 인터넷에 비방글을 남기며 비난하고 다녔던 것이다. 
좀 더 뒤에는 법규 위반으로 고발을 해 조 대표가 경찰 조사를 받고 벌금을 내기도 했다. 
실수로 전기자전거에 꼭 붙여야 하는 KC인증 마크를 뗀 채 전시장에 선보였다가 누군가 신고를 했던 것.

조 대표는 “그런 어려움을 걸림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더 큰 회사가 왜 그렇게 경계심을 가졌겠느냐고 반문했다. 
오히려 “우리 회사를 위협이라고 느꼈으니까 그렇게 나왔을 것”이라며 “그 사건 때문에 즐거웠다”고 말했다. 
걸림돌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그가 그런 걸림돌을 자연스럽게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조 대표의 말에서는 치열하게 살아온 그동안의 세월이 은근히 드러났다. 
자기계발을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조대표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최근에서야 강연을 듣거나 책을 읽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창업 이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시간을 전혀 낼 수 없었어요. 
전투에서 덜 치열한 격전지에서 전장을 내려다봐야 전략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을 텐데, 전 최전선에서 총 쏘기 바빴거든요. 
자기계발을 할 여유가 전혀 없었지요.”

에디슨, 앨런 머스크가 롤 모델

회사를 운영하는 것과 별도의 인생 목표가 있느냐는 질문에 조 대표는 “개인적인 목표와 회사의 목표를 왜 구분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것을 이루기 위해 창업한 것이기 때문에 회사의 목표가 곧 개인의 목표라는 것이다. 
Visionary Mobility라는 회사 이름부터가 이미 꿈을 담은 이름이었다.

그렇다면 롤 모델은 있을까. 
조 대표는 롤 모델로 에디슨과 앨론 머스크를 들었다. 
에디슨은 어린 시절부터 영향을 끼쳤던 위인전의 주인공이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과학자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세상을 크게 바꾼 회사를 만든 기업가였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에디슨이 세계 최초의 벤처사업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는 에디슨이 만든 GE가 최초로 R&D조직을 갖춘 회사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기술경영에서 모두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전에는 한 천재가 모든 것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식으로 개발이 이뤄졌다면, 에디슨은 조직을 만들고 부서를 나눠서 개발하고 상용화했다. 
R&D를 한 방식 자체가 동시대에 비해 크게 앞서나갔던 것이다.

요즘 인물로는 앨론 머스크였다. 
현재의 관점에서 최고의 기술을 모아서 상용화시키는 사업가라는 게 조 대표의 평가다. 
세계적인 인터넷 결제서비스인 페이팔의 공동창업자이자 현재 급부상하고 있는 전기자동차 회사인 테슬라 모터스, 민간 우주항공기업인 스페이스X를 설립한 인물이다.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모델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조 대표처럼 탈것을 만드는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쯤 되면 조 대표의 꿈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기술적인 혁신을 바탕으로 오랜 관심분야였던 탈것을 만들어 보급하는 것. 
탈것은 우리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분야로, 에디슨의 GE가 우리의 삶을 크게 바꿔 놓았던 것처럼 조 대표 역시 사회를 바꾸고 지속가능한 형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첫째는 꿈, 둘째는 열정

“저는 좋은 직장에 가지 못했기 때문에 창업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에게 조언을 하자면, 직업은 자신이 꾸는 꿈을 열정을 갖고 실현시키는 것입니다.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너무 휘둘리지 않아야 합니다.”

조 대표는 꿈을 실현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해 ‘열정적으로 꾸준히 하는 것’을 꼽았다. 
진로를 결정하는 시기가 되면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이 많은 조언을 하지만, 그런 조언은 과거에는 어울리나 미래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결국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서 필요성을 느낀 건강한 멘탈이었습니다. 
저는 걸림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 주변에서 자꾸 심각하게 생각하는 일이 많았지요. 
그걸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느냐, 과정의 일부로 여기느냐는 자신이 선택하는 거지요.”

마지막으로 조 대표는 융합적인 사고를 주문했다. 
전기자전거 회사를 운영하기까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학문은 수학과 과학, 영어였지만, 결국 좋은 제품을 만들어 팔기 위해서는 경영학, 소비자심리, 사회문화 등 다양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조 대표는 “학교 공부에만 매진했던 중고등학교 시절과 달리 대학교에 오고서부터는 학문에 경계를 두지 않고 여러 경험을 했다”며 “그게 바로 벤처 기업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6687&curPag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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