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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좋은 책을 만나면 세상을 달리 보는 눈이 생긴다”


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 예측독성연구본부장

“수의학과 출신인 제가 어떻게 독성평가 전문가가 됐냐고요? 
학창 시절 만난 ‘좋은 책’ 덕분이지요.”

새로운 화합물이 탄생하거나 신약 후보물질이 개발되면 시중에 팔리기 전에 독성이 있는지 판단하는 과정이 복잡하게 진행된다. 
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 예측독성연구본부장은 독성평가에 첨단 기술을 접목하는 연구로 국내 독성평가 분야를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독성을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기술이 개발되면 독성평가에 희생되는 실험동물의 수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결국 한 권의 책이 그를 동물 한두 마리를 치료하는 수의사에서 수많은 동물을 한 번에 살릴 수 있는 길로 이끈 셈이다.

인생의 전환점마다 책이 있었다

“그 책의 이름은 ‘침묵의 봄’입니다. 
제가 고등학생일 때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사촌형이 저희 집에 왔다가 소개해준 책이랍니다.”

이 책은 인간의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으로 생태계가 파괴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소개하고 있다. 
윤 본부장은 책을 통해 화학물질이 인간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처음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이 책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대학 입학 때 선택한 전공은 수의학이었다.

“지금은 수의학과를 졸업하면 반려동물을 치료하는 수의사가 되거나 동물 관련 제약회사 등에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지만 당시엔 수의학과를 나오면 소나 돼지 같은 가축을 상대한다는 이미지가 강했어요.
가고 싶은 학과보단 좋은 학교를 가는 게 우선이었던 때라 담임선생님도 반대하셨답니다.”

주위의 반대에도 윤 본부장이 수의학과 진학을 희망했던 데에는 또 다른 책의 영향이 컸다. 
이번에는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잡지였다.
정확히 말하면 잡지에 연재된 한 수의사의 글이었다.

“중동에 건설 붐이 일던 시절, 사촌형 중에 사우디아라비아에 자주 다녀오신 분이 계셨어요. 
이 형이 저희 집에 올 때마다 가져오는 물건들이 하나같이 신기했었는데, 그 중에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잡지도 있었습니다. 
처음엔 유머가 재밌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수의사가 연재한 글에 빠져들게 됐답니다.”

당시 영국의 수의사 제임스 해리엇은 낙농업을 하는 사람들과 나눴던 따뜻한 이야기를 이 잡지에 연재하고 있었다. 
막연히 시골에서의 낭만적인 수의사의 삶을 그리던 윤 본부장은 평소 존경하던 생물 선생님과의 상담을 거치며 수의학과 진학에 대한 결심을 굳혔다.

“생물 선생님은 수의학이 선진국에서 인기 있는 과이고, 우리나라가 더 잘 살게 되면 반려동물을 많이 키우게 될 것이기에 전망도 좋다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위기가 기회로 바뀌다

의지를 가지고 수의학과에 진학했지만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년이 올라가면서 동물을 직접 상대하는 임상 수의사가 적성에 맞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기초연구에 흥미를 느낀 그는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고 전공으로 ‘면역학’을 선택했다. 
독일에서 갓 돌아온 젊은 지도교수를 만난 덕분에 진로에 대한 상담도 많이 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박사학위는 미국에서 받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닥쳐왔다. 
미국 유학길이 꽉 막혀버린 것이다.

“입학 허가를 빨리 받으려면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교수들을 직접 만나는 게 좋다는 선배의 조언을 따르려고 했습니다. 
바로 어학연수를 신청하고 미국 대사관에 비자를 받으러 갔죠. 
그런데 대사관에서 토플 성적도 좋은 사람이 어학연수를 간다니까 의심이 들었는지 거절을 하더군요. 
비행기표까지 끊어둔 상태였기에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대사관을 나와 터벅터벅 걷던 그에게 문득 일본에서 공부하는 선배가 떠올랐다. 
전화를 했더니 일본으로 오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3개월 동안 속성으로 일본어 공부를 마친 뒤 일본행을 결정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위기는 기회로 바뀌었다. 
이때가 1996년이었는데, 이듬해 외환위기가 발생하며 미국 유학생들의 ‘강제 귀국’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일본 유학생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 
더구나 2년차부터 학위를 마칠 때까지 장학금을 충분히 받아 큰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유학길 못지않게 전공 선택에 있어서도 큰 결심이 뒤따랐다. 
석사 때는 면역학을 공부했지만 박사 과정은 독성학으로 전공을 바꾼 것이다.

“제 머릿속에 한 분야만 공부하기보다 다양한 분야를 배워두면 새로운 연구를 할 때 접목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을 거란 생각이 어렴풋이 들더군요. 
요즘 많이 언급되는 ‘융합 연구’ ‘다학제간 연구’에 조금 일찍 눈을 뜬 셈이죠.”

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이 다시 떠오른 시기도 이때였다. 
윤 본부장의 입학 요청을 받은 일본의 지도교수가 왜 독성학을 선택했느냐고 묻자, 과거 ‘침묵의 봄’을 읽었을 때의 감흥을 그대로 전했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학창 시절 읽은 한 권의 책이 인생의 방향을 확정하게 만든 것이다.

다양한 길을 돌아온 그는 2000년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도 새로운 도전을 계속했다. 
박사후연구원을 할 곳을 찾던 중 스웨덴에서 온 편지 한 통에 먼 길을 날아갔다.

“운 좋게도 제가 간 연구실은 여러 유전자를 한 번에 탐색할 수 있는 ‘DNA칩’을 연구하는 곳이었습니다. 
당시로선 유전자 1,000개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기술은 획기적이었거든요.”

스웨덴에서의 경험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이에게 주어진 선물과 같았다. 
한국에 돌아온 뒤로도 DNA칩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길이 열렸던 것이다. 
삶의 방향이 정해지자 윤 본부장은 이후 이 분야를 깊게 파는 데 전념할 수 있었다.

책에서 세상을 달리 보는 눈을 배우다

변화무쌍한 길을 지나온 그였지만 유년 시절은 지극히 평온했다. 
활기록부에는 ‘묵묵히 맡은 일을 잘하는 성실한 학생’이라는 기록이 남기도 했다. 
교사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살았던 덕분이다.

이사를 자주 한 탓에 친구들과 자주 헤어져야 했지만 그만큼 다양한 추억도 쌓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부모님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 분교로 전근을 가시면서 호롱불을 켜 놓고 지내기도 했다.
TV를 볼 수 없으니 동네 친구들과 서리를 하면서 뛰어다녔던 경험은 진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시골 생활을 뒤로 한 채 윤 본부장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줄곧 강원도 원주에서 지냈다. 
사촌 형들의 집도 원주였다는 점에서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사촌 형들은 방학 때마다 그에게 서울 소식을 알려주고 이런저런 책을 소개해줬다.

“지금도 유시민 씨가 쓴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 책은 어린 제게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달리 볼 수 있는 시각을 가르쳐 줬습니다.”

이 시절 윤 본부장의 장래 희망은 대학 교수였다. 
특정 학과에 대한 생각보다 그저 대학 교수가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하버드의 공부벌레들’을 보면서 이들을 카리스마 있게 가르치며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워갔다.

최신 독성평가 기술 ‘전도사’

“지금은 제가 있는 곳이 가장 좋습니다. 
박사학위를 마칠 때까지 대학 교수의 꿈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바뀌었답니다. 
동기나 후배들이 교수를 하고 있지만 별로 부럽지 않아요.”

박사 후 연구원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윤 본부장은 대학에 잠시 머물다가 안전성평가연구소에 입사해 독성을 예측하고 평가하는 일을 맡고 있다. 
실험용 물고기인 ‘제브라피시’를 활용하는 독성평가나 줄기세포를 사람의 심장이나 간으로 분화시켜 독성 시험에 쓸 수 있게 하는 등 연구소에 최신 기술을 끊임없이 소개하는 게 주된 임무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지금의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교수가 되어 나만의 연구를 하는 것도 좋겠지만 함께하는 것이 제겐 더 좋더군요. 
대형 국가 프로젝트에 여러 연구원들과 함께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현재 윤 본부장은 생물 정보와 독성학 정보를 디지털화한 뒤 컴퓨터에 넣어 만든 가상세포나 가상조직을 이용해 생체 반응을 확인하는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컴퓨터로 만든 가상세포가 어떤 건지 상상하려면 영화 속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과거에는 CG 기술이 매우 어설펐지만 지금은 실사와 거의 다를 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생물 정보를 많이 모으고 이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만 있다면 컴퓨터 상의 가상세포가 살아 움직이는 세포를 대체할 수 있는 시기가 곧 올 겁니다.”

엉뚱한 시선이 연구의 시작

연구만 할 것 같은 윤 본부장에게도 의외의 목표가 있다. 
책을 써보고 싶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연구와 관련된 과학책이 아니라 에세이 같은 책이다. 
그의 롤 모델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쓴 빌 브라이슨이다.

“브라이슨은 ‘발칙한 유럽산책’이라는 책도 썼는데, 사회 현상을 보며 시니컬하게 비판을 하는 내용을 주로 다루면서도 거기에는 유머가 섞여 있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 영화 ‘총알 탄 사나이’를 보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요. 
아직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지만 언젠가 저도 이런 책을 써보고 싶어요.

그가 이처럼 엉뚱한 꿈을 꾸게 된 배경에는 어릴 때부터 관점을 달리하는 데 익숙해진 영향이 크다. 
그저 엉뚱한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다름’의 필요성을 일찌감치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엉뚱함은 독성평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간 수치를 측정할 때는 지난 30~40년 동안 똑같은 지표가 적용돼 왔다. 
이를 마냥 고수하고 있거나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한 연구이니까 맞을 거야’라고 해서는 독성학에 발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윤 본부장의 주장이다.

“수치가 더 높거나 낮으면 어떻게 될까, 다른 지표로 볼 순 없을까. 
성학에는 이런 생각이 필요합니다. 
독성학은 분야의 성격상 클래식함을 추구하긴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머문다면 연구자가 아닌 테스터가 될 뿐이에요.”

“청년의 생각을 가져라”

그는 자신의 본부에 속한 연구원들에게도 똑같은 사항을 강조하고 있다. 
훌륭한 논문을 보면서도 항상 답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의 창의력이 떨어진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습니다. 
선생님이나 선배가 말하면 다 옳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기성세대나 권위를 뒤집어 볼 수 있는 시각이 연구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 꼭 필요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일까. 
윤 본부장은 남을 가르치고 관리하는 자리에 선 뒤 꼭 명심하고 있는 말이 있다. 
‘청년의 생각을 가져라.’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감정과 지식에 의존해서 고집불통이 되기 쉽습니다. 
저는 그럴수록 젊은 생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경험이나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멋진 인생 선배의 삶을 살아온 그는 마지막으로 청소년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삶의 중요한 결정의 순간마다 책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요즘 청소년들이 책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며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이 들어갈 공간이 지극히 한정적”이라고 지적했다. 
스마트폰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순 있겠지만 흥미 위주의 머리기사에 이끌려 다니며 금세 잊혀질 정보에 희희낙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 시절 좋은 책을 만난다면 삶의 방향이 바뀔 겁니다. 
그 ‘한 권의 책’과의 만남이 우연이든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것이든 자신의 꿈과의 만남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달리 보게 만들, 한 권의 책을 꼭 만나시길 바랍니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6997&cur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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