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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분야

(과학) “밤하늘 아름다움 함께 나눠요”


김영진 과학동아천문대 대장

2014년 11월, 서울 한복판에 천문대가 생겼다. 
많은 사람들이 “과연 도시 하늘에서 별이 보이겠느냐”며 우려했다.
기우였을까. 
개관 10개월, 이 천문대는 매일 밤 수십 명의 시민들을 아름다운 밤하늘로 안내하는 가족나들이 명소로 떠올랐다. 
바로 서울 용산 동아사이언스 사옥에 위치한 ‘과학동아천문대’다.

과학동아천문대가 지금처럼 자리를 잡는 데는 김영진 천문대장(39)의 역할이 컸다. 
입담이 화려하지 않지만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강연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9월 초, 14년차 ‘베테랑’ 아마추어 천문학자인 김 대장을 과학동아천문대에서 만났다.

사춘기 소년 위로한 건 가을밤 외로운 일등성

“중학생 시절, 쌍안경으로 밤하늘을 보며 책에 나온 별자리를 찾는 기쁨에 빠져 지냈습니다.”

김 대장은 사춘기 소년일 때부터 별을 봤다. 
알퐁스 도데가 쓴 소설 ‘별’을 읽고 밤하늘에 심취했다. 
소녀에게 별자리 이야기를 들려주는 목동이 부러웠다. 
하지만 그 시절만 해도 별자리나 우주에 관련된 대중서가 많지 않았다. 
과학잡지 ‘뉴턴’에 나오는 ‘이달의 별자리’가 다였다. 
증을 느끼던 차에, 별자리가 수록된 책 한 권에 눈이 번쩍 뜨였다.

“어렸을 때 추리소설과 과학서적을 사 모으는 취미가 있었어요. 
단순한 수집욕구였기 때문에, 사놓고 안 읽은 것도 많았죠. 
하지만 별자리에 관련된 책은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당시 열다섯살 소년이었던 그는 쌍안경을 들고 옥상에 올랐다. 
“책에 나와 있는 별자리와 밤하늘에서 내가 찾은 별자리의 모양이 딱 맞으면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고 말하면서 그는 지그시 눈을 감기도, 허공을 쳐다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추억에 잠기는 듯 했다.

“가을의 유일한 일등성인 ‘포말하우트’를 좋아했어요. 
정말 외로운 별입니다. 
주변에 밝은 별이 아무것도 없어요. 
짝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을 때였는데, 마치 나의 외로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죠.”

이렇게 별을 좋아했지만, 그는 정작 서강대 컴퓨터공학과로 진학했다. 
당시 전망 좋은 학문으로 떠오르던 컴퓨터공학을 전공해야 먹고 살기에 좋을 것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는 졸업과 동시에 경기도 세종천문대의 부대장이 됐다.
천문학과도 없는 서강대에서 어떻게 아마추어 천문학자의 길을 걷게 된 걸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서강대에 들어간 게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었습니다.”

3태성이 존재했던 동아리 ‘별반’

김 대장은 대학에 가서도 별을 잊지 못했다. 
먹고 살기 좋을 것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택한 전공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별반’이라는 동아리에 가입했다. 
당시 별반에는 아마추어 천문학계를 주름잡던 ‘3태성(김지현, 심재철, 이한주)’이 활동하고 있었다. 
별 헤는 밤이 좋았던 김 대장에게는 천운이었다.

“당시 국내 대학의 천문 동아리들은 대부분 4인치 굴절망원경을 사용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서강대 별반에는 자체 제작한 10인치 반사망원경이 있었죠. 
아무도 망원경을 직접 만들 생각을 못하던 시절이었는데, 대단했죠.”

김 대장은 그 길로 동아리방 ‘죽돌이’가 됐다. 
한 번 동아리방에 들어가면 밤새 앉아 별을 보고 사진을 찍었다.

“그 때 선배들과 함께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 속의 그대’를 부르곤 했어요. 
그 선배들이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멘토죠. 
그 중 한 명이 바로 지금 과학동아천문대를 함께 꾸려가고 있는 김지현 별학교 교장선생님이에요.”

천문대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것도 그때였다. 
졸업 후 안성천문대 대장으로 활동하던 또 다른 선배가 3학년 학부생이었던 그를 천문대 연구원으로 발탁했다. 
그때부터 김 대장은 천문대를 찾은 사람들에게 별자리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미숙했지만, 사람들에게 별자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정말 행복했어요. 
그때까지 저는 남 앞에 나서지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인줄로만 알았거든요. 
새로운 적성을 발견한 거죠. 
늦게 깨달은 게 오히려 다행이랄까요. 
일찍 알았으면 교대를 갔을지도 몰라요.”

별을 본 지 10년이 되는 시점이었다. 
강의를 시작한 뒤로 그에게 별을 본다는 건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됐다.

“그 전까지는 오로지 나를 위해, 내가 행복하려고 별을 봤어요. 
하지만 천문대에서 사람들에게 별 보는 즐거움을 전달하다보니 그 때부터는 다른 사람들이 별을 보며 행복해 하는 모습에서 보람이 느껴졌죠.”

아마추어 천문학자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천문대에 계속 몸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국내에는 천문대에 취업할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은 데다, 천문대 연구원 생활이 안정적이거나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은행에 취업하기로 했다. 
그러나 졸업을 2개월 앞둔 2000년 12월 어느 날, 갑작스러운 비극이 일어났다. 
그의 인생을 바꾼 사건이었다.

“동아리 선배이자 당시 세종천문대 대장이 비운의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하셨어요. 
갈등을 많이 했죠. 
선배의 뒤를 잇고 싶었거든요. 
행에 들어가고 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2001년, 김 대장은 그렇게 세종천문대 대장이 됐다. 
그렇게 시작한 천문대 생활이 올해로 14년째다. 
혹시 천문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게 천문대장으로서 약점으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그는 “역설적이지만, 만약 천문학과를 갔으면 천문대장이 될 생각을 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학의 천문학과는 별을 관측하는 활동이 전체의 10%에 불과합니다. 
한국은 별을 보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관측천문학보다 이론천문학이 상대적으로 우세하죠. 
제가 만약 천문학과를 갔으면 천체물리학 연구를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천문학자들은 직접 망원경을 들여다보는 일이 드물다. 
물론 자신이 연구하는 천체를 직접 관찰하고 사진을 찍는 천문학자도 있지만, 대부분 실험실에서 데이터를 물리적, 수학적으로 분석한다. 
별 사진을 찍고 데이터를 얻는 일은 학부생이나 대학원생, 또는 전문 오퍼레이터가 맡고 있다. 
김 대장은 “한국은 이론천문학이 강하기 때문에 그들이 프로고 별보는 사람들은 아마추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그것은 선입견”이라며 관측천문학이 쇠퇴한 국내 실정에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외국에서는 관측을 전문으로 하는 천문학자들을 ‘백야드 아스트로노머(backyard astronomer)’라고 불러요. 
현장에서만큼은 그들이 프로죠. 
매년 10건 정도 새로운 천체가 발표되는데, 대부분 이런 아마추어 천문학자의 성과입니다.”

그는 별이 좋아서 천문학과를 가겠다는 청소년에게도 “단순히 별을 보는 게 좋은 것과 천문학과에 진학해서 천체물리학을 공부하는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일단 경험해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별을 보는 게 좋다면 일단 그 취미생활을 깊게 해 보는 게 중요해요.
아마추어 천문학자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니까요. 
만약 천문학과에 가고 싶다면 물리학이나 수학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지 고려해야 합니다.”

매력적인 ‘촌철살인’ 강의 스타일

김 대장은 2005년 경기도 안성천문대로 터전을 옮겼다. 
2007년부터는 천문대장으로서 안성천문대를 살뜰히 꾸렸다. 
2011년에는 경기도 최우수 천문대로 선정됐다. 
과학동아천문대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무엇보다 김 대장의 강의가 좋았다’는 후기가 많다는 말에 멋쩍게 겸손한 웃음을 지어보이던 그는 “14년 간 갈고 닦았으니까요”라며 강의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사람들 반응이 없었어요. 
나름대로 쉽게 얘기했지만, 저한테만 쉬웠던 거죠. 
그때 깨달았어요. 
일반인이 공감할 수 있게 얘기해야 한다는 걸요. 
점차 강의에 다양한 비유와 농담을 섞기 시작했죠.”

김 대장은 과학자에게 필요한 중요한 역량 중 하나가 바로 일반인과 공감하는 능력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아는 상식 또는 한번쯤 궁금해 했을 법한 예시로 강의를 시작한다.

“별이 뭐냐고 물으면 요즘 초등학생들은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라고 정확히 답합니다. 
달이 별이 아니라는 것도 알죠.”

하지만 강의는 역동적인 ‘촌철살인’의 순간으로 이어진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면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외우고 있던 지식의 바닥이 드러나는 건 순식간이다.

“하지만 달빛이 달이 스스로 내는 빛이 아니라는 증거를 말해보라고 하면 말을 못해요. 
책에서 보고 외워서 그런 겁니다.”

답이 궁금해 몸이 슬슬 간지러워질 때쯤에야,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비유를 들어 시원하게 이해시켜준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인 비유입니다. 
달 모양이 매일 바뀐다는 게 한 가지 예가 되겠죠.”

김 대장은 “어린 친구들이 책에서 지식을 외우고 사고의 틀에 갇히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높은 교육열 덕분에 아는 지식은 많지만, 별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감할 수 없으니, 별 보는 데서 느끼는 황홀함도 먼 나라 얘기다. 
밤하늘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그로서는 새로운 임무가 생긴 셈이다. 
그는 “시민들이 밤하늘을 좀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앞으로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8월에는 천문대에서 두 차례 <별>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아이들을 수업에 데려오신 부모님들이 끝까지 경청할 정도였으니까요. 
앞으로 별을 이해할 수 있고, 밤하늘의 아름다움에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겁니다.”

“마지막까지 사람들과 밤하늘 아름다움 나눌 것”

서울 중심에 세워진 천문대에서 인생 제2막을 시작한 김영진 천문대장. 
그는 과학동아천문대로 옮긴 것을 ‘음지에서 양지로 나왔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보는 눈이 더 많아지고 책임감도 커졌다는 뜻이다. 
최근 우주의 모든 것을 하나로 꿰는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는건 그 때문이다.

“별은 진정한 융합의 산물입니다. 
빅뱅과 별의 탄생이 물리학의 시초이죠. 
별이 생긴 이후 갖가지 원소들이 튀어나왔으니, 화학 주기율표는 별의 일생인 셈입니다. 
지구과학, 생물학도 별에서 나왔죠. 
별을 보는 건 어쩌면, 별이 우리의 고향이라는 인식 때문이 아닐까요.”

그가 몸담은 장소나 철학은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할 테지만, 한 가지 근본적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김 대장은 그 누구보다도 별 보기를 사랑하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시민들의 밤하늘 여행을 책임지겠다는 다짐이 그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별자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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